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166화 (166/174)

166화 사랑할까요?

사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명성그룹 내에서 외식업은 그리 큰 주목을 받지 않았었다.

명성건설이 모태회사인 만큼, 시멘트 따위의 사업에 주력하려 한 오춘화 회장의 경영 전략 탓이다.

그런 외식업을, 지금의 여기까지 만든 것이 바로 회장의 넷째.

오남규였다.

오남규의 경영 전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한 박리다매(薄利多賣)식 운영방식.

명성의 외식업이 일정 궤도에 올랐을 때.

오남규는 형제들에게 제안했다.

그룹 경영권 경쟁에서 빠질 테니, 자신의 외식업을 밀어달라고.

당연히, 형제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한 사람이 특정 큰 금액을 지불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형제들이 각각 조금씩만 각출하여, 도와주면 큰 부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규모가 커질수록, 오남규는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사업은 모조리 쓸어 담아 운영했다.

명성 레스토랑, 명성 분식, 명성 다방, 명성 고깃집 등.

돈이 될 만한 사업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고, 나중에는 그게 하나의 브랜드 가치가 되어 찾는 사람 또한 늘어만 갔다.

오남규의 갖은 노력 끝에 마침내.

명성이, 업계 최고의 타이틀을 눈앞에 남겨두고 있을 때.

그런 오남규마저, 유일하게 넘보지 못했던 분야가 딱 하나 있었다.

“도단 한식…….”

오남규가 테이블 위에 준비된 서류들을 들여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른 모든 분야를 제외하고, 이 한식만큼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최고 타이틀을 빼앗을 수 없었다.

협박도 해 보고, 회유도 해 봤다.

본사의 막대한 자금을 빌려, 악의 짙은 공격성 투자까지.

하지만, 어떤 방식을 동원해도 그 한식만큼은 빼앗을 수 없었다.

당시의 도단한식은, 도단한식만의 정갈한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랜드 이름만 보고 명성을 찾는 여타의 경우와는 달리 말이다.

“여사장이 특히나, 징그러울 정도로 올곧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지.”

과거를 회상하며, 오남규가 그때를 떠올리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감정.

오남규에게는, 상당히 오래간만에 느껴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큭큭큭… 시대를 뛰어넘은, 악연의 고리라…….”

일순간, 오남규가 음침한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웃음을 터뜨리던 오남규가, 손에 쥔 서류 더미를 테이블 위에 툭 하고 가볍게 집어 던졌다.

“재밌군, 재미있어.”

오남규가 내려놓은 서류 가장 앞.

두 젊은 남녀의 사진 아래에, ‘강석환’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아로 새겨져 있었다.

* * *

서울중앙지검 인근에 위치한 한우집.

이곳에서, 오래간만에 서울지검 직원들의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간만에 회식을 갖는 이유.

다름 아닌, 정승만 지검장이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검찰총장님을, 위하여!”

“위하여!!!!!!!!!”

일제히 술잔을 집어 든 직원들이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워낙 스케일이 큰 사건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중이다보니, 다른 부서 직원들까지 음주를 자제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것이, 김문성의 구속 성공으로 마침내 폭발했다.

“크하하하하!”

“총장님, 저 잊으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마, 걱정 마.”

이미 술에 취해,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정승만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실무관에 수사관까지.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으니, 고막이 먹먹할 정도로 시끌벅적했다.

“도윤이! 너도 한잔해!”

“아, 저는…….”

“뭐야? 설마, 이제 인기인 됐다고, 내 술까지 거부할 생각은 아니지?”

정승만의 짓궂은 말에 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한 잔만…….”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순간 주변에서 들려오는 환호 소리에 정승만과 도윤이 움직임을 멈췄다.

“박보윤! 박보윤! 박보윤!”

“이런, 더 인기인이 등장하셨는데?”

정승만이 또 한 번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입지 않는 원피스에, 머리까지 곱게 땋은 보윤이 지금 막 들어서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밀린 일처리가 있어서…….”

“박보윤! 박보윤! 박보윤!”

“와~~~~~~~~!”

보윤의 사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직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 대부분이, 남자 직원들.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여자 직원들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남자들이란…….”

“그러게 말이예요.”

“박 검사, 회식 자리인데 너무 차려입고 나온 것 아냐? 누가 보면 주인공이 자기인 줄 알겠다.”

“총장님이 괜히 섭섭해 하시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요.”

여자 직원들이 연신 수군대기 바빴지만.

보윤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굳이 집안이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연예인 뺨칠 정도로 예쁜 보윤이었다.

이쯤 되면 서울지검 내 진정한 인기스타라고 불릴 만했다.

“이봐! 박 검사!”

순간 정승만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이쪽에 앉지! 일부러 비워 뒀다고?”

정승만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

그와 상당히 가까운 자리이자, 도윤의 바로 옆자리였다.

순간 보윤과 도윤의 두 눈이 딱 하고 마주쳤다.

“오오오오오오~”

“사내 스타 커플 탄생인가요? 가나요?”

“뭐, 강 검사 정도라면…….”

“그럼, 그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주변 직원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원숭이 소리를 내며 연신 환호성을 지르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시기 어린 눈빛으로 도윤을 노려보는 직원들도 있었다.

