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0화
아티스트 보호, 특히 한효석의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촬영이 종료된 것은 밤 아홉 시였다.
온종일 찍어서 1회분 나왔다는 사실에 퍼스트라이트도 PD도 아쉬워했지만, 동시에 1회분이라도 나왔다는 것에 만족했다.
나는 낙서한 멤버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공식 계정을 관리하는 직원에게 바로 보냈다. PD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들이 나를 무지하게 고마워하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퇴근을 당겨줬으니 이 고마움은 같은 현대 사회인으로서 겸손함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반대로 낙서를 지워야 하는 스타일리스트 이예영은 여섯 명 얼굴을 원상 복귀시킬 일이 피곤했는지 지나가다가 내 등짝을 한 대 퍽 쳤다.
“왜 애들한테 펜은 줘가지고.”
“아, 죄송해요. 근데 진짜 아파요.”
내가 등을 쓱쓱 문지르며 아픈 시늉을 하는데 이예영이 인상을 쓰더니 나에게 물었다.
“근데 해원이 아까부터 왜 이렇게 몸을 떨어? 추우면 옷 하나 빌려줄까?”
아무래도 스타일리스트라 내 옷 상태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소매를 당겨서 떨리는 손을 감추고, 몸을 숙여서 이예영에게 귓속말했다.
“카메라 많아서요.”
국선아 때부터 쭉 봐오던 이예영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숨쉬기 힘든 건 카메라가 많은 곳에 가면 늘 있는 일이다.
박종렬 엔터 사람들은 처음부터 무대 공포증+대인기피증 히키코모리를 데려왔다는 인식이 있어서 카메라가 있으면 은근히 신경을 써줬다.
하지만 TRV에서는 그런 걸 기대할 수 없다. TRV가 좋소적인 부분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가족적인 박종렬 엔터에 비하면 확실히 엔터계 회사다웠다. 모든 케어는 아티스트에게 집중되어 있고, 직원은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면에서.
낙서까지 다 지우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내가 운전을 하려니까 민지호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형 매니저로 온 거 아니잖아.”
“일단 타봐.”
박희택 사장을 만난 후로, 어쩌면 카메라 앞에 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압박을 가지고 자체 예능 촬영 현장에 있어보니까 확실히 알겠다.
나는 절대로 카메라 앞에 못 선다. 그냥 졸도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인터넷 속에서 사람들은 나를 정해원이라는 이름보다 국혐으로 많이 부른다.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 방송 속의 ‘국민이 혐오한 아이돌’.
한창 히키코모리 생활을 할 때는 국도 못 먹었다. ‘국’자가 들어간 것만 봐도 힘들었다. 국어도 못하면서 스트레스는 아주 국어적으로 받는다. 인간이 좀 덜된 것 같다.
민지호가 차에 타려다가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
“그럼 난 연습실 갔다가 갈게.”
멤버 여섯 명 중 네 명이 미성년자고, 남은 두 명도 운전면허가 없다.
그러니까 얘네가 새벽 연습을 하면 내가 기다렸다가 숙소를 데려가야 한다는 말이다. 매니저로서 당연하긴 한데, 갑자기 말하니까 좀 울컥한다.
“너 내가 만만해서 부려 먹는 거지?”
“약간?”
“야이씨.”
“저 이따가 좀 데리러 와주심 평생 감사할게요, 형님.”
확실히 아는 사람이 오니까 편하긴 한가 보다. 내가 참아야지…….
나는 안 보고 싶은 애교를 떠는 민지호에게 연습실로 가라고 손짓했다.
차에 타 있던 박선재도 내심 연습실에 있고 싶었는지 냉큼 따라가고, 셋 중 둘이 가버리니 결국 황새벽도 다시 내렸다. 그러고 나니, 다른 차에 타고 있던 나머지 셋도 우르르 내려서 연습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박중운 매니저가 멋쩍게 나에게 말했다.
“아, 멤버분들은…… 연습하고 싶으셨으면 말을 해주시지.”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황새벽이 문제예요. 걔가 리더인데, 애들 의견 있으면 조율해서 형한테 말해줘야지.”
“와씨…….”
