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168화 (168/174)

168화 위기일까? 기회일까?

명성그룹 본사, 부회장실.

“어떻게 됐어?”

명성그룹 부회장, 오창원의 물음에 대기하고 있던 막내, 오상규가 대답한다.

“일단은… 직원들이 자사 주식을 예상보다 더 매입해 줘, 급한 불은 껐습니다. 특히나, 40대 이상 직원들이…….”

“그래야지. 제 밥그릇 빼앗기기 싫으면, 지들도 노력해야겠지. 특히나 나이 든 노땅들은 이직도 쉽지 않을 테니…….”

오창원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오상규가 말한다.

“그런데… 이게 잘하고 있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형님.”

“뭐?”

“IMF 때 보셨지 않습니까? 지금 저희 회사. 부도나기 직전의 회사들이 으레 보이는, 그런 수순을 밟고 있는 건 아닌지…….”

“쓸데없는 소릴랑 하지 말고!”

오창원이 오상규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낯빛을 굳힌 오창원이 말을 잇는다.

“상규야, 왜 내가 형제들 중에 유일하게 너를 믿고, 좋아하는지 알고 있니?”

“그건…….”

말끝을 흐리는 오상규를 보며, 오창원이 계속 말한다.

“자기 주제를 잘 알기 때문이야. 충분히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어도, 욕심 부리지 않지. 왜? 현실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오상규를 보며, 오창원이 계속 말을 잇는다.

“상규야, 한 번 믿기로 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나를 믿어. 나머지는, 내가 전부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형님.”

오상규가 한차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지?”

“일단은 평소 친분이 있는 정, 재계 인사들을 만나 뵙고 계십니다. 최우선 과제는, 아버지가 검찰의 구속수사를 피하는 것인데… 사실, 그것만 막아도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만큼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쉽지 않으니까, 문제지.”

오창원의 말에 오상규가 조용히 고개를 끄떡였다.

“맞습니다. 쉽지 않죠.”

“강도윤이 그놈이 문제야. 김문성이한테서 어떤 카드를 얻어 손에 쥐고 있을지, 그걸 모르니까.”

“모든 일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오상규가 더욱 더 낯빛을 굳히며 물었다.

“맞아. 그렇게 방심만 하다가, 이 지경까지 왔으니까. 최악의 최악. 그러니까, 아버지가 구속된 이후까지 생각하는 게 좋겠지.”

“맞습니다.”

오상규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던 오창원이 말한다.

“임시주총 한 번 하지.”

“임시주총이라면…….”

“우리 회사 주식들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 지금 모두 소집해. 덩어리가 큰 슈퍼개미들까지, 모두 다.”

“형님, 설마…….”

오상규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자기네들도, 폭락한 주식을 울며 겨자 먹기로 되파는 것보다는, 이걸 더 선호할 거야. 만약 아버지가 구속당한다면…….”

오창원이 침중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단 한 번도 건드린 적 없는, 본사의 51퍼센트 지분. 그걸 건드려야지.”

“형님, 그렇게 되면…….”

“알아. 회사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거. 하지만 부도가 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음…….”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이니까, 일단은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우우웅, 우우웅.

순간 주머니에서 울리기 시작하는 진동음에 오창원이 멈칫했다.

말을 멈춘 오창원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화면을 확인하더니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놈이 또 왜…….”

“…누굽니까?”

오창원의 반응에 오상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가문의 망나니 같은 놈.”

“…….”

오창원이 이내 휴대전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

“…….”

오창원이 휴대전화에 귀를 가져다 대고 있기를 잠시…….

“뭐야!?”

오창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함쳤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이 미친…….”

욕지거리를 내뱉는 오창원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야! 야!”

이윽고, 상대방이 통화를 끊었는지 한참을 고래고래 고함치던 오창원이 손에 쥔 휴대전화를 집어 던졌다.

파악!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힌 휴대전화가 박살이 났다.

“이 미친 새끼가…….”

“…무슨 일 있습니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제 분을 이기지 못한 오창원의 고함소리가 사무실 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 *

서울중앙지검 인근에 위치한 까페.

“…왜 연락이 없지?”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소식조차 없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며, 보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내가 한번…….”

이내 휴대전화를 집어 든 보윤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다 멈칫한다.

“아니야.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법조계의 여신님 어디 갔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보윤이 제 볼을 짝 하고 두드렸다.

“그래도… 너무 연락이 없는데…….”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린 보윤이 다시 휴대전화를 바라본다.

한참을 그 행동을 반복하기를 잠시.

“에잇! 그냥 해 보자. 이게 뭐라고…….”

보윤이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빠르게 조작하기 시작한다.

“안 받기만 해 봐. 아주 그냥…….”

보윤의 기대에 무색하게, 몇 번의 신호음에도 수화기 너머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진짜!!!”

