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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1화 (1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1화

박희영의 스케줄이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바빴다면, 퍼스트라이트는 스케줄이 촘촘해서 바빴다.

일단 연습 스케줄도 무지하게 많고, 아직 신인이라 X이앱 스케줄을 전부 회사에서 관리해 주고 있기 때문에 좀 빡세다, 싶은 주기로 X이라이브를 진행했다.

멤버 개인이 국선아로 만든 인지도도 있고, 인지도만큼 껍데기도 좋기 때문에 화보도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러다가 하루. 금요일은 모든 스케줄을 비웠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학기 당 하루라도 학교에 얼굴을 비추게 하기 위해서였다.

“형, 나 양말 좀 빌려줘!”

“선재야, 우리 넥타이 바뀐 것 같은데.”

“공연고 이쪽, 중앙예고랑 미대생 이쪽.”

남고생 네 명이 동시에 등교하니 무지하게 정신없었다.

체력 없는 황새벽은 자고, 미대생 안주원은 그 와중에 애들 교복 핏을 보고 있었다. 공연고로 가는 세 명은 박 매니저가 태우고, 나는 한효석과 안주원을 태웠다.

중앙예고에 도착해서 한효석이 먼저 내렸다. 퍼스트라이트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학교로 들어가는 걸 보니 예고인데도 비율이 독보적으로 좋았다. 백 미터 밖에서 봐도 파워 연예인이다. 쟤는 연예인을 안 할 수 없는 방법이 없었겠다.

저런 애가 있어도 안 뜰 팀은 안 뜨나 보다.

그리고 차로 돌아와서 조수석에서 자고 있는 안주원을 태우고 중앙예고에서부터 한 시간이 더 걸리는 대학교로 향했다. 안주원은 어릴 때부터 원래 미술을 쭉 해왔고, 공백 기간 동안 산업디자인과에 들어갔다.

안주원을 흔들어서 깨우니까 눈을 떠서 학교를 보고 무지하게 좋아한다.

아니, 좀 지나치게 신났는데?

나는 뭔지 모르게 불길해서 말했다.

“중운이 형한테 전화해, 택시 타지 말고.”

“어, 알았어, 알았어.”

그리고 내가 따라 내릴 것도 없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는 사람을 찾아서 달려가 어깨동무를 하고 사라졌다.

내내 한마디도 안 하던 안주원이 학교에서 저렇게 발랄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적성이 대학생인가 보다.

* * *

간만에 방학 끝나고 애들을 학교 보낸 부모의 마음처럼 상쾌했다.

캬, 이래서 애들은 학교를 가야 돼, 부모의 휴식을 위해서…….

여유가 생기자마자 나는 회사 근처, 국선아 시절 편곡자인 양이형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동갑이 불러도 형인 이형이 형.”

연락받고 기다리던 양이형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 저 새끼 얼굴 보니까 더 피곤해.”

“아잉.”

내가 그래도 연습생 생활+국선아 시절까지 보내서 애교는 전혀 어렵지 않다. 남의 눈에 안 귀여운 게 문제지만 그건 내 책임이 아니고. 양이형이 역겨워하며 말했다.

“너 방금 전까지 고딩이었지? 여기가 학교였으면 이거 학폭이야.”

그렇게 짜증 내면서도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확실히 모든 장비를 오로지 싼 가격만 보고 맞춰서 작업하던 나와는 급이 다른 작업실이었다.

지금까지 한 작업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들려주려니까 민망했다.

내가 바로 음악을 못 트니까 양팔과 목이 전부 문신인 양이형이 소파에 누워서 인상을 썼다.

“야, 뭐 해. 나 시간 없어.”

나쁜 형은 아니지만 무섭긴 했기 때문에 빨리 음악을 플레이했다. 그리고 이미 다 외운 가사지에 얼굴을 처박고 노래를 불렀다.

양이형은 소파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음악을 중간에 끊지도 않고 내 첫 자작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곡이 끝나고 양이형이 한 마디도 없어서 내가 주절주절 변명했다.

“랩은 신지운 믿고 대충 썼어.”

“진짜 희한하다. 곡은 발퀄인데 이상하게 그럴듯해.”

양이형이 말을 이었다.

“이걸 A&R에 보낼 정도로 만들려면 싹 다 수정해야겠는데.”

“당연하지.”

“회의 열 시간 남았잖아.”

“그래서 혼자 못하니까 가져왔지.”

양이형은 의외로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의욕이 생긴 얼굴로 말했다.

“일단 앉아봐.”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몇 있는 것 같은데. 드문드문 이용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선아 시절의 장점이 하나는 있다.

