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명성그룹 사업의 비밀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실.
활짝 열린 출입문 사이로, 한켠에 쌓여 있는 박스들을 확인한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한 중년 사내가 홀로 땀을 뻘뻘 흘리며 박스들을 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밑에 직원들한테 부탁도 좀 하고 하시지… 너무 혼자만 고생하려 하시는 것 아닙니까?”
도윤이 방 내부에 들어서며 입을 열자, 중년 사내가 멈칫했다.
“오……?”
“지검장님. 아니, 이제는 검찰총장님이시군요.”
“이게 누구야?”
박스에서 몸을 돌린 중년 사내, 정승만이 이내 도윤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정식 발령식까지 마치면, 저도 한자리 주시는 겁니까?”
“물론. 내 사람한테, 그 정도도 못 해 줄까?”
정승만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순간 청문회 때의 기억이 떠오른 도윤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조금 오글거리긴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자기 잡아먹겠다고 작정하고 나온 사람들 앞에서, 내 사람이니 하시는 건…….”
“뭐, 사실인 걸 어쩌겠나? 그런다고, 지네가 나를 자를 거야, 뭐 어쩔 거야?”
“그거야 뭐…….”
이내 도윤이 납득한 표정으로 씨익 미소 지었다.
결국, 정승만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큰 잡음 없이 끝이 났다.
이제는, 정식 인사 이동만 남겨 두고 있는 상황.
현 검찰총장인 김관우에게 인수인계만 받으면, 비로소 검찰의 수장은 바뀌게 된다.
“오랜만에 봐서 반갑긴 한데, 조금 있다가 올래? 보시다시피, 내가 좀 바쁘거든.”
“도와드리겠습니다.”
도윤의 말에 정승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다 끝났어. 나머지는, 내 직원들이 도와줄 거야. 마무리되면, 저녁에 같이 밥이나 한 끼 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응?”
도윤이 굳은 얼굴로 말을 잇는다.
“조금 급한 사안이라, 간략하게 보고드려야 할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윤의 말에 정승만이 굽혔던 허리를 폈다.
“우리 영웅이 급하다고 하는 건수인데, 아무렴. 얘기해 봐.”
“…….”
잠시 머뭇거리던 도윤이,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문성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 요구서…….”
“…….”
“이번 주중으로, 청구하도록 하겠습니다.”
“……!”
* * *
오춘화 회장의 자택 내 개인 휴식 공간.
와장창!
손짓 한 번에, 방 중앙에 자리하고 있던 고풍스러운 도자기가 박살이 났다.
“애송이 놈이!”
분을 참지 못한 오춘화 회장이 연신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감히, 이 내 앞에서 그따위 건방진 소리를 지껄여!?”
지금이야, 명성의 세가 많이 줄어들어 KS그룹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한때, 명성이 10대 그룹 내에 포함되어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시절에는, 정반대였다.
그 시절의 KS그룹은 간신히 대기업 반열에 발을 걸치고 있는 수준의 회사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던 KS그룹이 최근 십수 년 사이, 해외에 브랜드 이미지를 정착시키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는, 세가 기운 명성 정도는 까마득히 넘어설 정도로 말이다.
“빌어먹을…….”
한참이나 씩씩대던 오춘화 회장이 결국, 제 풀에 지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힘없는 몸짓으로, 품에 손을 집어넣은 오춘화 회장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잠시간의 신호음이 오고간 뒤.
이내, 수화기 너머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오춘화 회장이 말한다.
“김 대표, 날세.”
“…회장님, 이 번호는……?”
“대포폰이야. 시기가 시기이지 않은가.”
오춘화 회장의 말에 수화기 너머의 중년 사내, 김문성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하나 마련해. 검찰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지금, 업무용 전화도 위험할 테니.”
“잘 알겠습니다.”
“이이제이라는 그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안 그래도, 그 때문에 전화 한 번 드리려고 했습니다.”
“음…….”
오춘화 회장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침음을 삼켰다.
다분히, 늦은 감이 없지 않냐는 것을 책망하는 듯이.
“판을 짜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서 말입니다.”
쓰게 웃으며 중얼거린 김문성 대표가, 곧이어 황석호 청장과 나눴던 대화를 그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요는 한창 수사권 조정이 논의되고 있는 와중에, 최대의 임팩트로 사건을 터뜨려야겠군. 그리고, 그 사건이 방화라…….”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오춘화 회장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군.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해 주게.”
“판에 쓸 배우 섭외는, 가능하시겠습니까?”
김문성의 물음에 오춘화 회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차고 넘치는 게 장기수술 피해자 유족들 아닌가? 그중에서, 검찰에 접수되었던 사건들의 피해자 유족들. 아무나 하나 골라잡으면 되겠지.”
오춘화 회장의 말에 김문성이 한층 목소리를 낮춰 말을 잇는다.
“그들이… 과연 이번 일에, 협조를 하겠습니까?”
“…….”
“자기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우리의 생각대로 움직여 줄지, 저는 그게 우려스러울 뿐입니다.”
순간 오춘화 회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지는 않지.”
“…예?”
김문성이 멍하니 반문했다.
“가족. 좋지. 누군가에게는, 치일 대로 치인 삶에 유일한 안식처가 될 수도 있고, 자식 놈 재롱 피우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른 부모들도 있지.”
