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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6화 (6/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6화

나는 복도 쪽 좌석에 앉았고, 비즈니스석 쪽으로 같은 행사에 가는 배우들이 몇 명 들어왔다. 시상자인 배우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박희영이 술만 마시면 찾는 전 남친, 송강원이 있었다. 송강원이 자리로 가는 길에 박희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희영이 오랜만.”

그러니까 박희영이 핀잔했다.

“내가 왜 오빠네 희영이니? 어우, 기름져.”

박희영의 말에 송강원이 흐흐 웃었다. 맨정신엔 참 서로 드럽게 쿨하다.

그래도 송강원이 돌아간 후에 박희영의 표정이 안 좋아서, 내가 말했다.

“송 배우님이랑 술자리 한번 만들어주시면 안 돼요?”

“뭐? 왜? 너 간에 구멍 뚫릴 것 같다며.”

“그냥요. 뭐, 누나랑 헤어지고 어떤지도 좀 듣고.”

사실 그것보다는 어떻게든 미리 배우 인맥을 만들어두고 싶었다.

꿈속에서 박유나가 어떻게든 인맥을 만들어보려고 술자리에 가던 기억이 너무 안 좋았으니까. 내 간을 희생해서라도…….

박희영이 엄청 바라는 표정을 전혀 못 숨기면서 말했다.

“됐어, 다 끝난 사이에 무슨…….”

“누나가 내일 저녁에 시간 한번 물어봐 주세요.”

“물어볼 것도 없어. 저 인간이 방콕까지 와서 술 안 마시고 넘어갈 리가 있니. 어차피 술자리에 있을 거니까 그냥 가면 돼.”

박희영이 말하고 자기도 모르게 슬쩍 웃었다.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어도 연애가 어려운 건 똑같은 모양이다.

비행기가 뜨자마자 박희영과 1팀 사람들은 바로 잠들고, 나는 수첩을 펼쳤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본 덕에 작곡 인터넷 강의 하나를 끝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클래식 피아노를 쳤기 때문에, 적어도 악보는 읽을 줄 안다. 그 덕에 다행히 이론은 금방금방 머리에 들어왔다.

집안 사정 때문에 피아노를 포기할 땐 세상 쓸모없는 일에 시간 소모한 기분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알차게 써먹고 있었다. 역시 무엇이든 배워두면 다 어딘가에 쓴다.

문제는 강사인 작곡가가 아무 곡이나 일단 무데뽀로 찍어 보는 것만큼 도움 되는 게 없다는데, 그 무데뽀도 안 될 정도로 머릿속이 백지라는 거였다.

뭘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주제로 써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다. 내가 이렇게 창작 능력이 없는 사람인 줄 몰랐다. 이론을 익히는 게 문제일 줄 알았더니, 이론은 쉽고 창작이 안 된다.

박희영에게 이야기해 보니까 그럼 작사부터 하라고 해서, 아무 가사나 써보는 중이었다.

근데 그것도 안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평생 작명도 잘 못하던 내가 작사를 잘할 리가…….

나는 비행기에서 내내 머리를 쥐어짰지만 결국 아무것도 떠올리지는 못했다.

* * *

수완나품 국제공항에 들어서니 의외로 태국 아이돌 팬들이 박희영을 알아보고 반겨줬다. 예능에서 박희영을 봐서 아는 모양이었다.

호텔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공연장으로 향했다.

내가 경험한 대형 음악 행사는 얼마 안 되지만, 그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제대로 모든 게 준비되고 시작하는 대형 음악 행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큰 사고가 안 나면 성공인 게 이런 행사였다. 한국에서 해도 정신없는데 해외에서 하니, 더더욱 이렇게 해도 진행이 되나 싶을 정도였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박희영의 대기실로 아이돌 가수들이 계속 인사를 하러 들락거렸다. 얼떨결에 끌려 나온 게 표정에 다 보이는 아이돌도 드문드문 있지만 대부분은 깍듯하게 인사하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저 중에서 얼마나 많은 그룹이 살아남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는 건 힘이 있는 팀이라는 뜻이다. 대부분 오래 남을 팀이었다.