스케줄상 이미 초주검 상태였던 양이형은 옆에서 내가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요구하는 걸 들어주다 중간에 완전히 뻗었다. 그러다 담배를 꺼내니까 귀신같이 상체를 일으켰다.

“작업실에서 담배 피우지 마.”

“여기서 안 피우지, 당연히. 나갔다 올 테니까 좀 일어나. 더 봐준다며.”

“너 때문에 의욕 없어. 저렇게 생긴 놈이 천재기까지 하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쳐서 빨리 익히는 거라니까.”

“악기 배운 거랑 영감은 별개지. 아는 놈이 저러니까 더 꼴 보기 싫어.”

양이형이 안 그래도 더러운 인상을 더 구기며 내가 메모에 적어 놓은 부탁들을 가리켰다.

“바라는 건 또 왜 이렇게 많아. 빡센데, 자연스럽게 빡센 느낌이 뭔 개소리야.”

“느낌은 알겠지?”

“전혀 모르겠다.”

“에이, 알잖아.”

나는 양이형과 대화하다가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작곡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최근들어 한 일 중에 제일 재미있었다.

머나먼 흡연 구역을 찾아가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는데, 하교 후에 소식 듣고 왔는지 그사이 민지호와 박선재가 와 있었다.

민지호가 흥분해서 말했다.

“아, 곡 좋은데? 내 취향인데?”

예상대로 민지호의 취향은 맞았다. 반면 옆에 박선재는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일단 관심을 가지며 말했다.

“해원이 형, 인트로 그거 넣어주면 안 돼? 시작할 때 우리 구호처럼 서드, 세컨, 퍼스트 한 다음에 턴 언 더 라이트.”

박선재가 목소리를 깔고 턴 언 더 라이트라고 말하자 민지호와 양이형이 동시에 터져서 낄낄거리며 박선재의 등을 두들겼다.

“어우, 좋은데?”

“지호 형, 형이 해봐. 목소리 긁는 거 잘하잖아.”

그리고 민지호가 확실히 긁는 소리를 잘 내서 더블링 녹음을 해보니 사운드에서 강렬한 열정이 느껴졌다. 다시 한번 듣고 나서, 민지호가 말했다.

“아, 근데 뭔가 트랙이…… 빡세긴 한데, 좀만 자연스럽게 빡세면 좋겠는데.”

그 말에 양이형이 정색하며 나와 민지호를 번갈아 봤다.

“짰냐?”

“안 짰어.”

내가 대답하는 사이에 민지호가 굴러다니던 펜을 집어 들더니 빈 종이에 글자를 끄적거렸다.

“그리고 해원이 형, 제목이 확 안 와. 바꾸자.”

[불을 켜]

그리고 동시에 상태창이 떴다.

[‘원 팀 원 골’의 제목을 변경합니다]

[제목 변경 ‘불을 켜’]

[‘불을 켜’의 히트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C급 히트곡 제작 확률 0%(+2%)]

처음으로, 히트곡 제작 확률이 생겼다. C급 2%여도 처음 뜨니까 마음이 찡하다.

확실히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곡 작업에 도움이 됐다. 이런 게 팀 작업이구나, 싶다.

혼자 하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내가 절대 생각해 내지 못할 것을 다른 사람이 채워주기도 한다.

양이형이 말했다.

“바로 가이드 녹음 하자. 너 노래 못해서 오래 걸려.”

그래서 바로 녹음에 들어가려던 그 타이밍에 전화가 걸려왔다.

가끔 핸드폰에 뜨는 번호만 봐도 불길함이 감지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랬다. 홍보팀 직원이었다.

-철 매니저님, 지금 인터넷 보셨어요?

“아뇨. 왜요?”

-링크 보내드릴게요.

링크를 눌러보니 트위터에서 리트윗이 1만 번 이상 된 글이었다. 다른 커뮤니티로도 옮겨지고 있는 듯했다.

[안모씨도 조작맴 맞는 듯]

[요즘 활동 보면서 점점 더 느끼는 게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실력이 너무 떨어짐.]

[팬들은 배우상이라 머글 표가 많아서라고 하는데 과연?]

[난 솔직히 나머지 다섯 명에 비해서 특출나게 잘생겼는지도 모르겠던데…….]

[솔직히 국선아 내내 활약 한번 없었는데 데뷔한 게 말이 안 돼]

[↳추측을 오피셜처럼 말하네]

[↳↳이상하다고 말은 할 수 있는 거 아냐?]

[↳루머 유포는 고소감임]

[↳↳입막음 무섭네ㄷㄷ]

국선아 조작 논란 이후 주기적으로 턴이 돌아오는 내용이었다.

