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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0화 (2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0화

그리고 다음 날로 넘어가는 12시.

공식 SNS 계정에 퍼스트라이트 멤버 여섯 명의 사원증과 물음표가 그려진 또 하나의 사원증이 찍힌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이 업로드된 직후부터, 리트윗 수가 빠르게 올라갔다.

[와 미친 7개]

[뭐야 진짜 사원증 7개야?]

[TRV 돌았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저래?]

사진은 업로드되고 2시간 만에 역대 SNS 계정에 올라온 사진 중 가장 많이 리트윗을 기록했다.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욕밖에 안 나오네]

[퍼라팬들 어떡하냐]

[근데 또 생각해 보면 애들이 정해원 꾸준히 언급하긴 했어…….]

[퍼라 애들이 순둥이라…….]

[TRV도 배수진이긴 하네 퍼라가 이렇게 많이 거론되는 거 국선아 이후에 처음 본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빠르게 올라가는 리트윗 수를 보며 박희택 사장이 혀를 찼다.

“빠르다, 빨라.”

회사에서 바라던 화제성 하나는 확실했다.

퍼스트라이트와 계약 이후, 데뷔 첫 앨범이 나오기 이전부터 TRV는 이 팀을 띄우기 위해 가진 모든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공을 들여 유명 프로듀서에게 곡을 받아왔을 뿐 아니라, 영상이고 사진이고 최고로 손꼽히는 프로들과 계약해 뽑아냈다. 거기에 국선아 때부터 함께 해왔던 안무팀 UO와의 계약 등 TRV가 지금까지 엔터계에서 버텨오며 해왔던 것들을 프로모션이란 프로모션은 다 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스트라이트는 하락세를 탔다. 올라가는 길이 천장으로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그러던 것이 ‘새 멤버 합류’라는 떡밥과 함께 지금까지 없었던 화제성이 생겨나고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라도 화제성이 필요했다.

정해원의 전속 계약 기간은 6개월이었다.

그 기간 동안 어그로만 끌고 끝나도 TRV가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반면, 정해원이 무사히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한다면 재계약 시 협상 테이블에서 훨씬 좋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기는 했다.

아무튼 현재 반응을 봐서는 후자의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보였다.

박희택 사장이 중얼거렸다.

“은근히 불나방 같은 데가 있네, 철이가.”

급한 마음에 먼저 제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정면돌파로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불나방은 모르고 불에 뛰어드는 거기나 하지, 정해원은 그게 불이란 걸 알면서도 달려드는 중이었다.

* * *

자체 예능 새로운 시리즈, 퍼스트라이트 컴퍼니의 1라운드.

두 편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게임에서 ‘라이트 컴퍼니’에 속한 나와 황새벽, 한효석, 박선재는 ‘퍼스트 컴퍼니’라고 적힌 3층으로 들어갔다. 사무직이어 본 적은 없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회사의 느낌이 그대로 구현된 세트장이었다.

다른 멤버들이 먼저 들어간 후, 나는 자리에 섰다. 세트장 안에도 카메라가 있고, 멤버 하나하나 카메라 감독이 붙어 있었다.

어쨌든 나는 상황에 따라서 완전히 편집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조용히 있을 생각이었다. 애초에 나는 카메라 앞에 서자마자 긴장을 다 숨기지 못했고, 멤버들도 그런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우리는 3층 세트장 안 모든 서랍을 다 열며 정보를 찾으러 다녔다.

서랍 속에 서류나 문구 같은 것도 은근히 디테일하게 채워져 있어서 쓸만한 자료를 찾아다니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그렇게 찾아다닌 지 4분 정도 지났을 때, 박선재가 칸막이와 서랍장 사이에 떨어져 있던 편지 봉투 하나를 찾았다.

“형들, 이거…… 어, 오, 지금 2043년인가 봐.”

지금이 2023년이니까 20년 뒤라는 설정이었다. 박선재가 서류를 읽으며 말했다.

“데이터 측정 시스템 오류에 관한 자료는 자료실 B구역에 보관 중입니다. 이번 시스템 오류는……. 복구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라는데?”

“뭐야, 무슨 데이터를 측정하는 회산데?”

황새벽의 말에 내가 자료실 문을 가리켰다.

“B구역에 가보면 알겠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효석이 자료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물쇠 문을 열려는데 7분이 끝났다.

내가 별 도움이 안 되는 상태로, 3분이 적은 페널티는 컸다. 우리는 아직 3분이 남아 있는 퍼컴즈보다 먼저 1층으로 내려갔다.

“이거 뭐 아포칼립스 이런 거 아냐?”

“어, 나도 그런 거 같긴 해.”

