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7화
셀카를 시도하던 나는 카메라 렌즈만 봐도 토할 것 같아서 결국 핸드폰을 커피 테이블에 내려놓고 렌즈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 짓을 몇 시간 동안 하고 있는 것을 본 양이형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말했다.
“딴 걸 걸었어야지, 거지가 백만 원을 왜 걸어.”
“돈이 없으니까 돈을 걸어야 빡세게 하지.”
“인생을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살고 싶냐?”
“어, 스릴 있어.”
“난 너처럼 생겼으면 절대 그렇게 안 산다.”
오.
요즘 좀 내 외모가 괜찮나 보다. 외모 칭찬을 자주 듣는 기분이다.
나도 내 외모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다고 딱히 아이돌을 할 정도도 아닌 것 같다.
다른 것보다 국선아 활동 내내 눈빛이 쎄하다는 말을 너무 자주 들었다. 댓글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이나 다른 연습생들에게도 꽤 자주 들어서, 성형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내가 사람들을 그렇게 역겹게 하는지 그때 알았다.
지금도 한 포털 창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첫 화면에 이런 질문 글이 뜬다.
[국선아 정해원 나오는 부분 잘라내고 볼 방법 없나요? 볼 때마다 너무 짜증 나는데ㅠㅠ]
2년 전엔 굳이 그런 글들을 다 읽어봤었다. 왜 그랬나 모르겠다.
[정해원 1에서 5차까지 인성사건 정리.txt]
[↳우리 지호 너무 불쌍해요ㅠㅠ 굳이 저런 인성 쓰레기를 챙겨주느라고…….]
[↳민지호랑 싸울 때 이번주 국혐 표정 보셨나요 소패 눈빛ㄷㄷㄷ]
[↳↳볼수록 미친놈 같네요]
[갑자기 생각났는데 정해원 요즘 뭐하나요?]
[↳생각하니까 또 간만에 울화통이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시청률은 정해원이 캐리했죠]
[↳↳재밌긴 재밌었는데 국선아 따라가면서 스트레스 극심했던 기억이ㅋㅋㅋㅋㅋ]
[↳연예계 얼씬도 안 할 듯요]
[↳근데 일반인 사고방식으로는 납득이 안 가는 소패라ㅎㅎㅎㅎㅎ]
[↳↳그 인성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할까요]
[↳↳보통 본인은 멀쩡하고 주변 사람만 미치는 거죠]
[어른들이 쎄한 인상 싫어하시는 건 다 이유가 있어요]
[↳관상=사이언스^^]
[↳눈빛 너무 기분 나빠요ㅠㅠ]
[↳↳괜히 국혐이 아니죠]
캬, 별명 스케일. 국가 단위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나름 임팩트 있네.
아무튼 내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굴을 드러내고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뭐 성형을 하든, 메이크업+렌즈를 빡세게 조합하든 하면 어떻게 좀 감춰지지 않을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 드디어 카메라를 들었다.
그래도 몇 시간 동안 노려보고 있었더니 좀 친숙해졌다. 거의 다섯 시간 만에 나는 셀카를 찍는 것에 성공했다.
내가 셀카를 다 찍자마자 양이형이 불렀다.
“찍었으면 빨리 와봐.”
나는 양이형 옆쪽으로 스툴을 들고 가서 앉았다. 그리고 양이형이 작업하고 있는 곡을 들었다. 14년 차 보이그룹의 경연용 편곡이었다.
확실히 14년 정도 연차가 쌓인 프로들이라 요구 사항이 세밀하고 정확했다. 내가 멤버들이 남겨 놓은 메모를 보며 말했다.
“진짜 프로다.”
“오래가는 애들은 다 이유가 있어. 이것 좀 들어봐.”
그리고 바로 날 부려 먹기 시작한다. ‘불을 켜’는 양이형이 도와줬으니 이번엔 내가 도와줄 차례긴 하다.
팀 없이 작곡을 하기는 너무 힘든 시대인데, 그 팀 작업이란 게 정말 성격이 잘 맞아야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양이형과 잘 맞았다.
둘 다 서로 원하는 걸 죄다 말한 후에 타협을 한다. 의견이 팽팽하고, 둘 다 근거가 너무 확실하면 어이없지만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다. 그리고 거기서 지면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작업을 하다가 핸드폰을 보니까 황새벽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백만 원은 있냐?]
내가 얼른 핸드폰을 들어보니까 저녁 9시였다.
