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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70화 (170/174)

170화 승부수

호식의 변호사 사무실.

출입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깔끔한 정장 차림의 보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보윤 검사님?”

책상에 앉아 서류 더미를 뒤적이고 있던 호식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 장 변호사님 되시죠?”

“아, 예. 반갑습니다. 제가 전화드렸던 장호식이라고 합니다. 조금 급해서 그러니 일단 앉으실까요?”

호식의 말에 보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보윤이 자리에 앉자, 호식이 입을 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도윤이한테 부탁받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부탁요?”

보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예. 그러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보윤이 이내 굳은 얼굴로 말을 잇는다.

“사건을 이전(移轉)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사건 이전이라니, 그게 무슨… 혹시, 명성그룹 사건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보윤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호식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순간.

“자세한 건, 내가 얘기하도록 하지.”

출입문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보윤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총장님……?”

지금 막 들어서는 중년 사내를 발견한 보윤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불과 수 시간 전에, 정식으로 검찰총장직에 오른 정승만이었다.

“제가 같이 모셨습니다.”

호식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시간이 저녁 8시. 7시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자신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두 분에게 전화를 해 달라, 부탁했거든요.”

“강… 검사가요?”

“예. 총장님께 말씀드리는 게 더 급했기 때문에, 박 검사님에게는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했지만…….”

“이후부터는, 내가 설명하겠네.”

가만히 있던 정승만이 입을 열었다.

정승만이 보윤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아무래도, 도윤이 신상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

흡 하고 눈을 떤 보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제라니, 그게 무슨…….”

“명성에서 손을 쓴 것 같다, 이 말이야.”

보윤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자,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도저히, 무슨 말씀이신지……!”

“정식 취임식 전에, 부탁이 있었네. 만약 취임식이 끝나고, 이 시간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내 권한으로 사건을 너에게 이전해 달라고 말이야.”

“그, 그게 무슨…….”

보윤이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보윤을 바라보며, 호식이 말한다.

“그…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도윤이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거든요.”

“능력요……?”

“음… 이거 참 말씀드리기 애매한데, 신기라고 해야 하나? 저도 처음엔 장난이라든가, 감이 뛰어난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녀석이 예측한 상황들. 거짓말처럼 모두 들어맞았었거든요.”

“…….”

“아니면 아닌 대로 그뿐이라는 식으로 얘기해서, 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걸로 장난칠 녀석은 아니니까요.”

가만히 듣고 있던 보윤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만약, 정말로 명성에서 움직인 것이라면,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을 거야. 용역 깡패는 기본이고, 음지에서 마약 밀수에, 인신매매, 납치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일삼는 놈들이니까.”

정승만의 말이 이어질수록, 보윤이 잘게 몸을 떨었다.

“비상 상황이니만큼, 가용 인원은 모두 소집해 놓은 상태야. 보윤이 너도, 준비하고 있어.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평소 악감정은 일단…….”

“대기는 무슨 대기예요!? 사람 목숨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

보윤이 빼액 하고 고함을 질렀다.

순간 멍한 표정을 짓는 정승만과 호식, 두 사람을 보며 보윤이 흥분한 목소리로 고함친다.

“당장 찾으러 가요! 지금 그따위 사건 처리가 우선순위가 아니잖아요!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죠!”

이내 정신을 차린 정승만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별로 좋은 수는 아닌 것 같다.”

“뭐라구요!? 그게 무슨…….”

“도윤이가 얼마나 생각이 깊은 놈인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아마, 스스로 미끼가 될 생각이겠지?”

“미끼? 미끼라고 하셨어요, 지금?”

보윤이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현장 급습만큼, 완벽한 증거도 없지 않냐? 아마도, 빼도 박도 못할 결정적인 순간에, 놈들을 현장에서 일망타진할 생각이겠지.”

“그 전에 그가 잘못되면 어쩌려구요!?”

보윤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그런 보윤을 바라보며, 정승만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도윤이가 항상 하는 말이야.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명성이라는 괴물을 완벽하게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그걸 지금 말이라고……!”

“믿으세요.”

순간 옆에서 들려오는 호식의 목소리에, 보윤이 멈칫한다.

“…뭐라구요?”

“그 녀석을, 믿으세요. 단 한 번도, 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녀석이에요. 어떤 불가능한 일들도 모두 해결해 냈죠. 도윤이라면, 이번에도 잘 해낼 거예요.”

“…….”

이내 보윤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보윤을 보며, 호식이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아마도, 조치라면 모두 다 해 놓았을 거예요. 우리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도윤이를 서포트하면 충분해요.”

“…….”

보윤이 말없이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알고 있다.

도윤에 대한 이들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

그가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하지만 그런 사실들을 알면서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감정은 무시할 수 없었다.

도윤이 자신에게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이 보윤은 못내 섭섭했다.

자신이 그에게 고작 이 정도 존재밖에 되지 않았나, 자괴감마저 들 정도였다.

“사건 서류들… 넘겨주세요.”

“…응?”

