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5화
[아니…… 노래…… X나 좋은데?]
[됐다!!!!!! 얘들아 됐어!!!!!!!!]
[자컨으로 스포…… 세계관…… 시간여행…… TRV 갑자기 잘해주면 무서운데…….]
[진짜 빡 힘줬구나ㅠㅠㅠㅠ]
[이번에 디싱이라는 거 듣고 활동 끝나면 개인활동 할거라고 걱정하던 햇살이들 티저보고 안심했을듯ㅋㅋㅋㅋㅋ]
[↳우리 애들이 퍼라에 이렇게 진심이야ㅠㅠㅠㅠ]
[이번에 군무 미쳤네 한 장면 나왔는데 소름돋아ㄷㄷㄷ]
[↳지호가 그렇게 자랑하고 싶어하더니ㅠㅠㅠㅠ]
[우리 애들 하나하나 춤선 다른 거…… 뽕찬다…….]
[퍼라의 정체성은 빡센 군무여야 한다는 걸 TRV가 드디어 깨달은듯]
[불을 켜 그냥 이 한 컷만 봐도 느껴짐 강강강강일 듯]
[↳강강강강222]
그리고 뮤직비디오 티저와 자체 예능 엔딩에 나온 정보로 한동안 SNS에서는 누가 빌런이고, 누가 시간여행자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냥 국혐이 빌런이란 내용 아닌지ㅋㅋㅋㅋ]
[↳엥 그런 식으론 안 만들듯]
[자체 예능 엔딩이랑 티저 엔딩 합쳐보면 한효석이 빌런이란 걸 알 수 있음. 보면 알겠지만 한효석은 학생회장 롤임 오타쿠적 접근으로 이 경우 빌런은 학생회장임]
[↳근거가 빈약한데 그럴듯하네]
[확실한 건 안주원은 빌런 아님. 미술실에 있잖음? 그냥 미대 가려는 성실한 친구임]
[↳그냥 성실한 친구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신지운 잘생긴 건 알았는데 저런 스타일링 하니까 그냥 X나X나X나 잘생겼네]
[↳신지운은 재벌 3세 역이야?]
[↳↳이거 맞는 듯 하교할 때 운전사가 까만 차로 데리러 오잖아]
[↳↳↳재벌 3세도 X나 빌런각인데…….]
[빨리 2차 티저 나왔으면ㅠㅠㅠㅠㅠ]
[1차 티저에 개인컷 안 나온 사람 누구야?]
[↳황새벽 민지호 박선재 나이순]
[↳↳거기에 정해원]
[↳↳↳ㅇㅇ정해원…….]
* * *
2차 뮤직비디오 티저.
모두의 예상과 달리, 평소 나른한 인상이라고 여기던 황새벽은 더플백을 메고 야구부로 향하고 있었다.
민지호는 주먹질을 하다가 1대 다수가 남게 되자 도망치며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박선재는 밴드부에서 마이크 앞에 서며 하이라이트를 부르는 파트가 짧은 티저 속에서 흘러나왔다.
[민지호 씹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X나 까리하네]
[전통적으로 양아치는 빌런 아님]
[새벽아…… 청주여자교도소…… 그래…….]
[뭐야 막냉이 컸어]
[다 컸어…… 낯설어…….]
[막내가 갑자기 남자로 보여…….]
그리고 정해원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최대한 덜 눈에 띄게 하기 위한 노력이 반영되어, 별다른 특색 없이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국혐은 별로 캐릭터가 없네]
[↳네? 핑크머리 고등학생이 캐릭터가 없어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ㅋㅋㅋ]
[‘혼자’인 게 컨셉인듯]
[근데 정해원 이번 곡…… 티저만 들어도 잘 뽑아서 곡으론 못 까겠다…….]
[↳나도…….]
[↳퀄이 좋다까진 아닌데 퍼스트라이트한테 맞는 곡 뽑으려고 한 게 느껴짐]
[인정할 건 인정하자 지금까지 퍼라가 받아온 곡 중에 이거다 싶은 곡 처음임]
* * *
박종렬 엔터 사람들이 티저를 챙겨 봤는지 꽤 연락이 많이 왔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연락이 온 건 내 첫 번째 연예인이던 부정태와 박희영이었다.
