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죄를 지었으면…….
“그러니까, 부자지간에 말다툼이 있었고, 빡이 칠대로 친 김문성 대표가 제 자식 머리에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이거야?”
도윤과 호식, 둘만 남은 병실 내부에서 호식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침상에 누운 김재욱의 머리맡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있네. 찢어지고, 실로 봉합한 자국이.”
딱히 자세히 볼 필요도 없었다.
머리 부분의 외상수술을 할 경우, 수술 부위에 자라난 머리털을, 주변까지 깔끔하게 깎아 내기에 눈에 확 하고 띄었다.
도윤이 김재욱의 상처 부위를 계속 응시한 채, 말을 잇는다.
“상처를 보니, 재떨이 충격으로 인한 열상(laceration)도 맞는 것 같고…….”
피부가 찢어지며 생기는 열상의 경우, 상처의 가장자리가 이처럼 울퉁불퉁, 불규칙하게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능력의 힘을 빌렸기에, 채준석이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지만, 이렇게 눈에 쉽게 보이는 것들은 한 번 더 눈으로 확인하여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 미친놈은 혼자 있는 대로 노발대발하면서도, 왜 갑자기 술술 불어 댄 거지?”
“글세.”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다니까? 니 멱살 틀어쥐고 고래고래 소리는 지르면서도, 니가 묻는 말에 척척 대답하던 게, 어찌나 황당하던지…….”
호식이 말끝을 흐리며 도윤의 두 눈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저번에도 그렇고, 혹시 너, 진짜 무슨 초능력 같은 것 있는 거 아니야? 막, 진실을 술술 불게 하는 능력이라든가…….”
“설마.”
도윤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그런 능력이 있을 리가 없지. 그러면 검사나 경찰들한테는 너무 사기적인 능력이잖아? 미제사건이란 미제사건은 모조리 해결할 수 있을지도…….”
“그렇겠지.”
“너한테만 걸리면 뭐든 척척 해결되어 버리니까, 이제 별의별 해괴한 생각이 다 드나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리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이제 어쩔 생각이야? 정황상, 김문성 대표가 자식을 이 꼬라지로 만든 게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영장 청구할 때, 내용을 추가해야지. 존속상해나, 이 정도면 중상해도 괜찮을 테고.”
“…한 방에 골로 가겠는데?”
호식이 자못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조만간 개봉될 영화에, 이런 명대사가 나오거든.”
“…그거 그냥 너만의 영화 명대사 아니야? 아직 개봉도 안 된 영화에 명대사가 어디 있다고……. 뭐, 사건 관계자 중에, 영화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 봐?”
호식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런 호식을 향해 도윤이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걸?”
“…그래서, 그 명대사라는 게 뭔데?”
도윤이 한층 짙어진 미소로 대답한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래드라.”
* * *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대복집.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김문성 대표와 황석호 경찰청장이 자리해 있었다.
황석호가 국을 한 숟갈 떠, 입에 밀어 넣으며 입을 열었다.
“크으~ 이거, 제가 전날 과음한 건 어떻게 알고 이런 좋은 복국까지 준비하셨답니까?”
“기본이지요.”
옅게 미소 지으며 대답한 김문성도 숟가락을 들어 입에 넣었다.
대화 없는 식사가 한동안 이어지기를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은 김문성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계획을 예정보다 조금 빨리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의 힘이 약해진 지금, 눈에 보이는 성과가 분명 필요할 테지요.”
황석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옅게 미소 지은 김문성이 대답한다.
“그것도 그거지만… 앞길을 막는 골칫거리가 하나 있어서 말이지요.”
“골칫거리라면……?”
“청장님. 수사권 조정이 한참 논의되고 있는 와중에, 말썽을 일으키는 직원이 있으면, 경찰에서는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그 말씀은…….”
“아무래도, 쫓아내는 게 일반적이겠지요? 이런 경찰이 있기에, 수사권 조정은 시기상조이니, 언론에서 온갖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 낼 테니까요.”
