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총리의 결단
조국일보, 박성준 회장의 집무실.
출입문이 ‘벌컥’ 하고 거칠게 열리더니,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네 이놈!!!!!”
집무실 내부를 쩌렁쩌렁 울리는, 노인의 목소리에.
잠시 움찔한 박성준이, 이내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셨습니까, 총리님.”
“오셨습니까, 총리님? 헛! 허허허허허허허!”
헛웃음을 터뜨리던 박보군 총리가 순간 와락, 인상을 구겼다.
쿠당탕!
박보군의 발길질 한 번에, 집무실에 비치되어 있던 의자가 날아가, 구석에 처박혔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정녕 모르느냐?”
“…총리님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화가 나신지는, 부족한 저로서는 알 도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것!”
박보군이 손에 쥐고 있던 신문지 더미를 홱 하고 집어 던졌다.
툭!
신문 더미는 그대로 박성준의 가슴팍에 맞아, 떨어져 내렸다.
“놈을 매장시켜 놓으라 일렀더니, 도리어 날개를 달아 줘!?”
박보군이 얼굴을 붉히며 버럭 고함쳤다.
앞면을 내보인 채, 바닥에 떨어진 신문.
다름 아닌, 조국일보에서 발행한 오늘 자 신문이었다.
문제는 메인 페이지를 수놓고 있는 기사.
박보군의 오더와 달리.
조국일보 메인 페이지는 도윤의 강압수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
‘검찰, 한우리당 김문성 대표에, 승부수 띄워…….’라는 제하의 기사 따위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정말 나랑 해보자는 거냐!? 감히, 내 명을 거역하고, 이따위 개똥 같은 기사를 써 대!?”
박보군이 재차 고함치자,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박성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기사를 쓴 것은, 제가 아닌, 기자들입니다.”
“…뭐라고?”
박성준의 대답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보군이, 냉소했다.
“못난 놈… 고작 한다는 변명이, 밑에 있는 기자들 핑계냐?”
“…….”
“아주 그냥 내 욕을 싸질러 놓으라고 그랬느냐? 그때에도, 밑에 있는 기자들이 쓴 것이라 둘러대면 그만인 것을.”
박보군이 홱 하고 몸을 돌렸다.
“되었다. 너는 오늘부로, 이곳. 조국일보의 주인이 아니다.”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린 박보군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당장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오늘 중으로 국장에게 인수인계까지 마쳐 놓거라. 당분간 너는 근신…….”
“지금도.”
박성준의 힘 있는 목소리에, 박보군이 움찔했다.
박성준이 박보군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조국일보의 주인은, 제가 아닙니다.”
“…뭐라?”
“신문사의 주인은 기자들. 회장은, 단지 직함만 있는 자리일 뿐이지요.”
“이놈이, 그래도!”
“아버지는!”
순간 박성준이 버럭, 고함쳤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 박보군을 보며, 박성준이 말한다.
“제 오더로! 기자들이 그런 기사를 썼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아니란 말이냐! 미치지 않고서야! 설마 그놈들이 나를 물먹이기 위해, 그따위 기사를…….”
“아버지를 물먹여요? 천만에!”
박성준이 진심으로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지금! 대의라는 이름 아래,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계십니다!”
“내가 잊고 있다고? 그게 무엇인지, 어디 한번 말해 보거라! 만약 또 한 번 헛소리를 지껄였다간……!”
“소신!”
“…….”
박보군이 눈에 띌 정도로 움찔, 몸을 떨었다.
“아버지가 항상 저에게 강조한 것이 두 가지 있었지요! 하나는, 상호견제를 위한 힘의 균형! 그것이, 대의.”
“…….”
“그리고!”
힘주어 외친 박성준이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기자로서의, 소신!”
“……!”
박보군이 눈을 크게 떴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강조해 오시던 것이었지요!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현장을 뛰어다녀라! 모든 오감을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하라. 그리고, 수집된 객관적인 정보들을 바탕으로, 소신에 맞는 기사를 써라!”
“…….”
“아버지에게 배운 그대로, 저도 기자들에게 그렇게 일렀습니다! 당신들 소신대로 쓰시라고!”
“…….”
“그 이후는, 보시는 대로구요!”
박성준이 바닥에 떨어진 신문 더미를 가리켰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보군을 보며, 박성준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신 겁니까?”
“…변해? 내가?”
박보군이 멍하니 반문했다.
“예. 분명히 변하셨습니다. 힘의 균형이라는 대의만 생각하시고,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계시지요.”
“그게 무슨…….”
“아버지가 그토록 기를 쓰고,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우려하며, 균형을 맞추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박보군이 입을 다물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박보군을 보며, 박성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아닙니까?”
“……!”
박보군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어떠한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명명백백히 밝혀,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한 기사를 제공한다.”
“…….”
“특정 정당의 권력 집중화 현상을 막기 위해, 국무총리로서 그 힘을 분산화한다. 권력 집중화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테니까.”
“…….”
“하지만! 과연 국민들이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을 원할…….”
