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김문성 구속
같은 시각, 도윤의 검사실.
김문성이 허탈한 표정으로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TV 속 화면에는 익히 잘 알고 있는, 깔끔한 정복 차림의 황석호 경찰청장과.
새로운 검찰의 총수가 된 정승만이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었다.
내용은 길었지만, 요점은 하나.
한창, 정치권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검·경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는 사과문 형식의 기자회견이었다.
더불어, 정치 스캔들 사건의 수사가 끝날 때까지.
검찰과 경찰은 이번 수사권 조정 건을, 그저 지켜만 보겠노라 덧붙였다.
“어째서…….”
김문성이 콰득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아닌가?
‘황석호……. 이제 우리 당의 공천 따위는 필요 없다, 이거냐?’
손에 쥔 비장의 패 중 하나가 날아갔다.
‘가지치기’라는 비장의 패가.
이렇게 되면 수사권 조정 카드는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남 좋은 일만 시켜 주는 꼴 아닌가?
박보군 총리가 자신의 말에 힘을 실어 줘도 마찬가지.
박수도 짝이 맞아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정작 당사자인 경찰에서 발을 빼 버렸는데, 총리가 아무리 ‘수사권 조정’에 대해 어필해 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총리실 및 국회에서도 발표가 있겠습니다. 검·경 두 조직의 의사를 존중하며, 저희 또한, 이번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법안 논의를 미루는 것으로…….>
곧이어.
계속해서, TV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지는 소리에 김문성이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졌다. 완벽히…….’
김문성이 질끈 눈을 감았다.
20년 이상을 달려온 자신의 정치인생이,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그뿐인가?
눈앞에 있는 놈이 가지고 있는 녹취록이라면, 아마 실형도 면치 못할 것이다.
정치인들이라면, 다들 한 번씩은 해 봤다는, 데모 한번 해 보지 않았던 김문성이다.
감옥살이?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은 졌다.
전쟁에서 패배한 패장의 목숨은 오롯이 승자의 전유물.
이제, 자신의 목숨은 눈앞에 있는 이 애송이 손에 쥐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끝났군요.”
가만히 지켜보던 도윤이, 두꺼운 서류 더미를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이 녹취록이면 구속은 확정적이라 봐야겠고, 야심차게 준비한 가지치기까지 무산되었으니…….”
“…알고 있었나?”
김문성의 반문에 도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뭐, 이런 때 흔히들 나오는 방법이니까요.”
“…….”
김문성이 입을 다물었다.
김문성의 얼굴을 바라보던 도윤이 조용히 말을 잇는다.
“원하신다면, 김재욱 검사 건은 이대로 덮겠습니다.”
“…왜?”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김문성이 체념한 표정으로 살며시 눈을 떴다.
“어차피, 고의성은 없으셨을 테니까요.”
“…….”
“과실 관련 죄를 제외하고, 형법상 모든 범죄는, 고의성이 있어야 피의자를 처벌할 수 있을뿐더러…….”
잠시 말끝을 흐리던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그 고의성에 대한 입증은, 전적으로 검사인 제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
“이런 걸로 생색내는 성격도 아니고, 솔직히. 자신도 없거든요.”
“…….”
“그렇게 되면, 결국은 과실치상 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건 끽해야 벌금 얼마가 전부니까요.”
“…그거 참, 고마운 말이군.”
김문성이 다시, 눈을 감았다.
혼이 쏙 하고 빠져나간 모습.
한순간, 삶에 대한 의욕을 모두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런 김문성을 바라보며, 도윤이 말한다.
“법정에 서서도, 그렇게 계실 겁니까?”
“…뭐라고?”
“김재욱 검사가 깨어났습니다.”
“……!”
깜짝 놀란 김문성이 번쩍 눈을 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문성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예. 치료도 무사히 끝났고, 곧 일상생활 하는 데도 지장이 없을 겁니다.”
“…….”
안도한 표정을 지은 김문성이 쓰러지듯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마 김재욱 검사도, 법정에 올 겁니다.”
“…….”
“누구보다 자랑스러웠을 아버지였을 텐데, 그런 모습으로 계시면 실망할 겁니다. 어쩌면, 도로 침대에 몸져누울지도 모르지요.”
“너, 그래서…….”
김문성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재욱이가 충격을 받을까 봐… 자신을 그렇게 만든 내가, 그 이유로 법정에서 심판받는 모습을 보이면, 더 큰 충격을 받을까 봐, 그래서…….”
차마 뒷말은 잇지 못하겠는지, 김문성이 푹 하고 고개를 숙였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도윤이 말한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어디까지나 제가 자신이 없어서 존속상해는 빼 버리는 것뿐입니다.”
“…….”
“쪽팔리잖아요? 자신 있게 내건 죄목이, 법정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빠꾸 먹으면.”
도윤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린 김문성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탁이 있네.”
“가능한 거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전해 주게. 그리고, 가급적이면 법정에는 오지 마라는 말도…….”
“…….”
이어지는 김문성의 말에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더 듣지 않아도, 김문성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식이, 명색이 현직 검사다.
평범한 아버지들일지라도, 자식 앞에서만큼은 당당하고 싶은 법인데.
권력의 정점을 맛본, 김문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자신의 모습.
아마도, 자식에게만큼은 보여 주고 싶지 않으리라.
김문성이 침중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재판이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있어야겠지. 설령, 재판이 끝나더라도, 내 죄라면 실형은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네.”
“…….”
