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5화
그사이 계속 전화를 돌리던 정기훈이 안도하며 외쳤다.
“누나, 카멜리아 애들이 의상 여분 있다고 빌려준대요.”
“아이돌 옷?”
박희영이 탐탁지 않아 해서 내가 말했다.
“아, 예쁠 거예요. 무조건 예쁘지.”
“넌 운전이나 해.”
“오늘은 진짜 아무도 저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차 안 누구도 대답을 못 했다.
심지어 박희영조차도 코 훌쩍거리는 시늉을 하며 민망해하다가, 금방 애교 떨어 말했다.
“정 매니저, 오늘은 진짜 네가 살렸다. 너 거의 마흔 시간 만에 침대 누운 거 아냐? 어떻게 깼어?”
“그냥 갑자기 섬뜩해서 깼어요.”
“뭐야, 무섭게. 너희 집안에 신내림 받은 분 있니? 아니다, 말 안 걸게! 운전해!”
초조하니까 머리칼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 들며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았다. 박희영의 머리가 애매하지만 그럭저럭 정리가 되고, 유선아가 초집중 상태로 빠르게 메이크업까지 끝냈다.
정기훈이 계속 전화를 돌려보더니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아, 어떻게 230짜리 구두가 없지?”
“나 급해서 쓰레빠 신고 왔어. 미쳤나 봐.”
박희영이 우는 소릴 냈다.
뒤에서 무슨 난리가 나든지 나는 목숨을 내놓고 서울을 가로질렀다. 면허 딴지 세 달 만에…….
그렇게 올림픽공원에 도착해 보니 무대를 중심으로 세워둔 가벽 뒤로 가수들이 대기하는 천막들이 줄줄이 있었다. 다들 저기서 준비하기 바쁜데 우리 가수는 도착하자마자 카메라 리허설을 하게 생겼다.
박희영이 착장을 갈아입는 사이에, 오는 내내 구두 타령을 들어서인지, 나는 무심코 사람들 구두를 살피다가 230 정도 되는 듯한 구두를 발견했다.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의 스타일리스트 중 하나였던 이예영이 신은 구두였다.
나는 캐리어를 든 이예영에게 정신없이 달려갔다.
“누나! 예영이 누나!”
“어? 뭐, 뭐야, 해원이 너 여기 왜 있어?”
내가 히키코모리 생활 중이라는 이야기를 이예영도 들었는지, 날 보고 죽은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놀란다. 나는 상황 설명할 여유도 없이 물었다.
“누나, 구두 사이즈 몇이에요?”
“구두? 이백삼십. 왜?”
“죄송한데 구두 좀 빌려주시면 안 돼요?”
그사이 박희영이 뒤따라와서 신고 있는 슬라이더를 가리켰다.
“이거랑 바꿔요!”
“네? 이거 5만5천 원짜린데…….”
“아, 좋아, 너무 좋아.”
박희영이 말하며 신고 나온 명품 로고가 그려진 슬라이더를 벗어주고 5만5천 원짜리 구두를 받았다. 연한 핑크색의 밋밋한 구두에 유선아가 오일을 좀 바르고 가지고 있던 글리터를 뿌리니까 구두에 들러붙었다.
거기에 정기훈이 어디선가 구해온 조화를 구두 스트랩에 붙였다. 둘이 오래 같이 일해서인지 쿵짝이 잘 맞았다.
그렇게 구두를 의상과 어울리게 맞추는 사이, 이예영이 나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해원아, 퍼스트라이트 애들도 왔는데 인사…… 좀 그렇지?”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 오디션을 통해 데뷔한 그룹에서, 조작으로 밝혀진 멤버들을 제외하고 남은 멤버로 다시 한번 꾸려진 그룹이 퍼스트라이트였다.
예지몽에서 퍼스트라이트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2~3년 차 이후로 앨범이 거의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부터 일 년 정도만 버티면 가요계 쪽에서는 멤버들을 볼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대답을 안 했지만 이예영은 내 마음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만이었다.
그때 박희영이 숨을 한번 돌리고, 나를 불렀다.
“철순아, 파이팅 한번 해.”
철순이가 누군가 내가 두리번거리자 유선아가 웃으며 내 팔을 쳤다.
“해원이 너.”
“저요?”