지금 막 대기실로 들어온 퍼스트라이트는 제외지만.

여섯 명이 대기실로 들어왔는데 워낙 장신들이라 대기실이 꽉 찼다.

“안녕하십니까, 퍼스트라이트입니다.”

성격에 안 맞는 리더를 떠맡고 있는 나와 동갑이자, 국선아 시절 가장 친했던 황새벽이 인사했다.

“응, 그래. 반가워. 이제 가봐.”

박희영은 후배 가수들이 오래 선배 가수 대기실에 있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친한 후배가 아니면 인사 직후 바로바로 내보냈다.

나는 뭐, 2년 동안 잠수를 타서 그렇지, 함께 국선아 시절을 보낸 퍼스트라이트 멤버들과 사이가 특별히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생각보다 매니저 일을 하면서, 데뷔한 멤버들을 보는 게 무지하게 힘들었다. 깎일 만큼 깎였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쓸데없는 자존심이 남은 모양이다.

어쩌면 자존심이 아니라, 그냥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이 남아 힘든 걸 수도 있고.

* * *

박희영의 리허설이 시작되고, 우리 1팀 사람들은 백스테이지에서 무대를 집중해서 보며 의견을 교류하고 있었다.

박희영은 프로였고, 여기가 한국이든 외국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 천국에서든 지옥에서든 마이크만 쥐여주면 주눅 들지 않을 사람이 박희영이었다. 이 1팀에서 나는 탑티어가 되어도 자만하거나, 불성실해지지 않는 사람의 표본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무대를 완전히 장악했을 때 기분이 어떨지. 그럴 때 박희영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잠시 후 박희영의 무대가 끝나고 맞은편 무대에서 퍼스트라이트가 올라와 준비하기 시작했다. 퍼스트라이트가 소속된 TRV 엔터테인먼트는 작년에 캐시카우인 박종렬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다.

그래도 서로 교류가 거의 없지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아닌지 드물게 같이 행사를 하게 되면 이렇게 무대 순서가 붙어 있었다.

퍼스트라이트 멤버 개개인의 실력은 좋은데, 방금 전 무대를 휘어잡는 박희영을 본 직후라 그런지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솔직히 컨셉도 음악도 별로였다. 맏형인 황새벽도 고작 스무 살인데, 안 그래도 세 보이게 생긴 놈들이 결혼식용 수트를 입고 프러포즈 어쩌고 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무지하게 이상해 보였다. 양아치 고딩들이 어른인 척 가오 잡는 것같다.

나는 리허설을 그만 보고 들어가려다가 무대 뒤쪽에 설치된 리프트를 발견했다.

그걸 보는 순간, 드디어 나는 이 행사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사건이 뭐였는지를 떠올렸다.

아니, 이걸 어떻게 이제야 떠올릴 수가 있지?

내 예지몽에는 몇 가지 임팩트 있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거였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그 사건.

나는 그걸 떠올리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퍼스트라이트의 무대가 끝나면 등장하기 위해 막 리프트에 탄 여배우 강하연을 찾아냈다.

올해 스물세 살의 라이징스타, 강하연은 리허설 중 사고로 무대 위에 추락하게 되었는데, 현지 병원과의 소통 실수로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그 이후 다시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다짜고짜 달려들자 현지 스태프와 한국인 스태프들이 나를 막았다. 내가 곧바로 강하연에게 말했다.

“강 배우님! 제가 예지몽 같은 걸 잘 꾸거든요? 근데 이 리프트에서 사고가 나는 꿈을 꿨어요. 진짜로요.”

강하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순간 다급한 걸 잊어버릴 뻔했다. 예쁜 사람을 보고 인형 같다고 하는 건 틀린 말 같다. 저렇게 예쁜 인형을 만들 수 있다고?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붙잡는 사람들을 뿌리치며 말했다.

