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4화
[신의 포션은 인간의 성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복용해도 중독되지 않습니다.]
마약 검사를 하러 오는 내내 저 상태창이 무한 반복으로 떴다. 더 의심스럽게.
다행히도 검사 결과 내 몸에 마약류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내 나름으로도 엄청나게 긴장했다. 잘못 걸리면 갑자기 마약사범 되는 거 아닌가.
혹시 진짜 마약류가 검출돼서 박희영에게도 피해가 갈까 봐 걱정이 됐다. 내 가수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니 나도 매니저 생활이 은근 몸에 익었나 보다. 허허.
보기 드물게 정의롭고 준법정신 투철한 청년이라는 칭찬을 있는 대로 듣고 나서 나는 내 자취방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내가 지내는 곳은 3층 건물의 옥탑방이고, 1층에는 빵집이 있었다. 새벽이면 솔솔 빵 냄새가 올라왔는데 나는 그것도 나름 이 집의 복지라고 생각한다.
그 상태로 지갑에서 실버티켓을 꺼냈다.
“근데 룰렛을 어떻게 켜지?”
내가 혼잣말하자 상태창이 들어왔다.
[‘룰렛’이라고 외치세요.]
그래서 내가 ‘룰렛’이라고 말하자 이전과 달리 은색의 룰렛이 나타났다.
[실버룰렛(생활)의 즉석 추첨이 시작됩니다.]
생활이라고 괄호에 적힌 걸 보니 룰렛이 색깔별로 다 종목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실버티켓을 넣고 룰렛을 돌렸다. 잠시 후 룰렛이 멈췄다.
[B급 진정 포션]
[불안증세를 10% 완화합니다.]
처음 받자마자는 체력상승이 더 좋지 않나 생각했다.
부정태는 원래 기사도 댓글도 없는 편이었고 악플이라고 해봤자 ‘그만 좀 처먹어라’ 정도라.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연예인에게 이만큼 필요한 포션도 없었다.
박희영 같은 천생 무대 체질도 갑작스러운 불안증세에 휩싸일 때가 있으니까.
거기다 연예인에게 쓸 것만 생각하다가, 내가 또 불안증세의 상징 같은 인간이란 걸 잊고 있었다.
나는 포션을 안주머니에 적당히 넣어 놓았다.
내 몇 시간 안 되는 휴식을 약물 검사에 쓰고 나니 바로 박희영을 데리러 가야 했다. 부정태 때와는 달리 팀으로 움직이니 단톡방에 쉼 없이 박희영의 스케줄 변동사항이며 픽업 관련된 이야기들이 주루룩 올라왔다.
아직 낯선 팀원들이라 일일이 답장하고 있는데 박희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어제 진상이었어?
“조금요. 왜요?”
-엄마가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고 등짝 때려.
“걱정하시는 정도는 아니었어요.”
-이따가 오면 김치 좀 가져가.
“진짜요? 드디어 라면과 김치를 같이 먹을 수 있겠네요.”
나는 예의상 말한 후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안에 아직도 부모님이 보내주신 김치와 부정태네 형수님이 만들어주신 열무김치가 들어 있었다.
이번 주는 김치찌개에 김치볶음밥에 열무김치 해서 먹어야지.
나는 철저한 식사 계획을 세운 후 냉장고 문을 닫았다.
* * *
포션을 계속 얻으려면 뭘 해야 할까를 어제 고민한 바로는 이렇다.
일단 내가 달성한 업적은 ‘첫 번째 동료 가수!’였다. 즉, 룰렛을 돌릴 수 있는 건 내 성장에 달린 모양이다.
혹시 나의 다른 성장도 도움이 되나, 해서 헬스장을 끊고 가서 운동도 해보고, 영어 단어도 읽어봤는데 이런 성장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냥 성장할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긴 한데…….
