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2화
멤버들은 회의 겸 활동 뒤풀이를 하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다 반쯤 잠들었는데도 안 들어가고 모여 있는 걸 보고 있으니까.
“……너네 볼수록 은근 모여 있는 거 좋아한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근데 굳이 내 말을 부정하고 싶은지 멤버들이 슬금슬금 일어났다.
그 와중에 안 일어나던 황새벽을 흔들어 깨우니까, 눈을 뜨더니 급하게 말했다.
“잠깐만, 마지막으로 할 거 있어.”
“뭔데.”
“방 바꾸자. 정해원만 독방 쓰잖아.”
“아, 내 독방.”
역시 탐내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다…….
“너만 쓰게 해줄 순 없지. 아, 제발 나 독방 좀.”
황새벽의 간절한 말에 안주원이 섭섭해하며 말했다.
“너 나랑 방 쓰는 거 그렇게 싫었냐.”
“반대지. 너니까 지금까지 참았다.”
다들 다른 멤버와 방을 쓰는 게 막 싫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독방이 좋긴 하다.
독방을 뺏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다급해졌다. 이건 진짜 반드시 이기고 싶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인지 하나 같이 잠이 깨서 집중하고 있었다. 민지호가 물었다.
“어떻게 해? 일단 독방은 깔끔하게 가위바위보?”
그러자 신지운이 대답했다.
“그럼 독방은 승자독식하고, 나머지도 가위바위보 해서 같은 거 두 명 되는 순서대로 방 고르기.”
“아, 심장 터질 것 같애.”
황새벽이 말하며 가위바위보를 하기 위해 주먹을 내밀었다.
다행히 첫 번째 승자는 그렇게 독방을 바라던 황새벽이었다. 황새벽은 내가 국선아 때 만나 지금까지 본 어떤 순간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쓰던 게 안방이라 저 옷방은 그 방의 절반 크기도 안 되는데, 독방이라는 거 자체가 행복한 모양이다.
그 후 우리는 다시 제일 큰 방을 걸고 가위바위보에 들어갔다.
첫 번째 방은 안주원과 민지호가 가져갔다. 민지호는 그냥 좋아하고, 안주원은 중얼거렸다.
“제일 조용한 룸메가 제일 시끄러운 애로 바뀌네.”
“에이, 그래도 솔직히 나랑 방 써서 좋지?”
“음, 괜찮아.”
“형아, 좋다고 해.”
“그래. 괜찮아.”
절대 좋다고는 안 한다. 뭐, 조용히 사는 걸 좋아하는 안주원에겐 난처하긴 하겠다.
그리고 두 번째 방은 한효석과 박선재였다. 그 둘은 만족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제일 작은 방에 최장신 룸메이트…….
나는 작은 방을 확인해 보고 신지운을 가리켰다.
“쟤만 들어가도 방 꽉 차겠는데.”
“아, 나 그렇게 안 커어.”
“너 백구십이잖아. 넘나?”
“아니야, 그렇게 안 크다고.”
“억울하면 당당하게 키를 재.”
“절대 안 잴 거야.”
뭐 아직 백구십까진 좀 남은 거 아는데, 아직도 자라고 있어서 진짜 여차하면 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짐은 내일 옮기기로 하고 일단은 내 방으로 들어갔다. 독방에서 잘 수 있는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까 좀 더 기념하고 싶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 * *
라이브방송이 끝날 즈음부터 미니팬미팅 후기와 사진,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해원 깨물하트 X나 귀엽네 진짜]
[저 얼굴로 아이돌 해준 건 좀 고맙다]
[진짜 악마의 재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깨물하트 할 때 순간 쟤 인성을 잊게 되더라]
[↳악마의 재능222 얼굴만 남기고 알맹이만 바꾸면 최곤데 그게…….]
[나 바로 앞에서 봤는데…… 오늘 그냥 6인지지 철회함. 그냥 진짜 정해원을 아이돌을 안 하게 할 방법이 없겠더라]
[↳능력치에 내 주관이 밀리네ㅋㅋㅋㅋㅋㅋㅋㅅㅂ]
[아니 근데 진짜 무대 공포증 컨셉은 왜 바로 버림?]
[↳진짜 이거 잘 먹히긴 함. 국혐 절대 안 된다고 하던 팬들 공방 가서 떠는 거 보고 마음 많이 열렸잖아]
[↳↳이것까지 악마의 재능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
[↳↳↳난놈이긴 해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그 컨셉 계속 밀고 가지 왜 하다 말아?]
