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화
저기서 저렇게 만취해 노래 중인 부정태는 내 긴 꿈속에서, 지금부터 딱 10년 뒤 마흔한 살에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정태가 죽었다는 소식에 내가 느낀 충격과 슬픔이 너무 생생해서, 나는 순간적으로는 죽은 사람이 왜 여기 있나에 놀라고 있었다.
그 꿈속에서 부정태는 마지막까지 내가 키운 아이돌 멤버들을 어떻게 한번 꽂아줘 보려고 그렇게 애를 썼더랬다.
“정태 형…….”
개꿈인지 모르겠지만, 방금 너무 선명한 꿈을 꾸고 나니까 부정태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났다.
술자리에 같이 있던 다른 스태프가 술잔을 앞에 놓고 울상이었다.
부정태는 내가 깬 걸 알고는 눈을 찡긋거리며 한 번 더 열창했다.
“원샷을 못 하면 장가를 못 가요, 아아! 미운 사람!”
원래대로라면 이 파트에서 내가 한 번 더 ‘아아! 미운 사람!’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 소파에 앉은 스태프를 넘어가서 부정태를 두 팔로 와락 끌어안았다. 이 돈 들여 찌운 말랑말랑한 살을 보니 정태 형이 분명하다. 부정태가 껄껄 웃었다.
“야, 너무 들러붙지 마. 너 너무 이쁘게 생겨서 기분이 이상해.”
“형, 술 좀 그만 먹어요. 그러다 일찍 죽어요…….”
“뭐 인마?”
부정태는 이런 걸로 화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술을 워낙 먹어서 두 달 사이에도 이미 볼 꼴 못 볼 꼴 다 봤고, 그러므로 술자리에서 한 실수는 술자리에서 잊는다. 오히려 술자리에서 실수하면 놀릴 거리 생겼다고 더 껄껄거리고 좋아하는 게 부정태였다.
부정태가 다시 술잔을 들려고 해서 내가 손으로 퍽 쳐버렸다. 결국 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지만 나는 부정태가 오래 사는 게 더 중요했다. 개꿈이라고 해도 기분이 별로 좋진 않으니까.
게다가 꿈이 마치 실제로 인생을 살고 온 것 같을 정도로 생생했기 때문에, 나는 잠깐 사이에 훨씬 사회성이 나아지기까지 했다.
“형 진짜 오래오래 살아야 돼요. 저 형 덕에 겨우 사람 구실 하고 있는데.”
“아, 이 새끼 청승 떠는 술버릇이 있네.”
“방금 형 죽는 꿈꿨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러는구만?”
부정태는 말로는 툴툴거려도 술에 취해서 이미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넌 인마, 얼마나 봤다고 형을 이렇게 좋아하냐. 그렇게 사람이 그리우면 진작 방에서 나오지.”
원래 부정태는 취하면 잘 울고, 그러면 다들 술맛이 떨어져 술자리가 끝이 났다.
대리를 불러서 부정태를 먼저 집에 보내고, 더 먹겠다고 진상 부리는 스타일리스트 솜이까지 택시 태워 집에 보냈다.
그 후 나는 무심코 꿈속의 내 집이던 반지하연습실로 향했다.
이름 센스 없는 내가 러브하우스로 명명한 우리 연습실. 러브하우스에 퀸비에 팀 이름은 처음에 멤버가 네 명이라 스퀘어로 지었는데, 나중에 한 명 더 영입해서 다섯 명이 되었다. 이제 어쩔 거냐며 멤버들은 놀렸지만 비난하지는 않았다.
연습실 앞에 와서 비밀번호를 눌렀는데 틀렸다. 그래서 두 번 더 했는데도 틀려서 30분 동안 잠금이 걸렸다.
“아, 맞다. 다 꿈이지.”
나는 중얼거리며 문 앞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눈을 껌뻑거리며 문을 다시 올려다봤다.
잠깐만.
그게 그냥 꿈이면 왜 여기 연습실이 진짜로 있지?
* * *
“학생! 이러다 죽겄어!”
학생이라뇨, 저 이제 성인…….
