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4화
“이건 못 빼. 절대 못 빼.”
“아니…… 다 못 뺀다고 하시면…….”
뮤직비디오 편집 현장.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에 까다롭게 관리해야 하는 멤버가 있다는 전달은 미리 받았다. 하지만 TRV 직원이 편집하는 곳에 와서 이렇게까지 참견을 할 줄은.
그리고 이런 홍 감독의 답답함과 반대로, TRV 직원도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정해원의 분량을 최대로 줄여야 한다는데, 평소에 회사와 소통 잘해주기로 유명한 홍 감독이 안 자르겠다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잘라요? 여기서 이렇게 눈빛 바뀌는 거 봐. 이런 눈빛은 영화에서도 건지기 힘들어요.”
홍 감독의 미감에 정해원이 딱 들어맞았는지, 최소 다른 멤버와 똑같은 수준의 분량으로는 맞춰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중이었다.
TRV 직원은 한숨을 쉬다가도 자기도 모르게 편집 화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메라 앞이 불편해서 경직되어 있던 정해원이 무대에서 막 안무를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아니, 그래도 오프닝에 넣자는 건 좀.”
“왜 못 넣냐구요! 알았어, 그럼 뒤에 분량을 다 자를게요.”
무대 공포증이 심하다고 했는데, 그 ‘무대’가 이 ‘무대’만큼은 아닌 모양이었다. 무대 앞에서 분명 OIN과 TRV의 스태프들이 관객 역할을 해주고 있었을 텐데.
정해원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완전히 눈빛이 바뀌었다.
평소에는 아무래도 긴 시간 어둠 속에서 살았다 보니 나이답지 않은, 세상만사에 질린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무대에서 안무를 시작하는 순간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무대를 불태우자는, 자기가 쓴 과하다 싶은 가사 그대로의 열정과 동시에 세상 모든 것을 긍정해 줄 것 같은 반짝거림이 있었다.
“이건 써야 돼. 진짜 씁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오프닝은 안 되죠. 어떻게 중간에 영입된 멤버한테 첫 장면을 맡깁니까? 도입이 본인 파트도 아닌데.”
“장면이 좋잖아요.”
“잠시만요.”
직원이 핸드폰을 꺼내며 나갔다가, ‘잠시’치고는 꽤 오래 있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생색을 내며 말했다.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 버전에 넣으신다면, 그건 다시 회의해보겠습니다.”
“회의가 어디 있어요, 지금 당장 정해줘야지.”
“여기까지도 힘들게 설득했어요.”
그렇게 타협하고 TRV 직원이 떠난 후, 홍 감독이 OIN 스태프들에게 물었다.
“내가 예능을 잘 안 봐서 그러는데, 쟤가 그렇게 악플을 긁어모았다며? 성격이 그렇게 이상하냐? 난 전혀 못 느꼈는데.”
“성격이요? 오히려 저 나이 또래 중에 드물 정도로 사회성 좋던데요? 생긴 거랑 딴판이라……. 어휴, 애기인 거 아는데도 막 설레.”
그러니까 옆에서 다른 스태프들이 동의했다.
“진짜 애기니까 죄책감 느껴지더라구.”
“어휴, 본인이 먼저 와서 막 치대잖아. 유죄야, 유죄.”
스태프들의 의견이 비슷했다. 연예인들 중에 방송과 이미지가 다른 사람들이 꽤 있지만, 정해원 같은 경우에는 그중에서도 심했다.
“그…… 뭐, 그렇지.”
대충 상황 파악됐다는 듯이 홍 감독이 말하고 넘어갔다.
지금은 꼭 넣고 싶었던 장면을 잘라내지만, 어떻게든 코레오그래피 버전에는 이 장면을 끼워 넣을 생각이었다.
* * *
[영상 조회 수 100만을 달성했습니다]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의 A급 티켓이 주어집니다]
나는 돌아가는 룰렛을 보고만 있었다. 눌러볼 정신이 없을 정도로 회사가 소란스러웠다.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까지 이 소속사에서 올린 영상 중에 뮤직비디오를 제외하고는 100만이 넘은 게 처음이라는 모양이었다. TRV가 나를 멤버로 영입할 생각을 할 정도로 화제성에 목이 마른 것도 이해는 간다
문제는 멤버 개인의 외부활동 영상 중에는 100만 넘는 영상이 있다는 것이다.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의 인지도가 개인의 인지도에 미치지 못한다.
내가 아직 일라운드, 퍼스트라이트 컴퍼니의 2편을 못 봤다고 하니까 TRV 건물 안 카페에서 급하게 케이크를 사 가지고 와서 자축하던 자컨팀 스태프 중 하나가 말했다.
“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떻게 해원 씨가 안 볼 수가 있어요. 해원 씨 아이템인데.”
무심코 말하자마자 신지운이 대신 대답했다.
