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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9화 (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9화

박희택 사장과 맨정신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내가 내준 자리에 앉자마자 박희택 사장이 다짜고짜 말했다.

“퍼스트라이트 데뷔, 내가 밀어붙였어. 내 눈엔 딱 느낌이 우량주였거든. 다 잘생겼잖아.”

“……아.”

“이 팀 망하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지.”

박희택 사장은 무명 배우 출신으로, 원로 배우의 매니저 생활을 한동안 했으며, 가수, 그것도 아이돌 쪽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모양이었다. TRV의 대표와 동문이었는데, 그 대표가 사장 자리에 박희택을 꽂으며 어차피 실무는 전문팀에서 알아서 할 테니 넌 그냥 사장실에 앉아만 있으라고 했다는데 정작 와보니 그게 아니었다. 실적 압박이 쏟아졌다.

TRV는 부자지간인 대표 부대표가 다 해 먹는 회사라, 자긴 그냥 따까리라는 거였다.

근데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하시는 건지…….

라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며 ‘아…….’ 하고 안타까운 시늉만 하고 있었다.

하소연을 쭉 하고 난 박희택 사장이 말했다.

“내가 여기 직장을 걸었으니까, 나는 퍼스트라이트 애들이 지원해달라는 거 다 해줄 생각이다? 근데 황새벽 이 새…… 이 친구가 리더잖아. 그럼 뭔가 의견을 취합해서 나한테 말을 해야 될 거 아냐. 근데 사장실만 오면 입 딱 다물고 한마디를 안 해. 뭐가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다 괜찮대.”

박희택 사장이 고구마 두어 개 통으로 삼킨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 성격으로 어떻게 아이돌을 할 생각을 하는지 몰라.”

세상의 모든 아이돌들이 어릴 때부터 아이돌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직접 회사에 찾아가서 오디션을 본 연습생이 있는가 하면, 황새벽처럼 너무 캐스팅 제안을 많이 받아서 그냥 한번 가볼까, 싶어 갔다가 연습생이 된 경우도 있다. 퍼스트라이트의 다른 멤버인 한효석도 같은 케이스인데, 전 소속사에서 계약해 달라고 수도 없이 집에 찾아왔다고 했다.

한참 이야기하던 박희택 사장이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네.”

“철이는 무대 공포증 있다며.”

바로 본론이네.

“넵, 심합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고, 박희택 사장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그럼 바로 무대 서긴 좀 그렇지. 일단 애들이랑 다니면서 극복해 봐.”

“아니, 저…….”

“뭐, 필요하면 그때 가서 내가 무릎 한번 시원하게 꿇지 뭐.”

라고 말하며 으하하 웃는다.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술 마시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사람. 박희택 사장은 맨정신일 때 미친 사람이었다.

“아니, 저 진짜 심각…….”

“나중에 얘기하자, 나중에. 아, 업무 전화할 거니까 나가봐.”

박희택 사장이 손짓하며 바로 핸드폰을 들어서 나는 할 수 없이 사장실을 나왔다.

박희영의 말대로였다.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하거나, 사표를 내거나 해야 할 분위기.

아무리 박희택 사장이 자기는 아이돌 모른다, 어쩐다 해도 이것 하나는 알 것이다. 외부의 적이 팬덤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

아마 나를 외부의 적으로 만들 생각인 것 같다. 사람 좋은 얼굴로 허허 웃었지만, 굳이 이미지 나쁜 나를 합류 시키려고 애쓰는 이유는 그것뿐이다. 합류가 아니라, 합류한다는 썰만 나돌아도 퍼스트라이트 팬들은 나를 적으로 여길 테니까.

나는 답답한 마음으로 사장실을 나와서 앞에서 기다리던 퍼스트라이트의 매니저, 박중운을 만났다. 나에게 이것저것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 준 후, 박 매니저가 말했다.

“지금 1층 카페에서 자컨 촬영 중이거든요, 그거 끝나면 오늘 스케줄은 끝이니까 저랑 같이 숙소로 멤버분들 데려가시면 돼요.”

“네? 아.”

박 매니저가 왠지 민망해하며 말했다.

“카니발 두 대에 나눠타거든요. 사장님이 오늘부터 바로 운전시켜 보라고 하셔서요.”

같이 연습생 준비하던 아이돌의 차를 운전하려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매니저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내 꿈이었던 일에 대한 문제였다.

박희택 사장도 지금 내 기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본인도 똑같이 자기 꿈 대신 매니저 일을 선택한 사람이니까. 친구들이 내 꿈이었던 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을 나는 서포트만 하고 있을 때의 감정을 모를 리 없다.

중간에 박 매니저와 헤어져 혼자 1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매다가, TRV 회사 내부에 있는 컨트롤룸 앞을 지나쳤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언뜻 보기에도 초고가의 음악 장비가 구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늘어져 있던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어, 이형이 형이다.”

