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사고의 진실
명성그룹 저택 대서재.
감옥에 있는 둘째 오길태와 오남규를 제외하고, 나머지.
오춘화 회장을 포함한 장남 오창원, 장녀 오호순, 막내 오상규가 모여 있는 자리.
가장 상석에서, 오춘화 회장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상세하게 보고해 봐.”
“그게…….”
한 차례 꿀꺽하고 마른침을 삼킨 오창원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남규가… 강도윤 검사를 납치한 것 같습니다.”
콰아앙!
일흔이 넘었음에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오춘화 회장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힘껏 내리쳤다.
“납치? 납치라고 했나, 지금?”
대서재 내부를 숨 막힐 듯한 침묵이 덮쳤다.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놀라 입만 벌리고 있는 오호순과, 침중한 표정의 두 형제.
“미친놈… 어떻게, 그런 미친 짓거리를…….”
오춘화 회장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명성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과 달리 외식업계 쪽은 별개로 봐도 무방했다.
애초에 출발지가 달랐을 뿐더러, 오남규 홀로 오롯이 키운 업계인 만큼, 모회사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이 아니었다.
물론 어느 정도 타격이야 있겠지만, 줄줄이 부도를 걱정해야 할 다른 계열사들보다야 약과였다.
다시 말해, 노력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홀로서기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담당 검사 하나 처리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닌데, 그런 또라이 같은 짓을…….”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오호순이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오춘화 회장이 뿌득 하고 이를 갈았다.
“그놈, 지금 어디 있어?”
“그… 정확한 위치까지는…….”
오창원이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묵직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퍼억!
무거운 유리잔이 오창원의 머리에 부딪혔다.
주르륵.
흐르는 피조차 닦지 못하고, 오창원이 잘게 몸을 떨자.
“그놈… 더 사고 치기 전에, 당장 내 눈앞에 대령해. 만약 여기서 더한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간…….”
오춘화 회장이 으르렁대듯 말끝을 흐렸다.
“네놈들까지 모조리 다, 내 손에 아작이 날 거야.”
꿀꺽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오춘화 회장이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
당연히, 그 ‘변수’ 때문이다.
체스판은 만들어졌고, 그 판 위에 작전에 맞는 말까지 다 세워진 상황인데, 상대편 졸이 여왕으로 바뀌어 버린 상황.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는, 그 정도 파급력을 가진다.
무엇보다, 만약 명성그룹의 오너 일가 중 한 사람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도윤을 납치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명성그룹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
“찾아! 최대한 빨리! 그놈 위치 확인되는 대로, 내 눈앞에 데려와!”
“예!”
세 사람이 재빨리 출입문을 나섰다.
“미친놈…….”
이윽고, 홀로 남게 된 오춘화 회장이 작게 중얼거리는 욕지거리가 대서재 내부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사방이 어둡고, 퀴퀴한 냄새까지 진동을 하는 지하실.
촤아아악!
얼굴에 무언가 촤악 하고 뿌려지자, 도윤이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끄으…….”
머릿결을 타고 뚝, 뚝 하고 흐르는 물방울 속에, 도윤이 낮게 신음을 내뱉었다.
“정신이 드나?”
“…….”
귀청을 때리는 낯선 사내의 목소리에도, 도윤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목이 쩍쩍 갈라지는 느낌.
마치, 몸속에 가뭄이라도 들어선 느낌이었다.
꽈악.
“사람이 얘기하면, 얼굴은 봐야지?”
낯선 사내가 도윤의 머리칼을 잡아 채, 숙여진 얼굴을 들어 올렸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사내가 씨익 미소 지었다.
“만나서 반가워. 우리, 초면이지?”
“…….”
“나는 명성그룹의 오남규라고 한다. 니가 잘 아는 오춘화 회장님의 넷째 아들이고…….”
낯선 사내, 오남규가 말끝을 흐리자 도윤이 한차례 움찔 몸을 떨었다.
‘명성 그룹’이라는 단어 하나에 모든 감각이 살아났다.
회귀 전에도, 놈들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단비를 잃고, 분노로 이성을 잃은 자신의 복부에, 차가운 날붙이를 쑤셔 박았다.
그동안 자신들에게 반기를 드는 인물들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 왔는지, 굳이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오남규가 갑작스레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아……! 사실 이렇게 얘기하면 확 와닿진 않겠지? 너한테는 명성그룹 사람이라면 그놈이 그놈일 테니까. 그럼 다른 쪽으로 소개를 해 볼까?”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오남규가 말을 잇는다.
“사실 나는 아버지가 내놓은 자식이야. 젊었을 때부터, 그 답답한 곳을 나와 내 마음대로 살았지. 그러다 보니, 내가 맡고 있는 외식업계 자회사들은 모두 내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
“물론, 힘들었지. 이 바닥이 평판이나 이미지는 물론, 맛이나 음식 퀄리티도 특히 더 신경 써야 하니까. 돈이 전부인 세상이지만, 적어도 이쪽 바닥은 돈만으로 해결되는 세상은 아니었어.”
“…….”
“날더러 돈으로 그 자리에 오른 거라 지껄이는 놈들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들이란 말이지.”
탁 하고 바닥에 침을 내뱉은 오남규가 도윤의 머리채를 거칠게 놓았다.
