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149화 (149/174)

149화 히포크라테스 선서

오춘화 회장의 자택, 개인 집무실.

장성진이 침중한 표정으로 오춘화 회장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놈이 그런 말을 했다고?”

“…예, 회장님.”

“음…….”

오춘화 회장이 불편한 침음을 삼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놈, 혹시 KS그룹과 특별한 인연이 있던가?”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KS그룹 산하 의료재단의 이름으로 인수한 병원을, 그리 당당하게 제 것이라 말할 수 없을 테지요.”

“그때, 옆에 한 놈이 더 있었다고 했지?”

오춘화 회장의 물음에 장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강도윤 검사 또래로 보였습니다. 둥글게 생긴 것이, 유독 눈이 컸던…….”

“그놈이, 장호식일 거야.”

“예?”

장성진이 멍하니 반문했다.

“KS그룹 장학수 회장의 막내. 장호식이 말이야. 그 빌어먹을 놈과는 동기 겸 절친한 친구 사이지.”

“아, 성춘이와 마찬가지로 사시를 패스했다는 그…….”

장성진이 눈을 크게 뜨며 말끝을 흐렸다.

사실, 재계에서 명성그룹의 오성춘과 KS그룹의 장호식이라는 이름은 상당히 유명했다.

재벌가 자제들 사이에서 ‘사시 패스’라는 영광스러운 위업을 달성한 사람은 두 사람이 유일하다시피 했으니까.

더군다나, 나이까지 똑같던 둘이었기에, 은연중에 사람들이 두 사람을 라이벌 취급하기까지 했다.

오춘화 회장의 미간 사이로 깊은 골이 패이자, 눈치 빠른 장성진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됐어. 오성춘이, 그놈은 지금 어때?”

“그게, 차도는 있습니다만, 언제 의식을 회복할지가 확실치 않습니다. 이미 외상은 모두 회복이 되었는데…….”

장성진이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오춘화 회장이 한차례 쯧 하고 혀를 찼다.

이미 외상 치료는 모두 끝났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김재욱의 경우와 달리 워낙 사고 당시 충격이 컸기 때문에, 의식회복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리라.

‘어쩌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지도… 그 또한 놈의 운명이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오춘화 회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운 놈이다.

가진 능력에 반만이라도, 옳은 정신머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능히 자신도 뛰어넘을 만한 녀석이었다.

한때, 분에 넘치는 시험까지 합격해 자신에게 즐거움마저 주었던 녀석.

그런 놈이 한순간에 오늘내일 하는 병신이 되었다.

단지, 한 사람 때문에.

‘강도윤…….’

마음속으로 수십 번도 더 되뇌었던 그 이름.

오춘화 회장이 이내 굳은 얼굴로 장성진을 바라본다.

“성명병원… 아니, 이제 비단병원이라고 했나? 실소유주 관계부터 인수 과정까지, 다시 한 번 자세히 알아봐. 끝나는 대로 나한테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그 이후에, 내가 장학수 회장을 직접 한 번 만나 보지.”

“…만약 강도윤, 그놈이 정말 병원의 실소유주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

“현직검사의 병원 인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야말로 사무장 병원 아닙니까? 언론 쪽으로도 충분히 건드려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무장 병원.

비의료인이 면허를 가진 의사를 바지사장으로 앉혀 두고 병원을 개원하여,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비의료인이 병원을 인수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막아 뒀기에, 소위 편법으로 이용되는 방식이었다.

병원을 실질적으로 가지고 경영하는 사람이 주로 사무장 등으로 앉아 있고, 의사들은 이를 은폐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꼭두각시라 불리기는 힘들고, 원장이나 의사들 중 경제적 여유가 넉넉한 사람들은, 자신들도 지분을 투자하여 지분대로 순이익을 갈라 먹곤 한다.

의사라고 처음부터 돈이 많은 것은 아니기에, 보통은 브로커를 통해 해당 병원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추후 개인병원을 개원하는 방향으로 나가기도 하고 말이다.

오춘화 회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어설프게 일을 처리할 놈이 아니야. 굳이 그 사실을 자기 입으로 밝혔다면, 확실하게 준비도 해 뒀겠지. 검사라는 것을 떠나, 능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놈이야.”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시기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상대를 좁은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그 게임은 진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할 수 있는 최대 위험 수준에서.

보다 냉철한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봐야, 어떠한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런 성격이, 지금의 오춘화 회장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오춘화 회장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놈의 목적이 최대 이익의 창출이 아닌, 이곳. 명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예상 정도는 가능할 테지.”

“예상이라면……?”

“KS그룹과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투자자 형식의 병원 인수. 어디서 그 큰돈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놈이 사무장이 아닌, 의사와 마찬가지로 지분에 따른 수익을 나눠 받는 형식으로.”

“…….”

“사실, 이것도 그리 가능성 높은 얘기는 아니야. 집안조차 변변치 않은 놈이, 공직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어 봐야, 얼마나 벌었겠나? 아마도 KS그룹과 어떤 거래가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큰 변수를 생각지 않고, 확실히 계획을 세울 수 있고 말이야.’

오춘화 회장이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런 오춘화를 바라보며, 장성진이 멍하니 중얼거린다.

“그래서, 장학수 회장을…….”

한차례 고개를 끄덕인 오춘화 회장이 말한다.

“너는 지금 빨리 아까 얘기한 것, 알아봐.”

