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화 (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화

-내가 너 데려왔다고 욕을 얼마나 먹었는데. 네가 1팀 가주면 바로 명예회복 하겠다.

곽 실장은 내가 1팀으로 순순히 가겠다고 할지 몰랐는지 무지하게 신기해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1팀이 그만큼 험한 곳인 모양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부정태를 픽업하기 위해 카니발에 올랐다.

그리고 출발하려는 찰나, 갑자기 눈앞에 이상한 룰렛이 보였다.

“……아직도 술이 덜 깼다고?”

내가 손으로 뻑뻑 얼굴을 문대고 다시 봤지만 룰렛은 그대로였다. 손을 뻗어 룰렛에 달린 스위치를 잡아보니 실제로 손에 잡혔다.

[브론즈티켓을 획득했습니다.]

[×3]

[FF~C급 포션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어머니가 말씀하신 알코올성 치매 얘기가 떠올랐다.

꿈이나 술 중 하나가 덜 깬 게 분명했다. 로또 되는 걸 너무 지겹게 바랐더니 헛것이 보이는 모양이다.

이마를 두들겨도 술이 안 깬다. 결국 나는 저 망할 룰렛을 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럼 저 룰렛이 꽝이라고 비웃으며 해결이 될지도 모르지.

버튼을 세 번 연달아 누르니 경고창이 떴다.

[티켓은 한 번에 한 장씩 증정됩니다. 기다려 주세요.]

꿈 주제에 디테일하게 까다롭다고 생각하며 첫 번째 돌아가는 룰렛을 기다렸다.

잠시 후 바늘이 FF급에서 멈췄다.

[FF급 체력 상승 포션]

[30초간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됩니다.]

두 번째는 F급이었다.

[F급 체력 상승 포션]

[1분간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됩니다.]

뭐 이렇게 꿈도 희망도 없나, 생각하며 세 번째로 버튼을 눌렀다.

[C급 피로회복 포션]

[현재 상태의 피로가 10% 줄어듭니다.]

그러더니 연달아 세 개의 작은 포션이 내 손에 떨어졌다.

나는 연두색 약물 두 개와 녹색 가까운 약물 한 개를 번갈아 보았다.

미쳤다고 생각하고 마셔보기로 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얄팍한 인간이라 실험용은 가장 낮은 FF급 병을 땄다.

물약을 목구멍에 털어 넣고 거의 곧바로였다.

“뭐, 뭐야!”

숙취가 사라졌다.

“……X발, 안 먹고 말지.”

딱 30초 동안만.

FF급 포션은 FF급이라고 볼 수 없는 효능을 가진 동시에 FF급도 아까운 지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딱 30초가 지나자 바로 지옥의 숙취가 시작돼 나는 두 번째 병도 뜯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마시고 나면 병은 5분 정도 후에 스르륵 사라졌다. 재활용하려나 보다.

다시 숙취가 가시자 나의 약물중독이 시작되었다.

“어디서 얻는 거야, 티켓.”

나는 지금까지 약을 빠는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정태는 늘 한우를 먹을 때마다 이것이 국가가 인정하는 유일한 마약이라고 말했는데, 나에게도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인간이 약물중독에 빠지는지 알 것 같았다.

포션 효과가 끝나자 부정태의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다시 구토가 올라왔다.

내가 핸들에 머리를 처박고 있을 때 부정태 역시 괴로워하며 뒤에 탔다.

“너 비박 했다며?”

“그때 얼어 죽을 걸 그랬어요. 아, 숙취 너무 심한데.”

“그래도 장유유서인데 먼저 뒤질 생각을 하냐, 너는.”

부정태가 말하더니 훌러덩 드러누웠다.

내가 오는 길에 사 온 숙취 해소용 크루아상과 크림빵, 그리고 제로 콜라를 내밀자 부정태가 안 받았다.

“이거 뭐야.”

“제로 콜라요.”

“뭐? 제로?”

“그냥 드세요. 별로 뭐 차이도 없구만.”

“너 어제부터 진짜 왜 그러냐?”

“형 죽는 꿈이 진짜 리얼했단 말이에요.”

내가 다시 내밀며 말하자 부정태가 솥뚜껑만 한 손으로 제로 콜라 뚜껑을 따며 말했다.

“너도 뭐 알타리 보냐? 우리 아부지 맨날 그거 보고 인스턴트 끊으라고 하셔서 미치겠다.”

“어머니가 그거 보시더니 저보고 알코올성 치매래요.”

“어! 야, 우리 아부지랑 같은 편 보셨나 보다.”

부정태와 낄낄거리다가 내가 겨우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근데, 곽 실장님이 저 이제 1팀 가래요.”