“…끅.”
고통스러운 통증에 인상을 찌푸린 도윤의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그런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올랐는지 혹시 아나?”
대답을 바란 건 아니라는 듯 오남규가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우선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경쟁 업체들 주변에 점포를 내,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했지.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설령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음식값을 낮췄어. 물론, 해당 업체가 망하면, 조금씩 값을 올려 손해를 메꿔 갔고.”
“…….”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지들이 사정을 하더라고. 같이 공생(共生)하면 안 되겠냐고, 계속 이러면 자기들 같은 영세업자들은 죽어난다고 말이야.”
그때가 생각났는지, 오남규가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큭큭큭.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을 것 같나?”
“…….”
“공생! 나도 좋지. 이 팍팍한 세상에,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면 얼마나 좋겠나? 서로 도우면서 말이야.”
“…….”
“해서, 한 가지 제안을 했어.”
말을 잇는 오남규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가지고 있는 소스나 음식 레시피. 그걸 하나씩만 내놓으라고 말이야.”
“…….”
“그러고 나니까, 대부분이 알아서 내놓더라고. 물론, 본사 차원에서 철통같이 보안을 지키는 레시피들은, 일개 프렌차이즈에 불과한 그들도 알지 못했지만… 그런 사정, 알게 뭐야?”
말을 잇던 오남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식으로 주변 가게들을 하나씩. 나중에 버티다 못해 파산 직전인 가게들은, 내가 직접 밑으로 받아들여 주기도 했지.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지금의 이곳이 만들어졌고 말이야.”
오남규가 사뭇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명성에서 외식업계가 가지는 의미는, 나 오남규의 인생 전부라고 해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거야. 그 정도로, 내 청춘의 전부를 그곳에 바쳤으니까. 그런데…….”
말끝을 흐리던 오남규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그렇게 쌓아 놓은 내 모든 것을, 한낱 버러지 하나가 망쳐 놓으려고 해. 돈도, 집안도, 아무것도 없는 비천한 서민 따위가 말이야.”
“…우습군.”
도윤의 잇새로 새어 나오는 작은 목소리에, 오남규가 움찔한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도윤이 오남규와 눈을 마주친다.
일체의 동요조차 없는, 올곧은 눈빛이었다.
“뼛속까지… 시궁창 찌꺼기만도 못한 놈의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속에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려고 해.”
“뭐, 뭐라고?”
오남규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제정신인가?
당장 제 목숨을 걱정해야 할 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약한 사람들을 짓밟아 쌓아 올린 니 인생. 정말로, 만족하나?”
“…뭐?”
갑작스러운 도윤의 물음에 오남규가 멈칫했다.
“넷째라는 것. 참 애매하지. 위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뛰어난 형제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살아왔겠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러면서 서서히 후계자 경쟁에서도 밀려나고 말이야.”
“…….”
오남규가 입을 다물었다.
“나돌 수밖에 없었겠지. 명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그룹 넷째. 막내인 오상규와 달리, 너는 욕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말이야.”
도윤의 말이 이어질수록, 오남규의 표정도 굳어 가기 시작했다.
“돌파구가 필요했을 거야. 스스로 왕으로 군림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었겠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명성그룹 내에서라면, 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도윤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넷째로 태어나 당한 그 못난 울분을, 너는 고작, 힘없는 서민들에게 풀고 있는 거야. 하지만… 너를 그따위로 취급한 그 대단한 명성도, 이제는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지.”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오남규를 보며, 도윤이 말한다.
“다시 묻지. 니 인생, 정말로 만족하나?”
“…큭.”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오남규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큭, 큭큭큭큭큭. 역시, 재미있어.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놈이야. 너는.”
“…….”
“이 정도는 되어야, 그 년놈들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
“……!”
도윤이 눈에 띌 정도로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한순간, 모든 사고가 일시에 정지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오남규가 광기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회유도, 협박도 통하지 않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손에 꼽을 정도지만, 오로지 맛으로만 승부하던 알짜배기들.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뛰어난 인간들이었지.”
“너, 무슨 말을…….”
도윤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불길한 예감이, 도윤의 온몸을 잠식했다.
설마…….
만약, 놈의 입에서 정말로 그 얘기가 나온다면, 도윤은…….
오남규의 비릿한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역시, 끝까지 제 소신을 굽히지 않던 젊은 부부 한 쌍.”
“…….”
“설령, 가게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밑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겠다고 하더군. 사람의 추악한 욕심이 음식에 개입되는 순간, 음식으로서 가치를 다 한 것이라며 말이야.”
“…….”
“참 인상적이었는데 말이야. 내 손으로 완전히, 망가뜨려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마 이름이…….”
말끝을 흐리던 오남규가 씨익 미소 지었다.
“도단한식이었나?”
마침내, 오남규가 마지막 말을 내뱉는 순간.
도윤의 머릿속에서 마지막 남은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이제야 흩어졌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잘나가던 외식업계 CEO 부부의 갑작스런 교통사고.
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도윤의 온몸 안에 있는 피가 머리 쪽으로 쏠려 들어갔다.
도단한식.
도윤과 단비의 이름을 합쳐 지은 그 이름은…….
“개자식아!!!!!!!!!!!!!!!!!!!”
퀴퀴한 지하실 내부에, 도윤의 처절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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