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9화 (1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9화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 방영 중후반부, C조에게는 변수가 있었다.

연습하고 있던 곡의 가사가 도중에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

그것은 C조의 중간 평가를 다른 조보다 훨씬 까다롭게 만들었다.

그 중간 평가에서, 정해원은 수정 전 가사를 불렀다. 거기에 자신 없기까지 한 가창에 보컬 트레이너가 깊게 한숨을 쉬며 물었다.

‘해원아, 연습 안 했니?’

그러자 정해원이 바닥을 보며 대답했다.

‘했어요.’

‘뭐라구?’

정해원이 정색하고 되묻는 보컬 트레이너를 노려보며 다시 대꾸했다.

‘했다구요. 연습.’

* * *

그때 방송분은, 정해원이 가사 수정 전에 불렀던 부분을 잘라서, 중간 평가 장면에서 가사를 잊어버리고 수정 전 가사를 부른 것처럼 나왔다.

그때 같은 C조에서 보고 있던 황새벽은 그 편집이 너무했다고는 생각했다. 앞서서도 정해원이 보컬 지적을 심하게 받아서, 양이형의 작업실에서 밤새고 재녹음을 하며 연습을 하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보컬 트레이너가 심하게 지적을 하며 갈구자 못 견디고 그렇게 대답한 것이었다.

황새벽은 그때 아쉬운 쪽인 정해원이 좀 더 성격을 죽였어야 했다고도 생각했다. 본인이 편집을 그렇게 받는 걸 알고 있는 이상, 그냥 고개 숙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지나갔어야 했다. 그랬으면 이 정도로 고생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정해원이 매번 못 참고 그렇게 대드니까 그게 다 시청률의 맛있는 먹잇감이 됐다.

지금 정해원은 열여덟 살 때보다 훨씬 성질도 죽고, 유들유들해졌다. 지금이라면 유연하게 넘어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양이형 작곡가가 이번 스페셜 영상 이후 SNS에 올린 글이, 그때 ‘별이 된다면’ 방송분의 편집에 대하여 지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수정된 가사에 정해원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는 건 ‘별이 된다면’을 기준으로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의 팬이 된 사람들에게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때 국혐이 가사 못 외웠었잖아? 자기한테 영감받아서 바뀐 가사를 못 외웠다고?]

[↳워낙 불성실했어서…….]

[근데 북극성 얘기는 좀 슬프다]

[↳나도…… 여기가 제일 좋아하는 파트였는데]

[헤어진 연인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작곡가님 얘기 들어보니까 아닌 듯]

[나 가사에서 유일하게 이해 안 되던 부분 지금 다 해소됐어. 국선아에서 정해원이 엔딩 부르잖아.

‘가장 밝게 빛나지 않더라도 나를 찾아줘’

난 여기 가사가 좀 전체 가사 내용에서 붕 뜬다는 느낌이었거든? 근데 이제 보니까 확실히 알겠어…… 이게 가사 자체가 국선아 얘기였네…….]

[헐 이거였네…….]

[설마 이번에 나를 안 뽑아줘도 계속 기다리고 있겠다는 내용이야? 그거 아니지? 아니라고 해줘…….]

[종영하고 시간 많이 지나긴 했나 봐 국혐이 불쌍해하는 사람이 생기네ㅋㅋㅋ]

[↳국선아 재탕하면 바로 사라질 감정ㅎㅎㅎ]

퍼스트라이트 관련된 모든 떡밥들을 꾸준히 확인하는 퍼스트라이트 팬들은 어쨌든 조금이나마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황새벽은 팬들의 반응을 확인하다가 차에서 내려 샵에 들어섰다. 황새벽이 들어오자마자 정해원이 불쑥 다가와서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뭘?”

“많이 쎄해 보이냐?”

“머리? 근데 넌 탈색 안 해도 쎄해 보여.”

황새벽의 대답에 정해원이 표정을 구기며 대답했다.

“말 X나 이쁘게 한다, 개X끼야.”

“솔직히 말하라며. 그리고 너는 아이돌 하겠다는 사람이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돼.”

“말 참 이쁘게 하시네요, 멍멍이가.”

“그렇지.”

이 비슷한 대화 지난번에도 한 것 같은데. 황새벽은 낄낄거리며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해달라고 해.”

“뭔 소리야. 계약했으면 내 머리 색은 회사가 정해야지.”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한동안 매니지먼트팀 소속이었던 티가 나긴 했다. 황새벽이 흐흐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어떻게 계약을 하긴 했네.”

