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8화
khgif_1228은 오로지 얼굴만 좋아한다고 부연설명이 되어 있는 정해원의 유일한 짤계를 운영 중이었다.
국선아 시절, 정해원의 팬들이 전부 떨어져 나간 후에도 khgif_1228만큼은 남아 있었다. 계정에 굳이 kh라고 붙인 것은 악플러들의 공격을 방지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저 얼굴을 좀 알려보기 위함이었다.
국선아 시절부터 정해원을 제외한 C조, 그러니까 퍼스트라이트 팬인 친구와 함께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비를 뚫고 사녹을 기다렸다. 그 사이 친구의 경고 아닌 경고를 들었다.
“퍼스트라이트가 좀 마이웨이라서 무대 말고는 사이가 안 좋아 보일 수도 있어. 그냥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거지, 사이가 나쁜 건 아냐…….”
보통 이렇게 말하면 사이 안 좋던데. khgif_1228가 생각하고 있을 때, 무대에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올라왔다.
‘와, 실물 아우라 뭐야…….’
일곱 명 모두 교복. 각자의 이미지에 맞게 스타일링한 교복이었지만, 일관성이 있는 한 학교의 교복이었다. 회색 재킷에 검은색 넥타이를 베이스로 했지만 한효석은 넥타이를 바짝 조였고, 민지호는 느슨히 풀고 있었다.
대부분이 학생이다 보니 지난번 턱시도 컨셉과 달리 모든 멤버에게 찰떡같이 컨셉이 달라붙었다.
“근데 정해원 없네?”
“왜 없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조금 늦게 정해원도 무대에 올라와 뒤로 가서 섰다.
정해원은 무대에 올라올 때부터 숨쉬기를 답답해했고, 뭔가 진행에 문제가 있는지 녹화가 조금 늦춰지자 손으로 목을 감쌌다. 자기 목을 감싸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몇 번 멤버들이 언급한 것보다 상태가 나빠 보였다.
“진짜 무대 공포증 심한가 봐.”
“뭐야, 엄청 떨어…….”
팬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하고,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괜찮냐고 물어볼 때마다 고개만 끄덕거리던 정해원은 신경을 분산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보다가, khgif_1228의 응원봉을 발견했다. 그러더니 그쪽으로 다가왔다.
뭐지. 빛인가? 어우 눈 아퍼.
khgif_1228이 생각하는 사이 가까이로 걸어온, 여전히 표정이 굳어 있는 정해원이 응원봉에 단 본인 이름표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거 팔아요?”
모르는 사람한테는 절대 눈길도 안 줄 것 같이 냉랭한 얼굴에서 나오는 말투는 생각 외로 말랑말랑했다. khgif_1228이 대답했다.
“아니! 내가 따로 주문 제작했어. 아직 공식에서 안 내줘서.”
그러자 정해원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더 고맙네.”
그렇게 말한 후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덜덜 떨리는 손을 보니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khgif_1228가 소리쳤다.
“해, 해원아! 오늘 TMI 없어?”
“아. TMI 있어요.”
정해원은 불러주기만 기다렸는지 잽싸게 다시 쪼그리고 앉아서 말했다.
“진짜 누가 물어보면 말하려고 아껴놓은 TMI 있는데.”
애는 해맑게 말하는데, 주변에서 탄식이 들렸다. 누가 한 번도 안 물어봐 줬구나…….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저 초등학교 때 별명 준회원이었어요. 이름 정해원이라서.”
“아…….”
“……재미없어요?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네 얼굴을 보고 있으니까 누나가 웃음이 안 나와…….
“재밌어! 와. 준회원이래. 하하하.”
그렇게 어색하게 반응하는 게 재미있었는지 정해원이 유쾌하게 따라 웃었다.
“웃어주니까 긴장 풀리네.”
그렇게 말하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국선아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과 말씨였다.
khgif_1228은 한동안 얼이 빠져 있다가 뒤늦게 친구에게 말했다.
“봤어?”
“어…… 어. 어.”
“친구야, 말을 해.”
“내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제일 차갑게 생겼어……. 근데 X나 예쁘고 귀여워…….”
“나랑 똑같은 거 본 거 맞네.”
“아니. 쟤 진짜 뭐지?”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도 마찬가지 상태였다. 거의 공황 상태였다.