“뭐… 부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황석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번에 당에서 수사권 조정 건을 국회에 발의하면, 분명히 검찰에서 움직일 겁니다. 캐비넷에 모셔 둔, 경찰 쪽 사건들을 가지고 말이지요.”
“빌어먹을 놈들… 저들이 하는 짓이야 항상 그렇지요. 가진 놈들이 더한다고, 이미 쥐고 있는 것은 단 하나라도 빼앗기지 않으려 하니까요.”
황석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 경찰에서 쥐고 있는 사건은 있습니까? 검찰 쪽 비리사건 말이에요.”
잠시 고민하던 황석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없을 겁니다. 검찰 쪽 사건이 접수되면, 귀신처럼 어떻게 알고 저들이 가져다 처리하곤 하니까요. 애초에, 수사 종결권과 독점 영장 청구권을 저들이 쥐고 있는 이상, 게임 자체가 안 되긴 하지만요.”
“언론 쪽에 적당히 소스를 뿌리면, 건드려 볼 만한 사건도 없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확실하지 않은 검찰 쪽 사건을 언론에 뿌리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커요. 허위사실 유포죄니, 명예훼손죄니 하며 도리어 역공을 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음…….”
이어지는 황석호의 말에 김문성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딱 한 가지, 건드려 볼 만한 예외가 하나 있기는 합니다.”
황석호가 한층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마도… 현행범이겠지요?”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황석호가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행범이라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연출될 겁니다. 설령, 노상방뇨 같은 경범죄 따위로도, 현직 판·검사라는 이유만으로 수도 없이 물어뜯기겠지요. 이거는 단순히 하나의 예시일 뿐이고…….”
눈을 빛낸 황석호가 말을 잇는다.
“더 임팩트 있는 건수라면 더욱 좋겠지요. 최소한, 현행범 체포 요건이 충족되어, 현장에서 바로 수갑을 채울 수 있을 만한, 그런 건수요.”
“최소 수갑을 채울 수 있을 만한 건수라…….”
잠시 말끝을 흐리던 김문성이 씨익 미소 지었다.
“물론, 현재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일 만한 주제의 건수라면, 더욱 더 좋겠지요?”
“이르다마다요.”
“적당한 계집년 붙여서, 성접대로 말아 넣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만, 그건 너무 고전적인 수법이고…….”
말을 잇는 김문성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올 초에, 방화 사건이 분명 하나 더 있었지요?”
“7호선 방화 사건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황석호가 고개를 주억였다.
“대구 사건의 아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터진 지하철 방화 사건. 국민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꼭 지하철이나 되는 스케일로 일을 키울 필요는 없겠지만…….”
“…….”
“지금 상황에서, 방화만큼 임팩트 있는 사건도 없겠지요.”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던 황석호가 묻는다.
“적당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배우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뽑으면 되는 거고,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지요. 물론, 제법 그럴듯한 배우가 있어야, 그 이름값을 톡톡히 보겠지만.”
“그 말씀은…….”
“명성그룹에 지원을 약속받았습니다.”
“……!”
황석호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딱히 돈이 드는 일은 아니니, 이 기회에 배우 섭외 지원이나 한 번 요청하면 되겠군요.”
“명성그룹과 관계된 배우라면…….”
“아주 좋은 건수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성명병원 불법 장기매매 피해자들.”
“……!”
황석호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성명병원 사건은 전적으로 특정 검사의 소관이었지요. ‘피해자 이하 가족들의 억울한 한(恨)을 채 들어주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처리를 감행하여, 유족들에게 더 큰 아픔을 준 모 검사의 행위를 규탄한다!’”
“…….”
“타이틀은, 이 정도면 충분할 테고. 배우가 직접 방화의 매개체가 되면, 영화는 클라이막스에 돌입할 테지요. 이를테면, 분신자살을 가장한 방화.”
