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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7화 (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7화

강하연은 엄청 가벼웠다.

리프트 아래에 남자 열 몇 명이 서 있다가 위치를 안전하게 잡고 떨어지는 강하연을 무사히 받았다.

강하연을 내려주고 나서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철판으로 향했다.

저게 강하연 위로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방콕의 더운 공기 속에서도 소름이 확 끼친다.

강하연의 매니저가 정신없이 달려와서 부상,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얼굴을 확인했는데 다행히 외관상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강하연은 나한테 뭔가 말하고 싶은지 빤히 보다가, 말이 안 나오는지 체념하고 스태프들에게 업혀 갔다.

그러고 나니까 사람들이 다 날 보는 게 느껴졌다. 행사 스태프들은 스태프들대로 리프트가 이상하다고 말한 날 의심스럽게 보고 있고,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멤버들대로 2년 만에 나타나서 매니저 일을 하고 있는 날 황당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무대 공포증이 심한데 스무 개 넘는 눈동자가 돌아보니 쫄린다.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급하게 박희영에게로 달려갔다. 이럴 때는 박희영의 짬이 최고 방패다.

1팀 사람들이 날 보자마자 한마디씩 했다.

“막내, 너 팔은!”

“저야 완전 괜찮죠.”

“아우, 심장 떨려.”

“넌 거길 왜 가, 위험하게. 경호팀 다 있는데.”

잔소리가 쏟아진다. 아니, 내가 애도 아니고. 키도 우리 팀에서 내가 제일 큰데…….

사고 직후 공연장은 잠시 싸한 공기가 내려앉았지만, 빠르게 정리하고 다음 리허설로 이어졌다. 내일 바로 생방송이 잡혀 있기 때문에 계속 충격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었다.

* * *

술이 없으면 안 되는 밤이었다. 어차피 마셔야 할 이유도 있지만.

나는 호텔 내부의 바에서 박희영의 전 남자친구인 송강원의 술자리에 끼어들었다.

자리에는 여러 스태프들과 송강원이 있었다. 나도 얼떨결에 앉아서 술을 마시다가 어느 정도 취했을 때 의무감으로 전혀 궁금하지 않은 화제를 꺼냈다.

“형님, 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됩니까?”

“……희영이 관련으로?”

“네. 누나한텐 못 물어보겠어서요.”

사실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박희영은 술만 마시면 전 남자친구인 송강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부터 열까지 술술 다 말했으니까. 둘이 왜 사귀었는지, 왜 헤어졌는지 이제 나는 모르는 부분이 없었다.

유일하게 모르는 부분은 송강원이 박희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분이었는데, 박희영이 전화만 하려 하면 모두가 달라붙어 못 하게 하는 게 루틴이 된 탓에 둘이 연결해 본 적이 없었다.

겉으로는 송강원과 아메리칸 스타일의 쿨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좀 궁금해지긴 했다. 송강원은 진짜로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내가 말만 꺼냈지,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송강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뭐지, 미친놈인가, 생각하는데 송강원이 솥뚜껑 같은 손으로 테이블을 쾅 치며 말했다.

“내 인생에 여자는 박희영밖에 없고, 다시 태어나도! 나한테는!”

“……아.”

아메리칸 스타일이란 건 허상이다. 아메리칸도 뭔 소리냐고 할 거다.

그냥 서로 미련이 남아서 저러고 염병 천병을 떨고 있는 거였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 대화를 그만하고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다시 태어나도!”

“방금 말씀하셨는데요.”

“나한테는 어? 박희영이만 여자고! 어?”

술버릇이 나쁜가 보다.

하기야 두 사람은 공개 연애를 하다가 박희영의 지나치게 바쁜 일정으로 결혼 이야기가 진행이 되질 않아 헤어졌다고 들었다. 마음이 식은 게 아닌 거다.

하지만 공개 연애를 했다가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스파이답게 열심히 박희영에게 카톡으로 상황 보고를 하고 있었고,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갑자기 엉엉 울던 송강원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말했다.

“희영이한테 전화해야겠다.”

“아, 형! 안 된다니까!”

