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화
“아이돌로서는 물론, 프로듀서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셨잖아요.”
상담의의 말에 내내 머릿속으로 다음 스케줄을 가늠하던 정해원이 고개를 들었다.
“아, 못 들었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어요. 방금 한 말은, 음. 해원 씨는 아이돌로서는 물론이고 프로듀서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셨잖아요. 현재진행형이구요. 그런데 그 불안감은 어디서 기인한다고 생각하세요?”
상담은 계속해서 엇나가고 있었다.
내담자는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성공을 이룬 이 내담자의 속을 파악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스케줄이 밀려 있어, 상담의에게 주어진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다.
내담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불안하진 않아요. 그냥 바쁜 게 좋은 것뿐이지. 그냥 수면제만 처방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음. 평소에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바로 처방을 받으셨나 봐요?”
“아뇨. 많이 혼나고 나서 처방을 받았죠.”
그 후에도 그리 많은 정보를 받을 틈 없이, 내담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담의가 말했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시간 낭비일 뿐이에요.”
“음.”
“주변에서 많이 걱정하고 계세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정해원이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 걱정해서 아직까지도 제가 주기적으로 이러고 있는 거예요. 다들 지나치게 걱정한다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했고, 본인의 멘탈이 짱짱한 상태라는 걸 어떻게 믿게 하나 고민했다.
잠시 후 내담자가 상담의에게 물었다.
“이건 좀 이상한 질문이긴 한데.”
“뭔가요?”
“혹시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 질문에 상담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대답했다.
“아니요. 모든 감정은 변해요.”
“저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내담자가 선선히 웃었다. 그 웃음에는 누군가를 홀리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었으나, 저절로 인간적인 끌림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어릴 땐 아니었는데, 지금은 믿어요. 그게 제 삶에서는 엄청 중요한 변화거든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상담실을 나섰다.
은밀한 개인 스케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맞은편에 파파라치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도시의 한복판, 고개만 조금 돌리면 보이는 대형 광고판에서는 팬들이 사비로 건 콘서트 광고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딜 가나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누구나 그를 알았다.
* * *
나는 긴 꿈을 꾸었다. 이미 내 인생은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 추가로 남의 인생까지 망치는 그런 꿈.
꿈속에서 나는 내가 무대에 서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갈망을 모른 척했다. 한 번 나를 냉정하게 쫓아낸 무대에 다시 도전하는 게, 그때는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그런 주제에 또 완전히 연예계를 떠나는 일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연예계가 아닌 곳에서 새롭게 삶을 시작했다면 이렇게 망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꿈속에서 나는 엔터 회사를 세웠고, 거기서 성공시키지 못한, 스퀘어라는 걸그룹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물론 그 아이들까지 여러 해에 걸쳐 고생을 시키다가 과로로 사망했다.
어휴, 진짜.
꿈도 희망도 없는 꿈이었다. 이런 결말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두려움을 누르고 다시 한번 무대에 올랐을 것이다.
근데 그거…… 꿈이 맞나?
너무 생생해서 헷갈리는데.
“아아! 미운 사람!”
나는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에 겨우 그 악몽에서 벗어났다.
꿈이 너무 리얼했던 데다가 잠에서 깬 나는 만취해 있었기 때문에 어느 게 꿈이고 어느 게 현실인지 심하게 헷갈렸다.
지난 두 달 동안 낮술 밤술 하루 두 번씩 회식하고 술을 마셔 내 혈관에 피 대신 술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제대로 상황이 파악될 리 없다.
술과 잠기운 때문에 고개를 못 들고 있는데, 내가 계속 자는 줄 알았는지 옆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들렸다.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 재작년에 난리 났었던 그 서바이벌?”
“그래, 거기. 거기서 아주 인성 쓰레기로 시청자들한테 단단히 찍혀서 악플을 긁어모았다더라고. 곽 실장이 그때 그쪽에서 일하고 있었잖아. 그 죄책감 때문에 꽂아준 거지, 뭐.”
“아. 어쩐지, 웬 스무 살짜리가…….”
“악플 때문에 고등학교 자퇴하고 2년 동안 방에 처박혀 있던 놈을 바로 입대시키면 사고 날 것 같으니까, 일단 여기서 사람 좀 만들어 보려는 거지.”
“정태도 대단하네. 난 스무 살짜리 방구석 히키한테 절대 운전대 못 맡길 텐데.”
“워낙 사람이 좋잖아.”
나는 어느 정도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 고개를 들었다. 이야, 내 삶을 기가 막히게 요약해 주시는데……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허허.
그나저나 진짜 내 연예인은 2년 동안 히키였던 스무 살짜리에게 어떻게 운전대를 맡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이 좋다 못해 술을 너무 마셔서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아무튼 꿈이 너무 선명해서 아직도 현실이 분간되지 않는다. 꿈이라기엔 너무나 선명하고, 무엇보다 디테일했다. 내가 그 정도로 창의력이 있거나, 똑똑한 사람은 아니다 보니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진짜 뭐…… 예지몽 같은 건가?
아니, 잠깐만.
그럼 내 인생 망하는 걸 스포 당한 건가?
내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져 가고 있을 때, 내 꿈속에서 내가 죽기 5년 전,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부정태가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쳤다.
“원샷을 못 하면 장가를 못 가요, 아아! 미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