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7화 (2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7화

[지운이ㅋㅋㅋㅋㅋ타이밍 놓쳤어ㅋㅋㅋㅋㅋ]

[내 마음의 별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ㅋ]

멤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행히 팬들이 귀엽다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하기야, 방송에서 아이돌이 다른 아이돌에게 진짜 별로라고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의혹은 있지만 확신은 못 할 것 같다.

무사히 넘어간 것과 상관없이, 나는 신지운의 등짝을 퍽 때렸다.

“야이, 미친놈아.”

“아, 만 원.”

“네가 내, 이 새끼야. 돌았냐? 미쳤어?”

“나도 내 마음의 별로라고 하려 그랬어. 좀 늦게 했겠지.”

“웃기고 있네.”

“어휴, 독심술 쓰시나 봐여.”

하, 진짜 패고 싶다. 아, 이미 팼는데 안 후련한 거구나.

아무튼 우리가 알아서 라이브를 켜는 날은 내가 보기에 한동안 안 올 것 같다. 회사에서 허락을 해줘도 내가 막아야겠다. 허허…….

갑자기 국선아 첫날이 생각난다.

나는 그날 진짜 엄청 긴장하고 있었는데, 내 옆에 신지운이 앉았었다. 얼굴에 받은 충격은, 입을 열고 나서 바로 사라졌다.

‘아이돌이 되면 부모님이 빡칠 거 같아서요.’

라고 말하고 하하 웃는 게 아닌가.

나는 생판 남인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아까워서 신지운을 말렸다. 왜 아이돌이 되려고 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비밀이라고 해라. 절대 아무 말이 하지 마라. 넌 그냥 얼굴이 서사니까 넘어가 줄 거다…….

그리고 실제로도, 다행히 넘어갔다.

* * *

촬영이 끝나고 연습실로 돌아가기 전, 정해원은 직원들이 나간 후에 멤버들을 다시 모이게 했다.

“얘들아. 잠깐만 모여봐.”

드디어 때가 왔구나, 싶은 표정으로 멤버들이 모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잔소리 폭발하겠네.’

멤버들의 예상대로 잔소리가 한동안 쏟아졌다. 그러다 정해원이 이야기를 정리하며 말했다.

“부탁이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이번 활동기만큼은 다른 멤버가 무슨 개드립을 쳐도 무조건 받아주라.”

“……민지호 말을 어떻게 다 받아줘요.”

“효식아, 그건 내가 할 말이지.”

한효석과 민지호가 반발하자 정해원이 기도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번 활동기만 딱. 제발.”

그리고 둘이 조용해지자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도 사람인데, 라고 생각하는 거 아는데. 나는 정말로 아이돌은 카메라 앞에서 웬만해선 밝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활동기 동안만이라도 그래줘.”

다 국선아 초반에 정해원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멤버들은 괴로워하면서도 일단 잔소리를 들었다. 이야기가 다 끝난 후, 서로 쳐다보다가 황새벽이 입을 열었다.

“근데 너도 좀 알았으면 좋겠는 게.”

“나? 뭐.”

“애초에 우리가 같은 그룹이 됐을 때부터, VMC랑 아주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 안 했어.”

황새벽은 주춤하는 정해원에게 말을 이었다.

“당연히 완전히 척지고 싶진 않지. 근데 그래도 어쨌든, 웬만하면 네 편이야.”

“…….”

“국선아 때 너 아니었으면 난 맨날 늦잠 자서 망했을 거고, 안주원하고는 툭하면 새벽까지 같이 연습해주고. 신지운은…… 만 원 낼게. 저 새끼는 아예 딴 사람 만들어놓고 06 둘은 맨날 싸우는 거 말리고, 막내는 사실 거의 네가 대리 육아했지.”

“아, 형. 맞긴 한데, 나 그 정도로 애기는 아니었어어.”

박선재는 칭얼거리고, 황새벽은 말을 이었다.

“국선아 내내, 네가 화내는 역 한 거. 솔직히 우리 탓 없다고 어떻게 말하냐.”

“그딴 소린 하지 말고.”

“정해원이 막 나가봤자겠지만, 좀 더 막 나가도 된다고. 편들어줄 테니까.”

“…….”

“까지 우리 단톡방에서 상의를 했고.”

“……너희 나 없는 단톡방 있어?”

“어, 있다. 빡치지?”

“당연…….”

“너도 멤버인데 안 끼워줘서.”

“…….”

“우리도 그냥 너 합류할 때 상의하느라 팠어. 진짜 얼마 안 됐어.”

