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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47화 (147/174)

147화 비단, 비단

비단병원 병원장실.

약 70퍼센트 이상의 비단병원 직원들이 모두 KS그룹과 깊은 관계가 있는 현재.

병원장 또한 KS그룹 사람이나 다름없는 의사가 맡고 있었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중년 끝자락의 사내.

평소 수술 집도 중이 아닐 때에도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녀, 마스크 닥터라고 불리는 반덕화.

근 10년 가까이 장학수 회장의 전담 주치의를 맡았을 정도로, KS그룹 내 영향력 또한 상당한 그가, 현 비단병원의 병원장이었다.

그런 반덕화 병원장의 앞에, 두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사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도윤과 호식이었다.

“…현재 병원 내 파벌, 분명 호식이 니가 알고 있는 대로 존재해.”

“물론 두 부류. 우리 쪽 사람들이랑, 명성 쪽 사람들이겠죠?”

호식의 물음에 반덕화 병원장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나누자면, 온건파와 강경파. 전자야 당연히 우리 KS그룹 쪽 직원들이지.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 같은 의사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를, 오롯이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돌봐 속죄하자, 라는 주의지.”

“…….”

“한 마디로, 현 체계를 유지하면서, 의사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자는 거야. 외부의 다른 일 따위에는 신경 쓰지 말고.”

말을 잇던 반덕화 병원장이 힐끗 도윤을 바라봤다.

“그럼, 명성 쪽. 그러니까 강경파 의사들은요?”

호식이 자못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하자, 반덕화가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이야, 질리지도 않는지 한결같이 똑같은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지.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뭐라고 하는데요?”

“의사들이 언제까지 기업들의 돈놀이에 놀아날 거냐, 우리 스스로 병원을 지키자! 라는, 그럴 듯한 구호를 내걸고 있지.”

“전원 해고라는 핵폭탄을 맞아 봤으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동조했겠군요?”

“…그래.”

짧게 대답한 반덕화가 한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말이 우리 그룹 쪽 의사들이지, 대부분이 그저 우리 그룹에 호감 정도만 가지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가만히 듣고 있던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반덕화 병원장이 무어라 말하려 할 때, 호식이 한발 먼저 말한다.

“별 얘기 아니야. 이 커다란 병원에 수백이나 되는 병원 직원들을 모두 우리 회사 사람들로 채워 넣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으니까, 일부 외부의 수혈을 받았거든. 물론, 거기에도 추천제 따위로 우리 회사 입김이 많이 작용하기는 했지만…….”

“…하긴,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인력이 넘쳐 나는 건 아닐 테니까.”

도윤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반덕화가 조용히 말을 잇는다.

“물론 그럼에도 일전에 성명병원에서 저지른 패악을 대부분의 의사들이 잘 알고 있기에, 온건파에 속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대충… 육 대 사 정도일까?”

호식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예상외로 강경파에 속하는 의사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 명성 쪽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겠지. 그 인간들, 사실은 명성에서 병원을 운영할 당시 누리던 많은 혜택들. 그걸 잊지 못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야.”

“그래서 그 인간들이 원하는 게 뭐래요? 자기네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병원을 인수하기라도 하겠대요?”

호식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사기업들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의사들만이 주체가 되는 병원을 만들자.

말은 좋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병원을 인수하는 것이 우선 선행되어야 한다.

수천억은 족히 드는 대규모 사업.

기업 차원에서도 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그 일을, 의사 몇몇이 모여 뚝딱 해결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최상위층에 속하는 의사들이라지만, 개개인 몇이 모여 비단이나 되는 병원을 인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호식도 이토록 황당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반덕화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기네들 돈 써 가며 그럴 이유가 전혀 없지. 날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잖아?”

“엥?”

호식이 기묘한 소리를 냈다.

“간단해. 병원 내에서, KS그룹의 입김만 모두 제거하면 되는 일이니까.”

“설마…….”

호식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강경파의 목적은 일부 뼛속까지 KS그룹 사람인 의사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직원들을 자신들의 생각에 동조시키는 것.”

“…….”

“그렇게 되면, 몇 되지 않는 우리 그룹 의사들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단 말이지. 왜 그런지는, 너도 잘 알지?”

“…그 상황에서 회사가 나서게 되면, 또 다시 여론이 들고일어날 테니까요.”

호식이 제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가뜩이나, 옛 성명병원 일로 의사 개개의 발언 하나하나까지 민감한 상황이다.

이제야 겨우, 조금씩 이미지를 탈피해 나가고 있는데.

그 상황에서 의사들과 기업 간 대립각이 세워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그게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병원은 영영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사람의 생명으로 장사를 한다는 오명을 영원히 벗지 못한 채로 말이다.

“정말로 말 그대로, 날로 먹겠다는 심보로군요. 개자식들…….”

“무엇보다도, 이번 일로 체면을 상당히 구긴 협회에서, 강경파를 밀어주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리고…….”

말을 잇는 반덕화 병원장의 미간 사이로 깊은 골이 패였다.

“명성에서도… 은연중에 지원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

호식이 더욱 더 눈을 크게 떴다.

그때,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도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강경파의 대표, 누구입니까?”

“…….”

