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2화
9시 정각. TRV 소회의실.
회의실은 A&R팀 직원들과 급하게 오고 있는 안주원 제외 다섯 명의 멤버들로 북적북적했다.
직원들과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마주 앉은 상태로, A&R팀 팀장, 박선혜가 말했다.
“멤버분들이 이번에 주신 의견이…… 많지 않았는데요.”
언제나처럼 깐깐한 표정과 또박또박한 말씨의 박선혜 팀장이 말을 이었다.
“우선 저희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서 3곡을 선정했어요. 먼저 들어보시고. 그 후에 가져오신 지인분 데모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의견이 많지 않았다는 것도 돌려 말한 거지, 사실 퍼스트라이트 멤버의 의견이랄 것이 없었다.
의견 내놓으라고 하면 멤버들 전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이 없다가, 기껏 A&R팀이 100곡 가까이 되는 데모를 듣고 또 들어가며 3곡을 추려놨더니, 한번 들어보시라며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지인이 만든 곡을 함께 들어보라고 가져온 상황이었다.
박선혜 팀장은 온갖 진상들과 충돌하며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 그 짜증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팀원들은 표정에 불만이 드러나 있었다.
박선혜 팀장이 말했다.
“이제는 퍼스트라이트가 이런 그룹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줄 시기라고 생각해요. 세 곡을 들으면서 오늘 제일 신경 써주셨으면 하는 부분이 멤버분들이 생각하시는 퍼스트라이트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 건가 하는 부분이거든요.”
멤버들이 듣고 있다는 시늉으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공교롭게도 세 곡 모두 영어 제목이었고, 곧 알파벳 순서대로 세 곡이 회의실에 흘러나왔다.
나머지 두 곡은 한국어 가사까지 완벽하게 갈무리된 곡이었지만, 한 곡은 아직 가사가 없어 적당히 영어로 흥얼거린 데모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한민국 대표 프로듀서, 강진기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사실 블라인드라고 볼 수도 없었다.
A&R팀 내부에서는 다음 디지털 싱글곡이 강진기의 곡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이미 수도 없이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것이 강진기였다. 강진기의 곡은 이지리스닝 스타일로 무난한 동시에 최선의 선택이었다. 예의상 퍼스트라이트의 정체성이니, 뭐니 하는 말을 했지만 내부에서는 거의 확정이 난 상태였다.
세 곡이 끝나고, A&R팀 박건훈이 말했다.
“자, 그럼 1번 손들어 볼까요?”
1번 곡에는 멤버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2번 역시 마찬가지였고, 강진기의 곡인 3번에서 전원 손을 들었다.
이제 진짜 확정이구나. A&R팀 직원들은 생각했다. 이럴 때는 멤버들이 고분고분한 게 은근 장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걸로 우기지 않아서.
“회의가 금방 끝나겠네요, 의견이 일치해서.”
박선혜 팀장이 말하며 슬슬 회의를 끝낼 분위기를 잡고 있을 때, 황새벽이 손을 들고 말했다.
“아직 안 들은 곡 있는데요.”
황새벽은 팬들에게 퇴폐미가 있다는 소리를 듣는 멤버였다. 옆에서 볼 땐 그냥 늘 사람이 좀 피곤한 상태였다.
회의가 길어지면 귀찮고 피곤할 테니까 그냥 잊어버린 척하고 넘어가면 황새벽의 성격상 말 안 꺼내고 슬슬 넘어갈 수도 있겠구나, A&R팀 직원 대부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박선혜 팀장이 별수 없이 말했다.
“그럼 A&R팀에서 3번 곡을 픽스하는 방향으로 다시 한번 회의를 해볼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벽 씨가 가져온 데모 한번 들어보죠.”
“저 이거 곡 소개도 가져왔어요.”
황새벽이 종이에 급하게 적은 곡 소개를 건넸다. A&R팀 박건훈이 곡 소개를 받아서 한번 읽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박선혜 팀장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모두 합심해 무대를 찢겠다는 내용의 곡입니다]
‘아니……. 뭐야?’