내가 약속한 대로 1분짜리 동영상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막 들었을 때, 촬영이 끝난 신지운이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내가 물었다.
“너 왜 왔어?”
“연습 시작하기 전에 야식 먹고 싶은데 같이 먹을 사람 없어서.”
“오늘 회식 안 했어?”
“고딩은 집에 가래.”
신지운이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슬슬 배가 고팠기 때문에 양이형을 쳐다봤다.
“형, 나 거진데.”
“형, 전 고등학생.”
옆에서 신지운도 덧붙였다. 양이형이 쌍욕을 하고 싶은 표정으로 말했다.
“회사에서 안 사주냐?”
“비싼 건 안 사줘요. 저희 그럴 인기가 아니잖아요.”
거지와 고등학생에게 밥을 얻어먹을 수는 없는지 양이형이 결국 배달 어플을 켰다.
야식을 기다리며 내가 신지운에게 카메라를 내밀었다.
“나 좀 찍어줘. 1분 이상.”
“그으랭.”
신지운이 또 귀여운 척을 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오늘 하루 종일 붙잡고 있어서 카메라에는 적응을 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작업실이 조용해지니까 양이형이 말했다.
“그럼 찍기는 쟤를 찍어, 말은 내가 할게.”
양이형이 튼 음악은 양이형이 국선아 팀 과제를 위해 작곡한 곡, ‘별이 된다면’이었다. 신지운이 신이 나서 말했다.
“어, 형, 저 이 곡 진짜 좋아하는데.”
“나도 엄청 아끼는 곡이야.”
양이형이 대답했다.
노래를 들으니 국선아 때가 생각났다. 이 곡이 욕먹는 걸 무서워하면서, 밤을 새우고 재녹음한 곡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때 이 노래를 부른 멤버는 나와 퍼스트라이트 멤버 여섯 명이었다.
국선아 때 생각을 하며 노래를 듣고 있을 때, 양이형이 신지운에게 말했다.
“이거 너희가 들은 첫 공개 버전이랑 최종 버전 완전 다른 거 알지?”
“알죠.”
“이거 첫 공개 때 너희 조가 다 작업실 왔었잖아. 그때 너희 다 가고 철이만 남아 있었는데 쟤가 그러더라고. 이 노래가 너무 좋다고.”
양이형은 그날 내가 좀 불쌍했는지, 내가 했던 말을 구구절절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면이 마음에 들었냐고 하니까, 너무 예쁘게 슬픈 게 좋대. 그냥 듣고 있으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슬픔도 예쁘게 보여서 기분이 나아진다는 거야. 진짜 열여덟 살 감성이지.”
저렇게까지 구구절절 말한 줄 몰랐다. 허허.
열여덟 살짜리가 와서 저러고 찡찡거렸으니 어른 입장에서 기억날 만도 하겠다.
양이형이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가사가 그냥 내가 별이 된다면 너에게 뭐도 해주고, 뭐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이런 가사였잖아. 그런데 철이가 그날 그러는 거야. 여기 나오는 별이 북극성이었으면 좋겠대. 그래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사람들의 사랑이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별처럼 안정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거 듣고 아, 쟤가 많이 힘들구나, 했어. 그리고 바로 가서 가사며 뭐며 전부 뜯어고쳤지. 그때 수정 안 했으면 솔직히 이렇게 반응이 좋지 않았을 거야. 철이 덕 크게 봤지.”
[사랑해, 사랑해 너의 별이 되어줄게. 그리울 때 언제든 네가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을게. 북극성처럼 여기 이곳에서. 나는 어느 계절에도 너를 사랑할 거야. 사랑해, 사랑해 너의 별이 되어줄게.]
나를 떠나서 아무리 멀리 가도, 나는 한자리에서 머물며 계속 사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듣고 있다 보니 저 노래를 녹음할 때 막막함이 기억난다.
첫 방송 때는 그래도 꽤 이미지가 괜찮았는데, 점점 반응이 나빠졌다. 나를 처음부터 싫어하는 사람보다 더 크게 타격을 준 건 내 팬이, 내 편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돌아설 때였다.
팬과 아이돌은 한 세트다.
나 혼자 춤추고 노래하고 싶으면 무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건 한 명이라도 좋으니까 누군가가 나를 봐주길 바라는 거다. 내 생각에 그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어리석은 소리지만,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불효자가 되기 싫다든지, 돈이라든지 다른 이유를 댔지만 가장 큰 건 무대에 서고 싶어서다. 누가 내 무대를, 음악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합류를 결정했다.