[↳컨셉질도 노력이 필요하거든…….]
[↳↳정답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X나 이거네…….]
[근데 나도 미팬에 있었거든? 컨셉질이든 뭐든 정해원 X나 대단하다고 생각한 게. 누가 봐도 자기가 말하면 팬들 반응 확 죽는 거 뻔히 보이는데 계속 웃고 있더라. 이제 그냥 환영은 못 해도 반대는 안 하려고…….]
* * *
막방 다음날이 모처럼 휴일이라, 나는 수도권에 있는 본가에 다녀왔다.
집에 들어서니 온갖 맛있는 냄새가 확 퍼지고, 부모님이 날 발견하고 달려오셨다. 어머니가 내 팔을 꼬집으며 소리쳤다.
“너는 아주! 그러다 큰일 나!”
“아, 엄마는 왜 보자마자 무서운 소릴 해.”
정산까지는 멀었지만 요즘 돈 쓸 일은 전혀 없고, 회사에 어그로를 끌어준 대가나 다름없는 전속계약 계약금이 막 들어와서 용돈을 좀 챙겼다. 그래서 슬쩍 엄마한테 봉투를 드리려니까 정색을 하며 밀어냈다.
“얘는 무슨 방금 고등학교 졸업한 애가. 너 써, 너.”
“아니, 내가 돈이 지금 많아.”
“웃기지 마. 네가 무슨 돈이 많아. 돈 많은 애가 이러고 입고 다니니?”
“왜, 아들 멋있는데.”
“그거를 네 입으로 말하니?”
엄마가 황당해하며 날 식탁 쪽으로 떠밀었다. 아빠도 역시 내가 준 용돈 봉투를 보더니 봉투 사진만 찍고 돌려주셨다.
“너 써, 너. 옷이나 좀 사 입어라.”
“나 옷 많은데 왜 자꾸 옷을 사 입으래.”
나는 투덜거리고 나서, 식탁 앞에 앉아 모처럼 부모님이 해주신 밥을 먹었다. 진짜 거의 두 분이 만들 수 있는 모든 음식을 다 해주신 것 같다.
그렇게 밥을 먹는데 부모님이 밥상 맞은편에서 날 너무 쳐다보고 계셨다. 하, 부담스러…….
내가 다 키운 청년이라는 걸 잊어버리신 것 같긴 한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과하게 걱정하시는 것도 이해는 한다. 내가 말했다.
“나 콘서트 할 수도 있어.”
“그래?”
“응, 하면 보러 와.”
“당연히 가지. 수연이랑 앤 서방도 올걸.”
“오.”
매형인 앤서니 맥긴리 씨는 우리 집에서 앤 서방이 됐다. 나는 굳이 그렇게 부를 거라면 맥 서방이 아닌가, 싶지만 부모님이 부르실 거니까 본인들 취향이 중요한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너무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워서 나는 관심을 나누려고 누나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누나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집이야? 웬일.
“오늘 쉬는 날이라서 왔어. 바뻐?”
-전화할 시간은 있지.
그 후 누나와 부모님이 서로가 서로에게 잔소리 타임을 가지는 사이에 화면에 불쑥 매형이 나타났다. 뭔가를 들고.
“매형은 그걸 왜 들고 있는 거야.”
30대 백인 남자가 퍼스트라이트의 응원봉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살짝 묘하긴 한데, 본인은 참 만족스러워 보였다. 매형이 응원봉을 흔들며 서툰 한국어로 말했다.
-처남! 무대 개멋있어!
“……누나, 한국어 좀 똑바로 가르쳐 줘.”
-얘가 물어본 거 그대로 알려준 거야.
그렇게 말하자마자 엄마가 잔소리했다.
“너는 하여튼 남편한테 ‘얘’가 뭐니?”
-아, 뭐. 대충 부르면 되지.
그렇게 모녀가 티격태격하는 사이에도 매형은 해맑은 얼굴로 응원봉을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그걸 유심히 보던 아빠가 뒤에서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저건 어디서 사는 건가?”
“저걸 왜 사. 내가 보내줄게.”
“그래? 그럼 일단 두 개랑 여분 하나 더해서 세 개만 보내봐라.”
“알았어.”
매형이 응원봉을 가지고 있는 게 은근 부러우셨던 것 같다. 허허, 알다가도 모를 어른들의 취향…….
어쨌든 밥 먹으면서 부모님과 누나네 부부와 이야기하고 있으니 명절 기분이다. 그리고 솔직히 엄청 힐링이 됐다.
가끔이라도 집에 좀 와야겠다.
