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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53화 (153/174)

153화 많이 좋아하거든요

서울중앙지검 1층 로비.

분신자살 기도가 벌어진 지 불과 3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이곳은 기자들로 꽉 들어차기 시작했다.

기자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마이크가 쥐어져 있었다.

“강도윤 검사님 검사실이 어딥니까!?”

“아니,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이럴수록, 국민들의 의심은 더욱 더 커질 뿐입니다!”

“아니면 내려와서 한 마디 해 달라고 말이라도 전해 줘요! 기자들 모여드는 거 안 보여요!?”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의 난장판.

기자들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진화에 나선 검찰청 직원들의 식은땀도 늘어만 갔다.

하지만, 정작 그 주인공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황.

비교적 기자 무리와 떨어진 구석진 곳.

서울중앙지검 소속, 두 검사가 자신들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소곤거리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강도윤이 그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이 난리통이면, 벌써 귀에 들어가도 수백 번은 더 들어갔겠구만!”

“워낙 외근 활동 좋아하는 놈이잖아. 다른 검사들이랑 다르게 말이야.”

수염이 거뭇거뭇 난 30대 젊은 검사가 비아냥거렸다.

“뭐야? 너, 그놈한테 뭐 안 좋은 감정이라도 있어? 왜 이렇게 삐뚤어?”

“안 좋은 감정은 무슨… 인기 좀 얻었답시고, 제 잘난 맛에 휘젓고 다니던 놈이 이 지경이 되니 코빼기도 보이지 않잖아.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야.”

“그야 뭐…….”

“말이 나와서 하는 놈이지, 제 놈이 뭘 했어? 청에서 작정하고 영웅 만들기 하려고 밀어준 것뿐이잖아? 놈은 그저, 거기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고.”

“지검장님이랑 총장님이 유독 강 검사만 싸고돌긴 했지. 검찰 내 가장 강력한 라인을 가진 사람은, 강 검사라는 말까지 있으니까.”

“청문회에서 지검장님이 공개적으로 ‘내 사람’이니 하는 말을 한 순간, 게임 끝이지. 대체 그놈은 아부가 얼마나 뛰어나길래, 그렇게나…….”

말을 잇던 젊은 검사가 순간 멈칫했다.

누군가 등 뒤에서 자신을 콕 하고 찔렀기 때문이다.

한차례, 착용하고 있던 안경을 고쳐 쓴 사내가 반사적으로 등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구… 헉!”

순간 사내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한참 도윤을 비아냥거리던 수염 거뭇한 사내도, 무심코 동료 사내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크게 떴다.

“지, 지검장님!”

“좀 비켜주겠나?”

정승만 지검장이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두 검사가 서 있던 곳.

로비 구석, 비상계단 입구 바로 앞이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길을 막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한 두 검사가 황급히 물러섰다.

“죄, 죄송합니다!”

“뭐, 나한테 미안할 것까지야…….”

말끝을 흐리며, 로비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정승만 지검장의 뒷모습을 보며, 두 사내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참! 그런데 말이야.”

“네, 넵!”

순간 멈칫한 정승만 지검장이 고개를 돌리자, 두 사내가 재빨리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정승만이 손가락을 들어, 로비에 모여 있는 기자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내가 지금부터, 저쪽에 어마어마하게 몰려 있는 기자들을 직접 상대하려고 하는데,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해?”

“예? 저기를 직접, 말씀이십니까?”

안경을 착용한 젊은 검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저기 있는 사람들은, 정식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을 갖추고 모여든 기자들이 아니다.

여느 언론사보다 빨리, 정확한 정보를 캐치해 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기자들.

사건이 터진 직후였기에, 기자들의 몸은 어느 때보다 달아올라 있는 상황이었다.

저런 곳에 몸을 들이밀었다가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파도에 휩쓸려, 온종일 시달릴 가능성이 높았다.

재빨리 판단을 마친 수염 거뭇한 검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검장님. 차라리, 조금 텀을 두고, 대회의실에 따로 장소를 마련하여 입장을 밝히는 게…….”

“자네 생각도 같나?”

정승만이 사내의 말을 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옆에 있는 안경 쓴 검사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검사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저 말에 동감입니다, 지검장님.”

“…그래?”

두 젊은 검사의 반응에, 정승만 지검장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자네 둘의 생각. 다른 젊은 검사들도 마찬가지겠지?”

정승만의 물음에 두 검사가 순간 서로 눈을 마주친다.

씨익 미소 지은 두 사내가 힘차게 대답한다.

“물론입니다. 아무리 봐도, 저기에 지검장님이 몸을 던지시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제가 바로 올라가서, 회의실에 기본적인 준비를 해 놓겠습…….”

“그런데…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거든.”

“…예?”

정승만의 말에, 수염 거뭇한 검사가 멍하니 반문했다.

“자네들과 강도윤이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나?”

뜬금없는 정승만의 물음에 두 검사가 눈만 동그랗게 떴다.

“지검장님, 그게 무슨…….”

“옛날 사람들뿐만 아니라, 힘들게 사시를 패스하여 검사가 된 요즘의 젊은이들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 있어.”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내를 보며, 정승만이 손을 들어, 수염 거뭇한 사내의 한쪽 가슴 구석을 콕 하고 짚었다.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여느 공무원들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그 두려움이야.”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두 검사를 보며 정승만이 조용히 말을 잇는다.

