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6화
정해원이 빠진 단체 X이라이브는 지난 두 개의 미니 앨범 발매일과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삐거덕거리고 있었다.
방송 초반, 어느 정도 신곡 이야기를 하고 난 한효석이 대표로 말했다.
“해원이 형이 지금 스케줄이 있어서요, 좀 늦게 도착할 것 같아요.”
무대 공포증이라든지 이것저것 설명하면 분란만 조장할 것 같다는 회의 끝에, 정해원은 스케줄 핑계를 대고 방송 종료 직전에나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정해원이 없으면 없는 대로 댓글은 정해원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지만, 초반 이후부터는 멤버들에게 집중해 그런 댓글이 사그라들었다.
화젯거리가 떨어지자 댓글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으나, 평소 라이브 때에 비해서는 훨씬 많은 인원이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멤버들은 개인 브이라이브를 할 때는 시선을 채팅창에만 두고 팬들과 소통을 했지만, 다 같이 있으니 오히려 조용하거나 말싸움을 했다.
“민지호, 앉아. 가리잖아.”
“안 가린다고.”
한효석과 민지호가 또다시 시비가 붙자 X이라이브를 보고 있던 몇몇 팬들이 일라운드 이야기를 꺼냈다.
[정해원 일라운드에서 06즈 싸우면 바로 중재하더라? 국선아 때는 안 이랬어?]
[↳국선아 때도 중재하려는 상황 있긴 했는데 그게…….]
[↳중재의 이유가 좀 달랐지…….]
그리고 이어서 링크가 올라온 국선아 클립은 정해원이 의견을 교류하던 같은 조 조원들에게 인상을 쓰며 말하는 장면이었다.
-그만들 좀 싸워.
그러자 옆에서 같은 조이자 정해원과 같은 소속사, 우하정이 말했다.
-의견 교류는 해야지.
-이게 무슨 의견 교류야, 싸우느라 결정이 안 나는데.
-잘 진행되고 있어. 네가 우기지만 않으면.
-뭐?
그다음에는 진짜로 싸움이 나는 거 아닌가, 싶은 긴장감이 이어지고, 정해원은 그냥 하려던 말을 관두고 그곳을 나가버렸다.
[근데 짜깁기 논란 보고 나니까 여기도 편집 좀 이상하다는 거 나만 느끼나…….]
[↳나도 좀…… 지금 보니까 정해원이 그만 좀 싸우라고 할 때…… 별로 싸우고 있는 상황도 아닌데? 싶음]
[지호랑 효석이 최애인 햇살이들 다들 공감하지 않아? 국선아 때 정해원 진짜 싫어하다가 요즘 좀 숨통 트이는 거…….]
[↳ㅇㅇ솔직히 둘이 진짜로 안 맞는 거 같을 때 있어…… 해원이 오고 나서 분위기 정리 잘 해주는 느낌]
[↳↳그치……. 최애니까 성격 너무 잘 알잖아. 지금도 이러는데 국선아 때라고 잘 맞았을까 싶고…….]
[↳↳↳심지어 그때는 중3이었잖아. 진짜 질풍노도…….]
국선아 시절 이야기 중인 커뮤니티, SNS와 달리 X이라이브 채팅창에는 대부분 애정표현이나, 신곡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박선재가 핸드폰으로 채팅을 읽다가 말했다.
“와, 햇살이들 진짜 신곡 다 마음에 들었나 봐.”
그러자 민지호가 신나서 말했다.
“무대 보면 더 최고란 걸 아실 거예요. 아, 맞다. 저희 도입부 안무…… 이렇게 손가락 오므렸다가 조금씩 펴가면서 불꽃 표현하는 거 있잖아요. 이거 손가락 연기 어려워.”
그리고 박선재가 진행을 위해 다시 채팅창을 찾았다.
“아, 햇살이들이 오늘 TMI 말해달라고 하셨는데…… 하나씩 말해볼까요? 이건 제 TMI는 아닌데, 새벽이 형이 오늘 긴장해서 밥을 안 먹더라구요. 새벽이 형이 밥 안 먹는 거 진짜 큰일인데.”
그렇게 말하고 다들 말이 없어서 박선재가 할 수 없이 다시 민지호에게 말했다.
“민조, 뭐 TMI 있어?”
“햇살이, 애칭. 해원이 형이 만들었어요.”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있는 곳까지 거기 있던 모든 직원이 움찔거리는 게 전해졌다. 민지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듣자마자 너무 사랑스럽고 좋아서 멤버들 다 동의했잖아.”
신지운이 먼저 동조했다.
“난 듣자마자 완전 내 취향이라고 그랬잖아. 귀여운 거 너무 좋아. 귀여운 게 최고야.”
“나도 너무 좋더라.”
