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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4화 (1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4화

요 며칠 내내 안무를 계속 봐서 어느 정도는 머릿속에 있었다.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무대로 올라갔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내 몸이 안무를 숙지하고 있어서, 몸이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였다. 솔직히, 무대 위에 올라왔다는 게 짜릿했다.

하도 많이 봐서 외운 황새벽 특유의 제스처까지 따라 하니까 황새벽 컨디션 때문에 표정이 어둡던 멤버들이 옆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무대 좋다. 진짜 좋다. 미치게 좋다. 노래가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황새벽은 병원에서 UO의 장지영 팀장이 영상통화로 찍어주는 드라이리허설 영상을 확인했다.

“정해원은 진짜 무대에 있어야 되는데.”

그게 들렸는지 장지영이 말했다.

-너희랑 같이할 거야. 쟤가 안 하겠니? 저렇게 무대 위에서 행복해하는데.

“그래요?”

-절대 데뷔 못 할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한테 기회 왔는데. 해원이 이 기회 놓치면 평생 무슨 직업을 가져도 만족 못 할걸.

황새벽이 자기 허벅지를 탁 쳤다. 정해원한테 딱 그렇게 설득했어야 했다.

정해원이 TRV로 오자마자,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시끄러워졌고 점점 더 의견을 표출했다. 황새벽은 이 분위기가 좋았고, 회사 직원들은 몇 배로 정해원의 존재를 반가워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조치를 취하고 목이 훨씬 나아진 황새벽이 공연장 대기실에 도착하자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형, 괜찮아?”

“더 쉬어야 되는 거 아냐?”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는 멤버들을 뒤로하고, 황새벽이 정해원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정해원.”

“나? 왜.”

스태프들과 금방 친해져서 두 주머니에 손을 꽂고 낄낄거리고 있던 정해원이 정해원은 컨디션 난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황새벽 쪽으로 왔다.

“무대 못 올라가겠어?”

“너 지금 회사에서 밀어줄 때 우리 팀 합류 안 하면, 평생 후회할걸.”

황새벽이 말을 이었다.

“너 뒤져서 관뚜껑 닫힐 때도 생각할걸. 아, X발, 그때 왜 안 했지.”

“요즘 누가 매장해. 화장하지.”

“딴소리하지 말고. 그냥 진짜 객관적으로 딱 이것만 생각해 봐. 후회할지, 안 할지만.”

정해원은 바로 대답을 못 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무대 얘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눈빛에 드러나던 성깔이 확 죽어버린다. 누가 봐도 겁에 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얼굴에 핏기가 없었고, 입술도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너무 겁난 게 보여서 황새벽이 머뭇거리니까 신지운이 옆에서 도왔다.

“해원이 형, 형이 언제부터 그렇게 쪼는 성격이었다고. 그냥 해.”

옆에서 민지호도 동조했다.

“내가 형이었으면 빡쳐서라도 한다. 보란 듯이 성공하려고.”

“남 얘기라고 쉽게 하지 마.”

옆에서 한효석이 한소리 하니까 안주원도 거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잖아. 옆에서 고생한 거 뻔히 보고 그렇게 말이 쉽게 나오냐?”

분위기가 험악해지니까 박선재가 막내로서의 의무감을 가지고 네 사람을 말렸다.

“아, 또 싸우네. 아니, 해원이 형은 한마디도 안 했는데 왜 자기들끼리 싸워.”

그러고 말다툼을 하는 걸 가리키며 황새벽이 말했다.

“봐봐. 이거 하나도 합이 안 맞는 새끼들을 내가 어떻게 끌고 가냐.”

그 말에 옆에서 민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새벽이 형은 완전 마이웨이인데. 고생 많이 했어.”

“그걸 아는 놈이 그렇게 말을 안 듣냐? 네가 제일 말 안 들어.”

“형이 맨날 한효석 편들잖아. 나도 섭섭해.”

“또 뭐 그런 걸로 섭섭해하냐, 너는…….”

어느새 이야기하던 주목적은 사라지고 말싸움이 이어졌다.

황새벽은 다시 한번 앞으로 이 멤버를 끌고 가는 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의를 할 때도 늘 이랬다. 무슨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싸움이 시작되면 기도 체력도 여분 없는 황새벽은 피곤해져서 뒤로 빠져 있었다.

그때 정해원이 말했다.