다행히 브론즈 룰렛은 심심하지 않게 나타났다. 특별한 무대 같은 경우에 나름의 이유를 붙여 나타났는데 룰렛 운이 더럽게 안 좋아 FF급이 대부분이고 C급이 딱 한 번 나왔었다. 나는 잠깐이라도 평화를 얻고 싶어 C급을 제외하면 나오는 족족 들이마셨다.
그게 꽤 도움이 돼서, 박희영은 내 체력에만큼은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도 박희영의 스케줄이 빡센 건 마찬가지라서 나는 어떻게든 졸음운전을 피하느라 이제는 술이 아닌 카페인에 절어 살았다. 20대 과로사는 탑티어 트로트 가수 매니저가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은 딸기 축제 축하 무대였다.
나는 딸기 축제에 가기 전부터 뭔가 내가 기억해야 할 게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깊이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박희영이 딸기 소주 한 병을 받아와서 나에게 건넸다.
“한 잔씩 마시고 올라가자.”
“넵.”
나는 얼른 상비하던 종이컵을 꺼내 소주를 잔마다 따라 우리 팀원들에게 돌렸다. 다 같이 위하여를 외치는 모습이 전광판에 잡히자 축제에 온 사람들이 환호했다.
박희영은 무대 아래서도 사람들 환호하게 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게 13년 차 가수의 연륜인가 보다.
박희영은 그녀의 메가히트곡 ‘사랑해, 당신’을 부르며 분위기를 압도했다.
난 매 스케줄마다 듣던 이 노래가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동시에 점점 더 무대를 보는 게 힘들어졌다. 애초에 무대에 서는 것이 내 꿈이었으니까.
운전을 해야 되는 나는 술잔을 내려놓고, 박희영을 찍기 위해 회사 카메라를 들고 무대 옆으로 나갔다.
거기서 사진을 찍던 나는 관객석에 서 있는 어린애를 발견하고 심장이 덜컥 멈추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 꿈속의 걸그룹, 다섯 명의 스퀘어의 멤버 중 하나이자 리더, 그리고 쓰레기 감독과의 술자리에 가겠다며 내 속을 썩이던 박유나가 거기 있었다.
아마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될 텐데, 내가 꿈에서 본 그 얼굴 그대로였다.
꿈속에서 박유나는 자기가 여기 이 동네 출신이며, 딸기 축제에서 박희영의 무대를 보고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었다.
박유나는 가방끈을 두 손으로 꽉 쥐고 완전히 넋 나간 표정으로 박희영을 보고 있었다.
어림짐작하긴 했지만 이제 확실해졌다. 그건 그냥 꿈이 아니라 예지몽이었다는 걸.
나는 다시 박희영의 무대를 보았다. 과연 박유나가 첫눈에 반해, 삼 년 뒤 무작정 서울로 와버리게 만들만한 무대였다. 나도 정말 많은 가수를 바로 옆에서 봐왔고, 나 스스로도 긴 시간 연습생 생활을 했지만 박희영 같은 사람은 못 봤으니까. 끼 있고, 무대를 즐기다 못해 무대 위에만 서면 미치는 사람.
아니다, 한 명 봤구나. 함께 국선아에 나왔던 민지호라는 녀석이…….
나는 꿈속의 인물이 현실에 있다는 것에는 비교적 덜 놀랐다. 룰렛도 보이는데, 예지몽 정도야 이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심장이 철렁한 건 그런 이유였다.
박유나는 박희영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저 어린애가 받을 상처가 미리부터 마음 아픈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각자가 타고난 끼가 다르니까.
그러나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을 보완해 줄 수 있는 한 가지. 아이돌이 큰 성공은 몰라도, 절대 실패는 하지 않을 기술이 있다.
프로듀싱.
멤버들이 가진 능력을 증폭시키는 곡을,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작곡 공부를 해야겠어.’
어릴 때 클래식 피아노를 오래 배웠기 때문에 작곡은 나에게 비교적 진입이 쉬운 분야였다.
프로그램은, 국선아 시절 대부분의 편곡을 해준 작곡가 형이 쓰던 작곡 프로그램이 로직이라, 로직을 익히기로 했다. 급하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테니까.
