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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4화 (3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4화

“아, 형. 형은 그런 얘기 할 거면 우리한테 언질 좀 해주지 그랬어요.”

황새벽의 말에 전화 너머에서 신희범이 말했다.

-왜, 뭐. 그냥 말하다 나온 거야.

“아니,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너희나 잘해. 하여튼 얼굴은 다 날라리같이 생겨가지고 하나같이 드럽게 소심해. 유튜브나 한번 나와라.

“아, 그럴까요?”

-음?

“회사에 말해놓을게요.”

-야, 진짜 나오게? 나 국선아 많이 깠는데.

“회사에서 허락해 주면요.”

황새벽은 대답 후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멤버들과 함께 양이형의 작업실로 향했다.

요즘 정해원이 계속 악몽을 꾸는 것 같아서, 독방을 뺏었더니 남의 작업실에 처박혀서 아예 숙소로 돌아오질 않았다.

* * *

국선아 후유증인지 나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냥 인터넷에서 내가 거론되는 것 자체가 무섭다.

회사에서 오는 연락을 받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담요를 덮고 자던 안주원이 언제 깼는지 대신 내 핸드폰을 집어 전화를 받았다. 그냥 나더러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멤버들이 하나씩 더 나타났다.

“뭐야, 왜 다 왔어?”

“어, 그냥.”

“지나가다 들렀어.”

정작 작업실 주인인 양이형은 어머니 생신이라고 집에 갔는데, 퍼스트라이트 멤버들로 득실득실거렸다.

“야, 아무거나 만지지 마.”

내가 사고 칠 가능성 높은 멤버들에게 말했다.

다행히 여기는 숙소보다 소파가 크고 의자도 두 개가 있어서 멤버들이 다 앉을 수 있었다. 옹기종기 앉아서 황새벽이 말했다.

“막내 노래하는 거 들어볼까?”

“아, 나 주목받으면 부담스러운데.”

“아이돌이 주목받는 게 뭐가 부담스러워.”

“형들이 보는 게 부담스럽단 말이야.”

박선재가 말하며 팝필터가 있는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가 대강 녹음한 가이드를 들으며 흥얼흥얼거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침만 기다렸어’의 가이드 녹음을 시작했다.

멤버들이 보고 있는 게 부담스럽다고 하던 사람답지 않게 박선재는 깔끔하게 가이드 녹음을 끝냈다. 박선재 특유의 청량하고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목소리가 이번 곡과 유난히 잘 어울렸다.

녹음이 끝나자마자 안주원이 말했다.

“우리 막내 진짜 명창이다.”

“형 가사 너무 귀여워. 진짜 마음에 들어.”

“그렇게 말 안 해줘도 돼.”

“해원이 형, 한 번만 다시 들으면 안 돼요? 노래 너무 좋아요.”

한효석의 말에 나는 ‘아침만 기다렸어’를 다시 플레이했다.

진짜 신기한 게, 심장이 철렁하던 건 가이드 녹음을 시작함과 동시에 센 바람이 먼지를 날려버린 것처럼 쓸려나갔다. 아마 작업실이라는 장소, 그리고 음악 때문인 것 같다. 이래서 인간의 삶에는 공간 분리가 필요한 것 같다. 물리적인 분리가 감정도 분리시킬 수 있게 해준다.

처음 가이드 녹음 때부터 신지운은 랩 파트를 짜느라 집중하고 있고, 민지호는 안무를 짜느라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국선아 때도 지금도 멤버들은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자기들도 하지 않았다. 오늘도 음악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좀 불편하게 지나치게 칭찬해 주면서……. 내가 오구오구 해주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이 정도까지는…….

나는 가이드 데모를 A&R팀에 바로 넘긴 후에, 멤버들과 작업실을 나섰다. 내내 박선재와 보컬 파트에 대해 의견을 교류하던 황새벽이 나에게 말했다.

“너 작업실 회사에서 해준다고 했잖아. 왜 싫다고 했어?”

“여기 얹혀살면 되니까.”

“이형이 형이 뭐라고 안 하냐.”

“뭐라고 하는데 알아서 경비 해제하고 들어오라고 보안키도 줬어.”

“츤데렌데?”

그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신지운이 이어폰을 빼고 끼어들었다.

“지금도 숙소 안 들어오는데 작업실 구하면 그냥 거기 살걸. 나 룸메가 있었는데 없어.”