옆에서 안주원도 맞장구쳐 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동안 조용해지자, 마음도 약하고 얼굴도 얇은 박선재가 급한 마음으로 채팅창을 찾았다.
“음……. 그리고 또 뭐 재미있는 댓글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댓글을 찾으며 이것저것 읽어보던 박선재가 말했다.
“아, MII 노래 들어봤냐고? 당연히 들어봤죠. 노래 좋던데? 하정이 형…… 아, 그러네. 목요일에 보겠죠?”
작년, 퍼스트라이트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그룹 MII에 대한 질문이었다.
“방송국에서 보면 진짜 반갑겠다.”
박선재가 그렇게 말하고 넘어가려는데 신지운이 말했다.
“난 그 형 별로.”
그렇게 말하는 순간, 분위기가 조용해지고 촬영장의 문이 급하게 열렸다.
* * *
나는 댓글을 못 본다.
원래는 그래도 유튜브는 좀 봤었는데, 최근에는 유튜브 광고에서 ‘퍼스트라이트는 여섯 명입니다’라는 팬 광고와 마주친 후부터 그나마도 못 보고 있다. 팬들 마음은 아는데, 그냥 내가 못 보겠다. 열심히 돈 벌어서 프리미엄 써야겠다.
아무튼 그래도 X이라이브 어플은 깔아놨다. 그리고 X버스도. 얼마 전에 퍼스트라이트 카테고리에 내 이름도 입점이 됐는데, 글을 남겨보기는커녕 눌러보지도 못했다. 조만간 한번 글을 써봐야겠다.
나는 다급해서 복도를 달리는 중에 방송을 켜서 듣고 있었다.
-난 그 형 별로.
하, 이 새끼…….
욕은 나오지만 그래도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최소한 어디서 누가 뭔 사고를 치고 있는지 파악은 되니까.
신지운은 본인이 댕댕이라고 컨셉질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퍼스트라이트는 여섯 명이 전부 고양잇과다. 조용히 있다가도 뭔가 사고를 치고 있으니까. 아니, 강아지도 그런가. 강아지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겠는데…….
회사도 나도 그렇게 단속을 시켰는데 칠 사고는 친다. 그것도 갑자기.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날 멤버들이 힐끔 봐서 내가 급하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내! 마음의! 별로!’
내 급한 행동을 알아봤는지 표정이 굳었던 멤버들이 일시에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동시다발적으로 여기저기서 말했다.
“아, 내 마음의 별로?”
“그거 좀 지난 거 아냐?”
“저 형 이상한 드립 욕심이 있어.”
“지운아, 그냥 한번 해줘.”
황새벽이 말하자 신지운이 내 쪽을 보더니 할 수 없이 말했다.
“내 마음의 별로.”
X발, 다행이다…… 아, 속으로 욕했나? 만 원 굳은 느낌이 아주 좋네…….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이돌이 같은 시기에 활동하는 다른 그룹 아이돌을 깐다? 차라리 회사와 방송국을 까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다.
MII의 우하정은 방송 내내 내 성격을 눌러주는 역할을 많이 하기도 했고, 9위까지 데뷔할 수 있었던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 최종 순위 10위. 조작이 없었다면 7위로 데뷔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팬들의 동정을 산 연습생이었다.
거기에 어찌 되었든 지금 MII는 퍼스트라이트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굳이 긁어 댈 필요가 없다.
신지운은 옆에서 모든 사람들이 수습해준 후에도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지운은 우하정을 기회주의자라고 정말 끔찍하게 싫어했었다. 솔직히 신지운 성격도 국선아 초반엔 반 쓰레기 정도 느낌이었는데 본인은 잊어버린 것 같다.
우하정은 나를 욕하는 게 스포츠가 되고,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지 상대방은 나쁘게 편집될 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 기회를 곧잘 이용했다. 덕분에 나와 비교되며 좋은 이미지도 많이 받아 갔다.
방송국에서 우연히라도 보면 한 대 후려야겠다.
그때 TRV 직원 하나가 내 손을 꽉 잡으며 악수를 했다.
“진짜…… 진짜 고마워요, 해원 씨.”
“어휴, 많이 놀라셨겠어요.”
이러는 마음을 아니까 나도 안 피하고 달래줬다.
그러고 나니 뒤늦게 약간 민망해지기 시작한다. 허허. 내 마음의 별로…….
그래도 아이돌을 목표로 삼은 후부터 방으로 숨기 전까지, 나는 ‘민망하다’든지, ‘오글거린다’는 개념에 막히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아이돌은 저 두 가지 말이 멈칫하게 만드는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말과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웃게 하고, 좋은 의미로 눈물이 나게 할 거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돌은 꽤 좋은 직업이다.