물론, 일부긴 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직원들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때.

보윤이 기대에 무색하게, 찬바람이 일 정도로 홱 하고 시선을 돌렸다.

“저는 여기가 좋네요.”

보윤이 출입문 바로 앞.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자리라, 모두가 선호하지 않는 그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

“뭐야, 뭐야? 둘이 뭐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닌가 보네. 저렇게 냉기가 느껴질 정도면…….”

이번에도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아쉬운 탄식을 흘리는 사람들과 이제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듯 눈을 빛내는 사람들.

전자가 기혼자들이었다면, 후자는 미혼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눈치 빠른 젊은 남자 검사가 재빨리 보윤에게 다가갔다.

“한 잔 받지, 박 검사.”

“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보윤이 도윤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술잔을 받았다.

“근데, 오늘 무슨 일 있나? 박 검사, 원래 회식 자리에서도 술은 잘 안 마셨잖아?”

“오늘은 저도 취하고 싶어서요.”

짤막하게 대답한 보윤이 곧바로 술잔을 들이켰다.

“화끈하다!”

“멋있다!”

남자 직원들이 연신 환호성을 내질렀다.

“뭐야, 둘이 무슨 일 있었어?”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정승만이 고개를 갸웃하며, 도윤에게 물었다.

쓰게 미소 지은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요.”

“그런데 쟤 분위기가 왜 저래? 뭐, 말실수라도 한 것 아니야?”

“…….”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잘 좀 하지, 쯧.”

끌끌 혀를 차던 정승만이, 이내 무관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 아닌가?

정승만이 술잔을 들며 힘껏 소리친다.

“좋군, 좋아! 오늘 마시고 죽어 보자고! 하하하하하하!”

이윽고 정승만의 웃음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 * *

같은 시각.

오래간만에 휴일을 맞이하여, 집에서 뒹굴거리던 호식이 비명을 지른다.

짜악!

“아파!”

등판에 선명한 손자국이 찍힌 호식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창 바쁠 때라더니, 뭐하고 있는 건데?”

어느덧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황보신혜가 편안한 차림으로 허리에 척 하고 손을 올렸다.

“아니, 그래도 휴일인데…….”

“이왕 쉴 거면 차라리 나랑 데이트라도 가던가!”

“일단 조금만 쉬고…….”

“하아~”

황보신혜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평소의호식이 얼마나 바쁜지 잘 알기에,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못내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황보신혜가 체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강 검사님 건은 어떻게 처리하려고?”

황보신혜의 물음에 호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걱정 없어. 준비는 언제든지 되어 있으니까.”

“무슨 준비?”

“양쪽으로 한 방씩, 터뜨려 줄 생각이거든.”

“……?”

황보신혜가 연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렸다.

“영준이 형이 준비하고 있는 게 있기도 하고, 나도 이번에 한 번 더 아버지와 딜을 할 생각이야.”

“딜……?”

황보신혜가 멍하니 반문했다.

“사실 개인이 하나의 기업을 통째로 먹는다는 거, 쉬운 일이 아니거든. 자본도 자본이지만, 절차도 복잡하고. 그래서 부도가 나는 회사의 대부분이 더 큰 회사에 흡수합병 되는 경우가 많은 거야.”

“아…….”

황보신혜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서, 아버지에게 손을 좀 빌리려고. 뭐, 먹게 될 회사의 일정 지분을 어느 정도 떼어 주는 건 감수해야겠지만…….”

“어차피, 금전적인 목적 때문에 하는 일은 아니잖아?”

황보신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그런 미소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호식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와…….”

“……?”

“안 되겠다.”

음흉한 미소를 지은 호식이 화악 하고 황보신혜를 덮쳤다.

“꺅!”

“머리 아픈 얘기 그만하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지금을 즐기는 게 어떨까요, 마님?”

“…….”

황보신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 *

“하아~”

술자리에서 조용히 빠져나온 보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을이 다가오는지, 날이 제법 차가워져 쌀쌀했다.

부르르 몸을 떨던 보윤이, 제 몸을 둘러보며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고기 냄새 다 뱄네….”

보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안 들어가요?”

“……!”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보윤이 몸을 돌렸다.

무뚝뚝한 표정의 도윤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 검사! 안 들어갈 거야?”

“잠시만요!”

화장실이라도 가기 위해 함께 나왔는지, 도윤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 직원을 힐끗 바라본 보윤이 말한다.

“조금 있다가요.”

“제법 쌀쌀한데요?”

“괜찮아요. 조금 걷고 싶어서요.”

덤덤한 얼굴로 대답한 보윤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럼…….”

도윤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이내 두 사내가 고깃집 출입문 안쪽으로 사라지자.

한숨을 내쉰 보윤이 터벅터벅,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정말 안 추워요?”

“…들어간 거 아니었어요?”

언제 다가왔는지, 도윤이 바로 옆까지 다가와 함께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뭐, 나도 걷고 싶어서.”

도윤이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느새,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종이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옷 줄까?”

갑작스러운 도윤의 물음에, 보윤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됐어.”

“그럼, 이런 건?”

도윤이 한쪽 팔을 들어, 보윤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이건 뭐, 나쁘지 않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지만.

달빛을 받은 보윤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수줍게 달아올라 있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