도윤이 입을 다문 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내 죗값은 내 스스로 치르겠네. 나를 봐서가 아니라, 부디 직장 동료이기도 한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그 아이가 충격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네.”
“…노력해 보죠.”
“…고맙군. 조사에는, 성실히 임하겠네.”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김문성이 조용히 몸을 의자에 묻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도윤이 말한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답할 수 있는 거라면.”
김문성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정치인들은, 왜 그렇게 온갖 권모술수를 써 가며,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그게 못내 궁금할 따름입니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조용히 도윤의 말을 따라하던 김문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 충분히 그렇게 보이겠군.”
“무언가 당에 엄청난 파급력을 미치는 일이라면 모를까, 한낱 국회의 의자 하나 바꾸는데도, 서로 피 튀기는 설전을 벌이지요. 상대방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도 않구요.”
“…….”
“자기네들의 말이 옳다고만 주장하는 것. 그게, 정치입니까?”
“…….”
한참이나,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던 김문성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
“그건, 정치가 아니지.”
“그럼 왜…….”
도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어라 말하려 할 때.
한발 앞선 김문성의 목소리가, 검사실 내에 조용히 울려 퍼진다.
“그냥 정치가 아니라…….”
“……?”
“이 나라, 대한민국의 정치야.”
* * *
명성그룹 본사, 회장실.
빠르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벌컥 하고 출입문이 열렸다.
“큰일 났습니다, 회장님!”
“…….”
“김문성 대표가……!”
“……!”
생각에 잠겨 있던 오춘화 회장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인 자신의 아들.
오창원을 보며, 오춘화 회장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TV 속 화면.
‘한우리당 김문성 대표 구속!’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오춘화 회장의 시야에 박혀 들었다.
오창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설마, 저 김문성 대표가 구속될 줄은……!”
“…….”
“만약에, 혹여라도 그가 허튼소리라도 한다면…….”
“그만!”
오춘화 회장이 버럭 고함쳤다.
오창원이 곧바로 입을 다물자, 오춘화 회장이 골치가 아픈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 또한, 예상 밖의 일이었다.
설마하니, 일반 의원도 아닌, 제2야당의 대표씩이나 되는 정계의 거물.
든든한 조력자 중 하나인 김문성이 구속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 되면… 차 떼이고, 포까지 떼인 격이군.’
속으로 중얼거린 오춘화 회장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명성물산이라는 차와 김문성이라는 포.
두 가지를 잃은 오춘화 회장에게, 더 이상 돌아갈 길은 없어 보였다.
“강도윤이……!”
오춘화 회장의 열린 입새 사이로.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놈이 나타나고 나서부터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는 회사와.
늙어 노쇠한 육신뿐이었다.
“지금 당장… 임원진들 소집해.”
“임원들이라면…….”
“명성의 핏줄들 모두를 포함하여, 이사들까지, 모조리!”
엉거주춤 서 있는 오창원을 보며, 오춘화 회장이 버럭 고함친다.
“뭣하고 있어!? 빨리 움직이란 말이다!”
“예, 회장님!!!”
오창원이 출입문 밖을 향해 후다닥 뛰어갔다.
이윽고, 오춘화 회장 홀로 남은 집무실.
“이렇게 되면… 최후의 총공세다.”
오춘화 회장이 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궁지에 몰린 생쥐. 아니, 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마.”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사용할 것이다.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그토록 애지중지 키워 낸 명성이 망하고 말 것이다.
아무리 덩치가 큰 회사라 하더라도.
한 번 기울기 시작하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
불과 수년 전, IMF 때 뼈저리게 느꼈다.
재계 10위권 안에 드는 기업들도, 우수수 부도가 났었으니까.
“이 타이밍에,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이윽고, 눈을 희번득하게 뜬 오춘화 회장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 *
우우웅, 우우웅.
김문성의 구속까지 성공시킨 도윤이 갑작스레 울리기 시작하는 진동소리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이내, 휴대전화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한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예. 강도윤입니다.”
“정말 징하네요. 그놈의 존댓말은, 언제까지 쓰려는 건지…….”
수화기 너머로 보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도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먼저 말 놓으시면, 저도 말 놓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
“분명히, 제가 1살 많았…….”
“미리 말하는데, 오빠라고 부를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꿈도 꾸지 마세요.”
“…….”
도윤이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를 잠시.
수화기 너머의 보윤이 말한다.
“축하해요.”
“…예?”
“큰 산 하나, 넘었잖아요?”
“…감사합니다.”
이내 보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도윤이 씨익 미소 지었다.
“혹시…….”
수화기 너머로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이 느껴지자.
도윤이 입을 다문 채 잠시 기다려 주기 시작했다.
곧이어, 묘하게 부끄러운 어투의 보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송치까지 마무리되면…….”
“……?”
“저랑… 어디 좀 같이 가요.”
보윤의 말에 도윤이 멍하니 중얼거린다.
“그거… 데이트 신청?”
“아니거든요!”
보윤이 빼액 소리치자, 도윤이 한쪽 귀를 틀어막았다.
통화가 끊긴 휴대전화 화면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도윤이, 이내 옅게 미소 지었다.
입꼬리가 올라간, 기분 좋은 미소였다.
“이제 남은 건…….”
순간 눈을 빛낸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번 김문성 대표 수사에서 얻을 수 있었던 소득은, 이 한 건만이 아니다.
새로운 패가, 도윤의 손에 쥐어졌다.
그것도, 일반 패가 아닌, 조커가.
“명성……!”
이내, 낮게 중얼거린 도윤의 목소리가 검사실 내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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