황새벽은 자기도 모르게 변명하면서 바로 정해원을 단톡방에 초대했다.

정해원은 핸드폰을 한참 동안 보다가 단톡방에 들어간 후 말했다.

“근데, 무슨 일이든 매니저 형들 없이 단톡방에서 결정하지 말고. 다 회사에 먼저 말하고…….”

“아, 넌 멤버야, 직원이야.”

“형, 직버.”

민지호가 말하니까 잠깐 싸해졌다가 한효석이 말했다.

“……멤원이 낫지 않냐.”

“와, 한효석이 저걸 받아줬어.”

“해원이 형, 이렇게까지 받아줘야 되는 게 맞는 거야? 이래야 돼?”

멤버들이 격하게 반응하자 한효석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떨궜다. 귀가 시뻘게져 있었다.

정해원이 어이없어서 웃다가 말했다.

“어, 이 정도까지 받아줘야지. 당연히. 이제 연습하러 가자.”

“그랭.”

신지운이 대답하더니 정해원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말했다.

“형, 난 댕댕이야.”

신지운이 귀여운 컨셉을 잡는 것에 전혀 공감을 못 하던 정해원이 마지못해 말했다.

“어, 댕댕이다.”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줄래.”

“와아, 댕댕이다.”

정해원이 마지못해 말하고 떠밀어버리자 신지운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브이앱 종료 후, 연습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을 때, 직원 하나가 연습실 문을 벌컥 열었다.

“실차 들었어요! 딱 100위!”

실시간 차트 100위.

그 말과 동시에 멤버들이 아무 곳에나 던져놨던 핸드폰을 찾으러 달려갔다.

“실시간 차트 어떻게 보는 거예요?”

내가 물어보니까 직원이 와서 실시간 차트 보는 법을 알려줬다. 내가 배우는 사이 민지호가 말했다.

“무대도 하기 전에 커하네.”

그러더니 돌아보며 말했다.

“빨리 받아줘. 아무나.”

그러자 한효석이 대답했다.

“안 받아줄 게 있냐? 맞는 말인데.”

첫 실시간 차트 진입이었다. 멤버들은 자기들도 거기 힘을 보태기 위해 음악을 다운받고, 스트리밍도 눌렀다.

그렇게 신나 있을 틈을 주지 않고, 강영호 매니저가 핸드폰을 들고 내 쪽으로 왔다.

“해원 씨. 저…… VMC 직원분이시라는데요.”

이 밤에 전화가 온 걸 보니까, 아까 라방 이후에 뭔가 인터넷이 시끌시끌한 모양이다.

나는 바로 핸드폰을 빌려 들고 연습실 밖으로 나갔다.

“네, 정해원입니다.”

-아, 해원 씨.

“안녕하세요.”

나는 상대가 누군지 모르고 일단 인사를 했다.

통성명을 들어보니 VMC의 채널 중 하나인 TYT의 음악 콘텐츠본부 소속 직원이었다.

-편집에 문제가 있었다면서요?

어우. 이렇게 바로 말할 줄은.

나는 나름으로 예의를 챙겨서 대답했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제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면이 있어서요.”

-어휴, 죄송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여튼, 우리 같이 멋모르고 있던 사람들만 손해 본다니까요.

나는 무슨 대화가 이어지려는 건가, 쉽게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상대가 말했다.

-조작 때문에 피해 본 연습생들 챙겨주느라, 해원 씨까지 신경을 못 썼어요. 이제 신경 많이 쓸게요.

“아. 네.”

-TYT에서 이제 새로운 서바이벌 시작하거든요. 전 시리즈에서 부족했던 것들, 재발 안 되게 해야죠. 조언 부탁드립니다.

말 참 알아듣기 어렵게 한다.

네가 편집 짜깁기로 긁고 다니면 준비하는 서바이벌 시작할 때 잡음 커지니까 입 다물어라……가 맞나?

이야. 난 저런 어른 되지 말아야지.

“재발 안 되려면, 오히려 더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럴 일 없게.”

-그래도, 방송이란 게 재미는 있어야 되니까.

“아. 재미요.”

그렇지. 재미 중요하지…….

-편집에 있어서는 출연을 할 때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편집권이란 게 온전히 PD한테 있는 거니까. 어떻게 참견을 하겠어요.

“네.”

-잘 좀 부탁해요. 아, 금요일에 TYT 오시겠네요.

금요일 TYT에서 하는 음악방송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겠다는 위협처럼 들린다. 나는 일단 대답했다.

“차기 시리즈 잘됐으면 좋겠네요.”

덧붙이기도 했다.