“이건 진짜 정해원이 잘못했지? 쟤가 사귀어줄 것도 아니면서 꼬셨잖아…….”
그때 다행히 문제가 해결됐는지 무대가 시작했다.
처음 도입부터 심장이 쿵 내려앉는 낮은음. 황새벽이 손끝으로 불꽃을 표현하며 안무를 시작하기 무섭게 격한 안무와 함께 도입부가 시작됐다.
‘이번에 진짜 작정했구나!’
빠른 동선 변화에 모든 이동을 허투루 쓰지 않고 페어 안무를 섞어 넣었다. 무대를 보는 사람 누구나, 이 팀이 한 팀이라는 걸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안무였다.
무엇보다 가장 180도 바뀐 건 표정이었다. 무대 뒤로 빠질 때도 유지하는 표정 연기에서 안무의 각도 못지않은 연습량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의미로 마이웨이였다. 무대 위에서 모든 멤버가 본인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불꽃이 돼 이 무대를 태워.”
“태워!”
“불길 속에 던져봐 우릴 더 날뛰게만 해.”
“해!”
“중력처럼 짓눌러 볼케이노처럼 터지게.”
가사의 난해함을 뒤로하고, 팬들은 강렬한 무대에 심장이 박동으로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파트.
처음으로 정해원이 앞으로 나왔다.
“서드 세컨드 퍼스트 라라라이트.”
“사랑해!”
본인 파트에 응원법이 있는 줄 몰랐는지 정해원이 안무를 하다가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그러더니 본인 파트를 끝내고 돌아가며 누가 봐도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무대 시작 전의 공포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쟤 진짜 미쳤나 봐.’
정해원 합류 이후, 퍼스트라이트의 첫 번째 무대가 무사히 끝났다.
* * *
무대가 끝났다.
나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계단에 주저앉았다. 신기하게, 무대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아무런 불안감이 들지 않았다. 팬들은 굳이 나와 퍼스트라이트를 분리해서 응원하지 않았다. 그저 그 무대를 응원해 준다는 게 고맙다.
그나저나 황당한 게, 나는 국선아 때도 2년 동안 방에 있을 때도 거의 안 울었다. 그런데 지금 눈물이 났다. 예상대로 멤버들이 둘러싸고 놀리기 시작했다.
“아, 정해원 뭐 하냐.”
“울어? 와, 진짜로?”
나는 꺼지라고 손을 휘저었지만 들을 놈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모여서 길막 할 수 없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무대에서 진을 다 빼서, 대기실로 돌아오자마자 다들 여기저기 쓰러졌다.
“아, 퍼스트라이트 무대 죽인다! 무대 재밌다!”
“나도 오늘 무대가 지금까지 1위.”
멤버들이 말하는데 껴들 정신도 없이 나는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눈이 감겼다. 그러자 요즘 많이 친해진 박중운 매니저가 날 깨웠다.
“해원아! 사진 찍고 자라!”
“아, 잘래에.”
“애교부리지 말고 일어나.”
안 부렸는데.
나는 생각했지만 할 수 없이 억지로 다시 눈을 떴다.
TRV는 음악방송에서 도시락 서포트를 안 받는 정책 대신에, 회사 내부에서 팬들의 이벤트를 대신해 줬다. 이럴 때 돌알못이지만 짬은 있다는 게 느껴진다.
오늘 준비한 건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을 캐릭터화해 그려 넣은 쿠키였다. 엄청 잠이 왔는데 일곱 개의 쿠키를 보니까 잠이 깼다. 나는 핑크 머리라 알아보기 쉬웠지만 그거 아니어도 특징을 잘 잡아서 그렸다.
“아까워서 못 먹겠다.”
다른 멤버들은 이미 쿠키와 사진을 찍고 있어서, 나도 사진을 대충 찍었더니 보고 있던 민지호가 와서 말했다.
“아니, 형, 무슨 셀카를……. 이게 형 얼굴이야?”
“그럼 내 얼굴이지, 뭔데?”
포토카드 시세를 상승시키는 주범, 셀카 장인 민지호가 각도를 조절해 줬다.
“형, 렌즈 보는 거 힘들면 쿠키 봐. 정면 안 봐도 돼. 오히려 그게 느낌이지.”
“어, 일단 외울게.”
“우리는 셀카를 잘 찍어야 돼. 팬들이 앨범을 열어. 형이 셀카를 못 찍어서 포카가 별로야. 그럼 기분이 어떻겠어.”
