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8화
하루의 짧은 휴식이 끝나고, 퍼스트라이트의 스케줄이 다시 시작되었다.
디지털 싱글 공개 일정을 아주 빡빡하게 잡았기 때문에, 모든 준비 과정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녹음 일정과 컨셉 회의 일정이 겹쳐지는 극한의 한 주였다.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디렉팅을 준비했다.
첫날이라 무지하게 쫄렸다. 녹음은 오후 두 시에 시작되지만 나는 새벽부터 녹음실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한 시쯤 양이형이 출근했다.
오늘은 녹음실 두 개를 사용하고, 내 쪽에서는 ‘불을 켜’를, 양이형은 스페셜 영상으로 공개할 ‘별이 된다면’을 녹음하기로 했다.
‘불을 켜’를 첫 번째로 녹음하러 온 건 메인보컬이자 막내인 박선재였다. 한 번 녹음을 하고 나서 내가 물었다.
“막냉아.”
“응, 형.”
“잠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을 불러주려고 했는데 내가 원하는 음이 안 나온다.
아니, 나는 왜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음을 목으로 못 내는 거냐. 답답해 뒤지겠네.
갑자기 룰렛 보상이 아쉬워졌다. 선수의 디렉팅 기술 B도 있었으면 녹음이 좀 수월해지긴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순간 양이형에게 대신 설명해 달라고 말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남에게 의지하는 디렉터를 어느 가수가 믿겠느냔 생각에서였다.
나는 한동안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막냉아, ‘불을 켜’가 세 번 반복 되잖아. 앞에 두 번이 톤이 너무 비슷해. 근데 음이 같긴 하거든?”
“아. 어.”
“그래도 좀 다르게 불러줬으면 좋겠어. 뒤로 갈수록 점점 불이 크게 번지는 느낌이 나야 되잖아. 세 번째를 지르니까 두 번째는 그 중간 정도 톤은 나와줬으면 좋겠거든.”
나는 흥분하지도, 실망하지도 않는 톤으로 찬찬히 내가 원하는 보컬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다행히 박선재가 워낙 음감이 좋아서 내가 하려는 말을 알아 들었다.
“어, 알아들었어.”
“오케, 다시 해보자.”
그리고 다시 녹음을 한 후 박선재가 물었다.
“이거 맞아?”
“응, 맞아. 잘하네.”
“그래도 한 번만 더 해도 돼?”
“백 번 해도 돼.”
박선재는 보컬이 끝내주게 좋았고, 나는 할 때마다 감탄했다. 진짜 백 번을 녹음해도 좋을 것 같았다.
나중에 디테일 녹음을 해야 하긴 하지만, 첫 번째 녹음은 수월하게 끝났다. 황새벽과 한효석의 보컬도 좋고, 신지운도 순식간에 녹음을 끝내버렸다. 민지호도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과몰입한 것만 빼면 괜찮았는데.
“안쭈, 음정.”
“미안해.”
“사과할 건 아니고.”
예상대로 안주원이 문제였다.
“한 번 더 할게.”
녹음을 무한 반복하는데 음정이 안 나왔다. 먼저 녹음을 마치고 구경 온 양이형이 말했다.
“주원이 음정이 아예 안 나오는데.”
“그러게.”
내가 안주원에게 물었다.
“목 괜찮아? 병원 갔다 와서 다시 할까?”
“괜찮아.”
아무래도 주눅이 든 것 같다. 이대로는 녹음이 잘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말했다.
“나 담배 피우고 올 건데.”
“같이 가자.”
내가 말하니까 안 그래도 나오고 싶었는지 안주원이 곧바로 녹음실을 튀어나왔다.
오늘 나도 녹음이 있어 담배를 피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안주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연습 안 했어?”
“했지. 많이 했어.”
“아, 그럼 됐어.”
내가 말하니까 안주원이 황당해하며 물었다.
“됐냐?”
“됐지 뭐. 계속 안 되면 파트를 변경하든지, 부르기 쉽게 만들어볼게.”
“……넌 화도 안 나냐. 나 때문에 시간 뺏기는데.”
이번엔 내가 어이없어서 안주원의 어깨를 툭 쳤다.
“개소리 좀 하지 마. 너희 위해서 만든 노래야. 너까지 포함한 팀 주려고 만든 노래라고.”
“…….”
“내가 디렉팅이 처음이라서 그래. 나중엔 더 잘해줄게.”