이 상황이 익숙한 송강원의 매니저가 잽싸게 송강원의 핸드폰을 뺏었다. 매니저 마음은 매니저가 안다고, 덩치 큰 송강원이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걸 보다 못한 나도 달려가서 말렸다.

그렇게 행패를 부리던 송강원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싶을 때였다.

바 입구로 작고 반짝반짝거리는 클러치를 든 박희영이 야구 모자에 레깅스, 후드티 차림으로 나타나더니 송강원의 멱살을 잡았다.

“희, 희영아?”

“조용히 해, 진상아.”

자기 매니저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던 송강원이 허리가 자기 팔뚝만 한 박희영의 손에 붙잡혀 순순히 끌려갔다. 송강원의 매니저가 그 모습을 보더니 자리에 털썩 앉았다.

“말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체력이 없어요, 철 매니저님…….”

“제 본명 철순이 아닌 건 혹시 아시죠?”

“아니에요?”

이제 내 본명도 해명하고 다니게 생겼다.

어찌 됐든, 아무리 친하고 내 가수가 좋아도, 옆에 없으니까 업무가 끝난 기분이라 마음이 편해졌다. 송강원의 매니저와 고충을 이야기하며 술자리를 좀 더 이어갔다.

그 후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담배를 사려고 호텔 앞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데, 거기 벙거지 모자를 쓴 황새벽이 있었다.

“어?”

“어.”

가릴 만큼 가렸는데 벙거지 아래로 삐져나온 탈색 머리가 누가 봐도 아이돌이다.

내가 살 것만 빨리 사고 나가는데 황새벽이 아무것도 안 사고 바로 뒤따라왔다.

“야, 있잖아.”

뭔가 우리의 옛 추억 이런 감성 터지는 말 할까 봐 약간 걱정했다. 술을 한잔해서 울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황새벽은 메마른 놈이었다.

“우리 무대 어땠어?”

“뭘 어때.”

“진짜 솔직하게.”

“솔직하게? 별로던데.”

솔직하게 말하라고 해서 말하니까 황새벽이 투덜거렸다.

“너는 성인이 돼도 참 말을 함부로 한다.”

“네가 솔직하게 말하라며.”

“어느 면이 별론데?”

“다 별론데. X고딩들이 정장 입고 프러포즈, 결혼, 이러고 있는데 여자들이 거기 이입이 되겠냐?”

“그런가?”

“너희 멤버 중에 누나 있는 사람만 네 명이잖아. 누나들한테 물어봤어?”

“아니. 나 누나랑 안 친한데.”

“뭔 상관이야. 가서 주변 여자들한테 설레냐고 물어보는 성의는 좀 보여라.”

2년 만에 대화했는데 2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서로 개그 코드가 잘 맞아서 별말 안 해도 계속 낄낄거리게 된다.

국선아 때도, 방송 시스템 자체가 팀플의 연속이다 보니 싸우기도 무지하게 싸웠는데 희한하게 서로 자기가 더 잘못했다고 인지하는 상태가 비슷해서 풀리기도 금방 풀렸다.

호텔로 돌아와 내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려고 손짓했다.

“넌 가서 자.”

“자긴 뭘 자, 내일 생방송인데. 계속 연습해야지.”

“연습 어디서 하는데?”

“나랑 안주원 같이 쓰는 방. 우리 방만 전신 거울 있어서 거기서 애들 연습해.”

지독하게 성실한 놈들이다. 이렇게 성실한 놈들이 왜 망했는지 참 모를 일이다.

내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동안에도 황새벽은 안 들어가고 옆에서 말을 이었다.

“나도 솔직히 뭔가 아닌 것 같거든? 아니라는 느낌은 있어. 근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이게 뭔 소리야.”

“아니, 그 느낌이 있다니까.”

“아, 그니까 뭔 느낌?”

잘 맞는 것 같다는 건 취소해야겠다. 안 맞는 것 같다. 황새벽이 말로 설명이 안 돼서 답답해하더니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넌 담배 좀 피우지 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새벽아, 장담하는데 내가 성인 돼서 운전한 시간이 웬만한 30대보다 많다.”

진짜 진심이다. 성인 된 이후에 한 거라고는 운전하고 술 먹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인생 이대로 괜찮은가.

황새벽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말했다.

