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1화
방송 시작 전, 정해원은 매니저 짬바로 먹방 전에 주의할 것들을 고지하고 있었다. 황새벽이 슬쩍 물었다.
“넌 괜찮아?”
“응, 좋아.”
“진짜 괜찮냐고.”
“안 괜찮으면 어쩌게. 나 빼고 하게? 그건 더 싫은데.”
정해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방송에 잘 나올 수 있는 모든 각도를 확인하는 정해원의 뒷모습을 보던 황새벽이 비슷한 집중력으로 라면 물의 양을 맞추고 있는 신지운에게 말했다.
“쟤 다 좋다고 그러기 시작하는 걸 보니까 국선아 때랑 상태 비슷한데.”
“예상은 했잖아. 무대 공포증인 사람을 무대에 세우는데 당연히 맛이 가지.”
“어떡하냐, 저거.”
“그냥 냅둬, 전속계약서 썼잖아. 도망가도 사장님이 잡아 오지.”
“그게 문제는 아니지만 법조인 아들답고 든든하네.”
“안 든든할걸. 우리 부모님은 아들도 꽁으로 안 도와줘.”
그러더니 황새벽에게 말했다.
“형, 이제부터 라면 넣을 거니까 빨리 준비해. 급해.”
“어, 알았어.”
늘 동작도 반응도 느리던 황새벽이 유일하게 빨라지는 순간이었다. 황새벽이 방송을 켠 카메라 쪽을 보며 말했다.
“햇살이들 안녕, 지금 라면 안 불게 하려면 급하니까 라면부터 풀게요.”
그리고 앞에 둔 테이블에 라면이 든 들통이 놓였다. 황새벽은 7인분을 기가 막히게 나눴다. 박선재가 말했다.
“지운이 형은 라면을 잘 끓이고 새벽이 형은 배식을 잘해요.”
그 말에 옆에서 민지호가 맞장구쳤다.
“진짜 재능이야. 무게 재면 다 똑같을걸? 해원이 형, 언제 이것도 컨텐츠로 하자.”
“알았어. 써놔야겠다.”
정해원이 핸드폰을 꺼 컨텐츠를 적었다. 라면은 잠깐 인사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끝나고, 바로 배달한 음식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얼마나 시킨 거야ㅋㅋㅋㅋㅋㅋㅋ]
[치팅데이 수준이 아닌데……?]
[얘들아 라면 몇 개 끓였어?]
“열 개요!”
댓글을 확인한 박선재의 외침에 채팅창은 한바탕 충격이 지나갔다.
식사와 함께 시끌시끌 방송을 이어가던 중에도 멤버들은 번갈아 가며 중간중간 채팅창을 읽었다.
“아, 해원이 형. ‘불을 켜’ 작곡 비하인드 있냐고 하시는데?”
박선재의 말에 불족발을 집어 먹던 정해원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있어요. 제가 이번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랩메이킹을 했는데요.”
그 말이 나오자마자 멤버들이 먹던 음식을 뱉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자기가 쓴 가사 때문에 웃음이 터진 멤버들을 뒤로하고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지금이나 웃지, 처음에는 너무 심각해서 애들이 웃지도 못하더라구요.”
“형, 진짜 그건 아니었어. 태어나서 본 랩 중에 제일 충격이었어.”
“난 신지운 믿고 그냥 대충 쓴 거지.”
정해원의 변명에 신지운이 음식을 우물거리며 대꾸했다.
“뭘 대충 써. 라임 딱딱 맞춰서 열심히 써 왔더구만.”
“……데모를 대충 써서 가져올 순 없잖아. 아무튼 수정해서 만져볼 수준이 아니라서 전부 삭제하고 지운이가 다시 썼습니다. 다음에 또 작곡하면 그냥 비워 두려구요.”
[효석이 라면 뱉을 뻔했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뭘 어떻게 써왔길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그렇게 써도 통과가 됐네ㅎㅎ 역시 인생은 인맥]
중간중간 불편함을 드러내는 글도 있었지만,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보고 있는 이상 아주 부정적인 글은 없었다.
안주원이 말했다.