“예!”

힘차게 대답한 장성진이 몸을 돌려 출입문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쿵!

홀로 남게 된 오춘화 회장이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수화기 너머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대표, 날세.”

“…….”

“먼젓번에 얘기한 이이제이(以夷制夷) 건… 곧바로 시작하지.”

수화기에 입을 대고 말을 잇는 오춘화 회장의 두 눈빛은,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장성진이 곧바로 오춘화 회장에게 달려가 보고를 하고 있던 그 시각.

“…….”

도윤과 호식은 말없이 침상 위에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젊은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백한 피부에, 침상이 부족할 정도로 커다란 키를 가진 젊은 사내.

현재 언론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인, 김문성 대표의 아들, 김재욱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집에서 쓰러지셨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치료에는 차도가 있어, 곧 의식을 회복할 것이라는 것밖에는…….”

흰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가 말끝을 흐렸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장성진이 그대로 출입문을 박차고 나갔기 때문에, 이렇게 장성진의 부하 의사나 다름없는 젊은 사내가 대신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이 무슨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인 줄 아시나. 뭐, 탁 치니까 억 하고 쓰러졌다, 그런 거예요?”

보다 못한 호식이 발끈하여 소리쳤다.

“뭐, 제가 아는 건 정말 그것뿐입니다. 검사님도 그 부분에 대해, 나름 수사해 보셨을 것 아닙니까?”

젊은 의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 이……!”

자신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도윤을 바라보며 대답하는 젊은 의사를 보며, 호식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두 분이서 충분히 살펴보시고, 확인이 끝나면 불러 주시길.”

마치 ‘네까짓 것들이 보면 뭘 알겠느냐.’라는 듯한 태도였다.

이내 폭발한 호식이 흰 가운에 달린 명찰을 발견하고는 소리친다.

“채준석 의사!”

“……?”

“이름 기억해 뒀어요! 장성진 과장한테, 분명히 설명 들었을 텐데, 자꾸 이런 식으로 비협조적으로 굴면…….”

“아, 그러고 보니, 분명 KS그룹 관계자라고 하셨던가요?”

이제야 상기했다는 표정으로, 젊은 의사, 채준석이 몸을 돌렸다.

잠시 움찔한 호식이 이내 당당한 표정으로 어깨를 폈다.

이런 것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걸로 얘기가 통한다면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집안을 거론하여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것은 호식 스스로가 질색하는 일이었지만, 이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도윤의 꿈과 관련된 일이었으니까.

“아셨으면, 성의를 가지고 설명하세요. 자꾸 이런 식이라면…….”

“뭐, 자르기라도 하실 겁니까?”

“뭐… 뭐요?”

채준석의 반응에 호식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채준석이 호식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고 있던 흰 가운을 벗었다.

“혹여나, 갑질할 생각이라면 마음대로 해 보쇼. 이따위 병원, 관두면 그만이니까.”

“뭐, 뭐……!”

“대형병원이라고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간 것 같은데, 지금 비단이 예전의 그 병원인 줄 아쇼? 차라리, 명성그룹에서 운영하던 시절의 성명 때가 훨씬 나았지.”

이제는 대놓고 반말을 하는 채준석을 보며, 호식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쩌억 하고 입을 벌렸다.

“굳이 이곳이 아니라도, 갈 병원은 얼마든지 있어.”

이내 채준석이 손에 쥐고 있던 흰 가운을 호식과 도윤을 향해 홱 하고 집어 던졌다.

“망해가는 병원에, 둘이서 짝짜꿍 잘 해 처먹길. 아! 그 잘나신 능력들로, 거기 계신 도련님까지 회복시키면 더욱 좋고.”

어버버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호식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준석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고생들 하쇼. 난 이만 갑니다.”

채준석이 보란 듯이 등뒤로 손을 흔들며,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채준석의 뒤통수를 향해, 잠자코 있던 도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기다려.”

“……?”

고개만 힐끗 돌리는 채준석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걸러 내야 할 쓰레기가 제 발로 나서 준다니 고맙긴 한데, 달마다 따박따박 내 돈 받아먹고, 그대로 내빼려는 놈 보고 있자니 신경이 거슬려서 말이야.”

“뭐!?”

필터링 없는 도윤의 말에, 와락 인상을 찌푸린 채준석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뭐라고 지껄였나?”

“너희들이 비로소 의사가 되었을 때, 가슴에 손을 얹고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거기에 분명 이런 내용이 있지.”

도윤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을 잇는다.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

“의사인 너도, 분명 형식적으로나마 이 선서를 했을 거야. 웃기지도 않지.”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이내 채준석이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쳤다.

“오로지 니 개인의 욕망으로 의술을 행하고, 돈을 첫째로 생각하는 너 같은 놈들 때문에,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다른 의사들까지 싸잡혀 욕을 먹는다, 이 말이다.”

“개자식이!”

채준석이 코앞까지 다가온 도윤의 멱살을 그대로 틀어쥐었다.

그런 채준석을 향해 차갑게 눈을 빛낸 도윤이 말한다.

“갈 때 가더라도, 내게 받은 월급값은 하고 가야지.”

“지랄! 퇴직금은 깽값이라고 생각하겠다!”

채준석이 주먹을 쥔 채, 한쪽 팔을 등 뒤로 힘껏 잡아당겼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심문의 달인.”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