보윤이 탁 소리가 날 정도로, 휴대전화를 거세게 내려놓았다.

“지가 저녁에 보자고 해 놓고, 연락 한 통 없고, 전화는 받지도 않고! 장난하는 거야, 뭐야!?”

씩씩거리던 보윤이 순간 멈칫한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당한 건…….”

보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때맞춰 울리기 시작하는 진동음에 보윤이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모르는 번호?”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보윤이 이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박보윤 검사님 맞으신가요?”

젊은 사내의 목소리에 보윤이 멈칫했다.

“…네, 제가 박보윤은 맞는데…….”

“아, 저는 장호식 변호사라고 합니다. 강도윤 검사 친구인…….”

“아!”

보윤이 이내 경계심을 풀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지금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 급한 일이라서요.”

“네? 급한 일이라면…….”

“만나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보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희 지검으로 오시겠어요? 제가 바로 그쪽으로 갈게요.”

“마침 제 사무실도 근처입니다. 바로 그리 가겠습니다.”

“네. 조금 후에 뵙겠습니다.”

통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보윤의 표정이 굳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무언가 일이 생겼을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보윤의 직감은, 항상 거짓말처럼 들어맞곤 했다.

“일단은…….”

작게 중얼거린 보윤이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 * *

오춘화 회장이 자주 이용하는 고급 일식집.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춘화 회장이 옅게 미소 지은 채, 서류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아이고, 이런 것까지는 안 주셔도 괜찮은데요, 회장님.”

배가 불룩 튀어나온 중년 사내가 누가 볼 새라, 잽싸게 서류봉투를 챙겨 넣었다.

“말씀만 하시면, 퇴직하신 이후, 회사 내 적당히 자리도 만들어 두겠습니다. 명예고문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그게 아니면, 요지 좋은 곳에 로펌 하나 만드는 것도 괜찮을 테고…….”

“하하하하하!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럼, 오늘 감사했습니다.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지요.”

“걱정 마십시오.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검사들이지만, 그 영장을 발부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저희 법관들의 소관이니까요.”

중년사내가 씨익 미소 지었다.

“회장님이 구속되시면,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휘청일 텐데, 애국을 위해서라도 구속만큼은 피해야겠지요. 물론, 아무리 저라도 무죄는 무리겠지만…….”

말끝을 흐리던 중년 사내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구속은 적당히 기각시키고, 시간 좀 끌다가 국민들의 관심이 서서히 식어 갈 때쯤, 집행유예 정도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어차피, 여론이야 한순간만 우르르 휘몰아치는, 태풍일 뿐이니까요.”

“든든합니다.”

마주 미소 지은 오춘화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잠시 말끝을 흐리던 오춘화 회장이 마지막 말을 잇는다.

“…법원장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중년 사내가 오춘화 회장의 손을 마주 잡으며,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공사가 다망한데, 들어가시지요.”

“예.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회장님.”

중년 사내가 이내 출입문을 나섰다.

한차례 한숨을 내쉰 오춘화 회장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이 들어 이 짓거리 하는 것도, 힘들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오춘화 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행동들.

한창 그룹 내 실무자로 있을 때나 하던 일이었다.

나이가 들어, 실무적인 일들은 모두 자식들에게 맡기고, 회장이라는 자리에서 전체적인 흐름만 조율하는 자신에게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명성이라는 회사 전체가 휘청거릴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강도윤…….”

오춘화 회장이 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빽도, 줄도 아무것도 없는 일개 평검사에게 이 정도로 핀치에 몰릴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놈에게 보여 주고 말 것이다.

이 나라, 대한민국은.

법이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 따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바로 자신과 같은, 극소수의 가진 자들.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이끄는 거대한 덩어리라는 것을.

우우웅, 우우웅.

귓가를 때리는 진동 소리에 오춘화 회장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나야.”

“회장님! 큰일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자신의 첫째 아들, 오창원의 목소리에 오춘화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바쁘니까, 일단 들어가서…….”

“오남규! 그놈이 결국, 사고를 쳤습니다.”

“…뭐야?”

오남규라는 말에 멈칫한 오춘화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얘기해 봐.”

“그게…….”

한참이나 수화기를 들고 있던 오춘화 회장이 잠시 후.

뿌득 하고 이를 갈았다.

“…지금 가지.”

이윽고 휴대전화를 다시 주머니에 찔러 넣은 오춘화 회장이 출입문을 나섰다.

최근 들어, 항상 이런 식이었다.

생각한 바대로 일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하나의 완벽한 틀을 만들어 놓으면, 그 안에서 이런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터져 나왔다.

누구보다 철두철미한 성격을 가진 오춘화 회장은 그 사실을 못내 견딜 수가 없었다.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이, 결국…….”

욕지거리를 내뱉은 오춘화 회장의 걸음걸이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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