“1팀? 야, 내가 말해줄게. 형이랑 계속 다녀.”

“곽 실장님 명예회복 해드려야죠. 입은 은혜가 있는데.”

“그게 무슨 은혜냐, 윤용이 형이 먼저 국선아에서 뭐같이 굴었더만……. 아, 두 달 동안 키워놨더니 홀랑 빼가네.”

두 달 본 나도 저렇게 1팀으로 간다니 아쉬워하는 사람이 부정태다. 어제 다른 스태프들의 말처럼, 이제 막 면허 딴 히키코모리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호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꿈속 부정태의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

다행히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오늘 하루 제로 콜라를 먹인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 * *

박희영. 행사의 여왕.

스물세 살에 데뷔해 여섯 개의 히트곡, 그중에서도 두 개의 메가히트곡을 가진 13년 차 트로트 가수. 방송에는 부정태가 훨씬 얼굴을 많이 비추지만 회사의 기둥은 이견 없이 박희영이었다.

그리고 나는 박희영의 로드 일을 시작하고 28시간 만에, 무언가를 배우려면 차라리 부정태와 다니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를 했다.

나는 박희영 팀에 투입된 직후부터 28시간 동안 운전만 하는 중이었다. 중간에 행사 시간 4시간 정도 잔 것을 제외하곤 계속 운전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무데뽀로 다닌 1팀에 사고가 없었던 게 기적이다.

28시간 내내 박희영과 대화할 일은 거의 없었다. 박희영은 차를 타면 곧바로 잤으니까.

행사 장소에 도착해 나는 달려가서 양산을 들고 문을 열었다. 박희영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야, 너무 높이 들었잖아.”

“아, 죄송합니다, 누님.”

“언제 봤다고 누님이야?”

박희영이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 눈으로 쏘아봤다. 그렇다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씨를 붙이는 건 버르장머리 없고, 가수님은 남 같은데…….

곧 박희영은 먼저 건물로 들어가고 뒤따라온 스타일리스트가 말했다.

“희영 언니 원래 저런 사람 아닌데, 이게 인간성 남겨 놓고 할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잖아요. 67시간째 계속 이동하고 있으니까.”

그 말이 맞았다. 지금 스태프도 두 팀으로 나누어서 투입되고 있었다.

신기한 건 박희영이 무대만큼은 67시간 전과 같은 퀄리티로 하고 있다는 거다. 그만큼 그녀는 대단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스타일리스트가 말을 이었다.

“스타벅스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사다주세요. 밴티로.”

“또요? 아까도 드셨잖아요.”

행사장에서 차로 20분 떨어져 있는 스타벅스로 가서 얼음 따로, 커피 따로 받아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 포션이 자꾸 신경 쓰였다.

“……부어?”

계속 생각을 했지만 남의 커피에 약물을 붓는 것에 뭔가 죄책감이 느껴졌다.

결국 나는 체념했다. 우선은 이게 제대로 된 성분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 * *

이건 절대 자랑이 아닌데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 국선아의 시청률을 캐리한 건 나다. 인성 쓰레기로.

그때 남들 평생 먹어도 다 못 먹을 만한 양의 욕을 먹었기 때문에, 나는 남이 날 싫어하는 걸 최악의 공포로 여기는 인간이 됐다.

그런데 이번엔 첫날부터 박희영에게 미운털이 박힌 것 같다.

그 이상은 박희영과 대화 한 번 못 해보고 나서야 드디어 76시간 연속 스케줄을 마감했다.

의자를 완전히 젖히고 누운 박희영이 스태프들을 보며 말했다.

“술 한잔할 사람 이따가 말해.”

그러더니 박희영이 잠들었다.

그 순간 스태프들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다들 혹시나 박희영이 깰까 봐 단톡방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난 진짜 안 돼. 76시간 만에 집에 가는데 또 취해서 들어가면 이혼당해]

[전 지난번에 두 번 연속 마셨으니까 이번엔 빠집니다.]

[공평하게 사다리 하시죠?]

박희영은 술을 마시면 분명 만취할 것이고, 그럼 전 남친 욕을 할 것이고, 그걸 케어하는 건 지옥이라는 모양이다.

나는 고민 없이 자원했다.

[그럼 제가 같이 얘기해 드리고 들어갈게요.]

내가 단톡방에 적자마자 스태프들이 동시에 날 보았다.

“지, 진짜? 괜찮겠어? 운전 제일 많이 했잖아.”

“전 중간에 합류해서 괜찮아요.”

“이야, 어린 게 좋긴 좋다.”

사실 안 좋고 안 괜찮다.

솔직히 딱 죽기 직전이었지만 나에게는 실험해 볼 만한 포션이 있었다.

* * *

“그래서 그 자식이……. 나오라고 해야겠다.”