황석호가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장소는… 어디로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뺨을 맞은 사람이, 남의 집에 가서 화풀이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김문성의 말을 곧 이해한 황석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성명병원 사건 담당 검사라고 하셨는데, 설마… 그 검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왕이면, 검찰 내에서도 가장 인지도 높은 인물이 좋지 않겠습니까? 국민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만큼, 그 배신감도 엄청날 테니까요.”
“…….”
김문성의 말에 황석호는 아무런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시나리오는 모두 그려 온 듯했다.
자신은 그저, 그 시나리오에 맞는 역할만 하면 된다.
단지, 자신도 사람인지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불안감은 감추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황석호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정말로 이번에, 수사권 조정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된다면 더욱 좋겠지요. 청장님 개인의 꿈은 물론, 조직 전체의 오랜 꿈도 이룰 수 있는 거니까요.”
“검찰과 똑같은 방식으로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 아니겠습니까?”
김문성의 말에 황석호가 입을 다물었다.
김문성이 낮은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잇는다.
“독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만큼은…….”
* * *
“오래간만입니다, 오 회장님.”
지금 막 방 안으로 들어오는 오춘화를 보며, KS그룹 장학수 회장이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마주 고개를 숙인 오춘화 회장이 맞은편에 자리하자, 장학수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느긋하게 앉아 식사라도 하고 싶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본론만 여쭙겠습니다.”
오춘화 회장의 낮은 목소리가 귀청을 때리자, 장학수가 멈칫했다.
출입문을 향해 손을 저어, 음식을 들이려 하던 종업원을 도로 돌려보낸 장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지요.”
“KS는, 저희 명성과 척을 질 생각이십니까?”
“…무슨 뜻이신지?”
두서없는 오춘화 회장의 말에, 장학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성명… 아니, 지금은 비단병원이군요. 그곳이 원래 저희, 명성의 것이었다는 것을, 장 회장님도 분명히 알고 계실 텐데요?”
“…….”
“능력이 부족해 병원을 빼앗긴 것이야 제 잘못이지만, 적어도 우리 그룹 의사들을 핍박하고 차별하는 것만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어지는 오춘화 회장의 말에 장학수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비단병원 일이라면, 수시로 보고받고 있다.
자식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호식이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진행하고 있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그 내막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런 계기도 없이 부지불식간, 호식이 그런 생각을 가졌을 리는 없다고 판단했고, 그 때문에 나름의 조사도 해 봤으니까.
상념을 털어 낸 장학수가 입을 열었다.
“무언가 오 회장님이 착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만…….”
“착각이요?”
“비단병원 일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 물론, 보고야 수시로 받고 있지만 책임자는 전적으로 제 자식 놈입니다. 그 일에, 저희 KS그룹의 돈은 단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
오춘화 회장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마치 그게 사실이냐는 듯, 장학수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던 오춘화 회장이 말한다.
“…자식이라면, 장 변호사를 말씀하시는 것이겠군요.”
“…….”
“장 회장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단순히 아들의 경영 경험이 목적이라, 이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제가 조금 도와줘도 되겠습니까?”
“도와주다니요?”
장학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경험이 목적이라면, 극단적인 상황도 한번 맞이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 회장님 말씀대로 KS그룹의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면, 회사 차원에서 딱히 손해 볼 걱정도 없을 테고 말이에요.”
말을 마친 오춘화 회장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그렇다면 그저 지켜보시길… 저희 명성을 적으로 돌리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서슬 퍼런 목소리로 중얼거린 오춘화 회장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장학수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오 회장님이 직접 움직이시는 것에 대해 제가 왈가왈부(曰可曰否)할 입장은 아니지만…….”
오춘화 회장이 멈칫했다.
“혹시라도, 제 자식… 더 나아가 제 자식의 하나뿐인 친구에게 어떤 해가 가게 된다면…….”
장학수가 말끝을 흐리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는…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오 회장님.”
이내, 장학수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낮지만 강하게, 방 내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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