“…….”
“그런데 말이야…….”
말끝을 흐리는 오춘화 회장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모든 사람들이, 제 가족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
“그게 무슨…….”
김문성이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TV를 켜 봐도 되고, 신문을 들여다봐도 좋네. 고작 게임 때문에 미쳐 제 부모 죽이는 자식 놈들, 쥐꼬리만 한 유산상속 문제로 형제들끼리 서로 칼을 겨누는 놈들. 심지어, 돈 때문에 제 어린 자식 놈을 환갑이 넘은 노친네에게 팔아넘기는 부모들까지 있지. 그렇다면…….”
뜸을 들이던 오춘화 회장이 사뭇 즐거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별의별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 산재하고 있는 지금, 과연 제 어린 자식 장기 떼어다, 팔아 치우는 놈들은 없을까?”
“……!”
이어지는 오춘화 회장의 말에 김문성이 눈을 크게 떴다.
“더군다나, 그 자식이 제 씨앗도 아니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계부모… 입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배우가 되겠군요.”
김문성이 감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춘화 회장이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수화기에 더욱 더 입을 바짝 가져다 댄 채 말을 잇는다.
“자네는, 내가 고작 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가?”
“예?”
끝을 알 수 없는 오춘화 회장의 말에, 이번에도 김문성이 멍하니 반문했다.
“이건 우리 그룹 내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비밀이네만…….”
오춘화 회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곧바로 이해한 김문성이 대답한다.
“회장님과 저는 이미 한배를 탄 몸입니다. 저는, 명성그룹의 사람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구만.”
오춘화 회장이 기분이 좋은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웃음소리가 잦아들며, 오춘화 회장이 말한다.
“오래전, 우리 그룹에서 진행한 보육원 설립 사건, 최근 언론을 통해 재조명되어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물론이지요. 그것 때문에, 저희가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도윤과 평화당 박영동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김문성이 으득 이를 갈았다.
“그래, 그 사업. 우리가 왜 진행했다고 생각하나?”
오춘화 회장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김문성이 대답한다.
“…보여 주기식 사업 아니었습니까?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 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오춘화 회장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좋지만, 그런 일에 회사 돈이 수백 억이나 투자하지는 않지. 당시 언론에서조차,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가?”
“…….”
김문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그랬다.
물론, 그 일로 명성의 브랜드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뛰어오른 것 또한 사실이다.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원동력 삼아, 기세를 몰아 10대 그룹에까지 치고 올라갔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앞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던 그때에,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수백억 원이나 되는 돈을 투자하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업은 어디까지나,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당시 시대적 상황은 90년대 초반.
IMF 금융위기가 터지기 이전인 그때만 하더라도, 기업 간의 경쟁이 어마어마하게 벌어지고 있던 때였다.
몇몇 특정 대기업이 아닌, 다수의 기업들이 피 터지는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던 상황.
이를 바탕으로, 1995년 우리나라는, 수출 규모 1천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언제 밥그릇 빼앗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욕심 많은 오춘화 회장이 고작 보육원 설립 사업에 수백억 원이나 되는 돈을 투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순간 김문성의 머릿속을 무언가가 번뜩 하고 스쳐 지나갔다.
계부모.
장기매매.
보육원.
그리고, 명성그룹.
김문성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설마……!”
“아마, 자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게 맞을 걸세.”
“…….”
오춘화 회장이 자못 설레는 표정으로 마지막 말을 잇는다.
“기대되는군. 우리 배우들이, 어떤 영화를 나에게 선사해 줄지.”
* * *
명성그룹 본사, 오창원의 개인 집무실.
책상에 앉아, 한참 서류를 뒤적이던 오창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아버지, 오춘화 회장이 활발한 외부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금.
회사 내부의 업무 처리는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젠장… 이러다 서류에 파묻혀 죽겠군.”
이미 많은 서류들을 처리했음에도, 아직도 산더미처럼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들을 보며, 오창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허투루 결재서류에 서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본적으로, 회장에게까지 올라오는 서류들은 회사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안건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박건우 일도 그렇고, 골치 아픈 일들이 한 번에 너무 많이 터져 버렸어. 이래서는, 끝도 없겠군.”
초췌한 얼굴로 쌓여 있는 서류들을 빠르게 넘기며 훑던 오창원이 순간 멈칫한다.
“…응?”
무언가 확 하고 눈에 들어오는.
거슬리는 무언가가 시야에 잡혔었다.
오창원이, 책상 위 서류들을 다시 되돌아 넘기기 시작했다.
파라락, 파락, 파라락.
방 내부에 서류 넘기는 소리만 조용히 울려 퍼지기를 잠시.
이내 찾고자 하는 서류를 발견한 오창원이 멈칫했다.
“이건…….”
서류 가장 앞면.
타이틀을 확인한 오창원의 두 눈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명성물산… 인수제안?”
서류 앞면에 적힌 제목을 따라 중얼거린 오창원이 빠른 손동작으로 서류를 따로 빼내었다.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창원의 두 눈은 더욱더 커져 갔다.
그리고, 서류의 마지막.
인수 희망자의 이름 석 자를 확인했을 때, 오창원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놈은…….”
대경한 오창원이 더듬더듬 내뱉는 목소리가 집무실 내부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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