전 남친 욕을 하던 박희영이 갑자기 그 전 남친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선생님! 진정하세요!”

“누가 선생님이야! 누나라고 해!”

“넵.”

드디어 호칭 정리가 됐다.

박희영은 스태프들이 슬금슬금 피한 게 이해가 될 정도로 술버릇이 나빴다.

“전화할 거야! 당장!”

“안 돼요, 누나! 내일 후회하신다고요!”

“할 거야! 불러내, 송강원!”

나는 필사적으로 핸드폰을 뺏었다. 그리고 몇 대를 얻어맞은 후 돌아섰다.

눈앞이 핑 돌아서 쓰러질 것 같아 바로 포션을 마셨을 때였다.

체력 10% 회복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여분 체력이 0에 수렴하다가, 내 체력의 10%가 다시 차올랐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박희영의 힘을 제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 무지막지해졌다고는 해도 박희영은 일반 성인 여자들보다도 훨씬 마르고 키도 작았다.

박희영의 두 팔을 잡아서 내리고 눈을 마주치자 박희영이 울상이 되어 날 보았다.

“뭐 인마, 뭐.”

“이제 집에 가죠? 뭐 하러 전 남친 생각해 주는 데 그렇게 시간을 써요.”

“그건…… 그렇긴 한데! 그래도!”

“가서 자요, 누나. 내일 피곤해요.”

달랠 체력이 생겼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나도 같이 짜증 낼 땐 더더더 액셀러레이터를 밟던 박희영의 분노가 달래는 목소리에 풍선에 바람 빠지듯 가라앉았다.

박희영은 그때부터 엉엉 울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1팀 사람들은 다 박희영을 좋아했다. 원래는 부정태만큼이나 인간적이고 착한 사람이라니까. 저 바쁜 사람이 스태프들 명절마다 꼬박꼬박 챙기는 것만 봐도 괜찮은 사람 아닌가.

76시간 연속 이동 스케줄로 성격을 버리지 않는 인간이면 기계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내가 체력이 생기니 그런 후한 평가가 나왔다.

나는 인사불성인 박희영을 업어다가 부모님 계시는 그녀의 집에 눕혀주고 나왔다.

택시를 타고 기절하듯 집에 들어와 곧장 침대에 누웠을 때,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업적 달성]

[첫 번째 동료 가수]

[브론즈티켓을 획득했습니다.]

[×5]

[FF~C급 포션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거 진짜 주는 거냐?”

나는 남은 체력을 다 썼기 때문에 뭐 하나라도 걸리면 좋을 것 같았다. ‘동료 가수’라는 부분이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아무튼 누워서 버튼을 누르니 룰렛이 돌아가며 시스템 창이 떴다.

[신의 포션은 인간의 성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복용해도 중독되지 않습니다.]

내가 의심하는 걸 알았나 보다.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아니면 그냥 모든 저런 이상한 창이 뜨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공지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저게 왜 뜨기 시작한 건진 모르겠지만.

“근데 룰렛을 다섯 번이나 돌려야 되냐.”

[첫 실버티켓 달성 시부터는 모든 티켓을 한 번에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너 내 말 들리지?”

내가 손으로 휙휙 상태창을 만져봤지만 뭐가 잡히지는 않았다.

아무튼 내가 확인도 안 하고 네 번 룰렛을 돌리고 나니 포션 네 개가 나왔다.

FF급 두 개, E급 하나, D급 하나였다. E급은 3%, D급은 5% 회복 포션이었다.

나는 일단 네 병을 다 마셔버리고, 마지막 한 번을 돌렸다.

그때 번쩍거리는 티켓이 툭 떨어졌다.

[첫 번째 실버티켓 달성]

[지금부터 모든 티켓을 한 번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실버티켓을 획득했습니다.]

[×1]

[D~B급 포션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어쩐지 쓰레기만 네 개 주더라!”

나는 약물중독과 함께 도박중독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실버티켓을 돌리면 골드티켓이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헛된 희망이 생겼지만 이렇게 물욕이 넘칠 때는 보통 룰렛이 실패하니, 나는 그냥 티켓을 지갑에 꽂아 두었다.

체력이 조금이라도 회복됐을 때,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옥탑방 문을 열고 나와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불만 붙이면 누가 불러대서 버린 게 몇 개인지 모르겠다. 알딸딸한 상태로 76시간 만에 피우는 담배가 짜릿했다.

나는 급하게 담배를 빨며 인터넷에서 찾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 저 클럽에서 외국인이 준 담배를 피웠는데 혹시 마약일까 봐 걱정돼서요.”

아무리 그래도 남에게 먹이기 전에 약물 검사부터 해봐야겠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