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비보와 낭보
명성그룹, 오춘화 회장의 본가.
본사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오창원이 저택 출입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오도카니 서 있는, 본가의 집사를 발견한 오창원이 소리친다.
“회장님은!?”
“그게, 방에 계십…….”
집사의 말을 채 다 듣지도 않고, 오창원이 빠르게 뛰어 올라갔다.
3층으로 위치한 명성그룹 본가에서도, 오춘화 회장의 방은 3층 가장 구석진 방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방문 앞에 도착한 오창원이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는,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회장님, 오창원입니다.”
“들어와.”
곧바로 들려오는 오춘화 회장의 목소리에, 오창원이 그대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철컥.
조금의 소음도 없이, 고급스러운 원목 출입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방 내부로 한 걸음 내디딘 오창원이 순간 멈칫했다.
방 중앙.
산산이 깨져 흩어진 도자기 조각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긴장해야겠군.’
한차례, 마른침을 삼킨 오창원이 이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손에는, 얇은 서류 몇 장을 쥔 채로.
“회장님, 드릴 말씀이…….”
“어, 그래.”
말을 잇던 오창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방 내부의 상황과 달리, 오춘화 회장의 얼굴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지 않으셨던 것, 아니었나?’
좋지 않기는커녕, 입가에 은은한 미소까지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상당히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천만다행이군.’
가볍게 한숨을 내쉰 오창원이 어느새, 오춘화 회장의 눈앞에 도착했다.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보고?”
오춘화 회장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인 오창원이 손에 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잠시 그 서류를 살펴보던 오춘화 회장이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뭐야? 명성물산 인수제안?”
“KS그룹에게 정부사업을 양보했던 게 큰 타격이 되어, 명성물산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겨 있던 오춘화 회장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 정도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 이번 결정을 하던 순간부터, 물산은 버리는 패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
한차례, 씁쓸한 미소를 지은 오춘화 회장이 묻는다.
“니가 봤을 때 물산, 그거 살릴 수 있다고 보나?”
오창원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살려 볼 수야 있지만, 하책입니다. 차라리, 그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게 회사 전체의 이익에 훨씬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굳이 물산이 아니더라도, 회사 내 어려운 곳들은 많이 있으니까요.”
“그래, 몸집 줄이기.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건데, 막상 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
한차례 한숨을 내쉰 오춘화 회장이 손에 쥔 서류의 특정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지막이 묻는다.
“인수 금액은 여기, 이 서류 그대로인가?”
“예.”
“시장가치에 비해, 확실히 많은 금액이군. 이런 시기에, 우리 회사에 이 정도 돈을 내놓을 만한 곳이라…….”
오춘화 회장의 시선이 점점 서류 아래쪽을 향했다.
그런 오춘화 회장을 보며, 오창원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바로 이어질, 오춘화 회장의 반응을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마침내, 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한 오춘화 회장이 움직임을 멈췄다.
“……?”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총 세 번의 눈 깜빡임이 있은 뒤.
“장… 호식?”
오춘화 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수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결국…….’
속으로 중얼거린 오창원이 질끈 눈을 감았다.
“지금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여기 적혀 있는 인수자, 설마 내가 아는 그 장호식은 아니겠지?”
“…….”
오춘화 회장의 물음에도 오창원은 아무런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않은가?
“왜 말이 없나? 오창원이, 대답해 봐. 여기 적혀 있는 장호식이. 정말로, 그 장호식이가 맞아?”
한차례, 입술을 질끈 깨문 오창원이 마지못해 대답한다.
“…예, 맞습니다. 회장님.”
쫘아아아아악! 쫘악!
오춘화 회장의 손 안에서, 얇은 서류가 갈가리 찢겨 나갔다.
“그러니까, 밥그릇 안에 든 내용물은 물론이고, 밥그릇까지 모조리 빼앗아 가겠다? 그것도, 감히 이 오춘화의 밥그릇을?”
“…….”
오창원이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장학수, 네 이놈!!!!!!!!!!!!!!!!!!!”
분노한 오춘화 회장의 외침이, 저택 내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평소대로라면 조용해야 할 주말 오후에, 때 아닌 소동으로 주변이 난리가 났다.
한 중년 남성이, 한 손에 휘발유 통을 든 채, 확성기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비를 받고 편파수사를 일삼는 불법 장기수술 사건 담당검사! 강도윤은 사퇴하라!”
소식을 듣고 달려 나온 검찰청 직원들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발빠른 기자들도 속속들이 도착하여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시작은 평범했다.
지나가다 보면 한 번쯤은 봤을 법한 1인 피켓 시위.
1인 시위의 경우, 경찰서에 집회·시위 신고 접수를 할 필요조차 없기에, 심심치 않게 목격되곤 한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경우.
1인 시위를 가장한, 분신자살 시도다.
사실 이런 경우는 공공기관보다는, 기업들.
특히, 대기업 청사 앞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당한 해고나 인사이동에 불만을 품은 근로자들이 종종, 이런 과격한 행동을 보이곤 했으니까.
