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병원은 내 거야
똑, 똑, 똑.
“들어오세요.”
자신의 사무실 내부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노크 소리에, 장성진 과장이 쥐고 있던 펜을 놓으며 말했다.
이내 출입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자신의 과 간호사가 조심스레 들어왔다.
“저, 과장님…….”
“김 간호사?”
우물쭈물 머뭇거리는 간호사를 보며, 장성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에요?”
“그게… 과장님을 뵙고 싶어 하는 손님이 왔는데…….”
순간 장성진이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장성진은 살아온 기간만큼이나 눈치가 상당히 빠른 인물이었다.
본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 눈치가 자신을 지금의 이 자리에 올려놓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40대 중반의 나이.
장성진 또래 의사들 전부를 뒤져 봐도, 그 나이에 대기업 회장 주치의까지 거친 인물은 흔치 않았으니까.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어지간한 손님들은 모두 돌려보내라고 했다.
만약 개인적으로 만나려 했던 손님이라면, 직접 연락을 줬을 터였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간호사 선에서 처리하기 힘든 손님이라는 뜻이리라.
“어디의 누구라고 하시던가요?”
“그… 서울중앙지검의 검사님이시라고…….”
“검사님?”
장성진의 미간 사이의 골이 더욱 깊게 패였다.
바로 그때, 간호사의 뒤편 출입문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얘기나 좀 하시죠, 장성진 과장님.”
“…….”
장성진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말없이 시선을 돌리자, 두 사내가 그곳에 서 있었다.
방금 말한 사람으로 추정되는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잘생긴 외모의 청년.
그리고, 동글동글한 인상에, 동그란 눈이 유독 눈에 띄는 호감형 청년.
두 사람 다 검사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젊어 보였지만, 장성진은 구태여 그런 의문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짓은, 멍청이들이나 하는 행동이니까.
“김 간호사는 이만 나가 보세요.”
“아, 예. 과장님.”
불편한 기색으로 눈치를 살피던 간호사가 밝아진 표정으로 출입문을 나섰다.
쿵!
짧은 인사와 함께, 이내 사무실 내에 세 사람만 남게 되자, 장성진이 입을 열었다.
“…검사님이시라고요?”
“아, 과장님 한 번 만나 뵙기 정말 힘드네요. 우리 제법 오래 기다렸는데, 일단 좀 앉으면 안 될까요?”
“…….”
동그란 인상의 사내가 말하자, 장성진이 입을 다물었다.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정으로 드러낸 채로.
“…신분 확인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혹시, 어느 지검에서 오셨습니까?”
장성진이 본능적으로 잘생긴 외모의 청년을 돌아보며 물었다.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청년이 검사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장성진의 시선을 받은 사내가 이내 옅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온 강도윤이라고 합니다.”
“강도윤… 검사?”
작게 되뇌던 장성진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서울중앙지검 강도윤 검사.
요즈음, 언론은 물론이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 중 하나가 아니던가.
이번 사건의 주 담당 검사.
특히나, 굳이 그런 사실이 아니더라도 장성진은 눈앞에 있는 청년의 소문을 익히 들어왔다.
장성진 본인이, 명성그룹 사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 어린놈이…….’
속으로 중얼거린 장성진이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상대는 모르고 있겠지만 자신과 눈앞에 있는 청년 사이에는 특별한 접점이 있었다.
그때의 일이 떠오른 듯 잠시 작게 몸을 떨어 대던 장성진이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히며 말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신 분을, 제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군요. 그러고 보니, 낯이 많이 익습니다. 아마 TV에서 봤던 것이겠지요.”
“…….”
상대방의 정체를 알게 되었음에도, 자리조차 권하지 않는다.
도윤이 말없이 장성진을 바라보고 있자, 그가 말을 잇는다.
“사실 검사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요즘 많이 바빠요. 나를 왜 찾았는지, 본론만 바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뭐, 이런…….”
도윤의 옆에 서 있던 동그란 인상의 사내.
호식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무어라 말하려고 할 때, 도윤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잠시 장성진을 가만히 바라보던 도윤이 이내 말을 잇는다.
“우리 지검의 김재욱 검사. 과장님이 담당 주치의라고 들었는데, 그 치료 경과를 알고 싶어 왔습니다.”
“…그 부분은 언론 창구를 일원화하여, 제가 충분히 공개하고 있는데, 또 다른 무엇이 필요한지요?”
“김재욱 검사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제가 직접 눈으로 한 번 보고 싶군요.”
“직장 동료로서 병문안 차원입니까? 그게 아니면, 사건 담당 검사로서 말입니까?”
장성진이 도윤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반문했다.
“둘 다입니다.”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장성진이 이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전자라면 불가능합니다. 환자와 지인의 접촉. 전적으로, 환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제 권한입니다. 환자의 보호자도 아닌, 직장 동료의 병문안을 허락할 정도로, 환자 상태가 좋아진 것은 아니라서요.”
“곧 의식을 회복할 거라는 소문이 병원 전체에 쫙 깔렸던데, 헛소리를!”
순간 호식이 발끈했다.
그런 호식을 힐끗 바라본 장성진이 이내 옅은 미소를 입에 베어 물며, 말을 잇는다.