시계를 보니 예정된 1시간의 방송 중 20분이 남아 있었다. 멤버들은 이미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안 들어가면 안 될 분위기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라이브방송.
한 번은 해봐야 할 것 같긴 하다. 댓글은 저기서는 핸드폰으로 봐야 보이니까 안 보면 될 것 같고.
내가 스타일리스트 이예영에게 물었다.
“저 얼굴 괜찮아요?”
“너야 얼굴은 항상 괜찮지. 근데 입술이 왜 이렇게 건조해? 또 뜯었어?”
“어…….”
“너 손톱도. 손톱 좀 가만히 둬.”
“아니, 누나. 혼내라는 게 아니구.”
“넌 좀 혼나야 돼. 이 예쁜 얼굴을 그렇게 관리를 못 해?”
어휴, 괜히 말했다가 잔소리만 들었다.
나는 이예영이 준 립밤만 바르고 멤버들 쪽으로 갔다.
3인용, 1인용 소파가 하나씩 있고 거기 멤버 넷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뒤에 서 있었다. 팀내 최장신인 한효석과 신지운이었다.
“오, 해원이 형 왔어?”
“여기 앉아봐.”
이것들이 정 가운데를 비워주려고 했다. 나는 못 본 척하고 소파 뒤로 가서 신지운에게 말했다.
“야, 비켜.”
“와, 깡패다.”
“아, 가운데 부담스러워.”
내 말에 신지운이 흐흐 웃으며 자리를 만들어줬다. 그러니까 앞에 앉아 있던 황새벽이 고개를 뒤로 젖혀서 날 보며 말했다.
“정해원, 넌 직원이야, 멤버야? 뭐 어디냐고 물어볼 때마다 직원회의에 껴 있어.”
“딱 두 번 그랬다, 두 번.”
“두 번이 적어?”
아무래도 일라운드 퍼스트라이트 컴퍼니 시리즈에 내 의견이 많이 반영되다 보니 회의 때 몇 번 부르긴 했다. 그 팀도 은근 꼼꼼한 게, 내 몰입을 깰 수 없다고 내가 있을 때는 디테일한 스토리라인은 전부 가리고 회의를 진행해 준다. 이 돌알못 회사에 아까운 팀 같다.
그나저나 카메라 뒤에서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노려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니 머리가 안 돌아간다. 웃음도 안 났다.
쎄한 표정 하지 말자. 쎄하단 소리 안 듣게 해보자. 그렇게 머릿속으로 반복해 봤지만 누가 뒤통수를 손으로 찍어 누르고 있는 것처럼 고개가 들리지 않았다.
“아, 무대 공포증이면 무대를 어떻게 하냐고? 아냐, 무대는 잘할 수 있어요. 뮤직비디오 촬영할 때 완전 잘하던데?”
“어, 그건 타고났거든.”
잠깐만. 그걸 왜 너희가 얘기하니…….
정신을 차려보니 멤버들이 내 질문에 대신 대답하고 있었다.
아니, 근데. 그런 얘기 해도 돼? 아이돌이 무대를 무서워하면 안 되잖아? 아이돌 실격 아닌가?
멤버들은 내가 댓글을 못 보니까, 자기들이 읽어주겠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한마디도 못 하는 동안, 의외로 훈훈하게 시간이 흘러갔고, 방송 종료까지 1분 30초가 남았다.
신지운이 마무리 정리를 했다.
“햇살이들 이번 신곡 좋아해 줘서 너무 고맙고, 신나고 그래요. 그럼 우리는…… 손들 모아봐. 카메라 등지지 말고.”
멤버들이 둥글게 모여 한 손씩 모았다. 그리고 신지운이 말했다.
“우리 햇살이들한테 좋은 모습 보여주자.”
“어, 보여주자.”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신지운이 뜸을 좀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해원이 형이 말한 이번 앨범 컨셉 그대로, 원 팀 원 골. 딴생각 하지 말고. 진짜 우리 팀만 보고 가자.”
퍼스트라이트의 인기가 재데뷔 초반부터 하락세를 보이자 팬들은 개인 활동에 대한 걱정을 정말로 많이 쏟아냈다. 팀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신지운은 그 걱정을 종식시키고, 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이었다.
“중간에 힘들다고 이탈이고 딴 생각이고 하면, 너네들은 당연하고 형이고 뭐고 내가 쫓아가서 끌고 온다. 진짜로.”
이야, 계약서 6개월짜리란 거 알면 진짜 쟤한테 맞을 수도 있겠는데…… 미리 운동을 좀 해놔야겠다. 어씨, 운동 귀찮은데.
현재 팬들의 반응이 어떤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래도 방송은 무사히 종료됐다. 라이브방송까지 하고 나니 뭔가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다. 이제 음악방송이, 무대가 정말로 코앞까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