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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8화 (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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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히트곡 메이커]

[제한 시간 5분]

제한 시간 5분도 길다.

이건 예시가 답안이니까.

나는 인생의 첫 기억이 피아노일 정도로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쳤고, 당연히 음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문제는 중학교를 진학할 무렵 누나의 유학비 때문에 우리 집안이 휘청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누나가 유학 가기 전까지만 해도 중산층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유학이 길어지니 버틸 수가 없었다.

누나는 우리 형편이 미술을 시킬 형편이 아니었던 거라며 그만두고 싶어 했지만, 여기서 멈추면 앞에 투자한 것도 다 제로가 되는 거라고 부모님이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렇게 강경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내가 먼저 피아노를 그만두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가 특별히 두드러지는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데다가 솔직히 말하면 좀 질려 있었기 쉽게 그만둔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피아노를 그만두는 순간부터 무지하게 우울했다. 피아노를 쳐다만 봐도 눈물이 쏟아져서 할 수 없이 내 방에 있던 피아노를 팔아버린 후에야 그때까지 내 인생에는 피아노가 전부였다는 걸 알았다. 사실 나는 피아노를 정말로 좋아했던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 집은 운이 좋은 경우다. 지금은 누나가 신진작가로 손꼽히고 있으니까.

누나의 전시회를 보러 가던 날. 우리는 서로 울었다. 누나는 세 사람 비행기 표를 마련하려고 몇 달 동안 라면만 먹었고, 부모님은 밤이고 주말이고 일을 했지만 아무도 후회하지 않았다. 나도 피아노를 그만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때 누나가 돈도 아낄 겸 지금의 매형인 남자친구랑 같이 살고 있었다는 건 부모님 이상으로 충격이었지만, 둘이 같이 쓰던 난장판인 아틀리에에 들어섰을 때는 가슴이 벅찼다. 영화에서 보던 예술가들 같다고 생각했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내게 생긴 새로운 목표가 이거였다. 아이돌.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춤에 미쳐 살았고, 학교에서 인기도 꽤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에서 처음 무대에 섰을 때 다시 느꼈다. 내가 음악, 그중에서도 대중음악을 정말로 좋아하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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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히트곡 제작 확률 0%

C급 히트곡 제작 확률 0%]

C급이라는 게 어느 정도 히트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상태창의 설명대로라면 내가 그 C급을 만들 가능성도 없다는 것인 모양이다. 그리고 C급 이하는 없는 걸 보니 그냥 히트곡을 만들 가능성 자체가 없는 것 같다.

그때 황새벽이 물었다.

“곡은 언제까지 줄 수 있는데. 우리 A&R팀이랑 트랙리스트 회의 다음 금요일이야.”

“목요일까지 꼭 줄게.”

“전날, 야이…….”

어쨌든 두 번 데뷔를 한 아이돌이라 황새벽이 욕은 못 뱉고 말끝을 흐린다. 다음 주 목요일이라고 해도 일주일 뒤였다.

“일단 보내기나 해.”

황새벽이 말하고 먼저 호텔로 들어갔다.

마감이 생기니까 확실히 쫄림의 강도가 다르다.

* * *

생방송 당일, 전날 입막음이 무색하게 강하연의 리프트 사고 소식이 한국에 전달돼 기자들이 몇 배로 북적북적거렸다. 연예부만 아니고 사회부 쪽도 온 모양이다.

강하연은 전날 그런 상황이었는데도 펑크 없이 MC를 봤다. 멘탈이 센 것 같다. 저런 걸 외유내강이라고 하나 보다.

아무튼 그래도 전날 사고 때문에 행사장 분위기는 매우 날이 서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박희영 무대가 가까울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게 표정에 너무 드러났는지 박희영이 내 등을 퍽 쳤다.

“너 왜 이렇게 긴장했어?”

“누나, 무대 위에서 조금이라도 이상 있다, 싶으면 바로 신호…….”

내가 말하고 있는 중에 박희영이 유쾌하게 웃었다.

“알아서 할게. 알아서.”

어제 전 남친과 일이 잘 풀렸는지, 기분이 무지하게 좋아 보인다.