“할 거라니까. 말했잖아. 나 못 믿었어?”

정해원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하고 씩 웃었다.

저러고 능글거리는 걸 보면 국선아 이전의 성격은 많이 돌아온 것 같은데, 반대로 깎인 자존감은 전혀 안 돌아왔는지 주변 반응을 부정적으로만 읽고 있었다.

정해원은 본인의 은발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지만 황새벽이 직원들 이야기하는 걸 듣고 종합해 보니 너무 튀어서 다른 색으로 덮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비주얼이 너무 아까우니까 사진이든 영상이든 남겨놔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한참 동안 상의가 오가다가 결국 ‘불을 켜’로 활동을 시작하면 다른 색으로 덮고, 오늘 촬영은 은발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기다리던 정해원은 이번 촬영은 그대로 가자는 TRV 직원의 말에 바로 수긍했다.

* * *

이번에 탈색을 결정한 멤버는 나와 신지운 두 사람이었다.

혼자 튀는 머리 색일 때는 좀 찝찝하다가 신지운의 밝은 금발을 보니까 많이 괜찮아졌다.

“와, 쌩양아치네.”

“아니야. 난 댕댕이야.”

“야, 댕댕이는 귀여운 거야. 넌 아니잖아.”

“뭔 소리야. 난 항상 귀엽지.”

신지운이 그렇게 말하더니 허리를 숙여서 거울을 보고 혀를 찼다. 본인도 아닌 걸 아는 것 같다. 다행이다. 눈이 정상이라.

촬영장까지는 세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였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운전을 안 하고 자려니까 너무 불편해서 눈을 뜨고 있었다. 옆에서 새로 온 매니저 강영호가 의욕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원 씨, 주무셔도 괜찮아요. 제 운전 믿으세요!”

“운전은 믿죠,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일단 눈을 감았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한 것이 민망하게 눈을 감으니까 얼마 안 가 잠이 들었다. 요즘 ‘불을 켜’의 디테일 작업 때문에 피곤하긴 했다. 첫 곡이라 정신력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나중에 좀 더 곡을 만들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우리는 거의 세 시간 정도를 달려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보니 외진 곳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누가 봐도 아무도 안 산지 좀 된 낡은 건물이다.

1층은 폐자재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2층으로 올라가 보니 깨끗한 복도가 나오고 유리문 너머에 완전히 회사처럼 세트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유리문에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라이트 컴퍼니]

“그럼 퍼스트 컴퍼니도 있나?”

민지호가 얘기하기 무섭게 TRV 소속 PD 김재성이 말했다.

“있어요, 3층에.”

“아, 진짜요? 오.”

행동력 빠른 민지호가 먼저 3층으로 달려 올라가 보니 거기도 2층과 거의 똑같이 꾸며져 있고, 문에만 ‘퍼스트 컴퍼니’라고 적혀 있었다.

“와, 스케일 뭐냐?”

민지호가 감탄하더니 솔직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예능 조회 수 요즘 대박 나야 3만이던데 이렇게 투자해도 돼?”

“그러니까 투자를 더 하는 거겠지.”

뒤따라 올라간 한효석이 대답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멤버들은 폐자재가 남아 있는 1층으로 돌아왔다. 김재성 PD가 모여 서 있는 멤버들에게 목걸이 줄이 있는 사원증을 나눠줬다.

퍼스트 컴퍼니에 신지운, 민지호, 안주원이. 라이트 컴퍼니에 나와 황새벽, 한효석, 박선재 4명이 들어갔다.

박선재가 멤버들에게 물었다.

“형 어디야? 퍼컴이야, 라컴이야?”

“아, 벌써 줄였어?”

안주원이 옆에서 물어봐 주니까 박선재가 신나서 말했다.

“응. 형 퍼컴즈네, 저리 가.”

“아, 심지어 퍼컴즈야?”

“형은 라컴즈.”

이거 김재성 PD가 아주 주의 깊게 듣고 있는 걸 보니 편집할 때 자막으로 퍼컴즈와 라컴즈가 달리겠구나, 싶었다.

촬영 전에, 방송에 쓸 프로필 컷을 한 명씩 찍었다. 일곱 명 모두 정장에 구두를 신고, 사원증을 하고 있으니 고등학생들조차 약간 회사원 같아 보였다. 나도 표정이 굳은 상태로 어찌어찌 찍었다.