국선아 시절 우리가 받는 과제곡을 편곡하고, 디렉팅해 주던 작곡가 중 하나인 양이형이었다. 내가 문을 두드리니 누가 봐도 보름은 집에 못 들어간 것처럼 너저분한 양이형이 날 보고 문을 열었다.

“……해원아, 나 혹시 과로사했냐?”

양이형이 진지하게 물어서 내가 대답했다.

“형이 과로사했냐는 질문은 나도 죽었다는 뜻이잖아.”

“살아서는 널 못 볼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

“잠 깨고 현실로 돌아와.”

국선아 때 양이형이 스물다섯이었으니까 이제 스물일곱 살인데, 얼굴이 2년 사이에 팍 늙었다. TRV에서 많이 굴리나 보다.

나는 컨트롤룸을 기웃거리다가 냉큼 필요한 것부터 내뱉었다.

“형, 나 가이드 녹음할 때 녹음실 좀 몰래 쓰게 해주면 안 돼? 한 프로(3시간 30분 내외)만.”

“너 작곡해?”

“응, 하려고.”

“근데 너 노래 X나 못하잖아. 한 프로로 안 될걸?”

“이야, 되게 힘 난다.”

나는 비꽈서 말하고 다시 가서 자라고 손짓했다. 양이형은 들어가려다 나를 힐끔 돌아보고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국선아 때 편 못 들어줘서 미안하다. 형이 돼서.”

“형 아니어도 아무도 편 안 들어줬으니까 신경 쓰지 마.”

나는 말하고 양이형을 밀어 넣은 후 문을 닫았다.

국선아 방송 내내 내 이미지는 게으른 뺀질이였다.

내가 연습하는 장면은 절대로 방송에 나오지 않았고, 노래가 안 돼서 양이형을 붙잡고 밤새고 재녹음을 하던 것 역시 나오지 않았다.

양이형은 그게 방송에 나가지 않을 걸 알아서, 새벽 세 시에 내가 재녹음하는 모습을 찍어뒀지만 결국 어디에도 올리지 못했다.

작곡가가 방송사와 척을 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내가 노래를 좀 잘했으면 덜 욕먹었을 테니 실력에 대한 악플은 이제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어른이 되나 보다. 허허.

아무튼 양이형과 인사를 한 후 1층으로 가보니 여전히 자체 제작 예능을 촬영 중이었다.

이 바쁜 시기에 분량 30분짜리를 다섯 시간 동안 찍고 있는 걸 보니 정말 분량이 안 나오는 모양이다.

나는 카메라 뒤에 스태프들과 섞여 서서 촬영 장면을 봤다. 각종 취미 생활을 체험한 후, 지금 멤버들은 한마디도 안 하고 뜨개질만 하고 있었다.

결국 TRV 소속 PD가 끼어들어 말했다.

“너무 뜨개질에 심취한 것 같은데, 대화를 좀 하면서 갈까요?”

그러니까 멤버인 한효석이 민지호에게 말했다.

“넌 시간 써서 쓰레기를 만들고 있네.”

그 말에 다혈질인 민지호가 욱해서 대답했다.

“뭐. 니나 잘해.”

입을 떼자마자 싸운다 싶었는데 옆에서 다른 멤버들이 한마디씩 했다.

“지호야, 또 왜 그러냐.”

“쟤 또 급발진하네.”

시비는 한효석이 걸었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민지호를 몰아가니까, 민지호 본인도 뭔가 더 말하려다 말았다.

저 둘이 퍼스트라이트의 퍼포먼스 전반을 책임지는 멤버였다. 그런데 지금 퍼스트라이트의 무대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예술충의 기운을 생각해보면, 완전히 한효석이 주도권을 잡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게 실생활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한효석은 명문 예중, 예고를 거친 발레 전공자였다. 기본적으로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워낙 쑥스러움을 많이 타니까, 무대에서 에너지를 터트리는 타입인 민지호보다는 침착한 한효석 쪽으로 의견을 몰아주게 된 것도 이해는 간다.

그 위 형들이 셋 다 극단적인 마이웨이라 말릴 생각도 별로 없고, 막내인 박선재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이었다.

찐으로 싸우는 걸 촬영할 수는 없으니 PD가 다시 끊어가는 사이에 황새벽이 나를 발견했다. 황새벽이 카메라 뒤쪽에 있던 나한테 달려와서 물었다.

“진짜 왔네?”

“매니저 땜빵하러 온 거야.”

“우리 사장님 우기기 시작하면 못 꺾어.”

황새벽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물었다.

“그보다 너희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

“우리 원래 재미없잖아.”

“아니지. 네가 재미없는 거지.”