뭐. 팬들이 너무 심하게 싫어하면 그땐 내가 포기하면 되니까.
합류가 무산되었을 때의 일은 지금 생각하고 싶지 않다.
누가 실패하려고 행동하나, 성공하려고 하는 거지.
부정적인 생각은 좀 미뤄놓기로 했다.
그때 신지운이 촬영을 종료하며 말했다.
“3분 36초. 딱 곡 길이만큼 찍었네.”
“오, 야, 나 잠깐 찍고 있는 거 잊어버렸어. 백만 원 굳었네.”
그때 때마침 야식이 도착했고, 나는 동영상을 볼 자신이 없어서 확인도 안 하고 바로 황새벽에게 보내버렸다.
* * *
새로운 멤버 영입에 대한 퍼스트라이트 팬들의 반응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멤버들 모두 X스타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최근 게시글은 전부 걱정하는 댓글로 가득했다.
황새벽은 그 댓글들 때문에 걱정하는 멤버들을 대표해 거의 데뷔 후 처음으로 사장실에 먼저 찾아갔다. 박희택 사장이 마침 잘 왔다는 듯이 하소연했다.
“철이가 갑자기 합류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잖아.”
“네. 그 얘기 하러 왔는데요. 진짜 확실히 합류하죠? 애들이 반응 나쁘면 무산될까 봐 걱정해서요.”
반응이 너무 나쁘면 합류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말을 정해원이 안 했던 모양이었다.
박희택 사장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하지. 준비 다 놨는데.”
그러니까 황새벽이 안심해서 한숨을 쉬었다. 박희택 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는지 모르겠네, 본인은 돈 때문이라는데.”
“돈이래요?”
황새벽이 그 말을 듣더니 어이가 없어서 흐흐 웃었다. 박희택 사장이 물었다.
“왜 웃어?”
“해원이한테 백억이랑 무대 중에 고르라고 하면 무대 고를걸요.”
“…….”
“다 개소리예요. 정해원이 매니저 일을 하겠다고 붙어 있는 것도,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것도 다 무대 올라가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걔가 히키 짓 하는 것도 무대에 못 올라가는 게 괴로워서 그러는 거고, 작곡을 하는 것도 무대 때문이에요. 춤도 노래도 악기 연주도 다 무대에 올라가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걔가 뭔 행동을 하든 목적은 무대고, 거기서 팬이랑 만나는 거예요.”
박희택 사장이 듣다가 넌지시 농담했다.
“1조랑 무대는 어때.”
그 농담에 황새벽이 예의상의 웃음도 안 짓고 정색했다. 그러더니 대답했다.
“걔는 그냥 가치가 달라요. 1조든 100조든 돈이 왜 필요해요, 무대를 못 서는데.”
“미친놈이네.”
박희택 사장이 진짜로 걱정하던 말을 꺼냈다.
“압박 못 견뎌서 어디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회사 큰일 나잖아. 그게 걱정이지.”
“안 죽어요.”
황새벽이 언제나처럼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해원이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그건 무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설 무대가 없어서일 거예요.”
박희택 사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황새벽이 말했다.
“걔가 있으면 그냥 옆에서 물들거든요. 휩쓸려요. 영향을 받아서 같이 죽기 살기로 하게 돼요. 솔직히 걔가 욕먹은 거에 정해원이 타협 안 하고 싸가지없는 영향이 없었냐…… 하면 절대 아닌데요. 왜 그러는지 이해하고 나면 그렇게 욕 못 해요.”
“…….”
“알고 나면 팬들도 이해해 줄 거예요. 우리 팬들이 국선아 때 일곱 명이서 몰려다니는 거 많이 봐오기도 했고…….”
퍼스트라이트에 합류가 혹시라도 무산될까 봐 가진 사회성 다 끌어내 열심히 설명하던 황새벽은 핸드폰이 울리자 박희택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정해원이 보낸 동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은 정해원을 찍고 있는데 목소리는 양이형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 쟤가 많이 힘들구나, 했어. 그리고 바로 가서 가사를 수정했지.]
황새벽이 그걸 보자마자 바로 박희택 사장에게 건넸다. 박희택 사장이 영상을 보며 말했다.
“이런 비하인드가 있어? 이거 나중에 풀면 반응 괜찮겠네.”
“그렇죠?”
“아니지.”
박희택 사장이 웃더니 이내 말을 바꿨다.
“뭐하러 나중에 풀어? 바로 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