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김문성 출석
도윤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서류를 가만히 바라봤다.
호식이 떠넘기다시피 쥐어 주고 간, 이것.
“하아…….”
도윤이 한차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명성물산이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이 사실은, 도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상당히 큰 의미가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명성그룹이라는 하나의 유기체 속 부품들을 떼어 낸다.
팔다리가 모두 잘리고 종국에는 홀로 남게 오춘화 회장은, 결국 스스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으리라.
“조금 있으면…….”
곧.
수사의 첫 번째 단추나 다름없는 김문성 대표가 이곳에 출석한다.
정계와 재계의 인사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상황에서.
정계의 대표 격인 김문성 대표만 구속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나머지는 일사천리일 것이다.
“검사님, 시간 됐습니다.”
자신의 실무관이 검사실로 들어서며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죠.”
이윽고, 도윤이 1층 로비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조사에 앞서, 이례적으로 청사 로비에서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입니다.”
“기자회견이요?”
발을 놀리던 도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예. 저쪽에서 먼저 요청한 겁니다.”
“허…….”
도윤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종류의 일에 얽힌, 소위 높으신 분들은.
대게, 청사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피하기 바빴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말 한 마디 잘못 내뱉었다가, 전국 방송을 탈 수 있는 상황 아니던가.
어느새 도윤이 1층 로비에 도착하자, 기자회견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저는! 한 당의 대표로서, 이런 정치검찰의 몰상식한 행태에 심히 유감을 느낍니다!”
“저건 무슨……?”
스피커를 타고 귀청을 때리는 김문성의 목소리에, 실무관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김문성이 재차,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한다.
“정계와 결탁한 정치검찰! 그 막강한 권력으로, 이제는 정치판에까지 마수를 뻗친 검찰! 저는, 통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로비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일은! 대통령 탄핵 건에 대한 여당의 정치적 보복이자, 저희 당에서 발의한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검찰의 보복입니다!”
“……!”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제 죄가 무엇입니까!? 명확한 증거도 없이, 심증 하나만으로 저를 핍박하고 있지요! 만약 제가 정말로 죄를 지었다면, 애당초 구속영장도 함께 발부되었을 겁니다!”
“…….”
“아마도! 저 김문성에 대한 체포 동의가 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저희 당의 위신을 깎아내리고, 제 개인의 명예까지 실추시키려는 목적이겠지요!”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더욱더 커지기 시작했다.
“저는 오늘! 그 모든 것들의 진실을 밝혀낼 것입니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 앞에, 이 김문성이! 떳떳하게 서겠습니다!”
“…….”
“다시 한 번! 상대 당 대표를 매장시키려 하는 정치세력들과, 검찰의 공작에, 심히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말을 마친 김문성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쉼 없이 번쩍이는 플래시 세례를 멍하니 바라보던 도윤의 실무관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역시, 정치인이라 그런지, 말은 청산유수인데요?”
“…….”
“생각 있으세요, 검사님?”
“…어떻게든 되겠지요.”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윤의 두 눈빛은,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우우웅, 우우웅.
주머니에 울리기 시작하는 진동 소리에, 도윤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강도윤입니다, 지검장님.”
“방금 기자회견, 봤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정승만의 목소리에 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김 대표 검사실에 구인해 놓고, 잠시 내 방으로 올라와.”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도윤이 실무관을 바라본다.
“지금 바로, 김문성 대표 데리고 제 방으로 올라가세요. 기자들 통제 확실히 하구요.”
“알겠습니다, 검사님.”
“그리고, 수사관들한테도 일러 주세요. 쓸데없는 말들은 삼가라구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도윤이 빠르게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실.
활짝 열린 출입문 사이로, 개인 짐들은 이미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어딘지 모르게 휑하게까지 보였다.
방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테이블 하나와.
그 앞, 소파에 몸을 묻고 있는 정승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강도윤입니다.”
“들어와.”
도윤이 인기척을 내자, 정승만이 곧바로 반응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도윤이, 이내 정승만의 맞은편에 앉자, 그가 입을 열었다.
“TV 봤나?”
“…예?”
“하기야, 조사 준비하느라 볼 틈도 없었겠지.”
말을 잇던 정승만이 손에 쥐고 있던 신문지 일면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신문 일 면을 도윤이 멍하니 바라봤다.
각 신문사별로 신문지들이 뭉텅이째 있었지만.
그 신문사들이 다루는 기사의 주제들은 모두 하나였다.
오늘 있을 김문성 대표에 대한 조사 건.
그리고…….
“경찰에서 대체 왜…….”
도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경찰 쪽에서 김문성 대표의 말에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물론, 김문성 대표 그 자체의 조사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
단지, 수사권 조정이 한창 논의되고 있는 와중에, 그 중심이나 다름없는 김문성 대표에 대한 체포.
이에 대해 당혹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는 식의 기사들이었다.
정승만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경찰 쪽에서도 이번이 최적의 기회라고 생각했겠지. 대선 시즌도 아닌데, 저쪽에서 수사권 조정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으니.”