매니저 마음은 매니저가 안다고, 내 말에 박중운 매니저가 감동해서 내 손을 붙잡고 악수를 했다.
박중운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멤버분들 한 번 연습 시작하면 꼭 새벽까지 하니까, 어디 찜질방이라도 가서 자고 와요.”
박 매니저가 그렇게 말하고 본인이 찜질방으로 떠났다.
나는 곧 멤버들에게 필요한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신청받아서 사러 나갔다.
밖에서 몇 바퀴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우다가 에너지 드링크와 과자를 종량제 봉투 두 개 꽉 차게 사서 돌아왔는데 연습실 밖으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안을 보니 멤버들이 런을 돌리고 있었다.
원래 곡에 인트로를 편곡해 넣어서 안무를 변형했는데, 기본적으로 다들 춤을 잘 춰서 그런지 순식간에 몸에 익혔다.
활동 기간 내내 정신없이 달렸는데, 컨텐츠 촬영을 하고도 아직 연습할 체력이 남아 있다는 게 대단하다. 나이 덕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요즘 술에 찌들어 살던 나에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돼서, 간식을 들고 들어가려는데 민지호가 바로 다시 음악을 틀며 말했다.
“형들, 우리 중간에 그…… 따라라라따 따라 띠띠띠리리 하고, 여기서 지금 우리가 한 약속은 영원해, 여기 이어지는 부분에 안무 딱 하나만 넣으면 안 돼? 국선아 때 해원이 형이랑 같이 짠 건데.”
민지호가 말하면서, 자기가 말한 부분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나와 짠 페어 안무를 쪼개 넣기 시작했다. 사실 뭐 같이 짰다기보다는 민지호가 짜고, 내가 같이해 준 수준인 안무였다.
완전히 다른 음악에 맞춰 짠 안무를, 또 다른 음악에 끼워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민지호같이 욕 나올 정도로 천재인 놈들은 그냥 머릿속으로 대충 생각만 해도 그걸 맞춘다.
하, 이기적인 천재 놈들…….
민지호가 안무를 마무리하고 물었다.
“어때? 하고 싶지? 가사랑 어울리잖아, 솔직히.”
그런데 다들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민지호가 짜는 안무는 기본적으로 박자도 일반인이 가늠하기 어렵게 쪼개고, 동작이 단순해 보이는 부분은 맛을 내기 어렵다. 민지호가 추는 걸 보면 뭘 원하는지 알겠는데, 내가 추면 안 되는 거다. 그러니 포기하게 된다.
만약에 대체할 사람이 없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하겠지만 바로 옆에 순수 예술가인 한효석이 있었다. 멤버들 입장에서도 FM인 한효석이 퍼포먼스를 주도하는 것이 오히려 편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 좀. 우리도 도전적인 거 해보자.”
민지호가 이번에는 눌리지 않고 한 번 더 우겼다.
“해원이 형 안무 무대에 올려주고 싶단 말이야.”
……나를 팔아먹으면서. 이 새끼.
아무튼 그게 효과가 좀 있어서, 황새벽부터 ‘해볼까?’ 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그리고 말이 없던 한효석이 말했다.
“해원이 형 허락은 받았어?”
“아니. 아직.”
“같이 짰으면 허락받아야지.”
“받고 올게. 좀만 기다려 봐.”
민지호가 장담했다.
그리고 영감은 번개처럼 갑자기 왔다.
나는 그때부터 바로 두 손의 짐을 내려놓고, 연습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핸드폰을 꺼냈다.
작곡 공부를 시작한 이후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만들지 못하던 작곡 소재가 떠올랐다. 나는 급하게 핸드폰 어플로 생각 나는 멜로디를 찍었다.
아마 민지호를 센터로 이동시키겠다는 뚜렷한 목적이 영감이 떠오르게 만든 것 같다. 나는 입으로 곡을 흥얼거리며, 제목을 생각했다. 지난번에 생각했던 키워드 중 하나였다.
‘원 팀, 원 골.’
