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1화
우리가 찍은 자체 예능 업로드 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 전에 공식 계정에 사원증 7개 사진이 올라갔다는 말은 들었는데, 나는 인터넷을 아예 안 봐서 어느 정도 분위기인지 전혀 모르겠다. 오히려 모르니까 속은 편했다. 거기다 안무팀, 민지호와 함께 거의 매일 밤을 새우고 안무를 짜느라 거기에 대해 걱정할 시간도 없었다.
2년 만에 안무를 짜고 있는 이 순간이 미치도록 행복했다.
연습실에 나와 민지호만 남아서 안무 디테일을 수정하다가 지쳐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민지호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이거 안무 보여주면 멤버들이 욕하겠지?”
“맞을 수도 있어.”
“진짜 그럴 수도 있겠는데?”
안무가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다. 안무를 쪼개 넣고, 초 단위로 동선이 바뀐다. 그냥 3분 30초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 뛰었다.
민지호는 안무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드니까, 내가 좀 태클을 걸어줬어야 했는데 그냥 감탄하며 오히려 부추기기만 하다가 결국 한 번 추고 나면 뻗어버릴 안무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누워서 좀 쉬다가, X이라이브 일정 시간이 됐다. 민지호가 거울을 보고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형, 언제쯤 우리가 원할 때 X이라이브 켤 수 있어?”
“내가 가서 상의해 볼게.”
“캬, 형 있으니까 이게 좋아. 말하면 바로 전달해 주잖아.”
민지호가 신나 하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X이라이브가 시작되며, 나는 멀찍이 떨어졌다.
댓글에 나에 대한 이야기가 꽤 있을 텐데, 민지호는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인사하고, 이것저것 TMI를 늘어놓던 민지호가 사고를 친 건 한순간이었다.
“아니, 왜 자꾸 해원이 형 얘기 물어봐. 나랑 얘기해.”
민지호가 퍼스트라이트 멤버 중 유일하게 막 나가는 스타일이라는 걸 떠올리는 사이에, 민지호가 말을 이었다.
“나 진짜 오랜만에 해원이 형이랑 같이 안무 짜서 너무 좋았어.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미치겠네. 아, 해원이 형, 잠깐만 와봐.”
야이, 미친 새끼야.
내가 입 모양으로 말했지만 민지호는 꿈쩍도 하지 않고 해맑게 손짓하고 있었다.
“아, 빨리.”
올 때까지 부를 생각이었다. 직원들이 차라리 빨리 화면에 나오라고 해서, 나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민지호 쪽으로 갔다. 그러니까 민지호가 화면에 보이는 댓글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미안해, 잠깐만 가릴게. 형이 댓글을 아예 못 보거든요.”
내가 고개를 꾸벅 숙여서 인사만 하고 화면에서 빠지려니까 민지호가 말했다.
“그냥 가면 어떡해? 한마디라도 해. 하고 싶은 말 없어?”
하고 싶은 말이면 늘 하나뿐이다.
나는 바닥을 보며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저 너무 미워하진 마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화면에서 빠지며 말했다.
“너 이거 업로드 못 한다, 이제.”
“에이, 알지. 형, 나 이제 프로야.”
민지호가 히히 웃더니 두 팔을 벌리며 팬들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 순간을 즐겨요, 우리.”
얼마 전까진 기가 눌려 있더니 점점 성격이 돌아온다. 어째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
* * *
토요일 오후 7시.
퍼스트라이트 자체 예능, ‘일라운드’의 새로운 시리즈가 업로드되었다.
[진짜 국혐 나와?]
[사원증 7개가 빼박…….]
[지금 이거 보고 있는 사람 중에 퍼라팬들 별로 없을 듯ㅋㅋㅋㅋㅋ]
[↳난 그래도 우리 애들 나오니까 일단 보는 중…….]
[↳나도…… 근데 또 화나는 와중에 조회 수 잘 나오는 건 좋다ㅠㅠ]
[오늘 조회 수만 봐도 TRV가 왜 국혐이 영입했는지 알겠다ㅎㅎ]
[↳조회 수만 땡겨주고 나갔으면…… 이건 좀 너무한가ㅠㅠ]
[↳↳뭐가 너무함ㅋㅋㅋ 지금 퍼라팬들한테 너무한 건 TRV지]
[근데 미운정도 정인가 미워하지 말라니까 은근 신경 쓰이더라]
[↳너도? 나도…….]