“…….”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오랜 숙원 중 하나가 아닌가?”
“음…….”
도윤이 낮은 침음을 내뱉었다.
물론, 도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 경찰이라는 조직에 20년 가까이 몸담았던 도윤이 아닌가?
다른 부연 설명이 없더라도, 경찰이 얼마나 그 일을 원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일선 현장에서 뛰다 보면, 일부 검찰 직원들의 갑질 아닌 갑질을, 몸소 느낄 수 있었으니까.
복수를 위해 검사가 되었지만.
검찰이라는 조직에 큰 소속감은 느끼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하나씩, 조직 자체를 바꿔 나간다면 모를까…….
도윤이 생각에 잠겨 있자, 정승만이 말을 잇는다.
“상황이 이상해졌어. 이번 김문성 대표 구속 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
“…….”
“이제는 너와 나만의 문제가 아니야. 판이 너무 커져 버렸어. 만약, 김문성 대표 구속에 실패하면…….”
“…….”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검찰 전체에 미칠 거다.”
정승만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정말로. 수사권 조정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지.”
“…….”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우리 검사들 인원이라고 해 봐야 고작 몇천. 10만이나 되는 경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
“…….”
“그나마, 수사지휘권이라도 있으니, 저치들이 우리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는 거지, 만약, 수사 지휘권과 독점 수사 종결권. 그 두 가지를 빼앗기게 되면…….”
“줄 건 줘야지요.”
“뭐라고……?”
도윤의 대답에 정승만이 멍하니 반문했다.
도윤이 굳은 얼굴로 말을 잇는다.
“혹시나, 80년대 백골단이니, 고문경찰이니 얘기하시면서, 경찰과 진흙탕 싸움 하시려는 생각은 마십시오.”
“…….”
“검찰의 권력 유지를 위해 목소리 내는 총장님보다는, 국민들을 위해 제 발로 뛰는 총장님을 보고 싶습니다.”
“너…….”
“더 이상 억울한 국민들이 없는, 공명정대한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수사권 조정,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삼권분립의 진정한 목적처럼, 서로 간의 상호 견제만큼 좋은 효과를 보이는 장치도 드무니까요.”
“…….”
정승만이 입을 다문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눈앞에 있는 놈은 정말로, 괴짜 중에 괴짜다.
검찰총장을 마지막으로, 검찰이라는 조직을 떠나야 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임기의 자신조차,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데.
이제 고작 3년 차가 되지 않은 신임검사가.
엉덩이에 땀띠 나도록 공부해서 힘들게 들어와, 이제는 대접받을 일만 남았는데.
그 막강한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자고 한다.
그것도 다른 이유도 아닌, 국민들을 위해서.
“너, 정말…….”
“…….”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한차례 한숨을 내쉰 정승만이 말한다.
“니 생각 잘 알겠다. 하지만 내 위치, 수천의 검찰청 직원들을 대표하는 검찰총장이다.”
“…….”
“그런 내가, 내 스스로 우리 조직이 가진 무언가를 내놓는다는 게…….”
“내어놓는 게 아닙니다.”
도윤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돌려주는 겁니다. 경찰이 아닌, 국민들에게.”
“……!”
정승만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정승만을 바라보며, 도윤이 계속 말한다.
“그렇다고 이번 일, 자신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눈을 빛낸 도윤이 또박또박, 힘주어 말을 이어 나갔다.
“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겠지요. 고작 저 하나 살자고, 이런 엄청난 카드를 가지고 나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자신이 살아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수사권 조정 건은 묻히겠지요. 대선 때마다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카드인데, 이렇게 끝내기는 아까울 테니까.”
“…….”
“그럴수록, 고통 받는 국민들은 더욱더 늘어날 테고요.”
“…….”
“사건이 터지면 잠깐, 선거 시즌이 되면 또 잠깐. 이따위 정치적 이용에 놀아날 생각, 저는 추호도 없습니다.”
도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문성 대표. 제가 꼭 구속시키겠습니다.”
“…….”
“총장님은 그저, 한 가지만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말끝을 흐리는 정승만을 보며, 도윤이 조용히 말을 잇는다.
“이 나라의 주인은, 검찰도 경찰도 아닌, 바로 국민들이라는 것을요.”
“……!”
“그것 하나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다면 총장님의 고민, 어쩌면 쉽게 해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을 마친 도윤이 고개를 숙였다.
“손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정승만을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윽고, 도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쿡.”
정승만이 낮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새파랗게 젊은 후배에게 배우는 처지까지 이르렀군. 총장만 되면, 모든 게 내 마음대로일 줄 알았더니…….”
도윤이 빠져나간 출입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정승만이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내가 모자란 건지, 저놈이 별난 건지…….”
말을 마친 정승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끼는 부하의 고통이 시작되려 하는 이때에.
직속상관이라는 사람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총장이 되고 처음으로 하는 외부활동인가?”
정승만이 출입문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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