장담하는데 민지호는 좋아 미치고, 나머지 다섯 명은 유치한 동시에 올드해서 안 한다고 드러누울 제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제목을 떠올리고 나니까 멜로디가 쭉 떠오르고, 심지어는 가사도 어느 정도 생각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멜로디를 찍고 가사를 쓰던 중간에,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퀘스트 발생]
[1장. 원 팀, 원 골.]
[영상 조회 수 20만을 달성하세요]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의 B급 티켓이 주어집니다]
응? 20만?
오피셜 뮤직비디오를 제외하고는 넘기 어려운 숫자였다. 퍼스트라이트의 멤버들의 개인 조회 수를 생각해보면 완전 불가능이고, 자체 예능도 최근 편은 잘 나와야 2~3만이다. 10만도 에베레스트 등반 급의 어려움이었다.
직캠도 누구 하나 제대로 터져야지 나올 숫자인데…….
나는 머리를 휘저었다. 지금 다른데 정신 쏟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멤버들에게 간식을 주는 것도 잊어버리고, 연습실 벽에 기대앉아서 작곡에 몰두했다.
* * *
박중운 매니저의 말대로 연습은 새벽녘에야 끝났다. 나는 새벽 세 시에 집에 들어왔다
해외 스케줄 이후 처음으로 내 방에 누웠는데 다섯 시간 만에 다시 일어나서 나가야 한다.
머리 대면 잠들 것 같았지만 오늘 작업해놓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 뒤통수를 손으로 때려가며 잠을 깨고 아까 핸드폰에 저장한 것들을 데스크탑으로 옮겼다.
피아노를 오래 배워서 기본기가 있으니까 확실히 곡 작업이 수월했다. 거기에 아버지가 기타를 워낙 오래 쳐서, 나도 옆에서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도 아주 크게 도움이 됐다.
“배우면 다 쓰긴 하네.”
그렇게 안 떠오르더니, 급하니까 가사와 컨셉까지 같이 떠올랐다.
멤버 절반 이상이 고등학생인 지금 꼭 해야만 하는 하이틴 컨셉이었다. 그것도 아주 학교에서 잘나가는 무리 느낌으로.
“서드 세컨 퍼스트 라라라라이트…….”
이 새벽에 혼자 후크를 짜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내가 진짜 못하는 게 두 개가 있는데, 하나가 노래고 하나가 작문이다. 그래도 일단 계속 써봤다.
“불꽃이 돼, 이 무대를 태워……. 아니야, 좋아. 잘하고 있어. 첫 곡이 이거면 되지.”
나는 알 수 없는 현타와 싸우며 가사를 계속 써 내려갔다. 대충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 목표에 닿을 수 없으니 같은 곳을 향해 달리자는 아주 내용이었다. 지금 퍼스트라이트에게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
다른 건 다 꾸역꾸역 채웠는데, 제일 큰 문제는 랩 파트였다.
[나는 멋져 너도 멋져]
나는 내가 쓴 랩을 보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디 머리 박고 죽고 싶다.
나와 다르게 퍼스트라이트의 메인 랩퍼인 신지운은 무지하게 감성이 풍부한 놈이니까, 걔 믿고 대충 채웠다고 변명해야겠다.
그렇게 아우트라인만 잡고 작업을 멈췄다. 작곡을 이론으로 배울 때는 창작 같아 보였는데, 실제로 하고 있으니까 그냥 노가다였다.
어느 정도라도 되는 퀄리티를 만들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A&R팀 미팅 전까지 완성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게다가 밤을 새워서 머리도 더 이상 안 돌아간다.
결국 작업을 멈추고, 파일을 막 저장했을 때, 상태창이 보였다.
[‘원 팀 원 골’의 히트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L급 히트곡 제작 확률 0%
S급 히트곡 제작 확률 0%
A급 히트곡 제작 확률 0%
B급 히트곡 제작 확률 0%
C급 히트곡 제작 확률 0%]
안 물어봤는데 굳이 왜 알려주는지 모르겠다.
[‘영상 조회 수 20만’에 도전 중입니다]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의 B급 티켓이 주어집니다]
애초에 기대도 안 하긴 하지만 0%라니까 의욕이 살살 녹는다. 하긴, 나는 멋져, 너도 멋져가 히트하면 현대 대중음악의 후퇴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