[딴 거보다 지호가 진짜 국혐이 좋아하는 게 보여서…… 난 그냥 말만 그런 줄 알았는데 실제로 얘기하는 거 보니까 국선아 때 분위기랑 완전 다르네…….]
[↳솔직히 퍼라 활동 시작하고 지호가 어제처럼 신난 거 처음 봤어]
[↳지호 최애들 어제 많이 복잡했을 듯]
[↳↳이거 어디서 봐?]
[↳영상 삭제됐는데 찾으면 있긴 있을걸]
‘일라운드’의 방송분은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촬영장에 도착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멤버들이 세트장을 들어서며 말했다.
-와, 공기 맑다.
-지금은 너무 좋은데 밤 되면 좀 무섭겠는데?
-형, 밤 되면 나 챙겨줘. 나 겁 많단 말이야.
-맞아, 선재 겁 진짜 많아.
[와씨 이번에 TRV 돈 많이 들였네ㄷㄷㄷ]
[오늘 애들 너무 이뻐서 초단위로 멈추는 중ㅠㅠ]
[국혐 많이 나와요?]
[↳아직 거의 안 나와요]
[↳거의 다 자른 듯]
그리고 사원증과 함께, 퍼스트 컴퍼니와 라이트 컴퍼니에 각각 워키토키가 전달되었다. 멤버들은 처음 사용해 보는 워키토키를 신기해했다. 신지운이 말했다.
-콜사인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그때 내내 한 장면도 잡히지 않던 정해원이 말했다.
-그거 써. ‘별이 된다면’ 동선 번호.
그러자 민지호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와, 소름 돋는다. 그거 진짜 추억인데. 나 우리 동선 번호 다 기억나.
그 말에 황새벽이 대답했다.
-우리 중에 그거 기억 못 하는 사람 없을걸. 그때 진짜 연습 죽을 만큼 해가지고. 그럼 이거 콜사인으로 쓰자.
그렇게 얘기하다가 한효석이 대표로 PD에게 설명했다.
-저희 ‘별이 된다면’ 부를 때 다섯 명이 별 모양으로 서 있고, 두 명씩 계속 그사이 선 그리면서 교대해서 달리는 거 있잖아요. 이게 두 명씩 계속 바뀌는 동선이니까 너무 어려운 거예요.
-진짜 끔찍하게 어려웠어.
안주원이 동감했다. 한효석이 말을 이었다.
-이게 멤버들이 달리는 데 집중하니까 음악 끝나는 타이밍을 못 잡는 거예요. 근데 국선아 연습실 보면 동선 때문에 거울에 1부터 10까지 쭉 숫자 붙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희가 마지막 동선 때, 어느 거울에서 어느 거울까지 달리는지 숫자를 붙였어요. 제가 29번이니까 엔딩은 2번 거울에서 9번 거울로 달려가면 하는 거예요.
-이거 ‘별이 된다면’ 방송분 보시면 보여요.
민지호가 말했다.
콜사인은 퍼스트라이트가 워키토키를 사용할 때마다 밝혀지며 잠시나마 퍼스트라이트 팬들을 즐겁게 했다.
[애들 진짜 다 기억하네ㅠㅠㅠㅠ]
[이걸 2년 넘게 기억하는 거면 연습을 얼마나 많이 한 거야…….]
[고유번호 너무……. 너무다…….]
그러다가 방송분 내내 대부분 편집되었던 정해원도 처음으로 워키토키를 사용했다. 정해원이 워키토키를 켜고 말했다.
-여기는 17. 여기는 17. 왜 안 되지…… 아, 내가 안 켰구나.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장면 아래로 작은 자막이 떴다.
[*사실 14번입니다]
* * *
나는 숙소 거실에서 멤버들과 7시가 되자마자부터 ‘일라운드’를 보고 있었다.
캬, 돈 들인 보람이 있는 때깔이다.
내가 나오는 부분은 거의 다 편집됐는데, 저 17 장면은 꼭 살려달라고 했다. 이걸 위해서 촬영에 들어간 거니까. 긴장했는데 꽤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허허.
내가 왜 17이라고 말했는지 파악한 안주원이 중얼거렸다.
“……정해원 미쳤네.”
눈치 빠른 녀석들은 낄낄거리고 있고, 민지호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왜? 왜 그러는데?”
그러니까 한효석이 대답했다.
“해원이 형이 우리 동선 바뀌기 전 번호 말했잖아.”
“응. 근데?”