그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박중운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박 매니저가 다급히 말했다.

-주원 씨가 연락이 안 돼요.

“……네?”

-아오씨, 미치겠네…….

나는 그대로 전화를 받으며 작업실을 달려 나갔다.

안주원이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아까 학교를 들어갈 때 본 안주원의 해맑은 표정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바로 학교로 달려갔다.

수상할 정도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지나가는 학생마다 붙잡고 산업디자인과 학생을 찾았다.

대학을 안 다녀봤으니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다가, 과방의 존재를 알고 나서 산업디자인과 과방을 찾아 달려갔다.

과방 안을 보니 게이밍 노트북을 펼쳐놓고 게임 하던 학생이 둘 있고 그 뒤에 침낭이 보였다. 내 얼굴을 알아본 학생들이 얼른 침낭 지퍼를 내리고 거기서 자던 안주원을 깨웠다.

다행히 안주원이 벌떡 일어나서 달려 나오는데 술 냄새가 좀 났다. 안주원이 유난히 우울해해서 딱 한 병 셋이 나눠 마신 거라는 학생들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안주원과 빠르게 차로 돌아갔다.

안주원은 빠른이라 아직 술을 마시면 안 되니 음주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 있는 과방에서 자고 있었다는 거였다.

안주원이 조수석에 앉자마자 술이 다 깨서 말했다.

“야, 미안하다.”

“뭐가 미안해. 네 인생 네가 잡치고 있는데.”

“…….”

“너 데리러 오는 건 원래 내 일이고, 사과할 거면 멤버들한테 해.”

그래도 어디 밖에서 뻗은 건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회사로 차를 모는데 안주원이 중얼거렸다.

“멤버들한테는 매일 한다, 매일. 그놈의 사과.”

뭔 소린가 싶었는데 안주원이 알아서 말을 이었다.

“나 춤도 노래도 별로잖아. 따라가는 거 X나 빠듯해. 맨날 미안하다는 거밖에 할 말이 없어.”

“…….”

조작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을 만큼, 안주원이 잘생긴 무능력자기는 한다. 지금까지 안주원이 확 화제가 될 만한 무대나, 장면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근데 같이 국선아를 찍은 입장에서는 그렇다. 안주원이 얼굴만으로 팬을 끌어모으는 게 이상할 게 없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대체로 개성 있게 잘생겼는데, 그중 안주원은 유난히 정석으로 잘생겼다.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평소에는 배우상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이돌 메이크업을 하고 컬러 렌즈를 쓰는 것도 무지하게 잘 받았다.

안주원이 중얼거렸다.

“애초에 너 없었으면 국선아 초반에 떨어졌어. 네가 맨날 연습 시간 쪼개서 나 도와줬잖아.”

“팀이니까.”

“그러니까. 넌 그랬지. 지금 퍼스트라이트 애들은 안 그래.”

“…….”

“하여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분위기 훨씬 안 좋아.”

안주원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나도 사람이 많이 썩었는지 쟤가 약한 소리 할 때 홍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주원에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그런 내용으로 작곡을 했어.”

지금 네 얘기 할 때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걸 알면서 나는 뻔뻔하게 밀고 나갔다.

“딱 네가 말한 그런 내용……인데, 다음에 들려줄게.”

이미 9시 회의까지 30분이 남았다. 회사에 도착하면 9시가 넘을 테니, 이번 회의에 곡을 넘기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차피 한 곡만이 선택받는 디지털 싱글에 이 곡이 들어가는 건 불가능할 거란 것도 알았다. 그러니 다음 기회라도 노려볼 생각이었다.

그때 다시 상태창이 떴다.

[‘불을 켜’의 히트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C급 히트곡 제작 확률 2%(+5%)]

왜 또 5%가 붙었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박선재였다.

-형! 주원이 형 찾았어?

“어, 지금 데려간다.”

-다행이네. 근데 형 없어져서 내가 그냥 대충 가이드 녹음했는데, 급하니까 바로 A&R팀 가져간다?

“……그래?”

인생사 새옹지마란 건 이런 건가 보다.

“막냉이, 근데 랩은?”

-아, 지호 형이 이 노래 너무 자기 취향인데 형이 쓴 랩까진 못 받아들이겠다고 비우래. 괜찮지?

랩을 지워서 5%가 붙었나? 그건 좀 말 된다.

그래도 5%까진 안 붙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잘됐다.

“이야, 고맙다, 고마워.”

안주원 때문에 빡치던 마음이 바로 회복됐다. 전화위복이다.

그렇게 내가 회사로 돌아가는 중이던 9시 정각. A&R팀과 퍼스트라이트 멤버 다섯 명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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