프로필 컷 촬영이 끝나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김재성 PD가 간단하게 촬영 내용을 설명했다.

“여러분이 오늘 해주셔야 하는 건 ‘인수’입니다.”

“인수요?”

“지금 다들 사원증 받으셨죠?”

“네.”

멤버들이 대답하자 김재성 PD가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퍼스트 컴퍼니와 라이트 컴퍼니 소속 임직원들입니다. 여기 이 건물에는 각자의 회사에 관련된 정보, 그리고 사건이 숨겨져 있습니다.”

멤버들이 이야기를 듣다가, 황새벽이 나에게 물었다.

“넌 다 알아?”

“아니, 나도 제안만 해서 정확한 내용은 몰라.”

이건 진짜였다. 나도 전체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했던지라 디테일한 내용은 모른다.

그나저나 박희택 사장이 어차피 사활이 걸려서 말하는 대로 다 밀어주겠다고 하더니,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세트장을 만들어줄 줄은 몰랐다. 예산 신경 쓰지 않고 다 때려 넣은 게 느껴졌다.

아, 겁나 부담스럽네…….

하지만 어쨌든 결정은 회사가 한 거니까, 내가 책임지고 할 문제는 아니었다.

김재성 PD가 말을 이었다.

“가장 먼저 퍼컴즈는 라이트 컴퍼니가 있는 2층, 라컴즈는 퍼스트 컴퍼니가 있는 3층으로 가서 서로의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파악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제한 시간은 인원 차이가 있으므로 세 분인 퍼컴즈에게 10분, 네 분인 라컴즈에게 7분이 주어질 겁니다. 그 시간 동안 더 많은 정보를 찾아오는 팀이 첫 번째 라운드에서 승리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상품 있어요?”

신지운이 묻자 김재성 PD가 말했다.

“첫 번째 라운드의 보상은 이기는 회사에서 인수 회의의 사회자를 뽑는 겁니다.”

그러자 한효석이 손을 들고 물었다.

“사회자가 자기 회사면 너무 유리한 거 아니에요?”

그 말에 민지호가 대신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겨야지.”

“아니…… 하, 됐다.”

한효석이 말을 말자고 무시하니까 민지호가 더 기분 나빠한다. 쟤네 저러다가 은근 절친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곧 김재성 PD가 말했다.

“그럼 제가 출발을 말하는 순간 시작입니다.”

“계단 올라가는 시간 빼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민지호의 말에 김재성 PD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그 시간 포함입니다. 자, 그럼.”

멤버들 모두 잡담을 멈추고 김재성 PD만 주시하고 있었다.

“오, 사, 삼, 이, 일. 출발.”

김재성 PD가 말하기 무섭게, 여섯 명이 동시에 계단으로 달려갔다.

반면 나는 바로 카메라 앞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심호흡하며 멈춰 있으니까 계단을 올라가던 멤버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같이 멈췄다.

“아, 정해원, 빨리 와.”

안주원이 말하고, 이어서 박선재가 말했다.

“형, 우리 지면 형 때문에 지는 거야.”

여기 있는 멤버 모두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뭘 하든 이겨야겠다는 눈빛이다.

다행히 나도 그렇다.

* * *

촬영이 있고 이틀 뒤, 퍼스트라이트 계정에 자체 예능 ‘일라운드’의 티저가 업로드되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검은 화면으로 시작된 티저는 먼저 노이즈와 함께 ‘퍼스트 컴퍼니’라는 문구가 뜨고, 비어 있는 회사의 모습이 보였다.

기업명 : 퍼스트 컴퍼니

기업구분 : ???

설립일 : ???

업종 : ???

매출액 : ???

기업명 : 라이트 컴퍼니

기업구분 : ???

설립일 : ???

업종 : ???

매출액 : ???

그렇게 수많은 물음표만 남겨두고 티저가 끝나자, 댓글도 마찬가지로 물음표가 이어졌다.

[이게 뭐야?]

[PD 바뀜? 분위기가 싹 달라졌는데?]

[왜ㅠㅠㅠㅠ 지난주 뜨개질 반응 좋았는데ㅠㅠㅠㅠ]

[고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뭐지? 답답해ㅠㅠㅠㅠ]

[토요일까지 어떻게 기다려…… 이럴 거면 차라리 티저를 주지 마…….]

팬들의 걱정과 궁금함 속에 토요일, 자체 예능의 새로운 시리즈 첫 편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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