“우리 ‘별이 된다면’ 중간 평가 영상에서, 해원이 형 파트는 수정 전 연습 영상 짜깁기해서 끼워 넣었으니까. 중간 평가 편에서 해원이 형 엔딩 때 서 있는 거울 번호가 7번이잖아.”
“아.”
평소 잘 흥분하는 민지호가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그러니까 저 17이, 그게 짜깁기한 영상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증거라고?”
그러더니 잘 흥분하는 만큼 또 금방 푹 가라앉아서 날 보며 물었다.
“근데 팬들이 찾을 수 있을까? 너무 빨리 지나가는데.”
“팬분들.”
신지운이 고쳐주자 민지호가 말을 바꿨다.
“팬분들이 찾으실 수 있을까? 너무 빨리 지나가는데.”
나중에 팬들과 더 친해진 이후면 몰라도, 초기에는 공적인 자리에서 말실수하지 않게 평소에도 극존칭을 쓰기로 국선아 때부터 약속을 했었다. 팬의 소중함을 아는 멤버들이기 때문에 결정된 약속이었다.
그때 소파 구석 자리에서 핸드폰을 보던 황새벽이 말했다.
“……벌써 찾으셨는데?”
* * *
[쟤 진짜 뭐지 은발 뭐야]
[국혐 진짜 얼굴로는 못 깐다ㅎㅎ]
[성격을 아는데도 헉하게 되네…….]
[아니 근데 국선아 때는 저렇게까지는 안 생겼는데……?]
[소속사가 X소라 돈 안 쓴 스타일링이긴 했는데ㅋㅋㅋ 저렇게 생긴 줄은 몰랐음]
[근데 불성실한 건 어디 안 가는 게 저 숫자를 어떻게 헷갈리지?? 엔딩이 자기 파트잖아. 특히 절대 틀리면 안 되는 사람이…….]
[애들이 저거 아직도 기억할 정도로 연습한 거 뽕 차서 ‘별이 된다면’ 영상 다시 보는데 정해원 17번 맞는데?]
[엥?]
[중간 평가 정해원 엔딩 잊어버리고 안 했을 때 서 있는 거울이 7번 거울임]
[↳뭐지????]
[↳아 그럼 17번이 동선 수정하기 전 번호였나?]
[↳↳아니 중간 평가라니까. 수정 이후지.]
[이야, 그럼 이거…….]
[짜깁기 백퍼]
[↳ㅇㅇ가사 수정 전에 부른 장면 잘라서 넣은 듯]
[이러면 정해원이 엔딩 파트 안 부른 게 맞는 건데? 수정 전엔 없던 파트니까…….]
[이때 정해원 엔딩 안 했다고 개까이지 않았나ㅋㅋㅋㅋㅋㅋ아이돌이 엔딩을 까먹는게 말이 되냐고]
[↳진짜 죽일 듯이 까임ㅋㅋㅋ 나 그때 보컬 자신 없어서 그럴 수 있다고 댓글 한 번 달았다가 쌍욕 먹은 거 아직도 트라우마야…….]
TRV 앨범 제작팀, 정선미 과장은 점점 더 불이 붙는 댓글 반응을 확인하며, 얼마 전 불쑥 퍼스트라이트 세계관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왔던 정해원을 떠올렸다.
‘엔터 회사가 VMC랑 싸울 수는 없잖아요. 전 제가 알아서 시비 털 테니까, 회사에선 그냥 무조건 몰랐다고 하세요.’
VMC.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을 방송한 음악 방송사였다. 그리고 이 방송사가 가지고 있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지금, 엔터 회사 중 1강으로 불리는 VVV 엔터였다.
어떤 엔터 회사도, 어떤 방송사도 척지고 싶어 하지 않는 대중문화계의 절대권력이었다.
박희택 사장이 말했다.
‘너 VMC한테 심하게 밉보여서, 퍼스트라이트에 악영향 끼칠 것 같으면 나도 커버 못 쳐줘.’
‘알아요. 그렇게 되면 6개월 뒤에 남 되는 거죠, 뭐.’
‘넌 괜찮겠어?’
그러니까 정해원이 흐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면돌파 할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빈말 아닌데.’
그날, 정선미 과장은 정해원의 이런 행동이 복수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좀 더 정해원을 알고 나서 보니, 언젠가 무대에 서려면 대중에게 박힌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서 무리하는 것이 분명했다.
정선미 과장은 한숨을 쉬고 정지시켰던 예능 다시 플레이했다.
멤버들의 화기애애한 오프닝이 끝나고, 티저에 나왔던 것처럼 노이즈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