“눈 좀 떠봐!”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열 시였고, 내 앞에는 아주머니 두 분과 아저씨 한 분이 서 있었다. 내가 눈곱 붙은 눈을 억지로 뜨자 아주머니가 어깨를 찰싹찰싹 때렸다.
“아휴, 미쳤어, 미쳤어! 이 추운 날 객사하려고 환장했어!”
“학생이 벌써 이렇게 취해 다녀서 어떡해? 부모님 어디 계셔?”
잔소리를 끝까지 들을 정신도 없이 숙취가 올라와 나는 보이는 계단을 정신없이 달려 올라갔다. 그리고 벽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다가 반지하연습실 창문 속에서 비웃으며 날 보는 어린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나저나 실내가 이상하게.
“……꿈이랑 똑같이 생겼네.”
그뿐 아니라 몸을 일으켜 보니 골목도 익숙했다. 꿈이 현실의 반영이라면 내가 여기 와본 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억이 없다.
혼란스러워하다가 주머니에서 계속 울리던 핸드폰을 꺼냈다. 어머니였다.
-해원이 너 어디야? 어딘데 정태 씨가 전화가 안 된다고 해!
“어, 나…… 술 먹고 길에서 잠들었어.”
거짓말했어야 했는데 비몽사몽 해서 솔직히 말해버렸다.
-아이고, 내가 못 살아. 얼마나 마시면 길에서 잠이 들어!
“엄마, 근데…….”
-내가 언제 너보고 돈 벌래, 대학을 가래?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때가 차라리 덜 속 썩었다, 이놈아.
“나 혹시 이 동네 살았었나? 창천동. 내가 여기 왜 왔지…….”
-너 그러다 젊은 나이에 알코올성 치매 온다. 엄마가 알타리인가, 그 방송에서 보니까…….
엄마 잔소리도 오랜만에 듣는다. 잔소리를 할 수 있다는 건 그래도 여유가 좀 생겼다는 뜻 같아서 기분이 나아졌다.
오디션 프로그램,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에 참가한 이후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나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아마 그냥 조용히 가슴 아파하며 많이 우셨던 것 같다.
그러다 열아홉 살이 끝나가는 수능철 즈음, ‘국선아’에 관련자 중 하나로 죄책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던, 현재 박종렬 엔터의 만능 곽 실장으로 불리는 곽윤용 실장이 연락을 했다. 면허만 빨리 따서 로드 일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일하다가 입대를 해도 제대 후에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런 기회가 생겼는데도 방에서 안 나가려는 나에게 부모님은 모질게 대하지 못하셨지만, 나와 열 살 차이가 나는 누나는 달랐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살고 있던 영국에서 한국으로 날아와 방문 손잡이를 뜯어버리고 날 질질 끌고 나와 운전부터 가르쳤다.
역시 부모님과 누나는 별개의 역할을 하는 존재인 것 같다.
잔소리만 듣고 전화를 끊은 후, 술부터 깨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반지하 계단에서 도복 입은 여자애 하나가 튀어나왔다.
“여기서 자면 안 되는데!”
꿈속에서 딸내미 다섯 명의 성화에 등골이 휜 나는 습관적으로 움츠러들며 대답했다.
“어어, 앞으로 안 그럴게. 미안, 미안.”
긴 꿈 때문에 갑자기 확 나이가 든 기분이 들었다. 꼬마들이 다 자식 같다.
내가 얼떨떨해서 고개를 흔드는데 반지하에서 아이들이 몽땅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괴로운데 아이들 무리까지 달려드니 세상이 들썩거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괴로워하며 물었다.
“미안한데 너네 물 좀 있니.”
“없어요! 아, 있다.”
그러더니 아이 하나가 도장으로 달려들어 가서 일회용 종이컵을 두 손으로 들고 돌아왔다. 그 안에 물이 딱 한 모금 들어 있었지만 그 성의가 기특해 받아 마셨다.
“고마워. 근데 너네 왜 다 여기 나와 있어. 다시 들어가.”
“쉬는 시간이에요!”
“사범님이 쉬래요!”
사범님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묘했다. 그걸 꿈에서 본 기억이 났다.
태권도장을 닫고, 내가 연습실로 세 들어 살고 있는데도 매해 술만 마시면 앞에 찾아와 통곡을 해 우리 애들을 겁먹게 하던 관장이 있었다.