정부의 공공기관 앞에서는 결코 흔히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강도윤 검사가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길래, 유족이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
“나야 알 수가 있나? 그보다, 경찰이랑 소방에는 연락했어? 저러다, 진짜 일 내는 거 아니야?”
“요즘 불 가지고 저러는 사람들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정말 불안해 죽겠네!”
불안감이 가득 담긴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져 가기 시작했다.
삐뽀, 삐뽀, 삐뽀.
이내,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눈을 희번덕 뜬 중년 사내가 손에 쥔 휘발유를 제 몸에 확 하고 뿌렸다.
촤아악!
뚝, 뚝, 뚝.
“꺄아아아아아악!”
머리카락을 타고,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는 휘발유를 보며, 한 여성이 비명을 질렀다.
“저, 저, 저!”
“아주 그냥 사람 흥분시키려고 작정했나!? 저거 싸이렌 소리 듣고 흥분한 거 아냐!?”
“어떻게요, 어떻게!저러다 정말 불이라도 지르면……!”
기자들 또한 사진 찍는 것도 잊고, 목소리를 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순간.
멀리서 경찰차와 소방차가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중년 사내가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찰칵!
손짓 한 번에 라이터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 불꽃을, 중년 사내가 망설임 없이 제 몸에 가져다 붙인다.
화르르륵!
누가 채 말릴 틈도 없이, 불은 삽시간에 중년 사내의 온몸에 옮겨 붙었다.
“강도윤은! 사퇴하라!!!!! 끄아아아아아악!”
중년 사내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주변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 * *
한우리당, 김문성 대표의 개인 사무실.
똑, 똑, 똑.
“들어와.”
조용히 울리는 노크 소리에, 소파에 몸을 묻고 있던 김문성이 말하자, 벌컥 하고 출입문이 열렸다.
“대표님!”
이내 헐레벌떡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김문성의 수석 보좌관이었다.
“대표님의 말씀대로! 지금 막, 누군가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했습니다!”
“……,”
“곧바로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 덕분에, 생명에는 크게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던 김문성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검찰 쪽 반응은 어때?”
수석 보좌관이 곧바로 대답한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지불식간, 예상치 못한 시기에 갑자기 터진 일이라, 당황스러울 겁니다.”
김문성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당연한 얘기는 됐고, 정승만 지검장. 그쪽 반응을 묻는 거야.”
“아…….”
수석 보좌관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아직 따로 반응은 보이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면, 마침 짐 정리 때문에 청사에 나와 있던 터라, 현장에는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수석 보좌관의 말을 끊고, 김문성이 말한다.
“정승만이, 현장에 있었다?”
“예. 현재까지 확인되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수석 보좌관의 대답에, 김문성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렇단 말이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하던 김문성이 묻는다.
“언론 쪽은?”
“이미 현장 인근까지 언론에서 나온 차량들이 쫙 깔렸습니다. 곧 기사들이 속속 보도될 것으로 보입니다.”
“좋군.”
김문성이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저… 그런데, 조금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
김문성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죽었다면 모르겠지만. 제 몸에 불까지 지른 것으로 보면, 분명 명성그룹에 거액의 보상을 약속받았을 테지만, 혹시라도 마음이 바뀐 놈이 입이라도 잘못 놀렸다가는…….”
“그런 걱정 따위는 할 필요 없어. 그놈은, 명성그룹 사람 그 자체니까.”
“…예?”
김문성의 말에 수석 보좌관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굳이 대답해 줄 생각은 없는 듯, 김문성은 그대로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이만 나가 봐. 특이사항 있으면, 바로바로 보고하도록 하고.”
“…아! 예. 알겠습니다.”
허리를 숙인 수석 보좌관이 그대로 몸을 돌려,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쿵!
짧은 소음과 함께, 이윽고 김문성 홀로 사무실에 남게 되었을 때.
“그래, 명성 쪽 사람, 그 자체고 말고.”
상념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김문성의 미소가 점차 짙어지기 시작했다.
김문성은 이제 안다.
십수 년 전, 명성그룹이 진행했던 대규모 보육원 설립 사업.
그 진짜 목적이, 다름 아닌 불법 장기매매 수술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음을.
성인이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신선한 장기들.
그런 장기들을, 위험부담을 줄이며 원활히 수급해야 하는 일이다.
부모들이 24시간 감시하다시피 하고 있는 그 삼엄한 경계를 뚫고.
사후 신고의 위험까지 덜어 낼 수 있는, 확실한 방법.
“고아들.”
김문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애초에 부모들이 버리고 간 고아들이니, 부모들의 경계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굳이 경계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보육시설 그 자체.
보육원이 울타리가 되어, 고아들의 보호막 역할을 해 줄 뿐이다.
하지만.
그 보육시설조차, 명성의 것이라면?
보육시설 관계자는 물론이고, 고아들을 입양하는 계부모까지, 모조리 명성의 사람들이라면?
“완벽한 장기수급이 가능해지지.”
보다 질 높은 장기들은 물론, 장기간 지속적인 수급까지.
모든 관계자들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완벽한 증거인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이, 명성그룹에서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사업의 진짜 목적.
“이번 일에 빈틈 따위는 없다.”
작게 중얼거린 김문성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끝이다, 강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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