“이런 말 들으면 그냥도 재수가 없잖아요. 다른 등장 방법을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야! 빨리 쫓아내! 미친 새끼 아냐, 저거?”

안 그래도 한국 스태프들이 어수선한 진행에 사고 날까 봐 예민한데, 내가 부정 탈 소리까지 하자 합심해서 날 밖으로 밀어내려 들었다.

다급해진 나는 필사적으로 강하연에게 소리쳤다.

“배우님이 안 탄다고 하면 억지로 태우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아, 그럼 손잡이라도 잡아요, 꼭!”

내가 생각해도 술 취한 진상 같았다. 급한 마음에 안면몰수하고 행패를 부렸는데 문밖으로 쫓겨난 뒤에는 혹시 경찰을 부를까 봐 무서웠다. 한국 경찰은 말이라도 통하지, 여기 경찰은 말도 안 통할 거 아닌가.

아무튼 그렇게 쫓겨나고, 나는 백스테이지로 돌아왔다. 박희영이 내 등짝을 때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해외 와서 긴장돼 죽겠으니까 잘 보이는 데 있으라고!”

“아, 진짜 아파요.”

내가 무슨 토템도 아니고 왜 잘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억울했지만 등짝을 슥슥 문지르며 여느 때처럼 파이팅을 해줬다. 아프진 않았지만 엄살을 떨어줘야 박희영의 기분이 좋아졌고 오늘도 그랬다.

퍼스트라이트의 리허설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 결국 강하연이 탄 리프트가 일정 높이까지 올라가 멈췄다.

꿈속의 뉴스에서 본 그대로라면 저 리프트 바닥의 한쪽이 떨어져 나가며 강하연은 그대로 미끄러져 추락했다. 그리고 쓰러져 있던 강하연의 다리 위로 철판이 떨어졌다.

퍼스트라이트의 무대가 끝나고, 강하연의 얼굴을 카메라로 비추자 행사장 안의 모든 스태프들이 웅성거렸다. 대형 화면에 뜬 강하연의 얼굴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배우다 보니 가수들과 달리 불 들어온 카메라를 바로 찾지 못해서 딴 곳을 보고 있긴 했지만 딴 곳 보는 것도 분위기 있어 보였다.

강하연은 한 손으로는 대본을, 다른 한 손으로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박희영도 스태프들도 잠깐 자리에 서서 대형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한 말이 신경 쓰이기는 했는지, 강하연이 잡을 것이 있는 벽 쪽으로 최대한 붙었다. 그러자 아래서 PD가 뒤로 물러나서 가운데에 서라고 전달했다.

나는 다시 한번 무대로 달려가서 방송을 망쳐서라도 사고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는.

그런데 무대에 올라갈 생각을 하니까 숨이 안 쉬어진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카메라 앞에 설 수 없었다.

나에게 쏟아지는 악플을 확인한 이후부터 남은 국선아 촬영을 할 때마다 그런 기분이었다. 저 카메라 뒤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칼을 들고 서 있는 기분. 전부 달려들어 날 난도질할 것 같은 공포였다.

나는 결국 리프트가 있는 무대에 올라가지 못했고, 똑바로 무대를 볼 수도 없어 뒤로 돌아섰다.

그때 스태프들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결국 사고가 난 모양이다.

나는 강하연이 리프트에서 떨어지면 그 즉시 병원에 따라갈 생각이었다. 병원이라도 옮기게 하면 의료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대형 화면에 비친 강하연이 두 손으로 리프트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거의 바로, 무게를 못 이기고 나머지 한쪽도 떨어지며 리프트의 바닥 철판이 무대에 떨어졌다.

생전 욕을 안 할 것 같던 스마일맨 정기훈이 욕을 하며 중얼거렸다.

“X팔, 미쳤네…….”

그때 손아귀 힘이 약해서인지 강하연이 조금씩 미끄러지는 것이 보였다.

무대에 못 올라가긴 개뿔.

급하니까 내가 뭘 생각하기 전에 몸이 이미 무대에 있던 퍼스트라이트 멤버들, 그리고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리프트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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