“어제 술 마시는데 희영 언니가 너 이름이 답지 않게 너무 예쁘다고 새로 지었잖아. 철순이로.”
“아니, 우리 부모님이 신경 써서 지어준 이름인데.”
내가 억울해하거나 말거나 정기훈까지 합세해 단체로 깔깔거리고 웃었다. 내가 막내인 게 죄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파이팅 포즈를 취해주었다. 남의 이름 개명해 놓고 실컷 웃어서인지 박희영의 표정이 밝았다.
운 좋게 전 무대가 3분이 오버되어 내가 무대 점검을 하는 사이, 박희영이 음향 감독과 빠르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바로 무대에 올라서며 말했다.
“박희영이 보러 와주신 여러분! 사랑해, 당신!”
아무래도 아이돌들이 대부분인 페스티벌이기 때문에, 시작 전에 멘트로 아이돌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생각인 것 같다. 그 급한 와중에 멘트를 조율하는 걸 보니 진짜 천생 무대 체질이다.
거기에 무대 장악력은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공연장 화장실 위치와 통로를 확인하고, 간식거리도 사놓고 나니 나는 이제 정말 마지막 남은 체력까지 깨끗하게 털렸다. 내가 유선아와 정기훈에게 말했다.
“신발은…… 예영이 누나 알죠? 그 누나한테 빌린 거니까 거기 가져다주세요. 저 차에 가서 자고 있을게요.”
“근데 철아, 나 아직 면허 없어…….”
“나도 장롱면허…….”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말도 걸지 말라고 두 팔을 휘저으며 차로 가서 조수석에 앉자마자 의자를 뒤로 완전히 젖혔다. 그리고 자려는데 상태창이 보였다.
[(위기 극복)보상으로 실버티켓 3장이 지급됩니다.]
[실버티켓을 획득했습니다.]
[×3]
[D~B급 포션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룰렛이고 뭐고 지금은 일단 자야겠다.
* * *
자다가 목숨에 위협이 느껴져서 눈을 떴는데 옆을 보니 박희영이 운전 중이었다.
운전을 나보다 10년은 더 오래 했으니 실력은 여부가 없는데 눈이 반쯤 잠들어 있었다. 심지어 옆에 나까지 자고 있으니.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작게 ‘룰렛’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박희영이 반응했다.
“응? 뭐?”
“예? 어, 게임 하는 꿈을 꿨어요.”
내가 바로 대꾸하고 룰렛을 두 번 돌렸다.
[D급 체력 상승 포션]
[현재 상태의 피로가 5% 줄어듭니다.]
[C급 체력 상승 포션]
[현재 상태의 피로가 10% 줄어듭니다.]
다행히 지금 제일 필요한 포션이 두 개 나왔다. 나는 일단 그거 두 병을 다 들이켠 후 말했다.
“이제 제가 운전할게요.”
“아냐, 너 쉬어. 금방 회사인데 뭐.”
“사고 낼 것 같아서 그래요. 서울 한복판에서 박희영이 사고 내면 난리 나요.”
내 말에 박희영이 할 수 없이 차를 세웠다. 나는 몸을 풀고 운전대를 잡았다. 박희영이 잠들기 미안한지 굳이 조수석에 앉아서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용규 계속 잠수야. 아, 얜 어떻게 이렇게 책임감이 없니?”
미안한지 자꾸 구시렁거려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저 안 피곤하니까 자요.”
“우리 철순이 진짜 체력 끝내준다. 하긴, 철근도 씹어 먹을 나이지.”
박희영이 말하더니 안심하고 머리를 뒤로 기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솔직히 따져볼 것도 없이 제일 피곤한 건 박희영이다.
나는 뒤에서 어떻게든 깨려 애쓰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형이랑 누나도 그냥 자요.”
“어휴, 야, 어떻게 자.”
“맞아, 막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우리 안 자도 돼.”
“진짜 자도 돼요.”
내가 그렇게 말해도 둘은 마지막까지 안 자고 깨어 있었다.
그래도 말할 기운들은 없어서 차 안이 고요했다. 그렇게 여의도로 향하며, 나는 이상하게도 쾌감을 느꼈다. 위기를 하나 넘겼더니 자신감이 생긴다.