도윤의 물음에 반덕화 병원장이 잠시 말없이 그의 두 눈을 바라봤다.

다른 의사들은 모르지만, 오직 반덕화 병원장은 알고 있었다.

비단병원의 실질적인 주인이 호식도, KS그룹도 아닌, 눈앞에 있는 사내라는 것을.

세상에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병원에 대한 모든 소유권과 권한은 모두 이 젊은 사내에게 있음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반덕화 병원장도 한층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장성진이라고… 나와는 달리, 뼛속까지 명성그룹 사람인 인물이요. 그 친구 또한 회장의 전속 주치의를 맡은 경험이 있고…….”

“회장이라면, 오춘화 회장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호식이 눈을 크게 뜬 채 반문하자, 반덕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굳이 어려운 사정의 비단병원에는 왜…….”

말을 잇던 호식이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 듯 멈칫했다.

“…처음부터 목적이 있었군요. 성명병원을 넘기던, 바로 그때부터…….”

“나는 오춘화 회장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어지간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으니까. 오춘화 회장은, 자신의 것을 절대 가만히 빼앗기고 있지 않아.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겠지.”

이어지는 반덕화 병원장의 말에도, 도윤은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너무 안일했던 것이 사실이다.

명성의 것을 하나씩 빼앗고, 피해는 최소화하는 방향으로만 너무 초점을 맞춰 버렸다.

세부적인 사항들은 이쪽 분야에 보다 전문가인 호식과 KS그룹이 있었기에, 특별히 신경 쓸 필요도 없었지만.

이런 변수를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던 것은, 분명한 실수였다.

비단병원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도윤 자신이었으니까.

이내 상념에서 벗어난 도윤이 묻는다.

“김재욱 검사의 담당 의사. 분명 명성 쪽 사람이라 들었는데, 그건 누구죠?”

“…아까 말한 장성진. 그 친구가 담당의사요. 환자와 관련된 모든 내, 외부적인 일은, 그 친구를 통해 처리되고 있기도 하고…….”

“원장님이 직접 나서시면 안 돼요?”

가만히 듣고 있던 호식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제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 호식을 바라보며, 반덕화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명분이 없어. 무엇보다, 그 환자가 겪고 있는 외상으로 인한 뇌진탕 증세는, 국내 전체에서도 장성진 그 친구가 손꼽히는 전문가이기도 하고.”

“…….”

“환자에 대한 치료 전념을 이유 삼아,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차단하고 있어. 물론, 나까지 포함해서.”

“뻔히 보이는 개수작을…….”

호식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도윤이 말한다.

“제가 만나 보죠.”

“…예?”

“…어?”

반덕화와 호식이 동시에, 멍하니 반문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

“아마, 저까지 막아서지는 못할 겁니다.”

이내 도윤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병원장실 내부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좌우로 길게 찢어진 눈매에, 얄팍한 입술.

일견 보기에도 매우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중년 사내가 하얀색 가운을 걸친 채, 침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흰 가운 가슴팍에는 ‘장성진 과장’이라는 명찰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 장성진이 내려다보고 있는 침상 위.

새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질린 피부를 가진 젊은 사내가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채, 침상에 누워 있었다.

언론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대상이자, 한우리당 김문성 대표의 아들, 김재욱 검사.

바로 그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순간 흰 가운 주머니 안에서 들려오는 진동소리에 장성진이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힐끗, 침상 위에서 휴대전화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장성진이 이내 수화기를 입으로 가져다 댄다.

“…예, 회장님. 장성진입니다.”

“그놈 상태는 어때?”

수화기 너머로, 조금 힘 빠진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상은 이미 100퍼센트 치료되었습니다. 의식 회복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아마 육체적인 부분보다 정신적인 쇼크 문제일 확률이 높지만… 이르면 이번 주 내로는 몸을 일으킬 겁니다.”

“혹시 정신을 차리더라도,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외부에 알리지 마. 나한테 곧바로 보고하는 것, 잊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찾아왔다.

장성진이 무어라 말하려 할 때, 수화기 너머로 예의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병원 분위기는 어떤가? 성명… 다시 찾아올 수 있겠나?”

잠시 멈칫한 장성진이 곧바로 대답한다.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 부분도 확실히 신경 써. 얼마 전에 기사를 보니, 병원에서 무료 치료까지 해 주고 있는 모양이던데…….”

노인이 탐탁치 않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언제부터 성명이, 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국가에서 나오는 공짜 돈이나 꼬박꼬박 받아 처먹으며 생활하는 버러지들을 환자로 받았나?”

병원과 정부 간 협약한 기초생활수급자 무료 치료 사업을 말함이다.

곧바로 이해한 장성진이 대답한다.

“안 그래도, 제법 많은 의사들이 그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일거리만 쌓이고 있으니…….”

“KS만 찍어 눌러 놓으면, 지금 받는 연봉의 2배는 챙겨 주겠다고 해. 우리 명성이, 병원의 후원자가 되겠노라고.”

“예.”

“끊네. 중요한 시기니, 실수 없도록 하게.”

이윽고 통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장성진이 손에 쥔 휴대전화를 흰 가운 안으로 집어넣었다.

“…비단이 아닌, 성명병원이라…….”

낮게 중얼거린 장성진이 이내 몸을 돌려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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