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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61화 (161/174)

161화 독대

서울중앙지검 313호 검사실.

“오래간만입니다.”

“…….”

자신의 말에도 묵묵부답, 침묵을 지키는 김문성을 보며, 도윤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묵비권이라도 행사하실 생각이십니까? 아까의 당당하던 대표님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

“그렇게, 계속 날뛰거라.”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향해 김문성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내가 직접 보여 주도록 하지.”

“…….”

“어디, 니 마음대로 해 보거라. 하지만, 그 뒷감당은 온전히 네놈 스스로 져야 할 것이야.”

“…….”

“아, 혹시 모르겠군. 혼자만의 뒷감당은 아닐지도… 가족이 하나, 있지 않았나?”

표정이 살짝 굳는 도윤을 보며, 씨익 미소 지은 김문성이 작게 손사래 쳤다.

“오해는 말게. 내가 무언가 해코지를 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어찌 감히, 대 검사님 앞에서 그런 짓을 할 수가 있겠는가?”

“…….”

“단지, 의지할 곳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오빠가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면, 이 험한 세상을 딸아이 혼자 어떻게 살아갈지… 그게 걱정될 뿐이야.”

말을 마친 김문성이 척 하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그런 김문성을 가만히 바라보던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걱정 받을 정도로 못 먹고 살 정도는 아닙니다.”

“…….”

“지금은, 본인 스스로의 앞날을 걱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뭐, 나도 자네한테 그런 걱정 받을 위치는 아닌 것 같군.”

도윤의 말에, 김문성이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 코웃음 쳤다.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말은 아니지만.”

김문성의 눈썹이 꿈틀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죠. 그 말을 빌리자면…….”

목소리를 가다듬은 도윤이 말을 잇는다.

“김문성 씨, 당신은 더 이상 국회의원도 아니고, 야당의 대표도 아닌 그저 대국민 사기극의 주모자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오.”

“뭐라고……!”

순식간에 붉으락푸르락 해진 김문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너 이놈……!”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도윤이 품 안에서, 새까만 물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멈칫한 김문성이 그 물체를 들여다보더니, 조용히 중얼거린다.

“…녹음기?”

“맞습니다. 녹음기.”

“…….”

“이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지, 혹시 짐작이 가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발끈한 김문성이 고함치려는 순간.

도윤이 조용히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녹음기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 이걸 어, 어떻게……!”

김문성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 * *

경찰청 인근에 위치한 고급 일식집.

“총장님이 저를 다 불러주시고,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현 경찰청장 황석호가, 지금 막 들어서는 인물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요. 미리 한 번 만나 뵈었어야 하는 건데, 제가 필요할 때만 찾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사람 좋은 미소로 손을 내밀고 있는 황석호 청장을 향해.

지금 막 들어선 중년 사내.

정승만이 내밀어진 그 손을 맞잡았다.

“필요할 때만 찾다니요. 총장님과의 식사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총장이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정승만이 옅게 미소 지었다.

“일단, 앉으실까요?”

정승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석호가 자리에 앉았다.

“제가 어울리지 않는 눈치싸움과는 거리가 멀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곧바로 본론을 꺼내려는 정승만을 보며 멈칫한 황석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수사권 조정 논의 건. 청장님 작품이십니까?”

“……!”

황석호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수사권 조정 논의야, 국회에서 금배지 달고 있는 의원들이 하는 것.

그걸 모를 리 없는 정승만이 이런 종류의 질문을 던진다는 말은…….

이번 일에 자신이 직접 개입되어 있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수사권 조정 얘기야, 우리 경찰의 오랜 숙원과도 같은 일 아닙니까?”

애써 표정을 바로 한 황석호가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제 꿈이기도 하고요. 당연히…….”

정승만이 황석호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김문성 대표에게 어떤 로비를 받았느냐, 그걸 묻고 있는 겁니다.”

타악!

이어지는 정승만의 말에, 황석호가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소리가 날 정도로 ‘탁’ 하고 내려놓았다.

“…그 무슨 무례한 말씀이십니까?”

황석호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말 그대로입니다. 가지치기. 김문성 대표가 시킨 일입니까?”

“이런 미친!”

황석호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의 공식적인 직함.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두 주체의 수장.

대게 이런 장관급 인사와 차관급 인사가 만나면, 후자의 인물이 스스로 자세를 낮추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물며, 현행법상 경찰은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는다.

두 조직의 관계를 생각하면, 두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황석호만은 예외였다.

여기서 자세를 낮추었다간,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정말 불쾌한 자리입니다.”

황석호가 벗어둔 외투를 도로 걸쳐 입었다.

