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3화
내가 편의점에서 마실 걸 사 들고 도착했을 때는 마지막 다수결 중이었다.
“이번에도 과반을 못 넘기면 다시 일정 잡아서 회의를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너희 이 짓을 한 번 더 하고 싶냐라는 본의를 담아서 박선혜 팀장이 말하고 난 후, 다시 다수결이 시작됐다.
“강진기……. 아니, 1번 곡으로 하실 분.”
퍼스트라이트에서 두 명, A&R팀 직원 다섯 명 중에서 네 명이 손을 들었다. 또다시 6:5였다.
A&R팀 직원들은 어차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피곤해하면서도 새로운 음악으로 회의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은근히 있었다. 반면 이런 회의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10대 후반에서 20대 극 초반의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집중력이 바닥나 회의실 바닥에 그냥 드러누웠다.
나는 누워 있는 멤버들에게 편의점에서 사 온 봉투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이스크림, 사이다, 커피 있어.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마실 거 사다 달라더니 전부 아이스크림에 손든다. 이럴 땐 참 단합 잘 된다.
멤버들에게 각자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여줬다. 민지호가 메로나를 받으며 말했다.
“아니, 한효석은 눈치가 없으니까 그렇다 치고.”
“나 뭐.”
“넌 나랑 안 맞으니까 됐고, 지운이 형은 왜 그러냐. 형 취향은 불을 켜 아니야?”
민지호의 말에 다른 멤버들도 동의했다. 확실히 체력이 한창 좋을 때라 아이스크림 하나 물려주니까 다시 살아나서 한마디씩 했는데, 신지운은 안 들리는 척 눈을 감고 있었다.
평균적으로 장신인 퍼스트라이트 멤버 중에서도 최장신인 신지운은 유난히 여기 회의실에 있는 일곱 명에게 애착이 강하던 국선아의 출연자였다. 혹시 다 데뷔를 못 해도, 국선아 프로젝트 그룹의 계약이 끝나는 2년 뒤에는 어떻게든 같은 팀이 되자고 말했을 만큼 한 번 정 준 사람은 어떻게든 끝까지 끌고 가보려는 성향이 강했다.
신지운은 국선아 직후에도 나에게 꾸준히 연락하고, 집에도 몇 번 찾아왔었다. 그랬는데 연락도 없이 매니저 일을 하고 있으니까 무지하게 심하게 삐졌다. 내가 매니저로 온 후 일주일 내내 내 말에 대답 안 하는 것만 봐도. 멤버들도 눈치채서 지금 신지운에게 한소리를 하는 거였다.
아니, 삐지는 건 상관없는데 신지운이 랩메이킹을 안 해주면 이 곡 버려야 되는데.
어쨌든 아쉬운 내가 미안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신지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야.”
“…….”
“야야.”
“…….”
“네가 랩 써줘야지.”
정도 많거니와 상당히 단순한 놈이다. 랩 써달라니까 금방 입술이 씰룩거린다.
“아, 써줘. 내 거 반대하지 말고.”
그러니까 신지운이 대답했다.
“곡이 별로야.”
“어쩌라고. 그냥 찬성해.”
“우리가 부를 건데 뭘 그냥 찬성해.”
“하라고.”
“아, 인성이 왜 저러냐.”
솔직히 난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형, 그까짓 거 이겨내 보자, 아자아자, 이 지랄 하는 게 그때는 무지하게 짜증이 났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다 씹혀가면서 꾸준히 연락한 게 좀 고맙다.
여전히 서먹하긴 하지만 일단 대답은 하니까 좀 지나면 해결될 거다. 신지운은 남 망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니까 랩도 알아서 써줄 거고.
한효석이 계속 ‘불을 켜’를 반대한 게 좀 민망한지 날 보며 말했다.
“저도 ‘불을 켜’로 활동을 해야 할 것 같긴 한데요, 솔직히 다른 후보곡이랑 퀄리티가 너무 차이나요.”
“그건 그렇지.”
이건 너무 맞는 말이라 나 말고 다른 멤버들도 무언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다음 회의 언제야?”
황새벽이 대답했다.
“다음 주 수요일.”
“그때까지 계속 수정해 볼게. 한번 죽어보지 뭐.”
“맞다, 형.”
한효석이 다시 날 불렀다.