부정태는 개그로 내 긴장을 풀게 해주고, 박희영은 선배 가수로서 조언을 해줬다. 크, 든든하다.
멀게만 느껴지던 음원 발매일은 차근차근 다가왔다.
그렇게 6월 14일, 그리고 18시 음원 발매 20분 전이 되었다.
새벽 3시까지 연습을 했는데도 나는 완전히 밤을 새웠다. 잠이 전혀 안 오니까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동시에 공개되고, 내일모레인 목요일이 첫 번째 음악방송이었다.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진행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태어나서 제일 긴 밤을 보냈다.
오후 6시에 음원이 공개되면, 나를 제외한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저녁 9시에 단체 X이라이브를 찍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무심코 계속 옷 소매를 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며 불안감을 해소했다. 옆에서 멤버들이 나에게 떨리냐고 계속 물어보는데, 솔직히 너무 긴장해서 말하는 게 잘 안 들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퍼스트라이트의 팬들이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면, 뮤직비디오를 보기 전에 스트리밍을 위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고 했다. 그 후부터 뮤직비디오를 보기 시작한다고.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정말 신기한 것 같다. 아이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무대를 마음껏 하는데, 팬들은 그런 아이돌을 위해 이유 없는 사랑을 준다.
팬들은 내가 퍼스트라이트의 멤버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는 6개월의 계약 기간 동안 선라이즈가 내 팬이기도 하다고 생각할 생각이다. 어쨌든 6개월 동안, 나는 이 팀의 멤버인 거니까. 팬들은 내가 속한 팀을 좋아해 주고 있는 거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할 거다. 흐흐.
“햇살이들이 좋아해야 되는데.”
나는 무심코 튀어나온 말을 멤버들이 듣고 웃을 거라고 생각해 확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황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옆에서 민지호가 소파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말했다.
“햇살이들이 안 좋아하면 활동하는 재미가 없긴 해. 이번엔 좋아했으면 좋겠어. 신나서 응원하는 거 듣고 싶어. 그 느낌 알지? 그 막, 그럴 때 그 응원.”
“알지, 알지.”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일순간 모든 멤버가 조용해지고, 시계는 6시를 가리켰다.
그리고 퍼스트라이트 디지털 싱글, ‘불을 켜’가 발매되었다.
멤버들은 6시가 되는 순간부터 바로 뮤직비디오 댓글을 확인하기 바빴다. 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데 신지운이 말했다.
“해원아 컴백 준비 바쁜 거 알지만 다음 앨범도 작업해 주겠니, 라는데.”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고 물었다.
“……지어낸 거 아냐?”
“기다려 봐.”
신지운이 퍼스트라이트와 매니저 두 명이 함께 있는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확인해보니까 댓글을 캡처한 이미지였다.
[해원아 컴백 준비 바쁜 거 알지만 다음 앨범도 작업해 주겠니ㅠㅠㅠㅠㅠ]
와.
와씨.
딱 한 명의 칭찬인데 미칠 것 같다.
나는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는데, 자꾸 웃음이 실실 나왔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아, 빨리 음방 하고 싶다.”
내가 말하니까 옆에서 민지호가 자기도 빨리 햇살이들에게 우리 군무를 보여주고 싶다고 성화였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다. 시끄러워 죽겠네.
그때 옆에서 멤버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해원아, 인스타……를 할 리가 없지. 이것도 보내줄게.”
안주원이 말하더니 단톡방에 인스타그램 캡처를 보냈다.
우리 누나 정수연이었다. 나는 처음 알았는데, 퍼스트라이트 멤버 전원이 누나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었다고 했다. 국선아 때부터 쭉.
사진은 두 장인데, 하나는 누나의 게시글, 또 하나는 피드였다.
자기 작품 사진들만 있는 촉망받는 예술가의 피드인데, 딱 하나, 진짜 눈에 띄게 내가 초등학생 때 피아노 치던 사진이 있었다.
[내 동생 정해원이 다시 음악을 합니다.
피아노 진짜 잘 쳤었는데…… 쬐끄만 게 누나 유학비 때문에 집에 부담 심한 건 어떻게 알고 바로 피아노를 그만둔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좀 불효녀(^^)라 늘 부모님 희생보다 동생의 희생이 더 미안해요. 부모님께는 갚아드릴 수 있지만, 피아노를 포기한 건 갚아줄 수 없으니까.