“설마하니, 총장님이나 되시는 분이 저를 불러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

“쥐고 있는 밥그릇을 빼앗기기 싫으면, 빼앗기기 싫다고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랬다면…….”

“수사권, 드리지요.”

“……!”

잠자코 있던 정승만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으로 귀를 후벼 파던 황석호가, 재차 묻는다.

“방금, 뭐라고……?”

“수사권.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검찰의 독점 수사권이 아닌 검·경의 공동 수사권으로.”

“……!”

“물론 확실히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 혼자만의 생각이니까… 하지만, 정식으로 그 법안이 발의될 때,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지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황석호를 향해 정승만이 말을 잇는다.

“지난 며칠간, 현 경찰청장인 황석호 씨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국민들의 권익 향상과 건강한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위해, 현 검찰총장으로서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을 충분히 느낀다.”

황석호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국민들이 원한다면, 우리 검찰은 그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 라고…….”

황석호가 입을 다문 채, 제자리에 석상처럼 굳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황석호가 입을 열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

“혹시나, 논의되고 있는 건을 일단 철회해 달라는 것이라면…….”

“그런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정승만이 옅게 미소 지은 채 대답했다.

“제가 덩어리를 하나 내놓았으니, 이제는 우리. 솔직한 대화를 나누지요.”

“…….”

“미리 말씀드리지만, 녹음기 따위는 결단코 없습니다.”

정승만이 보라는 듯이 옷소매를 걷어 붙였다.

“무슨 솔직한 대화… 말씀이십니까?”

“최근에, 김문성 대표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

“무언가 약속받았는지, 그따위 것을 묻는 게 아닙니다. 그저 만난 적이 있는지, 그것만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갈등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황석호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식사는 한 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좋습니다.”

정승만이 만족한 미소로 황석호의 두 눈을 바라본다.

“청장님은 이제부터, 박쥐가 되십시오.”

“…박쥐요?”

“만약 김문성 대표가 구속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황석호가 눈을 크게 떴다.

김문성 대표가 구속된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정계의 거물이 아니던가.

한 당의 대표.

검찰의 조사를 받는다는 것과 구속수사를 받는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구속된다’는 것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단순히 이 사람에게 범죄의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말 그대로 조사하는 신문과 달리, 구속은 어느 정도 명확한 증거와 범죄의 혐의가 입증되기에 영장이 발부되는 것이었으니까.

황석호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끝을 흐린다.

“그 말씀은…….”

“제가 믿는 친구가 김문성 대표의 구속에 실패한다면. 그때에는 청장님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거기에 제가 왈가왈부할 문제도 아니고요.”

“…….”

“하지만 만약, 구속에 성공한다면… 분명 청장님 입장에서도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겠지요?”

“…….”

황석호가 입을 다문 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청장님 입장에서는 일종의 보험이나 다름없는 것이니까.”

“음…….”

황석호가 이윽고, 침음을 삼켰다.

손해 보는 장사?

천만에!

자신이 이득을 취할 수밖에 없는 거래다.

막말로, 손해 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문성 대표가 구속된다면, 정치적 공천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수사권 조정 논의 또한 마찬가지.

그 일로 검찰의 위상은 올라갈 것이고, 법안 발의당 대표의 구속으로 도리어 역풍을 맞을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한쪽이 호구가 아니라면 할 수가 없는 거래.’

그에 비해 상대방.

눈앞의 새로운 검찰총장, 정승만은 아니다.

지금이야 조금 귀찮겠지만, 일단 구속에만 성공한다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으니까.

굳이 이런 손해뿐인 거래를 제안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정승만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숨은 의도 따위는 없습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청장님?”

갈등하는 황석호 청장의 분위기 사이로, 정승만의 올곧은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대체, 어떻게…….”

김문성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 살길을 마련해 두는 것. 정치인들의 특기 아닙니까?”

“빌어먹을…….”

도윤의 말에 김문성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도윤이 내놓은 녹음기 안.

거기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그것도 평화당 민수성 의원의 통장을 조작하여 정치적으로 매장시키려 했던 대화 중 자신이 했던 말들만 교묘하게 편집된 채로 말이다.

‘이 정도 편집이면 조작된 것이라 억지 부릴 수도 없다.’

속으로 중얼거린 김문성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모든 것이 조작된 것이라면 모를까.

자신이 내뱉은 말들만큼은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박태산……!’

이 녹음 파일의 출처.

분명 신자유당 박태산 대표일 것이다.

그 사람이라면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까.

도윤이 양손을 깍지 낀 채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씨익 미소 지은 도윤이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이제 대화할 마음이 드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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