“저희가 바빠서 같이 안 봐줘서 그래요. 뭘 혼자 잘 못해요.”
다행이다. 분위기 싸해질 뻔했다. 근데 내가 뭘 혼자 못하진 않지 않나, 면허도 나만 있는데…….
그때 스태프가 물었다.
“그럼 다 같이 2편 한 번 더 보죠? 1편 100만 기념으로, 2편도 조회 수 올릴 겸.”
“아, 그럽시다. 좋죠.”
우리는 케이크를 잘라서 각자 받아다가 놓고 회의실 모니터로 퍼스트라이트 컴퍼니 2편을 플레이했다.
* * *
퍼스트라이트 자체 예능 일라운드.
퍼스트라이트 컴퍼니 2편.
멤버들이 두 개의 회사로 나뉘어, 서로 인수를 하는 스토리라고는 했지만 서로 정보도 없고, 그나마 회사라는 것의 맛만 본 정해원을 제외하면 전혀 회사를 다녀본 적 없는 멤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으니 그냥 드립의 연속이었다.
라이트 컴퍼니, 한효석이 물었다.
“인수라는 게, 제가 사전을 보니까 회사, 또는 개인이 다른 회사의 주식과 경영권을 함께 사들이는 거라고 합니다. 근데 그러기 위해서는 퍼스트 컴퍼니가 그 정도의 규모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퍼스트 컴퍼니의 민지호가 책상을 쾅 치고 일어서며 말했다.
“저희는 삼X입니다. 규모가 큽니다!”
그러자 라이트 컴퍼니의 정해원이 뭔 소리냐는 듯 물었다.
“삼X이요? 아까 보니까 아이패드 쓰시던데.”
그 말에 민지호가 할 말이 없어져 자리에 앉으며 같은 팀 형들인 안주원과 신지운을 보았다. 안주원이 물었다.
“그러는 라이트 컴퍼니는 뭐 하는 회삽니까?”
그 질문에 라이트 컴퍼니 박선재가 대답했다.
“테X랍니다!”
“아, 스릴 있는 선택을 하시네요,”
“네, 저는 테X라가 2043년에! 우리 무슨 회사지?”
신지운의 대답에 박선재가 소곤거리자 정해원과 같은 팀, 한효석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연구개발.”
“신소재 연구개발.”
“연구, 개발을 해서! 탈 것을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자사에 확신이 없어 보이는데요.”
“개인 의견입니다. 저희 라이트 컴퍼니의 의견이 아닙니다.”
막내의 말에 득달같이 모든 멤버들이 물어뜯었다.
양 팀이 아무 말이나 하는 사이, 사회자인 황새벽은 커피를 마시며 듣고 있었다. 그래도 사회자로서의 본분을 지켜 회의 진행 대본을 꼼꼼하게 확인하던 황새벽이 ‘어’ 하고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라이트 컴퍼니, 10억 추가 됩니다.”
그 말에 안주원이 물었다.
“뭐가?”
“내가 두 회사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막 던지는 말 중에 실제 정보와 매칭되는 게 있으면 시가 총액을 일정 금액씩 가져갈 수 있어. 있어요. 있습니다.”
황새벽이 아직 사회자가 익숙하지 않아 세 번 말을 고쳤다.
그 말에 멤버들이 웅성거렸다.
“10억씩 붙어? 이 건물이 그렇게 시가 총액이 클 건물 같지 않은데.”
“지금 그게 중요하니?”
“우리 뭐 신소재 개발하는 거 아니었어? 그게 보호장비가 아니라 탈 것이었어?”
그렇게 같은 회사끼리 셋씩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에 팬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애들 오늘 왤케 신났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애들 낯가리지 않아? 오늘 그냥 자기들만 있는 것 같이 놀아ㅋㅋㅋㅋㅋㅋ]
[낯가림 끝났나 봐ㅠㅠㅠㅠㅠ]
[그동안 숙소에선 계속 이렇게 사이 좋고 시끄러웠겠지…… 난 숙소에서도 엄청 조용하기만 할 줄…… 편견이었어…….]
[국혐이로 마이너스해도 내 최애 컨텐츠 등극함]
[↳근데 정해원 있으니까 애들이 평소보다 너무 편해 보여…….]
[↳그냥 낯가림기 끝난 거지 그게 정해원 덕은 아니잖아?]
[그래도 자컨팀 많이 힘내지 않았어? 국혐이 많이 편집한 듯…….]
[↳편집 진짜 잘했어 혐성이 안 보임ㅋㅋㅋ]
[↳↳편집신이신가]
[타팬인데 이번 신곡 진짜 국혐이 만들었어요?]
[↳루머야]
[↳↳루머 아니야 심의 적격 나왔어…….]