“좀비 나오는 거 아니죠? 아, 해 지면 좀 무서운데…….”

그렇게 우리가 이것저것 추측하며 1층 화이트보드에 찾아낸 내용을 다 적었을 때, 퍼스트 컴퍼니의 세 명, 신지운, 안주원, 민지호가 내려왔다.

1라운드는 무조건 저쪽 세 명이 많은 자료를 찾았을 거라고 우리가 확신했는데, 민지호가 예상외의 말을 했다.

“저희는 아무 자료도 못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팀 한효석이 황당해하며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

“아, 진짜야.”

그렇게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김재성 PD가 말했다.

“1라운드는 자연스럽게 라컴즈의 승리가 되겠습니다. 그럼 라컴즈에서 인수 회의의 사회자를 상의해서 결정해 주세요. 그럼 2라운드가 시작되기 전에, 두 팀 모두 자신의 회사로 돌아가서 파악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고, 나는 우리 팀 애들과 우리 회사가 있는 2층으로 향했다.

우리 회사에 도착해 보니 이 말이 절로 나왔다.

“이야…… 양아치들이네.”

라이트 컴퍼니의 모든 서랍들에 박스 테이프가 휘감겨 있었다. 퍼컴즈 멤버 셋이, 자료를 찾는 동시에 저렇게 죄다 막아 놓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 내내 테이프를 떼느라, 이 회사가 뭐 하는 회사인지 전혀 알아내지 못했다.

* * *

그리고 2라운드 시작 전에 식사를 했다. 오후 네 시에 먹는 첫 끼였다.

첫 끼이자 아마도 마지막 끼를 먹으면서 민지호는 굳이 ‘불을 켜’를 틀었다. 본인 활동곡에 대한 애착이 진짜 대단하다. 만든 나로서는 솔직히…… 뿌듯하다.

[너에게 밤은 나에게도 밤이야 우린 같은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봐]

[여긴 백야 우리에게 더 이상 밤은 안 와. 어둠은 이제 달리는 우리를 잡을 수 없어]

신지운의 파트가 지나가자 민지호가 물었다.

“지운이 형, 근데 저게 어디로 달리는 거야?”

“가사?”

“응.”

민지호가 대답하니까 신지운이 무지하게 섭섭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해 안 됐어? 지구가 자전하잖아. 그러니까 일정 속도로 멈추지 않고 달리면 계속 낮인 곳에 있을 수 있다고.”

“아, 그래서 밤이 안 오는 거야?”

민지호가 이제 이해해서 감탄하니까 신지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녹음까지 하고 가사를 이해 못 하고 있었니. 형 섭섭하다, 민조야.”

“아니, 나는 그냥 해원이 형이 합류한 게 신나서 달리는 줄 알았지.”

“그건 맞지. 합류하고 컴컴한 방에 다시 안 들어가게 뛰자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시던 물을 뱉을 뻔했다. 그러니까 신지운이 이번엔 진짜 누가 봐도 삐진 얼굴로 물었다.

“뭐야, 설마 형도 몰랐어? 그건 아니지?”

“……전혀 몰랐는데.”

“아니, 가사 좋다며?”

“나는 백야의 태양이 조명이라서 계속 무대를 찾아서 달리는 줄 알았지.”

“그것도 맞지. 근데 다들 해석을 절반만 했네. 뭐지, 내가 못 쓴 거야?”

신지운이 투덜거렸다.

나는 이 가사 내용에 내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합류를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6개월짜리였다. 내가 2년 동안 봐온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내가 무사히 합류하게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 생각이 내 생각보다 컸는지, 같이 무대에 서자고 나한테 말하는 가사였다는 걸 읽지 못했다.

그러고 나니 왠지 모르게 여기 여섯 명을 속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속이 울렁거렸다. 음식이 더 안 들어가서 먹는 시늉만 하고 있는데, 민지호가 말했다.

“이거 그렇게 못하나? 핀 조명 같은 걸 따라서 달리는 거야.”

그러니까 옆에서 한효석이 웬일로 동조했다.

“우리 콘서트 하게 되면 쓸 수 있겠다.”

“와…….”

콘서트라는 말에 민지호가 더 말을 못 잇고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민지호만이 아니라 나머지 멤버들도 똑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콘서트’라는 단어만으로도 벅차오르려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벅차게 놔뒀다가, 그다음에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갑자기 파도에 모든 것이 휩쓸린 것처럼 내 안이 폐허가 될 것 같았다. 침착해야겠다.