그러더니 다시 이어폰을 꽂고 랩메이킹에 집중했다. 우리는 바로 회사로 향했다.

회사로 가는 중에 나는 생각하기 싫었지만, 일단 이 상황이 나에게 어떻게 돌아갈지를 생각해 보았다.

국선아를 방영한 채널 TYT의 대표이사는 현재, VMC의 엔터 회사인 VVV의 사장 출신이었다.

TYT는 조작 논란 이후에 임원진이 두 명 바뀌었는데, 전부 예능국 출신들이었다. 다음 서바이벌은 아마 자극적인 편집이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자꾸 터지면, TYT 입장에서…….

‘날 무지하게 싫어하겠네.’

나는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려던 것을 잊기 위해 고개를 휘저으며 멤버들에게 말했다.

“미안해, 어떻게든 수습해 볼게.”

그리고 차 안이 조용했다.

작업실 앞에 있는 회사에 금방 도착해서,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황새벽이 날 붙잡아 돌려세웠다. 그러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말했다.

“내가…… 진짜 이런 거 얘기하기 싫은데. 지금 정해원이 제정신이 아니니까 말할게.”

“야, 누가…….”

“넌 닥치고. 우리 다 활동하면서 이거 하나만 약속하자. 본인 잘못 아닌 걸로 미안하다고 하지 말기로.”

황새벽이 내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지금 우리 걱정까지 할 때가 아니야. 너나 잘하라고.”

“…….”

“아, 야. 너희 먼저 가 있어.”

황새벽이 멤버들에게 말하자, 신지운이 머뭇거리는 멤버들의 등을 떠밀었다.

“가자.”

멤버들이 떠난 후에, 황새벽이 나에게 말했다.

“난 원래 당연히 네가 리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아니더라고. 내가 진짜 성격 안 맞는데, 그냥 당분간은 내가 리더 역할 할게. 내가 다른 그룹 리더 형들 보니까, 리더는 작곡할 때 이래저래 제약이 많더라고. 리더는 항상 자기 음악보다 팀 생각 먼저 하게 되잖아.”

“…….”

“물론 분위기 정리 이런 건 계속 네가 해줘야지. 근데 회사에 보고하고 이런 건 이제 내가 할게. 넌 하지 마. 작곡이나 해.”

“너 그런 거 잘 못하잖아.”

“아니, 나도 빨리 태어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우리 중에 제일 빨리 태어났는데 어떡하냐. 너는 작곡해야 되고. 안주원은 순둥이고.”

“…….”

“나도 성격 안 맞는 거 할 테니까, 너도 성격 안 맞는 거 하라고. 이번 기회 잘 좀 써먹어봐.”

나는 황새벽을 힐끔 보다가 흐흐 웃었다.

“진짜 안 어울린다, 네가 사장실 가서 필요한 거 해달라고 얘기하는 거.”

“아, 생각하니까 벌써 디질 것 같애.”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나는 연습실로, 황새벽은 나 대신 사장실로 향했다.

* * *

[희범이 영상 보고 정해원 정상적인 컷 찾아봤는데 없더라]

[↳뭔 소리임?]

[↳↳희범이가 정해원 절대 불성실한 건 아니라고 했잖아. 근데 성실한 장면도 없고 성격이 어떤지 볼 수 있는 컷도 없어. 진짜 그냥 악편 같은 장면에만 나오던데?]

[근데 솔직히 계속 그런 장면만 나오는 거면 악편 아니고 성격이지]

[내 말이. 회의할 때마다 싸가지없이 군 건 악편 아니잖아 솔직히 우하정이 옆에서 안 말렸으면 싸움 여러 번 났을 듯]

[↳근데 성격이라고 해도 사람이 좀 웃을 때도 있고 정상적인 얘기할 때도 있을 거 아냐? 근데 그런 컷이 한 번도 없어]

[↳사람이 기승전결 없이 화내는 장면만 나오면 그것도 악편 맞지…….]

[↳↳나도 이 생각]

[근데 확실히 악편 있긴 했던 게 국선아 애들한테 핸드폰 돌려준 다음부터는 센터고 메보고 양보만 하더라]

[↳이건 진짜 좀 답답하더라…….]

[이거 듣고 다시 찾아봤는데 진짜 정해원은 연습하고 있는 영상이 하나도 없네…….]