예전 같으면 자존심 때문에 생각도 하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 자존심이 나중에 내 목을 조른다는 걸 알고 나니, 그걸 꺾기가 쉬워졌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동전까지 긁고 있는 대로 할부를 나눠서 가장 싼 중고 장비를 맞췄다. 몇 달은 굶어야겠다.
* * *
그 이후에도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한 달 만에 나는 세 달이면 그만둘 거라는 곽 실장의 말을 떠올렸다. 날 과대평가한 것 같다.
아무튼 집에 오자마자 잠들었는데, 순간 섬광이 번쩍였다.
욕설을 내뱉으며 눈을 떠보니 상태창이 보였다.
[돌발! 위기를 극복하세요]
‘위기’라는 말을 보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상하게 목덜미가 싸해지는 것을 느끼며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켰다. 오늘은 나와 번갈아 가며 운전을 하는 장용규 차례였다.
쓰러지기 직전 필사적으로 핸드폰을 켜니 단톡방에 웬일로 안 본 글이 두 개밖에 없었다.
[희영 언니 지금 우리 집에 있어요. 저랑 기훈이랑 셋이 야식 먹고 자려고요. 용규 오빠, 그냥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와요. 9023*]
[용규, 열 시에 희영이 픽업해서 잘 다녀와]
그 후로 톡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오늘 진행되는 뮤직 페스티벌 스케줄까지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한 시간 뒤가 바로 카메라 리허설이니까 지금쯤이면 다들 도착해서 무대 점검하고, 메이크업하고 있겠지……. 그렇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불안해 박희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안 받아서 박희영이 자고 있는 집 주인 유선아, 그리고 정기훈에게 연달아 전화했다. 그리고 장용규에게도 전화하는데 역시 안 받았다.
“아, 미치겠네.”
나는 잠이 확 깨서 정신없이 집을 달려 나갔다. 가는 내내 끊임없이 전화하고 또 했는데 끝끝내 아무도 받질 않았다.
결국 나는 삼십 분 뒤 단톡방에서 주소를 받아 유선아의 집 문을 두들겼다.
“선아 누나! 희영 누나! 기훈이 형!”
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 당연히 셋 다 나갔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집 안에서 비명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나는 바로 유선아가 공유해 놓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현관으로 달려오던 정기훈이 사색이 되어 말했다.
“해원아, 용규 형 잠수 탔나 봐…….”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해요! 희영 누나! 누나라도 빨리 나와요!”
내가 소리치는데 샤워기로 급하게 머리를 적신 박희영이 달려 나왔다. 그 뒤로 급하게 헤어와 메이크업할 도구를 챙긴 유선아도 나왔다.
원래 큰 사고가 나기 전에는 몇 개의 우연이 말도 안 되게 겹치고 또 겹치는 법이다. 우리 넷은 그 사실을 실감하며, 정신없이 달려 나와 박희영의 차에 올라탔다.
내가 올림픽공원을 향해 밟는 사이 유선아가 건전지로 돌아가는 손바닥만 한 고데기로 머리를 말아보려고 끙끙거렸다.
“아나, 미치겠네!”
유선아가 돌아버리려 하는 동안 정기훈이 나에게 말했다.
“해원아, 지금 의상 픽업 못 해? 가는 길에 있는데…….”
“못해요. 삼십 분 안에 올림픽공원 무대 올라가야 하는데 무슨…….”
내 핸드폰에서는 페스티벌 관계자들의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었다. 장용규가 안 받으니까, 소속사에서 내 쪽으로 번호를 돌려준 모양이다.
“아오, 씨, 미치겠네.”
나는 할 수 없이 이어폰을 귀에 끼우고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정말 죄송합니다. 매니저 하나가 갑자기 잠수를 타서……. 네! 카메라 리허설은 절대 안 늦을 겁니다. 네네. 정말 정말 죄송해요. 네. 죄송합니다.”
나는 기계적으로 사과를 반복하며 내가 밟아볼 거라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속도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