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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57화 (157/174)

157화 반격

플래시 세례가 잠잠해지고.

“박건우 부사장이 순순히 자백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최종 결재권자가 명성그룹 오춘화 회장님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오춘화 회장님에 대한 영장도 청구하실 계획입니까!?”

“혹시 또 다른 공범은…….”

도윤에게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도윤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

거짓말처럼 웅성거림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제가 이렇게 기자님들 앞에 서게 된 진짜 목적은, 명성그룹 사건이나 분신자살 소동 때문이 아닙니다.”

웅성, 웅성.

잠잠해졌던 소란이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분신자살 소동은… 일을 저지른 분이, 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런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조사하면 금방 드러날 문제입니다. 보시다시피요.”

“…….”

“만약 수사 과정에서 생겨난 미비점이나, 제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제가 책임져야겠지요.”

“그 말씀은…….”

한 기자가 말끝을 흐리자, 도윤이 힘주어 말을 잇는다.

“엄일경 씨가 주장하는 편파 수사나 어떤 로비가 있었다면, 제가 책임지고 이번 일에서 물러나겠습니다.”

“…….”

“아니, 제 검사직을 내려놓도록 하지요.”

“……!”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기자들이 눈을 크게 떴다.

공개 석상에서 이런 종류의 얘기를 하게 되면, 빼도 박도 못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런 얘기는 삼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게 될 것들 또한 많은 법.

말 한 마디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는 주체 중 하나.

검찰, 그것도 특수부 소속 검사가 자신의 직을 걸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만큼 결백하고, 자신이 있다는 뜻이리라.

‘이번 일로, 오춘화는 똥줄이 탈 수밖에 없다.’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애가 탈 것이다.

설마 수십 년도 더 전에 추진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테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저쪽에서 먼저 움직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때가 되면…….’

눈을 빛낸 도윤이 입을 열었다.

“명성그룹 사건 또한 아직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에, 수사 이후 따로 기자회견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략적인 수사 경과라도 말씀해 주시죠!”

“이미 수사 막바지 아닙니까? 또 다른 정황이라든가, 그런 것은요?”

“시간이 오래 지나 공소시효 문제도 걸릴 것 같은데, 처벌할 방법은 있는 건가요!?”

또다시 터져 나오는 질문 세례를 가만히 바라보던 도윤이 서류 한 장을 꺼내, 손에 들었다.

“이게,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진짜 목적입니다.”

“……?”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도윤의 손에 있는 서류를 유심히 바라보던 기자들 중 하나가, 눈을 크게 떴다.

“김… 김문성 대표, 체포 허가서!”

“뭐라고!?”

기자들이 너나없이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그런 기자들을 바라보며,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한우리당, 김문성 대표에 대한 체포. 그 최종 승인이 지금 막 떨어졌습니다.”

“……!”

“저는 이제, 김문성 대표에게 정식으로 검찰 출석을 요구할 것입니다. 만약, 출석에 응하지 않는다면…….”

서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도윤이, 마지막 말을 잇는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제가 직접 찾아갈 생각입니다.”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도윤의 발언은, 곧바로 자택에 있는 김문성 대표의 귀에 들어갔다.

국무총리에게 결재가 올라가기 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막상 체포 허가가 나자, 뒤통수라도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문성 대표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당과 신자유당의 입김과 최종 결재권자인 대통령의 승인은 그렇다 치고…….”

“…….”

“총리는… 놈이 대체 어떻게 구워삶은 것일까?”

“그게…….”

옆에 서 있던 김문성 대표의 수석보좌관이 침중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총리님의 손녀가, 강도윤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이어지는 수석보좌관의 말에 김문성 대표가 멈칫했다.

잠시, 무언가 고민하던 김문성이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고작 그따위 이유로 박보군 총리가 제 신념에 어긋나는 일을 받아들인다고? 절대 아니야.”

“…….”

“여·야 간의 불균형을 누구보다 우려하고 있는 것이 총리야. 그런데, 제2야당의 대표인 나를 체포하는 것에 승인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마도 막바지에 새로 추가된 죄명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재욱이 얘기가 결국 검찰 귀에 들어갔지 않습니까? 존속상해로…….”

“음…….”

이어지는 수석보좌관의 말에 김문성이 침음을 삼켰다.

“조사 과정에서는 크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묵비권이라도 행사하라, 뭐 그런 건가?”

“저 변호사 출신입니다, 대표님.”

수석보좌관이 옅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검찰이 죄명에 존속상해 죄를 추가했다. 그 말은, 검찰도 이번 일에 자신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

“만약, 기존의 죄명만 가지고 구속시킬만한 자신이 충분히 있었다면, 굳이 이번 일과 연관이 없는 존속상해까지 서류에 집어넣지는 않았겠지요.”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판사.

이들 사이에는 실제,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피해자가 동일하다든지.

혹은 사건 간에 서로, 관련된 사건이라던지 등과 같이.

사건 관련성이 있는 두 사건을 하나로 합치는 것을, ‘병합한다.’라고 한다.