나는 황새벽의 말을 고쳐주고, 가방에서 펜을 꺼냈다. 그리고 이제 막 대학 졸업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나이의 PD에게 물었다.

“웃음 참기 해서 벌칙으로 얼굴에 낙서시키면 안 돼요? 저희 국선아 때 그거 많이 했는데.”

그래도 잠깐 코미디언인 부정태와 있다 보니, 머릿속에 그런 의식이 있다. 입이 안 되면 몸개그라도 하자.

그러니까 PD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멤버분들 얼굴 망치는 거 회사 허락받았어요?”

“나중에 제가 가서 싹싹 빌게요.”

수습이야 나중에 하면 되지만, 편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내 말에 PD가 어쩐지 간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웃음 참기가 시작되고도 한동안 말이 없다가, 중간에 손재주 없는 민지호가 밑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져 역삼각형이 된 목도리를 들었다.

“이거 맞아?”

아까까진 민지호가 뜨개질을 망친 게 안 웃겼는데, 웃지 말라니까 웃긴 모양이었다. 역삼각형 목도리를 들자마자 멤버 몇 명이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다.

원래 웃음을 참아야 할 때가 진짜로 괴로운 법이다. 웃음을 참자고 하면, 안 웃긴 말도 왠지 웃음이 나기 시작한다.

PD도 멤버도 선뜻 못 잡아내서 내가 말했다.

“효식이 웃었는데.”

내가 말하니까 한효석이 정색하고 말했다.

“저 안 웃었어요. 그리고 형, 저 효식이 아니고 효석이요.”

“그래, 효식이.”

“형, 저 효석이요.”

“응, 그러니까. 효식이.”

“형, 저 효석이요.”

우리 둘이 고집을 안 꺾고 같은 말을 반복하니까 스태프들 말로 다섯 시간 동안 한마디도 안 하던, 나랑 같은 학년이었지만 빠른인 안주원이 말했다.

“쟤네 또 시작이네.”

나는 원래 애들을 이름으로 부르면 왠지 덜 친한 기분이 들어서, 웬만하면 별명을 만들어 붙이는 편이었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늦둥이라 그런 것 같다.

그리고 한효석은 내가 효식이라고 부를 때마다 질색팔색을 했다.

“아무튼 웃었다니까, 효식이.”

“효식이 아니고, 안 웃었는데요.”

한효석이 우기니까 PD가 녹화한 화면을 재생했는데 확실히 웃었다. 그걸 보자마자, 민지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펜을 들어서 한효석의 이마에 만화적인 힘줄을 그렸다. 그리고 그런 한효석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박선재는 거의 오열하는 표정으로 허공을 보다가 결국 터져서 한효석이 펜을 들고 다가갔다.

몸개그의 성능은 괜찮았고, 웃참 시작 후 채 15분도 되지 않아 여섯 명 모두의 얼굴에 낙서가 생겼다. PD가 나에게 소곤소곤 말했다.

“몇 시간을 촬영했는데, 지금 찍은 15분이 다 들어가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PD의 표정은 분명 한바탕 욕이 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잘 참았다. 오늘 진짜 힘들었나 보다.

곧 뜨개질이 끝나고 멤버 여섯 명이 각자 자기 작품을 프레젠테이션했다. 조용히 만든 것에 비해 여섯 명 다 도대체 뭘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끔찍한 완성품들이었다. 황새벽이 굳이 형광 실을 골라서 만든 목도리를 들고 나왔다.

“저는 약간 클럽에서 쓰는 목도리를…….”

“수세미 아니에요?”

“클럽에서 목도리를 왜 해요?”

멤버들이 태클을 거는 중에 조용하던 안주원이 한마디 보탰다.

“숙소에 수세미 떨어졌으니까 잘라서 쓰면 되겠다.”

무뚝뚝하던 사람이 헛소리하니까 다시 웃음이 터졌다. 멤버들의 얼굴에 낙서도 늘어났다.

그러다 민지호가 아래로 갈수록 쪼그라드는 데다 다른 멤버보다 현저히 짧은 목도리를 들고나오자 멤버들이 미리 웃음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와, 역삼각형이다.”

“멋있어여.”

멤버들의 추임새 속에서 자신 있게 걸어 나온 민지호가 목도리를 들며 말했다.

“제가 목표한 그대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뭔 소리야.”

황새벽이 어이없어서 되묻자 민지호가 날 티 가득한 얼굴로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이걸 한 개 더 만들어서, 양쪽을 붙여서 고깔모자로 만들어서 쓸 겁니다.”

난 뭐가 웃긴지 모르겠는데, 그 근본 없는 드립이 한효석의 취향을 저격했는지, 한효석은 엎드려서 거의 울고 있었다. 사이는 나쁜데 개그 코드는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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