곡 소개가 과격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TRV 직원들이 생각하고 있는 퍼스트라이트의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TRV 직원들은 모두, 퍼스트라이트를 내성적이고, 하나같이 곱게 자란 멤버들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플레이된 데모는 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악바리 같은 근성과 열정, 야망이 있었다.
[서드 세컨드 퍼스트 라라라이트]
[나는 불꽃이 돼 이 무대를 태워(태워)]
[불길 속에 던져봐 우릴 더 날뛰게만 해]
[죽일 듯이 짓눌러 볼케이노처럼 터지게]
[우린 불꽃이 돼]
[불을 켜 불을 켜 불을 켜]
[우린 불꽃이 돼]
[계획은 하나 이 무대를 태워]
‘……빡센데?’
‘난해하고 빡세다.’
‘빡세네.’
박선혜 팀장은 표정만 봐도 팀원들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나같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데모에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건 두 번째로 재데뷔를 하는 그룹이라기보다는 이제 갓 데뷔한 낯선 얼굴의 신인들에게 어울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타의로 해체되어 2년을 기다리며 가다듬은 듯한 날카로움이 어울리는 느낌도 있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100개의 데모와 확연히 다른 스타일이라 A&R팀은 순간 코멘트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반면 멤버들은 그때야 입이 터졌다.
민지호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난 진짜 이런 거 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한효석이 말했다.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에요.”
“나도 아니긴 한데.”
정작 곡을 가져온 황새벽이 중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팀장님이 정체성을 생각해서 들어보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이게 퍼스트라이트의 정체성 같아요.”
그러자 한효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곡이 취향이 아닌 것과 별개로 멤버들은 모두 이게 퍼스트라이트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외의 결과였다.
뒤늦게 가져온 데모곡 때문에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을 우유부단한 진상으로 인식했던 박선혜 팀장은 곡을 듣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A&R팀이 데모곡을 듣고, 타이틀, 트랙리스트를 짜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 그룹의 색깔은 본인들이 드러내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회사가 전부 해줄 수는 없었다.
“일단 한 번 더 들어보죠?”
박선혜 팀장은 팀원들이 코멘트를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음악을 다시 플레이했다.
가이드 녹음은 막내인 박선재가 했다. 미성이라 예상 못 했는데, 이런 강렬한 곡에 입혀져 주는 갭이 의외로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듣고 있는 중에, 문 쪽이 좀 소란스러워서 돌아보니까 회의가 다 끝나갈 때야 도착한 안주원과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한 사람이 더 보였다. 얼굴이 전혀 안 보이는데도 연예인이라는 확신이 드는 남자였다. 그러다가 유리 너머로 황새벽에게 손짓할 때 얼굴이 보였는데, 아는 얼굴이었다.
‘정해원.’
퍼스트라이트를 재데뷔 시킬 계획을 세우며 국선아를 몇 번씩 돌려본 박선혜 팀장은 바로 정해원을 알아봤다.
그리고 문 쪽으로 간 황새벽과의 대화를 엿들으며, 이 곡이 정해원의 곡이라는 걸 알았다.
‘이걸 정해원이 작곡했다고?’
국선아 이후 박선혜 팀장도 국혐이라고 불리던 정혜원이 히키코모리 생활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척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만들었다기엔 이 곡이 지나치게 뜨거웠다. 가장 신기한 것은 악플 때문에 숨어버린 사람이 느꼈을, 세상에 대한 분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로지 청춘들이 신이 나서 숨이 턱까지 차게 달리는 발소리만이 느껴졌다.
그건 참 아이돌스러운 부분이라고 박선혜 팀장은 생각했다.
* * *
나는 회의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들어가려는 안주원을 막았다.
“야, 봐봐. 술 마신 거 티 나나 보게.”
“티 나냐?”
안주원이 돌아봤는데 다행히 그사이에 술도 완전히 깨고, 향수도 뿌려서 전혀 술 마신 사람 같지 않았다.