“이형이 형이 진짜 고생했지. 해원이 맨날 거기 작업실에 얹혀사는 거 봐줬잖아.”
“아냐, 그 형 외로움 타서 은근히 내가 거기서 자는 거 좋아해. 괜히 싫은 척하는 거야.”
정해원의 뻔뻔한 말에 멤버들이 다시 낄낄거렸다.
그 후 화제가 전환된 사이에, 잠시 핸드폰을 확인한 정해원이 바로 한효석에게 자기 핸드폰을 건넸다.
한효석이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원래도 바른 자세를 한 번 더 바르게 펴고, 옷도 한번 정리하는 시늉을 한 후 말했다.
“회사에서 말씀드려도 된다고 하셔서요. 공식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9월에 정규 1집 나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잠깐 채팅창이 정적이었다.
그러더니 곧 채팅창이 버벅거릴 정도로 빠르게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미친 정규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규 나오는구나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행이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팀 활동은 어쩌면 이번 디지털 싱글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팬들에게는 다시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 * *
그렇게 먹방은 어마어마한 양을 먹어 치우고 끝났다. 나는 테이블을 치우는 동시에 음식들을 가늠해 보며 혀를 찼다.
“도대체 몇 인분을 먹은 거야.”
내 말에 설거지를 하던 안주원이 말했다.
“우리가 정상인데 소식한 기분 들지 않냐?”
“엄청 들어.”
황새벽이랑 신지운은 원래 푸드파이터 수준으로 먹고, 민지호와 박선재도 잘 먹는 편이지만 한효석이 의외였다. 쭉 발레를 해와서 본인은 치팅데이라고 해도 옆에서 보기엔 극도로 자제해서 먹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그냥 작정하고 먹어댔다.
“효식이 잘 먹더라.”
내 말에 같이 테이블을 치우던 한효석이 말했다.
“활동 끝났으니까 하루 정도는요.”
포기했는지 이제 ‘형 저 효식이’ 안 한다. 흐흐. 드디어.
“그래, 하루 정도는 뭐.”
“그리고 형. 저 전학 준비 하려구요. 다른 멤버들처럼 공연고로.”
“아.”
안 그래도 오늘, 잘 먹는 게 좋아 보이면서도 괜히 신경이 쓰이긴 했다.
발레로 예고에 들어갔다는 건 기억도 안 날 만큼 어릴 때부터 발레를 해왔다는 건데. 연습량이 부족해 동기들에게 뒤처지는 기분이 드는 게 견디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한효석도 발레가 지긋지긋할 때가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해서, 지금까지 해온 게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한효석에게 발레를 그만두는 건 긴 연애를 끝내는 기분과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너무나 긴 순간에 발레가 있어서, 그걸 버리려면 내 인생 절반을 버리는 기분.
뭐 내가 긴 연애를 해본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럴 것 같다.
“그래도 한 번 발레인은 영원한 발레인이지?”
최대한 버리려고 전학을 선택하는 거겠지만, 자기 삶에서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는 걸 나도 한효석도 알고 있다.
한효석이 힐끔 날 보더니 흐흐 웃었다.
“당연하죠.”
“앞으로 평생 써먹게 될걸. 특히 콘서트에서도.”
“저도 그 생각했어요.”
콘서트라는 말에 한효석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이럴 때 보면 퍼스트라이트에 무대 싫어하는 멤버는 진짜 없구나, 싶다.
* * *
숙소에 도착해서 우리는 3인용인 거실 소파를 차지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했다. 나는 이겨서 소파를 쟁취했다.
회사에서 소파를 더 사준다고 했는데도 멤버들이 굳이 싫다고 거절했다. 그냥 가위바위보를 해서 몇 명은 소파에 앉고, 나머지는 바닥에 앉아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이 상태가 좋은 모양이다. 살짝 돈 것 같은데, 나도 마찬가지긴 하다.
아무튼 오늘따라 나이순으로 싹 이겨서, 형들이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황새벽의 삼촌이 과수원을 하셔서 늘 과일은 충분했기 때문에, 있는 과일을 전부 가져와서 쌓아 놨다.
“진짜 잘 먹는다.”