예능의 힘이 세긴 센지, 박희영이 무대에 올라가니까 여느 아이돌이 올라올 때와 다름없는 관객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안 그래도 기분이 좋던 박희영은 그 환호를 더욱 끌어올리며 말 그대로 무대를 찢었다.

그래서인지, 그 바로 뒤에 올라온 퍼스트라이트는 박희영에게 기가 눌린 것 같았다. 리허설 때보다도 무대 장악력이 떨어져 보였다.

그때 누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그래서 돌아보니까 강하연이었다.

“……저기요.”

“네?”

내가 대답했는데도 강하연은 말이 없었다. 아무 말 안 하고 날 보고 있는데 너무 예쁘니까 오히려 시선을 피하게 된다. 급하게 따라온 강하연의 매니저가 말했다.

“하연이가 원래 좀 낯을 많이 가려요!”

“아…….”

뭔지 모르겠는데 강하연은 날 그렇게 쳐다보다가 손에 뭔가를 쥐여주고 사라졌다. 손을 펴보니까 핸드폰 번호가 적힌 쪽지였다. 아니, 여배우가 자기 번호를 막 알려주고…….

나는 다급하게 강하연의 매니저에게 쪽지를 돌려주고, 대신 매니저와 명함을 교환했다. 강하연의 매니저는 몇 번이나 나에게 고맙다고 강하연에게 제발 자기 통해서 좀 뭐든 하라고 사정하며 멀어졌다.

뭐, 어찌 됐든 강하연 나름으로 미리 경고해 줘서 고맙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배우 인맥 필요할 때 연락해 봐야겠다. 꼭 매니저 통해서.

* * *

다음 날 점심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갈 틈도 없이, 바로 인터뷰 스케줄이 있어서 박희영을 태우고 연남동의 한 카페로 향했다.

인터뷰 장소에 거의 다 왔을 때,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곽 실장이었다.

박희영은 원래 회사에서 오는 전화를 다 스피커폰으로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나는 당연하게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 철이. 거기로 바로 다른 로드 보낼 테니까, 넌 차 두고 TRV로 좀 가라.

“TRV면…… 종로요?”

-어, 거기.

광화문 근처에 5대 매니지먼트라고 불리던 TRV 엔터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1강 3중이라고 불리고, TRV는 계속되는 아이돌들의 부진으로 더 이상 5대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이번에 국선아 오디션 출신 멤버들을 모아 퍼스트라이트를 데뷔시킨 건 회사의 사활이 걸린 모험이었다.

박종렬 엔터의 모기업이라고는 해도 두 회사의 운영은 철저히 별개였다. TRV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박종렬 엔터 소속 트로트 가수의 영상이 올라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도 이렇게 급할 때 땜빵을 보내는 걸 보니 완전 다른 회사는 아니구나, 싶었다.

-퍼스트라이트 애들이 워낙 내성적이라 외부인이랑 말을 안 하잖아. 웬만하면 아는 사람이 손 좀 보태줬으면 하더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박희영이 말했다.

“오빠, 철이가 기계니? 해외 스케줄 끝나고 아직 집에도 못 간 애를.”

딕션과 목청 좋은 박희영의 말이 잘 들렸는지 곽 실장이 말했다.

-말했잖아, 애들이 내성적이라서 외부인이랑 말을 안 한다고.

“지랄, 무슨 신인이 그렇게 따지는 게 많아? 그리고 그 회사는 뭘 그걸 다 받아주고 있어?”

“아, 누나. 전화할 땐 욕 좀.”

이전에도 내가 소속사 다른 가수들 스케줄에 따라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오늘따라 왜 저렇게까지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다. 내가 분위기도 풀 겸 얼른 말했다.

“그럼 시형이 형하고 일정 조정해 볼게요.”

그러니까 뒤에서 박희영이 말했다.

“조정은 무슨 조정을 해. 너 그냥 TRV로 가라는 소리야. 못 돌아와, 너.”

차가 신호에 걸려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박희영을 돌아봤다. 박희영이 말했다.

“그럼 엔터 회사에서, 너 같이 생긴 애가 있는 걸 아는데 쭉 매니저로 놔두겠니?”

“저 국선아 이후에 이미지가…….”

“비호감도 화제성이다? 퍼스트라이트 애들 화제성 없다며.”