* * *
그렇게 간 떨리는 하루를 끝내려던 찰나에, 오늘 일에 감명받은 소속사 대표 박종렬이 술자리에 끼라며 나를 불러냈다.
결국 나는 다시 술자리에 끌려왔다. 함께 온 박희영이 흥분해서 말했다.
“사고가 나려면 어떻게든 난다니까. 진짜 철순이 아니었음 나 펑크 낼 뻔했어. 이런 행사에서 펑크냈다고 생각해 봐.”
이놈의 기획사는 술 때문에 단명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것도 소속사 대표이자 트로트 가수 박종렬 대표까지. 아니지, 박종렬 대표를 위시해서.
소속사에는 트로트 가수들이 많았는데, 다들 선후배 정이 돈독해서인지 그렇게 지독히 바쁜 와중에도 자주 회식 자리를 가졌다.
박종렬 대표가 술잔을 건네주며 말했다.
“철순아, 내가 진짜 아끼는 애들 아니면 술 안 말아준다.”
“감사합니다.”
내가 술을 한입에 털어 넣고 내려놓자마자 박종렬이 내 등을 퍽 쳤다.
“주인공이 건배사 한번 해.”
“제가 감히요?”
등이 떠밀린 내가 잔을 들고 일어났다. 하라면 해야지, 뭐.
“그럼 제가 사랑해, 하면 당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희영의 히트곡을 이용한 건배사에 취한 사람들이 웃었다. 박희영과 박 대표는 날 무슨 자식 보듯 보고 있다.
내가 ‘사랑해’를 외치자 트로트 가수들과 직원들이 우렁차게 ‘당신’을 외쳐주며 술을 들이켰다.
정신없이 마시다가 아침에 알람이 울려 눈을 떠보니 연습실이었고, 내 옆에는 마지막에 회사에 와서 막판까지 달린 패잔병들이 누워 있었다.
어차피 내일 아침에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회사 가서 새로 뜨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 마음으로 술을 수혈하자는 박 대표를 따라서 돌아온 연습실이었다. 공평하게 박종렬 대표도 쓰러져 있었다.
나는 조용히 모른 척하며 연습실을 나왔다.
“아오, X발, 간 뚫리겠네.”
나는 해야 할 스케줄을 다시 확인하며 회사 복도를 걸었다.
이번 주말에 해외에서 촬영하는 대형 시상식이 있다. 국선아가 편성되었던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거라, 날 아는 사람들을 피해 다닐 생각에 아득해진다.
어차피 가야 하는 스케줄에 최대한 적은 스트레스 받기 위해, 담배를 찾아서 흡연 구역으로 가 급한 손으로 불을 붙였다. 니코틴이 빨려 들어오고 나니 그제야 술이 좀 깬다.
그나저나 이 행사에서 뭔가 엄청 충격적인 사고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기억해 보려 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 * *
시상식이 예정된 방콕까지 이동은 퍼스트클래스 없는 기종의 비즈니스석으로 했다.
박희영은 물론 우리 셋까지 전부. 회사의 보물인 박희영을 혼자 떨어뜨려 앉힐 수 없지 않냐는 회사의 방침 덕분이니, 이건 다 박희영이 벌어들이는 수익 덕분이었다.
“철, 잘 챙겨라. 이건 비행기 표고, 이건 누나 여권.”
“진짜 제가 가도 돼요? 저 영어 굿모닝 아임파인 땡큐밖에 못 해요.”
“괜찮아, 현지 스태프가 다 해줘.”
지금까지 외국에 가본 거라면 중학생 때 누나의 전시회를 보러 영국에 간 한 번뿐이었다. 그거라도 가봐서 다행이다.
해외는 어릴 때 부모님 따라서 한 번 가본 게 전부라고 하니까 옆에서 박희영이 진지한 얼굴로 놀렸다.
“철순아, 비행기 탈 때 어디서 신발 벗는지 기억하지?”
“아, 저 비행기 타 봤다니까요.”
“비즈니스부터는 진짜로 신발 벗어야 돼.”
“진짜요?”
“당연하지.”
어휴, 그렇게 사람 놀리면 좋냐.
유치했지만 박희영은 이상하게 날 실컷 놀리고 나면 그날 내내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아이와 놀아주듯 열정적으로 반응해 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