“우리 지금 미니 두 개 냈잖아? 둘 다 반응이 하나도 없어. 아니, 없기만 하면 말도 안 하지. 점점 관심이 줄어, 유튜브 조회 수도 줄고.”

황새벽도 술 한잔했는지, 아니면 아까의 사고 때문에 인생무상을 느꼈는지 지나치게 솔직했다. 황새벽이 말을 이었다.

“그냥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희영 누나도 신인 때는 그냥 막 스케줄에 끌려다니는 기분이었대. 너희도 신인이라 그런 거지, 연차 쌓이면 괜찮아.”

“근데 연차가 안 쌓일 것 같은데.”

황새벽의 말에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연습생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끝을 모르는 터널을 걷는 기분을 느낀다. 데뷔라는 출구를 향해 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출구가 나에게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계속 더 나가기에는 스무 살 남짓한 내 나이가 너무 많고, 그렇다고 돌아서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데뷔가 그 막막한 생활의 종지부인 줄 알고 달렸는데, 타의로 한 번 해체되고, 미니 두 개를 내는 동안 오히려 반응이 줄어들기만 하니 황새벽은 무지하게 지친 상태였다.

나는 퍼스트라이트의 무대를 머릿속으로 복기해 보다가 무심코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패기가 더 보이면 좋겠더라.”

“패기?”

“어, 있잖아 왜. 내가 이 가요계를 접수하겠다, 막 이런 신인들의 패기 있잖아.”

라고 내가 말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프로듀서로서의 첫 번째 장이 시작됩니다]

[퍼스트라이트 디지털 싱글]

[키워드 ‘패기’가 등록되었습니다]

어? 누구 마음대로?

내가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상태창은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끝이었다.

나는 무지하게 신경 쓰이는 상태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팬들 그런 거 좋아하잖아, 결속력이 딱 보이는 거. 원 팀, 원 골. 이런 거.”

[퍼스트라이트 디지털 싱글]

[키워드 ‘원 팀, 원 골’이 등록되었습니다]

뭐야. 말하면 다 등록돼?

나는 상태창을 황당하게 보다가 황새벽에게 일단 물었다.

“너희 다음에 디지털 싱글이야?”

“어떻게 알았어?”

“추측. 곡은 나왔어?”

“A&R팀에서 아직 회의 중이야. 이번 앨범 진짜 중요하잖아. 곡은 많이 받았는데, 이거다, 싶은 곡이 없나 봐.”

……그래?

그래도 잠깐 사회생활 했다고 상당히 뻔뻔해진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나도 요즘 작곡 준비하는데.”

인맥 좋다는 게 뭔가. 이럴 때 쓰는 거지.

“너 작곡해? 뭐 만든 거 있어?”

1팀에서 운전만 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배운 게 좀 있다. 내가 작곡을 공부 중이란 말을 듣자마자 박희영이 한 말이 이거였다.

‘철아, 내가 봤는데, 인맥도 실력도 뭐 아무것도 없이 작곡하는 애들 있잖아. 그 밑도 끝도 없는 애들 중에서 제일 성공하는 사람이 의외로 그거더라. 뻔뻔한 애들.’

‘뻔뻔한 애들이요?’

‘어, 뭣도 없으면서 막 문 두드리는 애들 있잖아. 그냥 누가 봐도 퀄리티 떨어지는 걸 온 사방에 보내는 거야. 그리고 금방 제대로 된 곡 가져온다고 허풍을 막 떨어. 작곡가 자아보다 세일즈맨 자아가 더 커.’

‘…….’

‘근데 나중에 보면 희한하게, 실력 좋은 애들보다 걔네가 더 많이 살아남더라?’

“어, 당연히 있지.”

나는 허풍을 떨었고, 황새벽이 대답했다.

“그래? 너도 우리 회사 A&R팀 보내봐.”

“너 아는데 왜 A&R팀으로 보내. 너한테 보내면 되지.”

“어…….”

“너희 팀에서 쓸 거잖아, 네가 먼저 판단하면 되지.”

지금 내 실력을 생각해볼 때, A&R팀으로 보내면 백퍼 블라인드 심사에서 걸러질 거다. 지금으로서는 완성도가 바닥일 테니까.

그러니까 뻔뻔하게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 다시 상태창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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