[난 악편이어도 좋으니까 내돌 분량 좀 나왔으면 싶던데]

[↳자기 돌 악편 받아보면 이 말 안 나올 걸 진짜 피말려]

[근데 혹시 진짜 정해원 나온 게 다 악편이면…… 이미 정해원 이미지 개판인데 이제 와서 회복이 되냐…….]

[↳솔직히 평생 안 될 듯…….]

[↳↳내 생각에도…….]

[TYT에서 그냥 시원하게 악편 사과하고 무편집 영상 좀 풀어주면 안 되냐. X나 고구마 백 개 먹은 것 같네]

조금씩 화제성이 붙기 시작하자, 몇몇 렉카 채널에도 악마의 편집 관련 영상이 올라왔다.

[국민이 혐오한 아이돌? ……악편?]

[국선아 출신 유튜버 ‘폭로’]

[동선 17, 숫자에 비밀이 있다]

인터넷이 떠들썩할수록 TYT의 새로운 서바이벌, <더 써틴>의 제작 현장의 분위기도 어수선해졌다.

특히 메인 PD이자, 국선아의 제작 PD들 중 한 사람이었던 박경석 PD는 더욱 고민에 빠져 있었다.

국선아의 제작 PD가 구속된 이후, <더 써틴>은 더더욱 선정과정을 공평하게 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투명한 투표 과정 공개’에 집중하고 있던 제작팀은 정해원이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한 것을 기점으로 온갖 잡음에 시달리고 있었다.

퍼스트라이트 자체 컨텐츠의 ‘17’ 논란 이후, TYT 윗선에서 정해원에게 주의를 준 이후 조용히 넘어가나 싶더니 다른 곳에서 다시 악편 논란이 터져 나왔다. 신희범의 영상 업로드 이후, ‘더 써틴’의 제작팀으로 참가자 소속사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피디님, 우리 애는 마음이 진짜 약해서 그런 거 못 버팁니다…….

-식사라도 어떻게 한번 하시죠.

방송 시작 전부터 논란은 커지고 있었고, 반대로 말하면, 화제성도 커지고 있었다.

박경석 PD는 정해원의 편집에 비교적 많은 지분을 가진 사람 중의 하나였고, 사실 그때 시청률을 견인한 공을 인정받아 이번에 메인 PD를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선아 당시에는 지나치게 힘들어하는 정해원이 안쓰러운 마음도 있었고, 그래서 아예 통편집을 시켜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청률이 출렁이는 것에 압박을 느낀 박경석 PD는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정해원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메인 PD를 맡겼다는 건, 이번에도 그런 편집을 기대한다는 말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아, 미치겠네, 진짜.’

사람 마음이란 게 어쩔 수 없어서, 당시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던 정해원에게 이제는 책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냥 방송계 떠났으면 돌아오지 말지, 또 돌아올 건 뭐란 말인지…….

방송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더 써틴’ 제작팀의 회의가 계속되고 있을 때, 퍼스트라이트 라이브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04즈와 함께 짠짠짠]

단체 라이브방송은 두 번 해봤지만, 이렇게 소인원으로 하는 건 처음이었다.

방송 전, 황새벽이 나에게 말했다.

“그냥 짧게 하자.”

“근데 지금 켜도 돼? 너무 늦은 거 아니냐?”

새벽 한 시 반. 우리나 연습 중이지, 학생이고 직장인이고 다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유일한 20대 둘이서 술방을 해보자는 황새벽의 의견을 받아들인 건, 정규 앨범 전에 팬송을 꼭 작업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팬들과 소통해보지 않고 팬송을 쓰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찌 됐든, 멤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에 신희범의 방송 이후에 나를 불쌍해하는 여론이 좀 생겼다는 듯했다.

새벽 방송이니 인원도 좀 적을 거고, 라이브방송 채팅창은 비교적 좋은 말이니 나도 채팅창을 읽으며 소통하는 것에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방송이 시작되고, 나는 채팅창을 보았다. 아직 비어 있었다.

“아직 안 들어오셨나?”

“그런가 본데. 아, 들어오셨다.”

아, 심장 뛰어.

이러다 멎는 거 아닌가, 생각하며 댓글을 봤다.

[04즈다!]

그게 채팅창의 첫 번째 글이었다.

이상하게 울컥해서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채팅창 제목에 써놨고, 그걸 그대로 말해주신 건데. 저게 뭐라고 그렇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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