* * *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숙소 대신 양이형의 작업실로 향했다.
세 달 뒤 정규, 네 달 뒤 콘서트. 정말 말도 안 되게 부족한 시간이었다.
멤버들 중 상당수가 팀 활동은 TRV와, 개인 활동은 전 소속사와 계약이 되어 있었다. 원래 TRV 소속인 안주원과 복잡한 사정으로 전 소속사를 나온 민지호를 제외하면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개인 스케줄이 빡빡하게 밀려 있었다.
A&R팀의 말대로, 퍼스트라이트는 본인들이 치열하게 회의하고, 곡과 무대를 만드는 데 깊숙이 참여하지 않으면 몰입하기 어려워하는 팀이다. 드럽게 까다로운 것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나도 마찬가지라는 건 인정해야 했다.
멤버들이 개인 활동을 하는 동안 나는 정규앨범에 쓸 곡과 콘서트 세트리스트, 그리고 편곡을 계획이라도 세워놓을 생각이었다.
양이형은 내가 활동 중에 틈틈이 만들어 놓은 곡들을 들으며 왠지 중간중간 욕을 하고 있었고, 나는 계속 핸드폰이 울리는 걸 확인했다.
박희택 사장이다. 이 사람한테 전화가 온다는 건, 뭔가 또 문제가 있다는 건데.
내가 일단 연예 기사 쪽을 힐끔 확인하니 전화 이유가 바로 보였다.
‘VMC 어워드에서 국선아 이후 첫 합동 무대…… 가능성은?’
퍼스트라이트가 요즘 좀 주목을 받고 있으니, 국선아 이후 이 멤버들로 별 재미를 못 본 VMC 입장에서는 당연히 써먹고 싶을 것이다.
특히 VMC 시상식이 요 몇 년 다소 화제성이 죽은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거기에 다음 주에 시작하는 새로운 서바이벌과도 여러모로 엮을 떡밥이 많을 테니.
퍼스트라이트가 ‘조작 멤버들을 빼고 만든 그룹’이라는 건 사실, 우리나 정확히 알고 있지, 외부에 알려진 사실은 아니다. 물론 외부에서도 짐작으로는 조작으로 데뷔한 멤버들을 예상하고 있지만, 그걸 확실하게 공식적으로 땅땅 박은 적은 없다. 엔터계 생태를 생각했을 때, 그럴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 멤버들 중 한 명은 솔로로 활동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새로운 그룹으로 재데뷔를 준비 중이다. 그 두 회사 모두 VMC와 연계가 되어 있으니, 사실상 TRV 혼자 압박을 받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래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겠다.
* * *
박희택 사장은 다시 정해원에게 전화를 걸며, 얼마 전 지원팀에서 보낸 자료를 확인했다.
활동이 종료되자마자, 퍼스트라이트 멤버 전원이 상담 센터에 다녀왔다. 다른 모든 멤버들은 의외로 지속적인 상담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리고 정작 멤버들을 전부 상담 센터에 가게 만든 정해원은 내내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어서 상담이 잘 진행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회사에서 정해원의 멘탈 관리에 최대한 신경 써야겠다는 이야기 중이던 시기에 하필 이런 기사가 떴다.
퍼스트라이트의 인기가 높아지면 VMC에서 그 인기를 나누길 원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박희택 사장뿐 아니라 정해원을 포함한 멤버들도 하고 있을 것이다.
박희택 사장이 생각하는 사이 정해원이 전화를 받았다.
“어, 기사 봤니?”
-네.
“회사에서 어떻게든 거절해 줄게, 신경 쓰지 마.”
-네. 근데 버티다, 버티다 안 되면요.
“어, 뭐.”
-편곡은 제가 하면 안 돼요?
“……음?”
-저 없이 여섯 명만 무대에 있으면 시끌시끌할 거 아니에요. 근데 편곡을 제가 해서, 무대 할 때 자막에는 제 이름 뜨면 한 팀 같잖아요. 뭐, 어차피 화제성 때문에 하는 건데 곡이 좋으면 VMC에서 굳이 거절하겠어요?
“이야, 자신 있나 봐?”
-네.
정해원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다음 퍼스트라이트 앨범 스포일러를 넣을 거예요.
이 무대가 국선아의 연장이 아닌, 퍼스트라이트의 활동이 될 수 있도록.
그 말에 박희택 사장은 자기도 모르게 으하하 웃었다.
“VMC 좀 빡치겠는데.”
-그래요? 많이들 하던데.
거참.
보면 볼수록 묘하게 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