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5화
나는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전화를 건성으로 받으며 인터넷을 켜보니 이런 기사가 떠 있었다.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 출신 정해원, 퍼스트라이트 합류?]
[확정된 것 없어, 상호 협의 중…….]
“저 안 죽을 테니까 그냥 자면 안 돼요?”
내가 말하니까 박희택 사장이 껄껄 웃는다. 진짜 딱 한 대만 치고 싶다.
적당히 통화 후에 전화를 끊고 산책도 할 겸 집 앞 골목으로 나갔다. 귀 바로 옆에서 누가 내 욕을 하는 것처럼 귀가 윙윙거렸다.
“아, 짜증 나네.”
그냥 뭐 이제 무섭고, 서럽고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도 지쳐서 짜증만 난다. 한 대로 부족해서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윙윙거리는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어이없게 요즘 나는 내가 작곡한 곡을 맨날 듣는다. 내 취향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퀄은 떨어져도 그냥 내 마음에 들고, 박선재가 뜬 가이드도 좋았다.
사방에서 아무리 날 갈궈도 음악만 할 수 있으면 그냥 버티겠구나,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의외로 버틸만하다. 어른이 되긴 했다.
그때 핸드폰에 불빛이 반짝거렸다. 핸드폰을 보니 신지운이었다.
[랩 다 썼어]
[보내]
[보냈어 녹음은 내가 함]
[ㅇ]
그래서 신지운이 보낸 가사를 보고 있는데, 상태창이 반짝거렸다.
[레드룰렛 B급 티켓×1]
상황은 별로지만 뭔가 보상이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나는 눈앞에서 돌고 있는 빨간색 반짝반짝거리는 룰렛을 보았다. 버튼을 누르니까 빠르게 돌아가던 룰렛이 멈춘다. 그리고 보상이 떴다.
[보상을 선택하세요 (택1)]
[좋은 디렉팅은 좋은 결과물을 도출한다 : 선수의 디렉팅 기술 B]
[포장하라, 그럼 비싸진다 : 프레젠테이션 기술 B]
뭔가 음악에 대한 계시가 떨어지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나는 고민 없이 프레젠테이션 기술 B를 선택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어차피 이번에 곡을 선택받는 게 먼저고 디렉팅은 다음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내 귀를 믿기 때문이다. 좋은 디렉팅 기술이 있다면 더 빨리 결과물을 만들겠지만, 나는 나에게 시간만 준다면 어떻게든 최선의 답을 찾을 자신이 있다. 그건 내가 나에게 가진 가장 큰 자신감이었다. 나는 반드시 좋은 음악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프레젠테이션 기술 B’을 선택합니다]
나는 ‘불을 켜’를 만들면서 유기적으로 연관되는 생각들을 많이 해왔다. 그런데 그게 산발적으로 머릿속에 흩어져 있어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프레젠테이션 기술 B를 선택하자마자, 머릿속에서 내가 어떻게 발표를 해야 할지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건 퍼스트라이트의 세계관이었다. 나는 생각난 것을 급하게 핸드폰에 적기 시작했다.
‘불을 켜’
‘빛’
‘빌런’
‘분열’
‘초거대기업’
나는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것들을 정신없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울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달려 들어가 다시 로직 프로를 켰다.
정신없이 수정에 몰두해 있는데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엔 무조건 받아야 되는 전화라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엄마.”
-응, 해원아.
기사 보셨나 보다. 목소리가 좀 떨린다. 평소처럼 잔소리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밥은?
“아직 시간…… 뭐야, 언제 여덟 시 됐어?”
-뭐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라?
“작곡. 나 요즘 작곡하잖아.”
-그래?
“응. 되게 재미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엄마가 ‘다행이네’라는 말을 열 번쯤 하셨다.
나는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말을 이었다.
“작곡가로 성공해서, 돈 많이 벌면 맛있는 거 사 먹자.”
-뭘 사 먹어, 엄마가 해줄게.
“하긴, 엄마가 해주는 게 제일 맛있지.”
2년이었다. 그동안 부모님 속이 어땠을지 내가 다 알 수 있을까. 나는 내가 평생 할 불효를 그 2년 동안 다 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다시 방구석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엄마, 나 은근 다 컸어.”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니까 엄마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오늘 엄마를 첫 번째로 웃긴 게 나일 거라는 게 좀 뿌듯하다. 첫 번째로 울린 것도 나였을지 모르겠지만.