정해원! 노래 좋아! 넌 어쩔 수 없는 음악인인가 봐~^^]
“뭔 TMI를 이렇게 구구절절 풀어놨어.”
괜히 좀 울컥해서 투덜투덜거렸다.
뭘 그걸 또 마음에 담아놓고 미안해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동생이라 누나가 이유 없이 당했어야 할 상황이 수없이 많았을 텐데. 부모님에게도 누나에게도, 미안한 건 사실 나였는데.
* * *
음원 발매를 축하한 후, 멤버들은 바로 X이라이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컴백 직전에 황새벽도 금발로 탈색을 했기 때문에, 후드를 써서 꼼꼼하게 머리를 감췄다.
나는 무대는 몰라도 1시간으로 예정된 X이라이브에서 굳어 있지 않을 자신이 없어, 이번에는 빠지기로 했다.
멤버들이 컴백 X이라이브를 시작한 후, 나는 혼자 연습실로 들어왔다.
음악을 틀고 모든 걸 날려버릴 것처럼 안무연습을 했다. 평소에는 다른 생각이 전혀 안 드는데 오늘은 자꾸 아까 본 댓글이 생각났다.
‘다음 앨범도 작업해 주겠니’
내가 무대에 서면, 적어도 한 명, 내 편인 관객이 있다. 분명히. 내 편이 있다.
그게 그렇게 힘이 될 수 없었다.
사실 요즘 작업하고 있는 곡도 있다.
안주원이 지난번에 쓴 가사를 나에게 넘겨준 이후, 나는 한동안 이 수줍음 많은 소년의 사랑 노래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
그리고 나온 생각은 퍼스트라이트의 지난번 활동곡, ‘첫 번째 프러포즈’의 프리퀄로 가보는 게 어떨까 하는 거였다.
첫 번째 프러포즈는 컨셉이 퍼스트라이트와 안 어울리고, 노래가 약간 밋밋하다는 평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곡도 아니었다. 그래서 거기에 스토리를 부여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우트라인은 잡았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내가 할 일을 어느 정도는 하고, 룰렛을 돌리고 싶었다.
[레드룰렛 A급 티켓×1]
반짝거리는 빨간색 룰렛이 돌아가다가 천천히 멈췄다.
그리고 보상이 떴다.
[보상을 선택하세요 (택1)]
[트랙메이커 A]
[탑라이너 B]
이야.
심플하네.
반주(트랙)을 만드는 트랙메이커와 멜로디를 만드는 탑라이너.
내가 룰렛을 좀 더 잘 돌렸으면 탑라이너 A도 있었으려나. 뭐, 솔직히 선택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이건 내 선호도와 작업 방식의 문제니까.
[‘탑라이너 B’를 선택합니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 내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수많은 음악들이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 책장 같은 것이 생겨서, 차곡차곡 그 음악들이 정리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히키코모리 생활 2년 동안, 나는 죽기 살기로 음악을 피했다. 그때는 음악에게 두 번째 차인 기분이었다. 이제 영영 못 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탑라이너 B’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획득하는 게 아니었다.
글을 잘 쓰려면 다독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음악도 마찬가지다. 많이 들어야 한다.
‘탑라이너 B’는 내가 억지로 잊으려고 애써서 흐릿하게 만들었던, 지금까지 내가 듣고, 배워온 모든 음악들이 내 머릿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획득한 보상
프레젠테이션 기술 B
탑라이너 B
L급 히트곡 제작 확률 0%
S급 히트곡 제작 확률 0%
A급 히트곡 제작 확률 1%
B급 히트곡 제작 확률 10%
C급 히트곡 제작 확률 20%]
“와.”
빨리 가서 100곡 만들고 싶다. 1%라는 건, 100곡 만들면 하나는 A급 히트를 한다는 뜻 아닌가?
물론 설렁설렁 100곡은 아닐 거란 거 안다. 반드시 영감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이것은 내가 작곡을 하고 있어야지만 적용되는 확률이란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상태창이 갑자기 빨간 글씨로 바뀌었다.
[돌발! 위기를 극복하세요]
어…….
언젠가 저 상태창을 봤을 때 아마…….
박희영이 펑크를 낼 뻔했었지…….
나는 그날을 떠올리자마자 무슨 위기인지도 모르면서 연습실을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