“두렵겠지.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가장 중요한 그걸 잃게 되면, 다른 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

“이 일을 하면 혹시나 내 인사에 불이익이 오지는 않을까, 이 일은 해 주지 않으면 윗선에 찍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그때만큼은, 또 어찌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마치, 수험생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말이야.”

정승만이 젊은 검사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런데, 그거 아나?”

“…….”

“그 두려움이 모이고 모여, 자네들이 말한 라인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

두 젊은 검사가 눈을 부릅떴다.

“눈치 보는 조직문화가 라인이라는 악습을 만들고, 전염병처럼 조직 내부에 퍼지고 퍼져, 무한히 반복되지.”

“…….”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저 흘러가는 흐름에 몸을 맡길 뿐이야!”

“…….”

“이런 생각들 때문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거야. 우리 조직, 더 나아가 이 나라 전체가.”

정승만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수염 거뭇한 검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두려움조차 없는 사람이, 강도윤이다. 이 말씀이십니까?”

정승만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지검장님이 대체 왜, 강도윤이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지요. 그렇게 두려움이 없고 소신 있는 사람이라면, 벌써 이곳에 나타났어야 정상 아닙니까?”

안경을 착용한 젊은 검사가 인상을 찡그리며 반문했다.

사내들을 일별한 정승만이 힐끗 청사 출입문 방향을 바라본다.

순간 정승만의 미소가 점점 더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과 같지 않은가?

정승만이 입가에 미소를 매단 채,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렇게 왔지 않은가?”

“…예?”

“저기.”

정승만이 손가락을 들어 어느 한곳을 가리키자, 두 젊은 검사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내는 발견할 수 있었다.

두터운 서류 뭉치를 한 손에 들고, 출입문을 통과하여 로비 중앙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젊은 사내의 모습을.

“강도윤…….”

수염 거뭇한 사내가, 마치 신음을 내뱉듯 중얼거렸다.

* * *

조국일보 박성준 회장의 본가이자, 박보군 국무총리의 자택.

널따란 거실에, 때 아닌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총리님!”

얼굴까지 붉게 달아오른 박성준이 흥분하여 고함쳤다.

“못 들었어? 강도윤이 편파수사 의혹. 기사로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하란 말이야.”

“아직 사실 확인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사를 내다니요!?”

박성준의 목에 핏대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박보군이 지지 않겠다는 듯, 맞받아 고함쳤다.

“내가 소설을 쓰라고 했어!? 피해자 유족 신원! 확실히 확인됐어! 자식까지 잃은 부모가, 얼마나 분하고 원통하면 제 몸에 불까지 지르겠나!? 숨겨진 팩트는 두고, 드러난 팩트로 궁금증을 증폭시키란 말이야! 그게 니가 할 일 아니냐!?”

“아버지! 만약 이게 누군가의 음모라면, 강도윤 검사 명예만 실추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의 추진력도…….”

“너, 지금 소설 쓰냐?”

박보군 총리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어느 부모가! 제 자식 두 번 죽이는 그 따위 미친 짓거리에, 제 육신까지 불태우며 동참하겠나!?”

“…….”

“뭐? 누군가의 음모?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언론사 회장이라는 놈이 어떻게…….”

입술을 꾸욱 깨문 채,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박성준이 말한다.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뭐?”

“아버지는 그저, 여야의 균형을 무너뜨릴 그 아이의 행태가 우려스러울 뿐이신 것 아닙니까?”

“박성준!”

박보군 총리가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쳤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박성준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지금까지의 저는… 그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아버지의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했지요.”

“너…….”

“한 번 꽂히면 찍어 눌러서라도 실행하고야 마는 아버지의 그 고집 때문에! 결국 지영이를 그렇게, 떠나보내기까지 했구요.”

“네놈이!”

박보군 총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좋다! 어디 니 마음대로 해 보거라! 이제 언론계에 내 입김이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게얼마나 큰 착각인지, 내 보여 주도록 하마!”

“그렇게 하신다면, 저는 더 이상 할아버지를 보지 않을 거예요.”

순간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박보군과 박성준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보윤이 너, 언제…….”

굳은 얼굴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박보윤을 보며, 박성준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를 보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예요. 저 또한, 할아버지께만큼은 언제나 착하고 똑똑한 손녀딸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이제는 아니라니……?”

보윤은 지금까지, 자신이 도윤에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분명 묘하게 설레고, 기분이 좋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어디까지나 제 소신껏 행동하는 그의 모습이 주는 카타르시스.

일종의 쾌감과 비슷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철이 들 무렵부터, 주변 사람들의 사랑만 받아 온 보윤에게 짝사랑이라는 감정은, 낯설기만 한 것이었으니까.

보윤의 자존심이, 그런 사실을 인정할 리도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보윤이 느끼고 있는 감정.

이전과 달리, 명확하고 분명했다.

분노.

화가 났다.

죽은 어머니까지 거론하며, 제 고집대로 밀어붙이려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아니다.

그보다는, 할아버지가 그를 완전히 매장시키려 하는 모습에 더 화가 났다.

그가 고통받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왔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상념을 털어 낸 보윤이 멍하니 서 있는 박보군 총리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바라본다.

“그 사람이 다치는 것, 보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한차례, 힐끗.

박성준을 바라본 보윤이 옅게 미소 지으며 마지막 말을 잇는다.

“제가 그 사람, 많이 좋아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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