“그리고, 후자라면…….”
말끝을 흐리던 장성진이 손을 내밀었다.
“영장, 가져오셨겠지요?”
“…….”
“수색영장이 없으시다면, 마찬가지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장성진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통쾌하다 못해 가슴을 짜르르 울렸다.
회사와 자신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놈.
검사랍시고, 뻣뻣한 목대를 세우고 감히 이곳에 찾아와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 놈에게 이제야 한 방 제대로 먹여 준 기분이었다.
‘건방진 새끼…….’
장성진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가만히 있던 도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장성진 과장, 젊은 나이에 대형병원 과장, 명성그룹 회장 주치의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인재. 특히나, 명성그룹 내에서는 전무에 버금가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
“……?”
갑작스레 자신의 커리어를 얘기하기 시작하는 도윤을 보며, 장성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명성그룹에서만 약 20년. 박건우 부사장과 함께, 오춘화 회장의 손발이 되어 준 인물. 굳이 표현하자면, 박건우 부사장이 오른팔, 당신은, 왼팔쯤 되겠군.”
“당, 당신……?”
황당한 표정으로 도윤을 바라보던 장성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근 20년 가까이, 오 회장의 옆에서 대신 똥구멍을 닦아 주며 얼마나 구린 일을 했을지, 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군.”
“너, 이 새…….”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미스터 스타.”
“……!”
당장이라도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장성진이 거짓말처럼 딱 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사실 나도 놀랐어. 설마 당신이나 되는 사람이, 버젓이 내 병원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을 줄은… 여기 와서 그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동명이인 정도로 생각했으니까.”
“너… 그, 그게 무슨…….”
장성진은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었지만 떨리는 목소리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내가 지난 1년 동안, 휴직계를 내고 놀고만 있었다고 생각하나?”
“…….”
“미스터 스타. 업자들이 흔히 부르는 별칭. 그리고, 명성병원에서 주도한 불법 장기수술의 총책.”
“……!”
가만히 듣고 있던 호식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박환영이니 하는 집도의들은 조폭으로 치자면 그저 행동대원들일 뿐이고, 머리는 바로 당신이잖아?”
“미친… 대체 무슨 근거로…….”
“스위스에 묻어 둔 니 차명계좌.”
“……!”
이번에는 장성진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업자들을 족치고, 그 차명계좌를 추적하는 데 족히 1년 가까이 걸렸다. 사실, 너는 오 회장과 함께 가장 마지막 사냥감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지만…….”
말을 잇던 도윤이 차갑게 눈을 빛냈다.
“조만간, 니가 말한 영장 가지고 찾아오지. 혹시라도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 오늘 중으로 계좌 제한은 물론이고, 출금금지까지 모조리 이루어질 거니까.”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장성진이 작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강하게 부정하고 싶었지만, 놈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니,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를 찾은 듯 보였다.
장성진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아……! 이걸 먼저 얘기하려 했던 게 아닌데, 뻔뻔한 당신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흥분을 했군.”
도윤이 가볍게 머리를 긁적였다.
“당신, 혹시 이 병원 이사장이 누군지 아나?”
“병, 병원 이사장이라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지간한 대형 병원은 분명 이사장들이 모두 있었지만, 이곳에 와서는 단 한 번도 그 이사장을 보지 못했으니까.
일반적인 병원 이사장들은, 똑같이 병원 내에 사무실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저 공석이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이사장이라니?
의사들은 환자들의 건강에 만전을 기하고, 치료에 전념한다.
병원장은 그런 의사들을 총괄하고, 병원 내적인 일을 관리한다.
그리고, 병원 이사장이라는 자리는 병원 외적인 일을 총괄한다.
이런 언론 공개 문제라든가, 법적인 문제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그, 그럼… KS그룹의 고위 관계자가, 이사장이라는…….”
“아니, 틀렸어.”
도윤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 병원의 숨은 이사장… 바로 나거든.”
“뭐, 뭐라고……?”
장성진이 충격도 잊고 멍하니 반문했다.
“이 병원, 사실 내 거거든.”
“……!”
씨익 미소 지으며 중얼거리는 도윤의 말에 장성진이 쩌억 하고 입을 벌렸다.
병원이 이놈의 것이라니.
설마.
불길한 예상은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검사가 아니라 병원 이사장으로서, 논란이 되고 있는 환자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내게는 있다, 이 말이야. 물론, 내 부하 직원이나 다름없는 당신에게 보고받을 자격도 있고.”
“…….”
“말 안 들으면… 그래, 자르지 뭐. 협회랑 한 번 싸워 봤는데, 두 번을 못 싸울까?”
“미, 미친…….”
어느새 장성진의 코앞까지 다가선 도윤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으르렁거린다.
“오 회장한테 가서 전해. 내 병원에, 더 이상 손대지 말라고. 그리고, 조만간 내가 직접 한 번 찾아뵙겠다고.”
“…….”
장성진이 입을 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도윤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회장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물론, 비단병원 주인 자격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말을 잇는 도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검사 강도윤으로서, 말이야.”
도윤의 목소리가 조용하지만 또렷하게, 장성진의 귓가에 박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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