“닥쳐라!”
잠자코 있던 박보군이 마침내 폭발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해야만 하는 일이다!”
홱 하고 몸을 돌린 박보군이 박성준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지금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불과 십수 년 전, 두 대통령의 군부독재 시절이 어떠했는지, 잊었느냐!”
열이 올라오는지, 박보군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던졌다.
“땡 하는 소리가 울리면, 온갖 대통령을 찬양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신? 그따위 소신을 지키려다, 반병신이 되는 기자 놈들, 수도 없이 많이 봐 왔다!”
“…….”
“그런데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었는지, 아느냐?”
말을 잇던 박보군이 그때가 생각났는지, 힘주어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그놈들! 모두 내 동료들이었고, 친구들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웃으며 술잔 기울이던 놈들이, 다음 날 병신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때의 기분을, 니가 알 수나 있겠느냐!?”
“…….”
“소신도! 바로 지금처럼, 자유 민주주의가 선행되어야, 지껄여 댈 수 있는 말이란 말이다!”
고래고래 고함치던 박보군이 숨이 차는지, 잠시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박성준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 박보군은 마치 자신만 겪은 일인 것처럼 말을 했지만.
그 역사 속 비극의 산증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박성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머리끝까지 흥분한 박보군이, 잠시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지금 박보군이 말하고 있는 십수 년 전, 군부독재 시절은.
바로, 박성준이 현장 기자로 뛰어다니던 때였다.
“스읍. 후우~”
한차례.
깊게 심호흡한 박보군이, 낮게 눈을 내리깔며 말을 잇는다.
“…김문성이가, 나에게 부탁을 했다.”
“……!”
박성준이 흠칫 놀라 굳었다.
“수사권 조정 건에 대해, 힘을 실어 달라고 하더구나.”
“이 상황에서, 수사권 조정 건에 힘을 실어 달라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던 박성준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가지치기……!”
이내, 김문성의 숨은 속내를 파악한 박성준이 놀라 중얼거렸다.
아마도, 김문성은 검·경 간의 싸움을 통해, 도윤을 쳐내려 할 것이다.
그 일만큼은 막아야 했다.
“아버지, 설마 그 부탁, 들어주실 생각은…….”
“당연히 그럴 일 없으시겠죠.”
“…··!”
갑작스레 출입문 방향에서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에, 두 사람이 흠칫 놀라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조국일보의 편집국장.
그리고, 그 뒤에는…….
“배지수……!”
박보군이 신음처럼 내뱉었다.
자신의 비서실장인 배지수.
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그녀가, 그곳에 서 있었다.
생긋 미소 지은 배지수가 천천히 집무실 내로 들어섰다.
“설마하니, 그런 이유로 수사권 조정 법안이 발의된 것인 줄은, 저조차 상상도 못 했네요.”
“…….”
“물론 현명하신 총리님이 그따위 이유로, 그런 부탁을 들어주실 거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너, 언제…….”
박보군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어디서부터 대화를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만약, 이 일이 대통령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다 안다는 듯, 다시 한 번 미소 지은 배지수가 말한다.
“총리님이 무슨 걱정 하시는지 알겠네요.”
“…….”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을 대통령님에게 보고드릴 생각은 없으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총리님의 비서실장이잖아요?”
능청스러운 배지수의 모습에 박보군이 뿌득, 이를 갈았다.
아마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이 자리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총리님이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는 전제하에서… 겠지만.”
이어지는 배지수의 말에 박보군이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허탈한 표정을 지은 박보군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늘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시멘트 천장이었건만, 하늘이 샛노래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되면, 김문성의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
오늘의 대화가 대통령의 귀에 들어가면, 모든 게 끝이었으니까.
대통령의 국무총리 해임권.
국회가 하는 국무총리 해임‘건의’와는 그 성격이 명백히 다르다.
의원들의 투표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해임에 이르는 국회의 해임건의와 달리.
대통령은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새로운 국무총리를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만약, 소신에 따라 중도의 정치를 추구하는 데 힘써 온 국무총리가.
사실은, 특정 야당 대표와 손을 잡고, 짜고 치는 판을 만들려 했던 사실이 들통난다면.
대통령은 곧바로, 자신을 내칠것이다.
“이런… 여전히 걱정이 많으신 표정이네요.”
배지수가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박보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 굳이 그게 아니라도, 지금 돌아가는 사정을 알게 되면, 총리님도 단숨에 생각이 바뀌실걸요?”
“…돌아가는 사정이라니…”
박보군이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쯤이면 아마, 시작되었을 텐데…….”
힐끗, 시간을 확인한 배지수가 집무실 한켠에 마련된 TV를 가리켰다.
“저거. 한번 켜 보시겠어요?”
“예? 아, 예.”
갑작스레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배지수를 보며, 조국일보 편집국장이 후다닥.
TV 리모컨이 놓여 있는 테이블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편집국장의 손짓에 따라, 이내 TV 화면에 전원이 들어왔을 때.
배지수를 제외한 방 내부의 모두가.
똑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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