그때 하필 회의실에서는 딱 내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시 한번 박선재가 가이드를 떠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후렴이 흘러나왔다.
[서드 세컨드 퍼스트 라라라이트]
[나는 불꽃이 돼 이 무대를 태워(태워)]
“어?”
이건 전부 가상 악기로 급하게 만든 곡이었는데, 기타 사운드가 좀 달랐다.
내가 원하던 그 느낌이었다. 자연스럽게 빡센 느낌.
나는 기타 소리만 들어도 누가 녹음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밴드부 출신인 황새벽이었다.
내가 황새벽한테 손짓하니까 바로 문 쪽으로 왔다. 황새벽이 나와서 안주원 어깨부터 툭 쳤다.
“주원아, 잘하자.”
“어, 미안해.”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잘못한 안주원이 바로 사과했다.
나는 황새벽에게 물었다.
“기타 네가 녹음했어?”
“민지호가 빡센데 자연스럽게 빡센게 필요하다잖아. 그래서 이거 녹음해보니까 이거 맞대. 진짜 맞아?”
“어, 맞아. 완전 맞아. 고맙다.”
양이형 작곡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런 놈들이 진짜 천재라고. 하, 빡친다…….
아무튼 히트곡 가능성이 5%가 늘어난 건 이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 때문이 분명하다. 곡은 아까 내가 안주원을 찾으러 뛰쳐나가기 전보다 훨씬 풍성해져 있었고, 후렴구의 존재감도 뚜렷해졌다.
짧은 대화 후에 안주원이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한 후 자리에 앉고, 황새벽도 들어가서 앉았다.
나는 여기서 얼쩡거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복도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힐끔 안을 보니까 음악이 끝나고 뭔가 시끌시끌했다. 그러다 딱 봐도 A&R팀 대빵인 것 같은 여자가 내 쪽을 노려봤다. 꺼지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얼른 자리를 피해서 다시 회사 근처 양이형의 작업실로 돌아갔다. 작업하던 양이형이 짜증 내며 말했다.
“아, 왜 또 왔어, 네 거 끝났잖아.”
“여기가 마음이 그렇게 편하더라고. 형 할 거 해, 난 누워서 게임 할게.”
TRV 회사 어디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양이형 작업실은 구박받으면서도 마음이 편하다. 나는 작업실 뒤 소파에 드러누웠고 양이형은 욕을 실컷 한 후 다시 자기 작업에 열중했다.
밖에서 느낀 불안과 압박감은 작업실까지 따라 들어오지 않는다. 여기는 세상과 상관없이 오로지 음악만 하는 곳이니까. 여기에 도피처가 있다는 생각이 날 안정시켰다.
물론 작업실 주인인 양이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나도 내 작업실을 마련해야겠다. 좀 많이 굶지 뭐.
소파에 누워서 잠깐 자려고 했는데 정신이 점점 더 맑아지기만 하고 잠이 안 온다. 내 곡이 채택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텐데 왜 이렇게 쫄리는지 모르겠다.
거기 누워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있었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내가 일어나서 양이형의 뒤통수에 말했다.
“형, 그래도 안 됐으면 안 됐다고 말을 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A&R팀이 자선사업가냐. 원래 잘 안 해줘.”
원래 그렇구나.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적응해야겠다.
그나저나 회의 끝나면 숙소로 가야 되니까 연락을 할 텐데 그것도 없다. 안 되겠어서 작업실을 나와 황새벽에게 전화를 했다.
“회의 끝났어? 데리러 가?”
-아직 안 끝났어. 지금 잠깐 쉬는데 마실 것 좀 사다주라.
“어, 알았어. 근데 아직도 회의를 한다고?”
-지금 10분 간격으로 다수결을 세 번을 했는데, 다 과반수가 안 넘어서.
엄청 치열한가 보다.
내가 다시 물었다.
“뭐랑 뭐 남았는데?”
-강진기 선배님 거랑.
“오, 너네 강진기 선배님 곡도 받냐.”
-네 거.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