“…….”

“손 보태라는 게 너보고 로드 땜빵하라는 소리겠니? 회사를 그만두든지, 거기 합류하든지. 둘 중 하나 고르란 소리지.”

망했네.

회사를 그만둬야겠다.

고민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박희영이 물었다.

“근데 여기서 직원 빼가려면 그쪽도 임원급은 돼야 할 거 아냐?”

그러니까 아직 전화로 듣고 있던 곽 실장이 솔직하게 말했다.

-TRV 박희택 사장이.

사장이?

혹시 내가 작곡 준비 중이라는 걸 황새벽이 사장실에 가서 말했나?

그럴 리가. 걔는 낯가려서 어른이랑 미주알고주알 떠들 놈이 아닌데…….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있는데 곽 실장이 말했다.

-지난번에 술자리 왔잖아. 그때 철이 보고 쟤는 아이돌을 해야 되는 애가 왜 매니저를 하고 있냐고.

엇, 그러고 보니 술자리에서 박종렬 대표랑 ‘박 대표~’, ‘박 사장~’ 이러면서 러브샷 하던 아저씨가 있긴 했는데…….

……그 아저씨가 TRV 사장이었어?

내가 얼빠져 있으니까 박희영이 뒤에서 의자를 퍽 찼다.

“넌 왜 그렇게 생겨가지고 눈에 띄고 난리야!”

아니, 내가 뭘!

* * *

나는 할 수 없이 다른 로드와 교대하고 연남동을 출발했다.

박희영은 어차피 너랑 오래 못 갈 거 알았다, 처음부터 생긴 게 마음에 안 들더라, 하고 꿍얼꿍얼거리다가 인사도 안 하고 인터뷰를 하러 들어가 버렸다. 무지하게 섭섭해 보였다.

나는 바로 버스를 타고 광화문역과 종각역 중간에 있는 TRV로 향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대충이나마 퍼스트라이트에 대해서 찾아봤다.

국선아 종영 후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인지도를 총동원한 초동이 3만 장 정도에, 총판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들어봐도 곡은 참 밋밋하다.

댓글 반응들을 보니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얘네는 무대 잘하는 건 알겠는데 이상하게 안 땡겨]

[↳이거 나만 느낀 거 아니구나ㅋㅋㅋㅋㅋㅋ]

[약간 예술병 느낌이…….]

[례술이든 뭐든 일단 컨셉이 이해가 안 가는데?]

그나마 반응도 많이 없다.

TRV가 퍼스트라이트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자체 예능도 돈깨나 들여서 만드는 게 보이는데도 최근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조회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특히 제일 문제는 저기 둘이다. 18살 동갑내기 한효석, 민지호.

농구를 하다가 민지호가 한효석을 밀치며 말했다.

-야, X. 재밌자고 하는 거잖아.

삐 소리가 나고 ‘애정 어린 욕설’이라고 쓰여 있지만 누가 봐도 진짜 싸우는 분위기였다. 빠른이라 이 둘과 같은 학년이자, 막내인 박선재가 급하게 껴들었다.

-아, 둘 다 승부욕이 너무 강해가지고.

분위기 나쁜 걸 승부욕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사람들 눈에 그게 안 보일 리가 없었다.

[퍼스트라이트는 멤버들이 진짜 안 친해 보이네]

저 반응도 문제지만, 그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거였다.

[우리 팬덤은 항상 왜 이렇게 조용하지ㅠㅠ]

[덕질이…… 이렇게 외로운 거였니…….]

[요즘 국선아 팬들 다른 남돌로 엄청 유출된 거 체감되더라…….]

대한민국 사람이 몇억이 되는 게 아닌 이상에야 국내 팬덤의 규모에는 한계가 있다. 팬들이 다른 아이돌 팬덤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건 어쩌면 아이돌, 특히 남자 아이돌이 들을 수 있는 가장 나쁜 소식일지도 모르겠다.

그사이 나는 TRV에 도착했고, 곽 실장의 전달대로 일단 사장실로 향했다.

사장실로 들어가 보니 진짜로 회식 자리에서 몇 번 본 만취한 아저씨가 박희택 사장이었다. 이놈의 좋좋소는 술이 없으면 일이 돌아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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