[↳↳↳그래??? 다들 말못하고 있었구나 몰랐네ㅠㅠ]
[이번에 디싱이라고 해서 솔직히 좀 속상했는데 이제보니 차라리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TRV 왜 이렇게 국혐 밀어줌? 친인척이야?]
그사이 멤버들은 시가 총액을 올리기 위해 회의를 이어갔다. 한동안 생각하던 신지운이 사회자를 향해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건 지금 2043년에 지구가 빙하로 뒤덮여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근데 저 팀은 지금 그 초저온 속에서 이동할 수 있는 신소재를 개발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상대 회사를 인수해야 하잖아.”
“맞습니다.”
“우리 회사는…… 우리가 찾아낸 자료에 의하면 무언가 관측하고, 측정해야 하는 시스템이 있거든요. 그리고 우리 회사 자료실 B구역에서 편지를 찾았는데…… 우리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 복구가 불가능한데, 만약 수리하지 못한다면 지구는 멸망한다고 적혀 있었거든요. 그럼 우리 회사는 혹시 이 빙하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퍼스트라이트 150억입니다.”
황새벽이 말하자마자 흥분한 민지호가 말했다.
“귀뚜라미!”
그 말에 한효석이 어이없어서 되물었다.
“보일러로 지구를 데우고 있다고?”
“뭐, 너 2043년 가봤어?”
“안 가보면 그걸 모르냐?”
둘이 또 싸우기 시작하자 구석에서 조용히 할 말을 적고 있던 정해원이 말했다.
“또 싸우니.”
“아니, 형, 민지호가.”
“한효식이 보일러의 위대함을 인정을 안 하잖아.”
“효석이라고. 아, 해원이 형 때문에 멤버들이 다 효식이라고 하잖아요.”
[06즈 또 싸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효석이 어른스러워 보였는데 지호랑 있으면 그냥 고딩1ㅋㅋㅋㅋㅋ]
그리고 정해원이 쓰던 종이를 한효석에게 밀어주자, 한효석이 종이를 집어 들며 말했다.
“사회자님, 혹시 우리가 개발한 신소재 기술을 퍼스트 컴퍼니에 제공하지 않으면 지구 망하냐는데요?”
그러자 자료를 뒤적거리던 황새벽이 말했다.
“네. 그건 맞습니다.”
“어?”
“다행히 라이트 컴퍼니에서 1시간 전에 발견하셨네요.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금 두 회사가 싸우고 있는 동안 지구 멸망까지 1시간이 남았습니다. 두 회사가 합병하지 않으면 지구는 1시간 후에 멸망합니다.”
황새벽의 건조하고 몰입력 있는 목소리에 순간 몰입한 모든 멤버들이 사회자를 보았다. 황새벽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다만 두 회사가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싸우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겠죠. 만약 기술을 합쳐서, 문제가 해결이 된 이후를 생각해서. 치킨런을.”
그러자 안주원이 중얼거렸다.
“우리 때문에 지구 망하는 거 맞았네.”
그 말에 민지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치? 나도 그럴 거 같더라.”
그 순간 갑자기 회의실에 불이 깜빡거렸다. 겁 많은 몇몇 멤버들이 소리를 질렀다.
“아, 뭐야.”
“뭐긴, 지구 망하는 중이지.”
신지운이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겁 많은 박선재가 정해원의 팔을 꽉 붙잡으며 말했다.
“형 나 농담 아니고 진짜 무서워.”
“어, 우리 막냉이 겁 많지.”
그렇게 말하는 정해원도 정작 놀라는 것에 약했기 때문에 의자 손잡이를 꽉 잡았다. 안 그래도 해가 져서 주변은 완전히 어두웠고 불을 끌 때마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평소 겁이 전혀 없는 황새벽은 불이 들어오자마자 힐끔 전구를 확인하고 바로 회의를 이어갔다.
“말씀드렸듯이 지구 멸망까지 1시간이 남았는데요, 현재로서는 어떻게 지구를 구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시죠.”
“네.”
“사실 여러분에게는 각각의 이능력이 있습니다.”
“……갑자기?”
멤버들은 황당해했지만 황새벽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대본을 읽었다.
“여기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인생에 딱 두 번,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 능력이 있는데 지구 왜 망해여?”
“여러분 중에 빌런도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불은 계속해서 깜빡거렸고, 음산한 음악까지 들렸다. 황새벽이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20년 전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곳에서 빌런과 각자의 이능력, 그리고 지구 멸망을 막을 방법을 찾아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좋은 여행 되세요.”
그 말을 끝으로 화면이 암전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밝아진 대낮의 화면은 뮤직비디오 티저 속의 학교였다. 학교 여기저기에 흩어진 멤버들의 모습을 한 명씩 보여주며 퍼스트라이트 컴퍼니 2편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그 자체 예능의 마지막 장면이 이번 뮤직비디오와 이어진다는 사실을 티저 공개로 알아낸 팬들의 반응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