뭐 학부모 여럿에게 양다리 걸치다가 걸렸던 것 같은데……. 뭐 꿈은 꿈이니까 그렇지는 않겠지.
그냥 언젠가 이 골목을 지나간 적이 있어서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꿈은 현실의 반영이니까.
나는 내 꼴이 웃겨서인지 같이 놀고 싶어 하던 아이들의 눈빛을 이겨내고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부정태의 스케줄은 두 시부터 시작되는 먹방 방송뿐이었다. 카니발이 회사에 있기 때문에 일단은 회사로 가야 했다.
원치 않은 비박을 한 덕에 다행히 빨리 깨서 시간 여유가 있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담배가 남아 있어서 꺼내고 막 불을 붙였는데 전화가 왔다. 날 꽂아준 경영 관리실 곽윤용 실장이었다.
-해원이 어디냐?
“어, 혀…… 실장님.”
술이 깬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꿈속에서 내적 친밀감이 생겨서 형이라고 할 뻔했다. 나에 대한 동정심과 별개로 입사 두 달 된 놈이 형이라고 하면 욕으로 배를 채우게 해줄 사람이었다.
“저 지금 가고 있습니다.”
-그래? 부정태가 너 죽었다던데.
“아, 죽었는데요, 길에서 자다가 추워서 일찍 깼어요.”
내 말에 곽 실장이 으하하하 하고 웃는다. 박종렬 엔터 사람들은 술에 참 관대하다.
-뭐야, 방구석에서 안 나온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말만 잘하네. 정태도 생각보다 너 이뻐하더라.
곽 실장이 아무리 회사 실세라고 해도, 부정태가 떠맡겠다고 해주지 않았으면 입사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사람 좋은 부정태는 날 정말 편하게 대해줬다.
두 달 내내 취해 있어서 불편할 틈도 없었지만…….
아무튼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이 방영 중일 때는 세상 모든 어른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모는 것 같았는데, 방구석을 나와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곽 실장이 말했다.
-아무튼 너 정태랑 계속…… 아니다. 1팀이 급해, 지금.
“1팀이요?”
엔터계는 사실 대부분이 좋소다. 규모에 상관없이 운영이. 진짜 오래되고 탄탄한 몇 곳 빼고는 뭐……. 아니, 탄탄한 엔터 회사라는 게 있긴 한가. 환상 속의 존재 아냐?
곽 실장은 부정태랑 계속 다니라고 말하려다가, 갑자기 내 소속을 막 바꿨다. 꿈속에서도 곽 실장이 나한테 1팀으로 가보겠냐는 제안을 했던 것 같긴 하다. 그때 나는 가면 나 죽는다고 읍소했었지만.
“네.”
-네?
박종렬 엔터테인먼트 엔터 사업 1팀은 트로트 가수 박희영만을 위한 전담팀이었다. 곽 실장이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미쳤냐? 정태랑 다니면 계속 꿀 빨 텐데. 희영이랑 다니면 너 세 달 만에 회사 나간다에 내 손모가지 건다.
“아, 실장님이 가라매요.”
-가라매요? 이야, 갓 성인 된 게 맞먹자고 하네.
아무튼 곽 실장 말이 맞다. 부정태와 다니면 한 달 스케줄이 열서너 개 정도 된다. 적당히 바쁘고, 맛집 다니는 스케줄이 많아서 부정태가 밥 먹는 동안 나는 폰게임 하며 노가리나 까다가, 방송 끝나면 술집 가서 필름 끊기고 다음 날이 되면 된다.
그러나 박희영의 스케줄은 달랐다.
한 달 스케줄이 마흔 개씩 잡히는 데다가 전국을 돌아다녀야 한다. 매니저도 부정태에게는 나 하나지만 박희영은 세 명이 돌아가며 매달려도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걸 알지만 나는 박희영의 매니저가 될 마음을 먹었다.
악몽을 꾸고 났더니 정신이 번쩍 든다. 꿈속에서 본 내가 망쳐 놓은 걸그룹, 스퀘어가 자꾸만 생각났다.
회피만 하며 살다가는 나중에 내 인생을 망치는 것도 모자라 남의 인생도 망쳐 놓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