* * *
나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이틀을 보냈다.
박선재에게 또 녹음을 부탁하기 뭐해서 내가 가이드를 떴는데, 양이형이 디렉팅해 주면서 진짜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갈궜다. 드럽고 치사한 걸 참아가며 가이드를 녹음하고, 양이형의 작업실 간이침대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그사이 신지운도 자기 파트를 녹음하고 갔다.
[‘불을 켜’의 히트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C급 히트곡 제작 확률 15%(+10%)]
캬, 안 들어봐도 잘했나 보다.
양이형이 말했다.
“난 쌩신인이 이렇게 초호화로 작곡을 하는 거 처음 본다.”
“이게 바로 인맥의 소중함이지. 형 포함. 내 맘 알지?”
“전혀 알고 싶지 않다.”
목욕은 찜질방 가서 하고, 내 짐도 양이형 작업실에 가져다 놨다. 어쨌든 수요일 회의 전까지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 일정을 아니까 양이형도 날 쫓아내지는 않았다.
그러다 회의를 위해 출발하려니까 나에게 말했다.
“철아, 내가 너 도와준 거 잊어버리지 마.”
“뭔 소리야. 왜 잊어버려?”
남는 시간에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흘 내내 소파에서 몇 분씩 쪽잠 잔 것 빼고는 잠을 못 잤다. 머리가 전혀 안 돌아가서 뭔 소리냐고 물어보니까 양이형이 말했다.
“다음에도 같이 작업하자고.”
“아. 내가 잘나갈 것 같은가 봐?”
흐흐 웃으면서 농담했는데 양이형은 진지하고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어.”
내가 나갈 때 양이형은 배웅까지 해주면서 자기가 도와준 거 잊어버리지 말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저러니까 괜히 더 긴장된다.
* * *
나는 A&R팀과의 회의 전에, 사장실로 직행해 박희택 사장에게 내가 가져온 퍼스트라이트의 세계관을 설명했다.
내 설명이 끝나고, 박희택 사장이 물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네가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하는 과정까지 전부 쇼로 만들자? 그리고 그게 퍼스트라이트의 색깔이고, 세계관이 된다는 거지?”
“네. 그러다 반발이 너무 심해서 제가 합류 안 하면, 그것도 나름 해피엔딩이잖아요.”
“네 멘탈은 어쩌고.”
“돈으로 보상받는 거죠.”
박희택 사장이 내 대답을 듣고 날 처음 보는 표정으로 노려봤다.
별론가?
뭐, 아님 아닌 거지.
박희택 사장이 좀 더 생각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근데 뭐냐, 절대 안 할 것 같더니.”
“돈이 벌고 싶어서요.”
돈은 현대인이 가진 모든 질문의 해답이다. 나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욕먹을 거, 음악도 하고, 돈도 벌면서 욕먹자고 밤사이 결정했다. 다시는 숨을 생각이 없으니, 정면 돌파할 생각이었다.
관객 앞에 서는 것도 최소한 시도는 해보고 싶다. 시도도 안 해보면 황새벽의 말대로, 죽을 때까지 후회할 테니까.
박희택 사장은 곧바로 사장실로 앨범 제작팀, 정선미 과장을 불러냈다.
TRV에서 제작되는 모든 앨범은 반드시 정선미 과장의 손을 거쳤다. 누가 봐도 며칠 밤샌 얼굴인 정선미 과장은 다시 한번 내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나서, 흘러내렸던 안경을 반듯하게 올렸다. 그러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거대 기업이요?”
“네.”
“그리고 멤버분들에게는 이능력이 있다는 말이죠?”
“아, 네.”
박희택 사장은 중간중간 ‘이게 뭔 소리니?’ 하던 것들을 정선미 과장은 바로바로 다 알아들었다. 정선이 과장이 중얼거렸다.
“나중에 인외 컨셉도 가능하겠네.”
“그럼요, 그럼요.”
“유닛도 만들어질 거고…… 음.”
정선미 과장이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니까 박희택 사장이 놀라며 나에게 말했다.
“……무지하게 마음에 드나 본데? 선미가 저렇게 긍정적인 거 처음 봐.”
“긍정적이에요?”
“집중했잖아. 신난 거야.”
그렇게 뭔가 자기만의 생각에 푹 빠져 있던 정선미 과장이 홀린 듯이 종이에 무언가 쓰더니 말했다.