보윤의 작은 중얼거림에, 정승만이 멍하니 반문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서포트를 해야죠. 주세요, 당장.”

“그, 그래…….”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정승만을 바라보는 보윤의 두 눈빛은,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 * *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오남규가 미칠 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이런 거다.

이런 반응을 기대했다.

놈의 처절한 비명이 고막을 때려 댈 때마다,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짜릿한 쾌감에 온몸이 저릴 지경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그래! 더 처절하게 울부짖어라. 버러지처럼!”

오남규의 얼굴이 광기로 물들었다.

한참을 울부짖던 도윤이, 거짓말처럼 뚝 하고 비명을 멈추고,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응? 벌써 그러면 재미없는데?”

오남규가 천천히, 도윤에게로 다가갔다.

“이봐. 더 울부짖어. 그래야 내가 부수는 맛이 나지 않겠어?”

오남규가 도윤의 뺨을 톡, 톡 두드리며 말했다.

“아까의 그 패기는 어디로 갔어? 날 잡아넣고, 명성을 무너뜨려야지. 응?”

한껏 비아냥거린 오남규가 비릿한 미소를 입에 물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나 그렇게 정 없는 사람 아니야. 너도 네 부모와 같은 곳에, 사이좋게 보내 주도록 할 테니까.”

“…….”

“똑같은 교통사고는 재미없지만… 사고로 위장하기에는, 그것만큼 좋은 것도 또 없거든.”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린 오남규가 몸을 바로 세웠다.

“끙차…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벌써 삭신이…….”

쾅, 쾅, 쾅!

“오남규! 문 열어!”

순간 지하실의 두꺼운 출입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오남규가 멈칫했다.

분명, 오남규의 기억 속에도 있는 목소리.

“…형님?”

“더 늦기 전에, 빨리 문 열어! 조금 있으면, 아버지도 직접 이곳에 오실 거다!”

‘아버지’라는 말에 오남규가 움찔했다.

“아버지가, 이곳에 오신다라…….”

작게 되뇌는 오남규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주인공은 모두 모이겠군. 딱 좋아. 미리, 이곳의 위치를 언질 준 보람이 있어.”

“…….”

“자신의 숙적이나 다름없는 니가, 내 앞에 이 모양 이 꼴로 있는 모습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상상만 해도 짜릿한지, 오남규가 큭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좋냐?”

“…뭐?”

순간 고개를 들어 올려 중얼거리는 도윤을 보며, 오남규가 반문했다.

사지가 꽁꽁 묶여 있음에도, 눈빛만은 어느 때보다 차갑게 빛나고 있는 도윤이 말을 잇는다.

“고맙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사라지게 해 줘서…….”

말을 잇던 도윤이 괴로운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진실을 마주한 지금.

도윤의 속은 시꺼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 무슨 악연의 고리란 말인가?

원래의 생이었다면, 도윤을 제외한 일가족이 모두, 명성이라는 괴물에게 잡아먹힌 셈이지 않은가?

가까스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도윤이 씹어 내뱉듯 중얼거린다.

“너도, 니 가족도. 니가 그토록 갈망하던 명성도… 내가 모조리, 이 손으로 쳐부숴 줄게.”

“뭐? 크하하하하하하하!”

오남규가 진심으로 즐거운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희번득 뜬 오남규가 말한다.

“그래. 그럴 수 있다면 말이지. 뭐,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

“이제 너는, 우리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할 거야. 귀족들에게 반기를 든 평민의 허망한 최후라고나 할까.”

“…….”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다. 나름대로, 옛날 생각도 나고 좋았어.”

“오남규! 이 문 열어!”

오창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귀청을 때린다.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출입문을 향해 다가간 오남규가 뒤를 힐끗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이런 니 모습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오남규가 사뭇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문고리에 손을 올려놓는 순간.

“…나도, 즐거웠다.”

“…뭐?”

‘철컥’ 하고 출입문 잠금 해제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오남규가 멍하니 반문했다.

“최근에… 위성 산업이 발달하면서, 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수신해,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계산하는 특별한 위성항법시스템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도윤이 말을 잇고 있을 때.

벌컥 하고 출입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미 일면식 또한 충분히 있는 그 사람들을 보며, 도윤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전의 절망 어린 표정과는 대비되는, 시릴 정도로 차가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서글퍼 보이기도 하는, 그런 미소였다.

이미 모두 예상된 상황이었다.

‘예지의 대가’라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도윤만이 알 수 있는 상황.

대략적인 위치는 이 ‘시스템’으로 확인하고, 나머지는 스스로에게 미행을 붙인다.

“사람들은 그 시스템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무슨 개소리를…….”

인상을 찡그리며 반문하는 오남규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윤이 말을 잇는다.

“Global Positioning System(G.P.S).”

도윤이 말을 마치는 순간.

또다시 새까만 정장을 차려입은 일단의 무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영감님! 괜찮아!?”

오랜만에 들려오는 박판섭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리자, 도윤의 미소도 짙어졌다.

“뭐, 뭐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오남규를 보며.

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잇는다.

“이제 정말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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