내가 말하니까 두툼한 카디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안주원이 흐흐 웃었다.
“야, 그래도 친구가 디렉팅하니까 마음이 편하긴 하다.”
“그래?”
“나 지난번 녹음할 땐 다시 하겠다는 말 딱 한 번 했어. 애들도 그럴걸.”
하긴, 디렉터 스케줄이 있으니까.
디렉터가 가수가 듣기 좋게 말해주려 애쓰는 만큼, 가수도 디렉터의 컨디션을 신경 쓰게 된다.
내가 장담했다.
“나는 밤새도 돼. 어차피 디테일 녹음 또 할 거고. 난 어차피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너희 짜낼 거야.”
“완성품만 좋으면 괜찮지.”
“그치?”
다행인 것은 안주원이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거다. 할 수 있는 한 최선, 최상의 음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다른 멤버들과 똑같다.
한 프로 넘게 녹음을 하기는 했지만 안주원도 무사히 녹음이 끝났다. 그리고 거의 열두 시가 다 돼서 마지막으로 내 녹음을 시작했다.
디렉팅을 봐줄 양이형이 약을 올렸다.
“이제 진짜 최종 보스다.”
“아, 시작도 하기 전에 갈구지 말라고. 안 그래도 쫄리는데.”
노래만 하려고 하면 왜 이렇게 쫄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마이크를 앞에 두니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민지호보고 녹음 전에 흥분하지 말라고 그렇게 잔소리했는데 정작 내가 흥을 못 견디겠다.
녹음하기 전에 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으니까 양이형이 물었다.
“왜? 멘탈 안 좋아?”
“아니, 너무 좋아서.”
쫄린다고 싫은 게 아니다.
반대로 너무 좋았다. 못하는 걸 하는데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그냥 좋다.
내가 녹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아서 눈물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빡세게 성대 관리를 한 보람이 있어, 양이형에게 칭찬을 들었다.
“철, 늘었는데?”
“늘었지? 잘하지 않아?”
“그건 아니야. 귀가 있으면 알 거 아니야. 너 절대음감이잖아.”
“어, 절대음감적으로 늘었어.”
그 뒤 욕은 안 들렸는데 ‘미친 새낀가?’라고 말한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깔끔하게 회복된 성대 덕에 여느 때보다 빨리 녹음을 마쳤다.
녹음을 마치자마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컨트롤룸 문 앞에 주저앉았다. 다행히 아무도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거나 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게 해줬다.
그리고 상태창이 떴다
[퍼스트라이트 디지털 싱글 ‘불을 켜’의 1차 녹음이 완료되었습니다]
[제2장이 시작됩니다]
[2장. 첫 번째 활동]
[영상 조회 수 100만을 달성하세요]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의 A급 티켓이 주어집니다]
100만.
허허허.
“20만 다음이면 뭐 30만이나 50만이어야지.”
나는 투덜거리며 무슨 수로 100만을 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며칠 뒤, TRV 공식 유튜브에 스페셜 영상 업로드가 예정되었다.
국선아 시절 현재 퍼스트라이트 멤버 여섯 명과 정해원이 함께 불렀던 ‘별이 된다면’이었다.
워낙 잘된 곡이다 보니 지금까지 팬들은 이 ‘별이 된다면’을 불러 달라고 퍼스트라이트에게 수시로 요청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정해원의 파트를 잘라내야 했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여러 명이면 모를까, 딱 한 사람 파트를 잘라내기가 좀 비인간적인 기분이라는 거였다.
그러던 곡의 업로드였다.
[헐 별이 된다면 세 시간 남았어!!]
[심장 떨린다ㅠㅠ]
[정해원 합류하는 거 진짜구나. 별이 된다면 올리는 거 보니까…….]
[타팬인데 진짜 국혐 퍼라 합류해?]
[↳우리도 몰라]
[↳↳TRV가 계속 긍정적으로 얘기하고 있다니까 결국 하겠지ㅎㅎ]
[↳↳TRV 진짜 돌 띄우는 감각이 없음…….]
[여태 안 보이다가 갑자기 숟가락 얹는 것까지 국혐 종특]
[너무 싫은데]
[아니 여섯 명에 익숙해졌는데 왜 이제 와서 이래]
[퍼라 애들이랑 친하긴 해?]