“가사 중에 ‘죽일 듯이’ 여기 바꿔야 돼요. 너무 세요. 심의 생각해야죠.”
“어. 알았어. 또?”
그러니까 박선재가 말했다.
“코러스! 새벽이 형님, 싸비 딱 한 번만 불러주시져.”
그래서 황새벽이 후렴을 부르니까 박선재가 코러스를 넣었다. 나도 나름 절대음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목소리로 못 내는 반면, 박선재는 그 소리를 목으로 낼 수 있었다. 한 번에 화음이 쫙 나뉘는 쾌감이 있어서 자기가 삐졌다는 걸 잊어버린 신지운 포함 멤버들이 전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여기 불을 켜 세 번 반복할 때 안무 이거 어때.”
민지호가 왼손 손바닥을 위로 보게 하고 오른손으로 성냥을 긋고 불어서 끄는 시늉을 했다. 다들 괜찮아하니까 금방 또 뿌듯해한다.
나는 핸드폰에 계속 아이디어를 메모했다. 대부분이 개드립이었지만 중간중간 쓸만한 것도 있다.
[‘불을 켜’의 히트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C급 히트곡 제작 확률 7%(+1%)(+1%)]
“넌 통과, 넌 안 통과.”
“기준이 뭐야?”
기준? 상태창.
나는 히트 가능성이 올라가는 의견만 확정했지만, 아닌 것도 적어 놓기는 했다.
일곱 명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었는지 조만간 릴리스되는 TRV 소속 가수의 앨범 때문에 새벽까지 남아 있던 앨범 제작팀 직원들이 와서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이제 가자.”
내가 눈치를 보고 말하니까 멤버들도 얼른 일어났다. 회의실을 나서며 신지운이 말했다.
“아, 너무 웃어서 배 아프다.”
그러니까 안주원이 억울해하며 말했다.
“신지운은 진짜로 많이 웃으면 복근 생길걸? 근육이 너무 잘 붙어.”
“야, 그 정도는 아니지.”
“그 정도라고.”
신지운이 ‘야’라고 해서 생각하니까, 안주원이 빠른이라 동갑이니 둘이 말을 완전히 놓은 것 같았다. 안주원이랑 나는 친구인데, 신지운한테는 내가 형인데, 안주원이랑 신지운이 친구면은…….
어디서 족보 꼬이는 소리가 들리는데…….
* * *
박중운 매니저가 먼저 귀가해서 회사 밴에 나 포함 일곱 명이 북적거리며 탔다. 밴에서도 쉬지 않고 계속 떠들다가 숙소에 도착해 멤버들이 먼저 올라간 후, 민지호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형, 틱X 챌린지 할래? 지난주 나온 노래 있잖아, bing bing.”
“안 해.”
“아, 하자. 다른 멤버들 안 해준단 말이야.”
“안 한다고. 미친 새끼 아냐.”
대중의 눈에 트라우마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 영상을 찍어 업로드하자니까 못 참고 험한 말이 튀어나온다. 민지호는 다 예상했는지 미친놈처럼 히히 웃으며 가방을 열었다.
“내가 형이 이럴 줄 알고 이것도 사놨어.”
가방 안에 페니와이즈 비슷한 가면이 들어 있었다.
“……야, 너무 무서운데?”
새벽 두 시에 건장한 남자 둘이 이런 호러 가면을 쓰고 있는 걸 지나가다가 누가 보면 기절하겠다.
[‘영상 조회 수 20만’에 도전 중입니다]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의 B급 티켓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걸로 20만을 넘겨서 미션을 통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뭐라도 룰렛에서 괜찮은 게 나오면 수요일까지 곡 수정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니까 마음이 편안해져서, 나는 민지호가 보여준 안무를 외웠다.
금방 합을 맞추고 우리는 둘 다 가면을 썼다.
아파트 놀이터의 밝은 조명을 찾아서 민지호가 카메라를 적당한 높이로 설치했다.
짧지만 무지하게 어려운 동작이었음에도 한 번에 깔끔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아, 재밌다.”
민지호가 가면을 벗고 신나서 말하는데 나도 동감했다. 오랜만에 추는 춤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촬영을 하고, 민지호가 핸드폰을 점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올린다?”
“어. 내일 봐.”
나는 인사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눈을 감았는데도 머릿속에서 춤과 음악이 사라지지 않았다.