“황새벽, 넌 진짜 좀 그래. 너무 효석이 편 들더라.”

“……내가?”

“근데 민조, 넌 네 편 들어주고 싶지가 않아, 너무 나대서.”

“어?”

“그리고 효식아, 넌 남의 말에 시비 좀 걸지 마. 하여튼 제일 얌전하게 생긴 새끼가 제일 불화의 씨앗이야.”

“……형, 저 효석이.”

모든 멤버들에게 지적질인 정해원을 보며 황새벽은 내심 감탄했다.

국선아 때도 항상 모든 정리는 정해원이 했다. 민지호가 마구 쏟아낸 퍼포먼스를 기억했다가, 본인도 까먹은 걸 완벽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게 정해원이었고, 팀 미션 중에도 트레이너들의 지적을 전부 기억했다가 연습생들에게 알려줬다.

국선아 촬영은 늘 극한이었는데, 거기서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모든 팀원을 끌고 가려 하는 사람은 정해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많이 싸운 게 정해원이었고, 그래서 방송에 먹잇감을 끊임없이 줬지만 여기 있는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모두 정해원이 리더가 되는 팀에 가야 한다는 본능적인 이해가 있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멤버들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 * *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나는 일단 그렇게 말했다. 스탠바이가 가까웠기 때문에 빨리 대화를 끝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채우자 대기실까지 그 분위기가 밀려왔다. 가까운 곳에 대인원이 군집해 있다는 것이 객석이 보이지 않는 대기실에서도 확실하게 느껴진다.

일단 모면하려는 대답에 멤버들이 만족하며 무대로 올라갔다.

메이크업을 하고 무대에 오를 준비가 된 멤버들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신인의 눈빛이었다. 무대가 부서지도록 뛰어다니겠다는 패기가 있었다.

퍼스트라이트가 무대에 오르고, 나는 백스테이지에서 무대를 확인했다. 퍼스트라이트의 미니 2집 타이틀곡, ‘첫 번째 프러포즈’가 시작됐다.

오늘 공연은 민지호의 의견으로 안무 중간에 국선아 시절 나와 민지호가 같이 짠 안무가 들어갔다. 프러포즈를 주제로 한 곡에 끼워 넣기 적절한 안무다. 멤버 둘이 페어 안무를 한 후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하는 동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무대 위에서 그 안무를 할 수 없었다. 민지호와 내가 대립하는 연출을 위해 그 동작을 하지 말라고 무대 연출자에게 금지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가 한 약속은 영원해

민지호의 랩파트에서 한 손에 마이크를 들고 다른 손으로 한효석과 페어 안무 후 민지호는 정면, 한효석은 등을 지고 서서 한 약속 동작은 한마디로 ‘터졌다.’

팬들은 그 순간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비명을 질렀다. 편집이 있었더라도 저 두 멤버 사이가 안 좋은 건 눈치 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반응이 세게 왔다.

오늘 새벽까지 준비한 보람이 있는 환호였다.

* * *

무대가 끝난 후부터가 진짜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우리 순서는 거의 맨 앞인데, 마지막 합동 무대에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합동 무대까지 마치고, 숙소에 들렀다가 집에 왔을 때는 새벽 두 시였다.

침대에 눕자마자 깊이 잠들었는데,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아니, X발.”

나는 잠이 덜 깨서 핸드폰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핸드폰에 쌓여 있는 연락을 확인했다. 박희택 사장의 연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화 받아라]

[철순아 전화]

[받아 인마]

아, 잠도 없나…….

나는 생각하면 핸드폰을 들었다.

멤버들 상황을 몰라 답답해하던 박희택 사장은 내가 소통 창구가 된 후부터 거의 매일 이렇게 연락하고 있었다. 거의 스토커다.

오늘은 좀 심한데…….

지금 시간이 새벽 다섯 시다. 아무리 엔터계가 밤낮없는 곳이라지만 애들 데려다 놓고 세 시간 된 사람을 깨우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진짜 나중에 술자리에서 인사불성 되면 뒤통수 한 대 때려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전화를 받으려는데, 상태창이 떴다.

[미션 달성까지 남은 조회 수 1,284]

[미션 달성까지 남은 조회 수 1,107]

[미션 달성까지 남은 조회 수 983]

[…….]

[…….]

[…….]