내가 중얼거리는데 신지운이 과일을 우물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뭐에 대해서부터 회의할 거야?”
“잠깐만.”
내가 핸드폰 메모를 꺼내니까 대각선에 앉아 있던 한효석이 말했다.
“드디어 정리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생긴 게 너무 좋아요.”
“막내도 하잖아.”
“선재가 하는 건 수습이죠. 정리가 아니라.”
한효석의 말에 박선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니까. 형들이랑 민조가 친 사고를 수습을 하지, 내가.”
“고생 많다, 막냉이. 아무튼 일단은…….”
내가 메모를 확인하는 사이에 멤버들이 시끌시끌 떠드니까 소파에 거의 누워 있던 황새벽이 말했다.
“야, 형 말하잖아.”
라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바로 조용해지고 멤버들이 내 쪽을 봤다.
황새벽이 자기 말이 힘이 없다고 하는 건 개소리다. 그냥 극도로 내성적인 데다, 달래는 투로 말을 못 하는 편이라 오히려 싸움을 더 키울 것 같아서 조용히 있는 것뿐이다. 뭐 이렇게까지 조용하진 않아도 되지만 나는 일단 메모를 읽었다.
“가급적 우리가 정했으면 하는 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콘서트 컨셉, 두 번째는 팬송.”
“아, 그렇게 들으니까 확 온다. 둘 다 진짜 급하네.”
안주원이 동조하고, 옆에서 신지운이 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규앨범이랑 연계도 중요한데, 콘서트가 퍼스트라이트 컴퍼니 시리즈랑 좀 연계가 됐으면 좋겠어. 우리 세계관.”
그러자 옆에서 민지호가 말했다.
“나는 첫 콘서트니까 처음이란 느낌이 나는 게 좋아. 평생 기억할 거잖아, 첫 콘서트.”
“두 번째도 기억은 평생 하지.”
“그래도. 첫 번째는 첫 번째잖아. 아, 형. 그거 그거 하고 싶어. 그거 하고 나서 팬들이 딱 외치면 우리가 팡 튀어나오는 거야.”
민지호가 마음이 급해 모든 걸 생략하고 말하자 박선재가 대충 눈치채고 물었다.
“팀 구호?”
“어!”
그리고 한효석이 정리해서 나에게 말했다.
“저희가 서드, 세컨드 하면 팬들이 퍼스트라고 같이 구호를 외쳐준 후에 지하 동선에서 올라오면 좋을 것 같다는 소리 같아요.”
이야…….
쟤네 셋이 동갑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지금 처음으로 든다. 민지호는 아이디어가 좋고, 나머지 둘은 통역과 정리가 가능하니까.
나는 멤버들의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를 받아 적으며 말했다.
“그럼 신지운이랑 민조가 말한 컨셉 중심으로 다음에 다시 회의하고. 두 번째는 팬송. 햇살이들 하면 생각나는 단어들 몇 개 던져봐.”
그때 내내 조용하던 황새벽이 말했다.
“우산.”
그리고 잠깐 조용하더니 멤버들이 하나씩 동의했다.
“나도 우산.”
“사실 나도.”
“맞아, 우산이지.”
내가 이 여섯 명을 알게 된 이후, 진짜 거의 처음으로 한 번에 의견이 합쳐졌다. 신지운이 말했다.
“우리 팀은 이름부터 ‘빛’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 그러니까 비나 어둠이 악역이 되는 셈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딱 우산이야. 햇살이들. 우리를 지켜주잖아.”
이상하다.
그냥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우산으로 해야겠다. 일단…… 가급적 우리가 만들자.”
“형이 만드는 거죠.”
한효석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가사는 너희가 써줘. 엄청 서정적이었으면 좋겠어. 근데 내가 국어가 좀 약하잖아.”
이번 가사는 절대로 내가 못 쓰겠구나, 싶었다.
나는 팬들이 좋고, 팬들도 분명 내가 겁낸 것에 비해서 훨씬 나를 반겨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즐거움을 느끼며 활동을 했는데.
여전히 팬들이 나를 지켜준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한동안 우산이라는 주제로 탑라인(멜로디)이든 트랙(반주)이든 가사든 뭐라도 생각해 보려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