사건 병합에 명확한 기준은 따로 존재하지 않기에, 전적으로 법원의 마음이지만.

피해자의 편의를 위해서,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별개로 다뤄도 될 사건을 검사가 굳이 사건병합 신청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만큼 주가 되는 사건에 대한 자신이 없다는 반증이었으니까.

이와 비슷한 경우가, 공소장에 적는 예비적 기재와 택일적 기재가 있었다.

강도죄가 안 되면, 절도죄로라도 처벌해 달라는 식의 예비적 기재나.

강도죄나 절도죄, 둘 중 판사님이 선택해서 알아서 처벌해 달라는 식의 택일적 기재 또한.

검사가 자신이 없을 때, 써먹는 방법 중 하나였으니까.

생각에 잠겨 있는 김문성을 보며, 수석보좌관이 말을 잇는다.

“별건 구속은 헌법에 반한다는 것, 대표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절도죄로 영장을 받아 구속해 놓고, 살인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한다.

이런 별건 구속 또한 법적으로 불가능.

때문에, 수석보좌관은 존속상해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음을 말하고 있었다.

상습범이 아닌 이상, 우발적인 존속상해의 경우, 그 고의성 부분을 따지고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던 김문성이 묻는다.

“놈이 요구한 출석일시. 언제지?”

“3일 뒤, 서울중앙지검 313호 검사실입니다.”

“3일 뒤라…….”

잠시 말끝을 흐리던 김문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직접 한번 만나 봐야겠어.”

“누구를… 설마, 강도윤 말씀이십니까?”

수석보좌관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반문했다.

“아니.”

“그럼…….”

“이미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는 사람을 찾아갈 필요는 없지.”

“…….”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김문성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마지막 말을 잇는다.

“박보군 총리. 그를 만나 봐야겠어.”

* * *

서울 구치소.

투명하면서 두꺼운 아크릴판을 눈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던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저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자그마한 구멍이 숭숭 뚫린 아크릴판 너머.

어느새 도착했는지, 초췌한 몰골의 770번 수용자.

명성그룹 전 부사장, 박건우가 자리해 있었다.

침묵을 지키는 박건우를 보며, 도윤이 말한다.

“안심하고 말씀하시죠. 아시다시피… 접견장소만큼은, 감시인이 없거든요.”

피의자, 혹은 피고인의 인권을 위해.

접견 때만큼은, CCTV녹화도, 감청도, 코앞에서 감시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구치소 직원은 그저 멀리서, 불법행위를 하지 않는지 지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얼굴 좋아 보이는군.”

박건우의 비아냥거림에,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말입니다. 누구 덕분에요.”

“빌어먹을…….”

순간 박건우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도윤이 말하는 그 ‘누구’가, 다름 아닌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정말로, 너 혼자 오춘화를, 명성그룹이라는 괴물을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나 혼자가 아닙니다.”

“…뭐?”

멍하니 반문하는 박건우를 보며, 옅게 미소 지은 도윤이 말을 잇는다.

“대한민국 전 국민이. 진심으로 저를 응원하고 있는데, 어떻게 혼자라고 할 수 있겠어요?”

“…….”

“나는 국민들과 함께, 그 괴물을 반드시 무너뜨려 보일 겁니다. 그게…….”

순간 도윤이 눈을 빛내며 말한다.

“국민들의 믿음에 대한, 보답이니까.”

“…….”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박건우가 입술을 꾸욱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잠시 후, 박건우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탁이 있소.”

“부탁?”

갑자기 바뀐 박건우의 반공대.

속으로 미소 지은 도윤이 짐짓,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잠시 온몸을 잘게 떨던 박건우가 말을 잇는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내가 왜 당신에게 그런 얘기들을 했는지, 잘 모르겠소. 그때 내가 미쳤던 것인지…….”

“당신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도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본인 스스로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능력을, 과연 누가 믿을 것인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도윤만이, 전체를 둘러볼 수 있을 뿐이다.

박건우가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도윤은 이를 차분히 기다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이 시점에서 괜히 나서서 재촉해 봐야,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다.

수많은 범죄자들을 잡아 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도윤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박건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부탁… 들어줄 수 있소?”

“무슨 부탁인지, 일단 들어 보는 게 먼저겠지요.”

“…….”

“편하게 말씀하세요. 여기서 더 나빠질 것도 없지 않습니까?”

기다릴 때는 기다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안정시킨다.

이 또한, 신문(訊問)의 기본 중 하나.

이내, 박건우가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말한다.

“내 부탁은 간단하오.”

“…….”

“지금부터, 당신이 하는 모든 수사에 협력하겠소. 그러니…….”

말끝을 흐리던 박건우가, 간절한 표정으로 마지막 말을 잇는다.

“…오춘화 회장을, 꼭 잡아 주시오.”

“…….”

말없이 박건우만을 바라보고 있던 도윤이.

미소 짓는다.

지금까지의 가식적인 미소가 아닌.

진심으로 환한, 승자의 미소를.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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