* * *
다음 날은 일요일에 있을 공연을 위해서 밤을 새우고 연습실에 있었다.
민지호가 올린 영상은 반응이 무지하게 좋았다. 특히 유튜브 쇼츠에 올라간 영상이 무슨 알고리즘을 탔는지, 조회 수가 터졌다.
챌린지가 끝나고 민지호가 가면을 벗는데, 페니와이즈에서 청량한 소년으로 변하는 순간이 사람들 마음을 휘어잡았다. 공식 트위터에도 업로드됐는데, 그것도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조회 수를 합치면 20만 정도 될 즈음, 상태창이 떴다.
[조건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뭔 개소리야. 왜?
[달성자 : 민지호]
[달성자가 다릅니다]
아. 그러니까 이 챌린지가 민지호가 띄운 거라서…….
그걸 보니까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이 미션이 뜨는 순간부터 나는 퍼스트라이트가 달성하면 되는 미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는데.
상식적으로 당연한 것 아닌가. 내 미션이지, 퍼스트라이트의 미션이 아니고, 내가 퍼스트라이트가 아닌데. 내 머릿속에서 퍼스트라이트가 완전히 남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때 민지호가 핸드폰을 들고 연습실 뒤에 서 있던 나한테 걸어왔다.
“형, 댓글 못 봤지? 반응 엄청 좋아.”
“아, 됐어.”
“뭐 평생 안 볼 거냐?”
일생이 직진과 열정인 민지호가 고집을 부리면서 내 눈앞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뒤에 댄서가 대단한 게 힘 빼고 춰서 민지호 돋보이게 해줌+그와중에 본인 그루브 가져감+아이솔레이션 완벽]
[둘 합이 좋아서 이 영상이 더 뜨는 듯]
[진짜 뒤에 댄서분 누구예요? 춤선 뭐지ㄷㄷㄷ]
[↳현대무용 전공자 같은데요]
[↳퍼스트라이트는 안무팀 UO랑 보통 같이해요. UO소속일 듯]
뭐. 원래 내가 춤은 괜찮지.
괜찮은 반응을 보고 있는데도, 대중들이 저게 나라는 걸 알고 실망할 거란 생각을 하니 숨이 턱턱 막힌다. 나도 참 드럽게 나약한 인간이다.
아무튼 이걸로 미션이 안 깨진다는 건, 어쩔 수 없이 내 얼굴이 나오고, 내가 주도적으로 20만을 달성해야 한다는 뜻 같다. 평생 못 깨겠다.
* * *
일요일은 야외 행사 스케줄이 있었다.
그런데 환절기마다 한 번씩 감기에 걸리는 황새벽의 컨디션이 아침부터 좋지 않았다. 나는 마스크를 끼고 조수석에 앉은 황새벽에게 오면서 사 온 유자차를 건넸다.
“이거라도 마셔.”
“이따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인지 황새벽이 날이 선 목소리로 대답한 후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버렸다.
행사 장소에 도착한 이후에 황새벽은 정신을 차리고 버티려 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안무는 그렇다고 해도 목소리가 문제였다. 점점 더 나오질 않았다.
계속 목을 가다듬어봤지만 차라리 빨리 병원에 다녀오는 게 해결책 같았다. 결국 박 매니저가 황새벽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황새벽이 무지하게 미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오늘만 좀 부탁해.”
“어.”
지금까지 솔로인 박희영 매니저를 해왔던 나는 황새벽이 대충 멤버들을 잘 부탁하는 건 줄 알고 대답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드라이 리허설이 가까워지자 TRV 직원이 나에게 황새벽의 이름표를 줬다.
“철 매니저님, 안무 다 아시죠?”
“네? 저요?”
가끔 멤버들이 없을 때, 댄스팀이나 매니저가 대신 올라가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그게 내 경우가 될 줄 몰랐다. 황새벽이 부탁한다는 게 드라이 리허설을 올라가 달라는 거란 걸 뒤늦게 알았다.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내 뇌는 기능을 멈췄고, 어느새 황새벽의 이름표를 받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무대 위였다. 텅 비어 있는 관객석을 보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틱X 영상을 통해, 얼굴을 가리면 아무도 못 알아본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까지 가리고 있었다. 안주원이 힐끔 날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아?”
“아니. 땀 나.”
손에서 땀이 줄줄 난다. 그 상태로 음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