[‘영상 조회 수 20만’을 달성했습니다]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의 B급 티켓이 주어집니다]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갑자기 왜? 뭔데.

잠결이라 좀 걸렸지만 곧 답이 나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서 ‘퍼스트라이트 드라이리허설’을 검색했다.

예상대로 16시간 전 영상이 가장 앞에 떴다.

* * *

“이런 게 진짜 난 놈이지. 멤버들 직캠도 20만이 안 나오는데, 하루 만에 바로 찍어 버리네.”

TRV의 박희택 사장이 감탄하며 댓글 반응을 확인했다.

[황새벽 대신 드라이리허설 무대 선 매니저]

드라이리허설 때 누군가 공연장에 몰래 들어와 찍은 모양이었다.

영상은 업로드하자마자 입소문과 알고리즘을 타고 조회 수를 불렸다.

[절대 매니저 아님. 무조건 TRV 연습생일 듯.]

[트레이닝 없이 나올 수 있는 동작이 아닌데요]

[모자랑 마스크로 얼굴 가렸는데도 대존잘 느낌이네]

[의외로 모자 벗으면 별로일지도 몰라요]

[모자 미남ㅋㅋㅋㅋㅋ]

[저 매니저분이 지호 틱X에 있던 댄서분인 것 같아요!]

[춤 선이 딱 그분임]

[사복인데 시선 확 꽂히네요]

[ㅎㅎ저거 국혐이네]

[↳???]

[↳↳정해원 맞아요. 퍼라 팬들이 말은 안 해도 요즘에 퍼라랑 같이 다니는 거 다 알아요]

[↳아…… 확 식네요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정해원 요즘 퍼라한테 X나 찝적대는 듯ㅎㅎㅎ]

[퍼라는 무슨 고생…….]

[국혐이가 원래 춤 하나는 X나 잘췄죠]

[국혐인 거 알고 봐도 홀리긴 한다 춤에 도 튼 사람 같음]

정해원 본인이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절대 정해원을 놓칠 수 없었다. 정해원은 존재 자체가 화제성이고, 퍼스트라이트에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게 그것이었다.

정해원이 합류하든, 합류하지 못해서 빌런으로 삼아 팬덤이 뭉치든 TRV 입장에선 이득이었다.

[국혐이 얼굴도 괜찮았는데]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ㅆㅅㅌㅊ였는데 성격 때문에 안 보인 거지]

[↳국선아 안 봤는데 어느 정도였길래ㅋㅋㅋㅋㅋ]

[↳↳걍 저혈압 치료제]

[↳↳국혐이 떨어지는 거 보려고 국선아 본 듯ㅎㅎ]

[혐인 거 별개로 끼 미쳤네 왜 국선아 때는 몰랐지?]

[↳타고난 게 있는데 너무 게을러서 못 써먹음…….]

[↳↳?이럼 너무 혐인데]

[↳↳↳국선아 안 봄? 국혐이 괜히 국혐된 게 아님ㅋㅋㅋㅋㅋ]

[근데 정해원 왜 퍼스트라이트랑 다니는 거야?]

[↳합류 예상]

[↳↳퍼스트라이트 팬들 불쌍하네 안 그래도 성적도 안 나오는데 웬 악재야]

[↳↳↳성적충은 어디에나 있죠?]

박희택 사장이 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홍보팀 직원 하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보다 반응 너무 센데요?”

“아, 좀. 이런 걸로 쫄지 맙시다.”

라고 센 척은 했지만 이거 보고 정해원이 어디서 뛰어내리기라도 할까 봐 내심 쫄렸다.

박희택 사장은 홍보팀 직원이 나가자마자 다시 정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안 받아서 누구 하나 집으로 보내야 하나 생각하는데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철아, 핸드폰 안 쓸 거면 왜 들고 다녀.”

-……네네. 죄송해요.

전화 받는 목소리에 빡침이 느껴진다. 자기는 잘 대처하고 있는 줄 알겠지만 박희택 사장 눈에는 그냥 성질 못 죽인 스무 살짜리였다. 물론 보통의 스무 살보다 처세는 확실히 좋지만.

“댓글 봤니?”

-아뇨.

“아무튼 너 죽을까 봐 걱정되니까 전화 끊지 말고 있어봐.”

-…….

빡쳤는지 답이 없다.

그래도 다행히 주변 사람들이 심각하게 여기는 정도까지 멘탈이 약하진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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