“안 좋지.”
민지호가 뭔가 더 설명하려다가 그만두고 물었다.
“그냥 형이라서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지?”
“아니? 다음 앨범 나올 때쯤엔 나 좋아하실 텐데 왜.”
내 뻔뻔한 말에 민지호가 낄낄거리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바로 잠이 들었다. 거의 기대자마자 잠들었다가 엔딩 때 박중운 매니저가 깨워서 눈을 떴다.
잠깐 잤는데 그렇게 깊이 잘 수가 없었다. 푹 자고 난 후에 나는 엔딩을 위해서 무대로 향했다.
무대 위에 아이돌들이 북적북적거리고 있었다. 오늘 1위 후보는 둘 다 음원 강자 솔로들이었다.
뒤에서 엔딩을 기다리며 서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해원아.”
나와 같은 소속사였던 우하정이었다.
오늘 안 마주치고 끝나나 했더니, 엔딩 때 말을 건다. 얼굴 보면 한 대 패려고 했는데 카메라가 있으니 나중에 해야겠다.
“오랜만.”
내가 대답하니까 우하정이 굳이 내 쪽으로 왔다. 그때 멤버들도 그쪽을 봤다.
“오, 하정이 형 오랜만.”
“하정아, 우리 은근 활동이 안 겹친다.”
대화를 끊고 멤버들이 난입해 줘서 고마웠다.
우하정이 소속된 MII 멤버들은 퍼스트라이트 멤버와 비교했을 때 리더도 두 살, 막내도 두 살이 많았다. 고작 두 살 차이인데, MII와 비교하니 퍼스트라이트 애들은 확 덜 크고, 날것인 느낌이 있었다.
그사이 1위 발표가 시작되었다. 발표 후 우리는 선배 가수들에게 인사를 하며 무대를 내려갔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우하정이 싱글싱글 웃으며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인사 좀 하자, 우리 뭐 싸웠었어?”
“아니, 내가 혼자 빈정이 상했다.”
그렇게 말하고 가려는데 우하정이 따라왔다.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
“어, 아니라고. 그냥 나 혼자 빡친 거라니까?”
같은 소속사에 동갑. 나는 내가 데뷔를 하게 된다면 우하정과 같은 그룹에서 활동하게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친구였기 때문에, 우하정이 국선아에서 기회가 오자마자 나를 밟고 올라가는 용도로 쓸 줄은 몰랐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많아 더 대화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바로 라디오 스케줄을 위해 이동해야 했다.
차 안에서 멤버들이 시끌시끌했다. 분위기를 보니 반응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X버스를 켰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글을 적었다.
[햇살이들 안녕! 오늘 무대 재미있었어요? 무대에서 응원 들었어요. 고마워요.]
나는 그렇게 적은 후, 바로 업로드를 못 하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 * *
퍼스트라이트 컴백 첫 음악방송분 반응은 뜨거웠다.
국선아 이후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의 존재에 대하여 점점 멀어지던 사람들의 관심은 빠르게 돌아왔다.
[불을 켜 뮤비 추이 X나 좋다ㄷㄷㄷ 커하지?]
[↳ㅇㅇ]
[↳완전ㅇㅇ]
[↳근데 음방 전에도 자컨 유입 많은 거 보이더라]
[퍼라 자컨 외주로 바뀜?]
[↳아닌데 갑자기 퀄 좋아지더라]
[↳↳이 기획 가져온 직원 진짜 임원 달아줘야 돼 내 기준 TRV를 살림ㅋㅋㅋㅋㅋㅋ]
이어서 퍼스트라이트 공식 계정에 쿠키를 든 멤버들의 사진이 올라왔다.
[TRV 일못하는데 잘하네]
[애들 무대에서는 그렇게 날티났는데 대기실에서 너무 귀여워ㅋㅋㅋㅋㅋㅋ]
[지호 셀카 포카였으면 시세 반포자이네]
[↳누나 지갑 생각해 줘서 고마워 지호야…….]
그리고 방송 종료 후, 정해원의 유일한 짤계인 ‘khgif_1228’의 계정이 변경되었다.
[@regular_1228
정회원 only]
그리고 오늘 정해원의 짧은 방송분이 모조리 담긴 gif 파일들이 올라왔다.
이 계정 외에도 몇몇 계정에 공방 후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