“그럼 저 자체 예능팀에 가보겠습니다. 이걸 제일 잘 구현해 줄 곳은 거기 같아서요.”
“하고 싶은 거 다 해. 다 밀어줄게.”
좀 정신없어 보이는 사람인데, 박희택 사장이 막지 않는 걸 보니 일을 미친 듯이 잘하는 모양이다. 하긴 늘 TRV는 도전적이고 신기한 앨범으로 매번 화제가 되곤 했다.
박희택 사장이 나가려는 나에게 문까지 열어주고, 악수를 청했다.
“잘해보자. 합류.”
“네.”
나는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 * *
퍼스트라이트 디지털 싱글 2차 회의.
박선혜 팀장을 포함해 세 명의 A&R팀 직원이 먼저 온 멤버들이 기다리는 회의실에 도착했다.
나는 회의에 껴서 처음부터 끝까지 ‘불을 켜’를 들었다.
보컬은 내가 재녹음해서 확 후져졌지만, 곡 자체의 퀄리티는 올라갔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신지운이 써온 랩이 확 귀에 꽂힌다.
[너에게 밤은 나에게도 밤이야 우린 같은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봐]
[여긴 백야 우리에게 더 이상 밤은 안 와. 어둠은 이제 달리는 우리를 잡을 수 없어]
“와, 지운이 형 딕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민지호가 대신했다. 좋은 딕션과 목소리가 확 곡에 집중하게 한다. 특히 내 보컬과 대비돼서 더 좋게 들린다.
처음에 이 곡의 제목으로 내가 생각한 건 ‘원 팀 원 골’이었다. 그게 곧 내용이었는데, 신지운의 가사가 확실하게 내가 이 곡에서 하려던 말을 정리해 줬다.
민지호는 퍼포먼스 생각에 입이 근질거려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황새벽과 안주원이 양옆에서 내 등을 툭툭 두들겼다.
“너 진짜 노래 많이 노력했다.”
“잘했다고는 못 하겠는데, 애쓴 건 알겠어.”
허허, 그래그래. 너희도 칭찬하느라 많이 짜냈다.
그렇게 우리끼리 떠들다가 뒤늦게 A&R팀 눈치를 보며 조용해졌다.
박선혜 팀장이 말했다.
“‘불을 켜’ 먼저 손들어 보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멤버 여섯 명, A&R팀 세 명이 전부 손을 들었다. 다음 곡까지 갈 것도 없이 전원 동의.
멤버들이 어리둥절해하니까 A&R팀 직원이 말했다.
“저희 팀, 어차피 ‘불을 켜’로 밖에 회의 안 했어요. 어쨌든 멤버분들 의견이 최우선이니까요.”
그리고 다른 직원도 말을 이었다.
“저희 생각에 퍼스트라이트 멤버분들은 본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야 받아들일 수 있는 성향이 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말에 멤버들이 잠깐 조용하다가, 황새벽이 그래도 리더라고 대표로 물었다.
“멤버분들 본인이요?”
그 말에 A&R팀 직원이 멈칫했다. 아마 아까 내가 사장실에서 한 얘기가 다 전달된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침묵이 길어져서, 내가 대신 말했다.
“아까 사장님이랑 먼저 얘기했는데 너희만 괜찮으면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하려고. 회사에서 잘 밑밥을……. 어어어어. 야, 야야.”
내 생각 이상으로 멤버들이 울컥해서 달려왔다. 이 정도까지 좋아할 줄 몰랐다.
여섯 명이서 어깨동무를 하고 울먹거리는데 다들 워낙 커서 굉장히 무거웠다.
[퍼스트라이트 디지털 싱글]
[‘불을 켜’가 확정됩니다]
[프로듀서로서의 첫걸음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장 완료]
[보상을 획득합니다]
[현재 가장 필요한 보상을 판단합니다]
[판단 중…….]
[판단 중…….]
[보상을 획득했습니다]
[모든 체력 회복 포션을 사용합니다]
[성대 상태가 최상으로 회복됩니다]
[모든 정신력 회복 포션을 사용합니다]
[평온한 상태입니다]
와.
오.
순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야…… 좋은데?
갑자기 소나무 숲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머릿속은 물론 내 피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웃는 게 무지하게 신나 보였는지 눈이 마주친 박선혜 팀장이 만난 후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 이거.
뭔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