“저는 저대로 아이돌로서 좋은 모습 보이구요.”

-아, 좋죠.

허허, 그래도 내가 어른이 되긴 됐다. 욱하지도, 지레 쫄아서 도망치지도 않고 전화를 하게 된 걸 보니.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연습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개인 연습을 하다가, 구석에서 쉬던 신지운의 옆에 앉아 물었다.

“혹시 국선아 때 찍은 내 영상들 있어? 사진이나.”

“많지.”

“밝은 것만 있어?”

“아닌 것도 있어.”

“나한테 좀 보내주라.”

“뭐하게.”

“일단 가지고 있게.”

“보기 힘들걸.”

“나 요즘 멘탈 좀 괜찮아.”

내가 말하니까 신지운이 좀 고민하다가 나한테 가지고 있던 영상을 두 개 보냈다.

무슨 영상인지 받아서 켜자마자 껐다.

“아, 못 보는구나.”

방송이 끝나갈 즈음, 나는 멤버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방송국의 창문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한동안 머물렀다.

내 뒷모습 영상이 있는 걸 보니, 멤버들이 다 내가 저기로 도망쳐 있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잠깐만. 나야 뭐 눈에 보이게 멘탈이 나갔었는데. 나랑 친하던 이놈들은 괜찮나?

그때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나이가 많아야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내가 신지운에게 물었다.

“너희 심리 검사 같은 거 받았냐?”

“우리가 왜?”

동고동락하던 친구가 바로 옆에서 이러고 있는데 멀쩡할 수가 있나?

거기에 여기 멤버들은 한 번 데뷔한 팀이 오로지 타의로, 준비만 하다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나는 신지운과의 대화를 마무리하자마자 연계 상담 센터를 소개해준 지원팀에게 톡을 보냈다.

[상담 좀 잡아주세요. 퍼스트라이트 멤버 전부 다요]

[네. 가수 매니지먼트팀과 상의해서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 * *

이번에 디지털 싱글이라 쇼케이스를 하지 않는 건 나에게 정말 다행인 일이다. 기자들이 질문을 하면 능글능글 대답을 할 자신이 없다.

대신 공개할 스페셜 영상들을 촬영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옷을 몇 번을 갈아입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나서 바로 첫 음방을 가고 있는데도 잠이 전혀 안 온다. 매니저 강영호가 나에게 말했다.

“해원 씨, 너무 안 자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 바로 뒷자리에서 졸던 민지호가 깨서 말했다.

“그니까. 형 좀 자. 활동하다 보면 점점 더 피곤할 텐데.”

“어, 잘게.”

나는 말하면서 눈을 감아봤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드라이리허설은 모자를 눌러쓰고 마쳤다. 다시 대기실로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은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우리 팀 스태프들은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이렇게 성적에 연연하는 사람들인 걸 이제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같이 국선아 시절을 보낸 나는 원래도,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전형적인, 눈에 보이는 트로피가 있어야 본격적으로 덤벼드는 놈들이란 걸 알고 있었다. 국선아 때는 데뷔에, 지금은 100위라는 순위에.

나도 별로 다를 건 없다.

나는 내가 이번에 음원 순위를 전혀 기대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우리 중 어느 누구보다 성적에 연연하고 있는 건 나였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드디어 우리는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팬들이 와 있을 텐데 조용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두 손을 모으고 아무 신에게나 소원을 빌었다. 그러니까 옆에 와서 막내가 물었다.

“형, 소원 빌어?”

“응. 햇살이들이 무대를 즐기게 해달라고.”

제가 있어도 상관없이 햇살이들이 무대를 즐기게 해주세요. 당분간 딴 소원 안 빌 테니까 이것만 좀 어떻게 안 될까요.

그렇게 딜을 시도한 후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스타일리스트가 나에게 반가면을 씌워주러 왔다.

“일단은 그냥 올라가 볼게요.”

내가 말하니까 멤버고 스태프고 다 돌아본다. 스태프가 말리기 전에 멤버들이 말했다.

“그래, 햇살이들이 그걸 더 좋아할 거야.”

“구호 내가 할게!”

민지호가 자원해서 멤버들이 모두 손을 모았다. 나도 반가면을 무대 의상인 교복 주머니에 넣고 손을 내밀었다.

민지호가 ‘불을 켜’의 가사를 이용해 말했다.

“이 무대를 태워!”

멤버들이 가사대로 ‘태워’를 외쳐주자 민지호가 구호를 이어갔다.

“서드, 세컨드.”

퍼스트를 멤버들과 함께 외친 후 무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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