그렇게 진정시키며 신경을 돌리려고 둘러보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안주원이 아이패드를 붙들고 있는 게 보였다. 슬그머니 가서 뭘 하나 엿보니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아트워크였다. 한쪽 모서리에 ‘불을 켜’라고 적혀 있었다. 보아하니, 이전부터 꾸준히 하던 작업 같았다.

내가 보고 있는 걸 뒤늦게 알고 안주원이 바로 숨기려 해서 내가 힘으로 아이패드를 뺏었다. 내가 또 은근 힘이 좋다. 허허.

안주원이 옆에서 지랄했지만,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그냥 씹을 수 있는 정도의 소음이었다.

팬들이 안주원에게 ‘미대 오빠’라고 부를 때가 있기는 한데, 실제로 아트워크를 보여준 적은 없는 것 같다.

만약 처음 공개한다면 앨범 커버만큼 좋은 게 있을까?

“멋있다.”

내가 진심으로 말하니까 안주원이 멋쩍어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회사 보내자.”

“이걸?”

“어. 괜찮지?”

“보내서 뭐 하게?”

“커버로 쓸 수 있나, 물어보게.”

내 말에 안주원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 프로가 해야지.”

“프로가 하는 거랑 멤버가 이만한 퀄 뽑아서 가져온 것 중에 팬들이 뭘 더 좋아하겠냐?”

“…….”

“알면서 이러네. 회사에 연락한다?”

“……맘대로 해.”

나는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앨범 제작팀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정선미 과장에게 안주원이 만든 커버 이야기를 한 후, 바로 파일을 넘겨주었다.

내가 전화하고 있는 걸 안주원이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있더니, 전화를 끊고 난 후 나에게 말했다.

“너 오늘따라 되게 어른 같다.”

“뭐가.”

“일 추진하는 게.”

안주원의 그 말에 퇴폐적인 외모와 안 어울리게 오래, 무지하게 많이 먹는 황새벽이 꾸준히 밥을 먹다가 끼어들었다.

“그니까. 내가 계속 리더였어 봐.”

“너 계속 리더 맞다.”

나는 잘라 말하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정선미 과장에게서 바로 톡이 와 있었다.

[다른 아트워크도 있으면 보내주세요]

“라는데?”

내가 핸드폰을 안주원에게 보여주니까 많이 쑥스러운지 귀가 시뻘게졌다. 내가 물었다.

“다른 것도 봐도 돼?”

“보는 건 되는데, 아무 말도 하지 마. 민망하니까.”

“알았어.”

나는 안주원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다른 아트워크들을 봤다.

몰랐는데, 모든 게 퍼스트라이트 앨범과 관련이 있었다.

안주원이 내 생각 이상으로 퍼스트라이트에 애정이 있다는 게 여기서 느껴졌다.

“아니, 미쳤나……. 이걸 숨겨 놓으면 어떡해.”

그래도 우리 누나가 대한민국 신진 작가를 말할 때 항상 손꼽히는 사람이다. 나름 보는 눈에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안주원의 모든 아트워크는 앨범 커버로 쓸모가 있고도 남았다.

그나저나, 그렇게 넘기다 보니 구석에 끄적거린 것들이 있었는데…….

“안쭈, 이거 가사야?”

“……어.”

엄청 말랑말랑한 가사가 적혀 있었다.

생김새가 누가 봐도 인기 많을 정석 미남이라 전혀 예상 못 했는데, 가사는 딱 숫기 없는 중고등학생의 첫사랑 같은 내용이었다. 부끄러워서 좋아한다는 말은 못 하고 괜히 틱틱거린 게 밤새도록 신경 쓰이고 미안해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퍼스트라이트의 지난번 활동곡, 첫 번째 프러포즈에서 아쉽다고 생각한 부분이 여기 그대로 채워져 있었다. 현재 퍼스트라이트 나이 멤버들이 할 법한 풋풋한 사랑 이야기였다.

“주원아.”

“뭐.”

“나랑 이거 작업할래?”

내가 그렇게 묻는 바로 그 순간에 상태창이 떴다.

[퍼스트라이트 정규 1집]

[키워드 ‘첫사랑’이 등록되었습니다]

오.

지난번에 본 상태창이다.

“어, 할래.”

그리고 내 생각과 달리, 안주원이 거의 바로 대답했다.

“무조건 해야지.”

아무튼 내가 지금까지 본 이후 처음으로 안주원의 눈빛이 빛났다.

내내 알게 모르게 억눌린 것 같더니, 자기 차례가 오니까 곧바로 붙잡는다. 하긴, 저런 면이 있으니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았겠지.

나는 흐흐 웃으며 대답했다.

“어, 무조건 하자.”

활동은 같이 못 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때 쉬는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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