[↳안 싸운 애들이 없을걸. 그래도 퍼라 애들이 착해서 끝까지 챙기더라]
[↳↳아직도 애들 방송에서 얘기 종종 해…….]
[↳↳타팬인 나도 민지호가 해원이 형이 잘하는데~ 이런 말 하는 거 들어봄ㅋㅋㅋ]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지다 일곱 시. 스페셜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회사 인근 소극장에서 잔잔하게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오늘 애들 얼굴 뭐야ㄷㄷㄷ]
[한효석 고소해야 돼ㅠㅠㅠㅠㅠ]
[1:20 새벽이 얼굴 이래도 돼? 미친 것 같은데?]
[진짜 명곡이다…….]
[국선아 때 생각하니까 눈물 나ㅠㅠ 애들 고생했지ㅠㅠㅠㅠ]
[그니까ㅠㅠ 그때 찐 애기들이었는데ㅠㅠㅠㅠㅠ]
[근데…… 없네?]
[진심 있을 줄]
[나 마지막에 주인공처럼 등장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안 나오더라]
[↳나랑 같은 생각 했구나ㅋㅋㅋㅋ]
그런 반응이 이어지고 있을 때, 업로드 시간과 비슷하게 양이형 작곡가의 SNS에도 글이 올라왔다.
[오랜만에 별이 된다면 불러준 고마운 퍼스트라이트 멤버들^^ 국선아 때는 정말 애기들이었는데 정말 쑥쑥 크는구나~ 보컬 능력도 쑥쑥~ 팬 여러분께 좋은 선물이 되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 곡 비하인드…… 처음 공개할 때랑 많이 달라진 게 해원이랑 얘기하고 나서였어요. 그때 좋은 말 많이 해줘서 도움 많이 받았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별이 된다면’에 나오는 ‘별’이 북극성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어요. 사람들의 사랑이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별처럼 안정적이면 좋겠다구……. 그 말 듣고 곡 전체 수정했던 기억이 나네요. 해원이 고맙구~ 잘살아라~]
* * *
“이 형 말투가 왜 이래.”
인터넷에 글 쓸 때와 평소 말할 때 성격이 아예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양이형이 딱 그렇다. 평소엔 만사에 짜증 내는 형인데 인스타그램에서는 천사가 따로 없다. 대필했나.
하지만 이걸 안 놀릴 수는 없지. 나는 양이형에게 톡을 보냈다.
[해원이 고맙구~ 잘살아라~]
박제했더니 양이형이 바로 답을 보냈다.
[XXXXXXX]
쌍욕이었다.
“그치, 이래야지.”
내가 그걸 보고 낄낄거리고 있는데 양이형이 다시 톡을 보냈다.
[사실 작사에 네 이름 올렸어야 됐어.]
[왜?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 정도로 가사에 영향 많이 줬으면 올리는 게 맞지. 네가 할 말이 실제로 가사에 들어갔는데. 그때 못 올린 값이라고 생각해.]
지금 상황에서 내 편을 들어주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이렇게 고마운 형도 없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댓글을 눌러볼까, 하다가 말았다. 이런 걸로 여론이 크게 바뀌거나 하진 않을 테니, 굳이 사서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멀리 던져놓고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불을 켜’ 활동 전에 빌드업을 위해 방송할, 퍼스트라이트 세계관의 시작을 알리는 자체 예능 촬영일이었다.
촬영 전, 나는 국선아 이후 처음으로 샵에 들어섰다. 다른 멤버들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서, 탈색을 하고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런데 샵 직원들의 반응이 영 묘했다.
뭐지. 망했나? 아무리 해도 쎄한 게 안 사라지나?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일단 자는 척하고 눈을 감았다. 뒤에서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어떡하지, 해원 씨 진짜 파워냉이다.”
“이 정도로 심할 줄 몰랐지. 약간 사람 같지가 않은데…….”
“너무 튀어서 다시 덮어야겠다, 뭐로 덮지…….”
뭔 소린지 잘 못 알아듣겠는데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다.
직원들이 좀 멀어졌을 때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내가 워낙 두피도 머리카락도 많이 튼튼한 편이라, 이번에 완전히 은색으로 탈색을 해보기로 했다. 거울을 봤는데 신기할 정도로 은발이었다.
진짜 아이돌 아니면 안 할 색깔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뭔지 모르겠지만, 주변 반응을 보니 대충 별로라는 뜻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