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6화
“아니, 저 형은 저렇게 갑자기 일을 해.”
“일 중독도 병이야.”
가사를 다 쓰고 저장한 후에야 옆에서 얘기하는 게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멤버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날 기다리는 중이었다.
여기서 모여 있는 걸 보니까, 누가 말 걸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 같이 백 미터 밖에서 봐도 연예인들이다.
“밖에서 모여 있지 마. 무서워.”
내가 괜히 뭐라고 하니까 신지운이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이 형 또 까칠하게 군다.”
“난 네가 어깨동무하면 백구십인 게 실감 나서 좋더라.”
“백구십 아니라구요.”
신지운이 치대기 전에 힘들이지 않고 떼낸 후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내 대각선에 앉은 황새벽이 물었다.
“너 민지호한테 배움을 얻었다며? 쪽팔리지도 않냐?”
“내가 한 수 가르쳐 줬어. 해원이 형, 고맙지?”
“……그래, 고맙다. 고마워.”
내가 마지못해 대답하니까 민지호가 낄낄거리고 웃었다. 속상하다, 속상해.
아무튼 햇살이들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적기는 했는데, 이걸 진짜 팬송으로 만들게 될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햇살이들에게 밝고 좋은 것들만 보여주고 싶은데, 가사가 좀 우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런 고민을 같이해 줄 사람이 차 두 대에 나뉘어 여섯 명이나 타고 있다. 여섯 명 다 취향도 뚜렷하고, 본인의 내외향성과 상관없이 음악과 무대에 있어서만큼은 자기 의견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평소에 그렇게 믿음직스러운 놈들은 아니지만, 곡 작업을 할 때는 늘 멤버들이 나의 믿는 구석이 된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촬영 전에 대충 느낌이라도 잡아서 양이형에게 보내려고 트랙을 만들고 있으니 강영호 매니저가 한소리 했다.
“해원 씨, 멀미해요.”
“금방 끝낼게요.”
“어휴, 5분 안에 후회하실 거면서.”
맞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 떠올리고 있는 게 날아갈까 봐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강영호의 말대로 5분 안에 멀미가 와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촬영장은 멀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해 보니 뮤직비디오 촬영 때 있었던 소품이나 그래피티 같은 것들이 지워지고, 진짜 학교 그 자체의 모습이 되었다.
박선재가 내 팔에 달라붙어서 말했다.
“아니, 요즘 낮이 얼마나 긴데 굳이 이렇게 늦게 촬영을 해. 심지어 비도 오는데.”
그러자 옆에서 신지운이 대신 대답했다.
“낮에는 선생님이랑 학생 다 섭외해야 돼서 제작비가 많이 들잖아.”
“아, 제작비 문제였어? 그럼 받아들여야지, 뭐…….”
캬, 우리 막내 다 컸다.
아무튼 일곱 명 모두 학생이라는 컨셉이라, 전부 하복을 입었다.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이예영이 왼쪽 귀 아래에 바코드 모양의 타투 스티커를 붙여줬다. 오늘 촬영에서 쓰는 모양이었다.
녹화는 빈 교실에서 시작되었다. 박선재의 말대로 이미 여섯 시가 넘어가고 있는 데다가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있어 더더욱 일찍부터 어두워지기까지 했다.
오늘도 사회자를 맡은 황새벽만 대본을 받았다. 애드립에 약한 황새벽은 평소엔 방송에서 거의 말을 안 하다가, 대본을 받으면 그때부터 충실하게 자기 임무를 수행했다.
소속사에서 연기로 미는 건 신지운과 안주원이지만, 연기가 잘 맞는 건 황새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자리에 앉은 후, 교탁 앞에 선 황새벽이 진지하게 말했다.
“무사히 시간여행에 성공했습니다. 여기는 20년 전입니다.”
황새벽의 말에 신지운이 손을 들고 물었다.
“설정상 저희 다 동갑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그럼 반말해야 되는 거 아냐?”
“그런가? 피디님, 저희 반말해야 돼요?”
황새벽이 물어보니까 퍼스트라이트 컴퍼니 담당 피디, 김재성이 말했다.
“회의 진행은 존댓말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새벽 씨가 편하게 느끼는 쪽으로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설정상 멤버 분들은 전부 동갑이시구요.”
그 말에 내가 대답했다.
“그럼 효식이도 형들한테 반말해야겠네요?”
“네, 그래주시면 좋죠.”
내가 옆자리에 앉은 한효석을 보며 흐흐 웃었다.
“그렇대. 해원아, 해봐.”
“아…… 어떻게 형 이름을 불러요.”
“동갑이라잖아.”
“동방예의지국에서 이래도 돼요? 심의 괜찮아요?”
“유튜브 방송에 무슨 심의까지 나와.”
애가 부담스러워서 한숨만 쉰다. 얘도 은근 놀리는 맛이 있다.
“……해원아.”
“응, 효식아. 우리 동갑이라며?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내가 악수를 청하며 놀리고 있으니 안주원이 말했다.
“정해원 오늘 말 많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잘 자서.”
내 말에 황새벽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뭔 소리야. 오는 내내 멀미하면서 작업했잖아. 아니, 매니저 형이 그럼 멀미한다고 이미 말을 했는데도 화를 불러, 너는.”
……거기에 있어서는 할 말이 없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다른 차를 타고 온 안주원이 궁금한지 물었다.
“무슨 곡 작업했어?”
나는 카메라 앞에서 스포하지 않기 위해 안주원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팬송.”
“아. 이따가 들려줘.”
“알겠어.”
“주원아, 뭐 작업했대?”
신지운이 멀리서 물어보니까 안주원이 말했다.
“이따가 불러준대.”
“야.”
“너 요즘 생각보다 노래 괜찮아. 나 맨날 네 가이드 듣잖아.”
“그걸 왜 들어.”
“그냥 웃고 싶을 때 좋더라.”
“아니, 그니까 결국 웃겨서 듣는다는 거 아니냐?”
내 말에 안주원이 대답 대신 흐흐 웃는다. 하, 내가 언젠가는 꼭 노래를 웬만큼 하게 돼서 이 수모를…… 더 연습해야겠다.
그사이 황새벽이 제작팀이 설치해 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진행을 이어갔다.
“일단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정보가 뭔지 적어보자.”
그러자 멤버들이 하나씩 손들고 말했다.
“20년 뒤에 지구가 멸망한다.”
“시간여행자가 한 명 있는데, 시간여행을 딱 두 번만 할 수 있다.”
“빌런이 있어요!”
하나씩 이야기하며 화이트보드를 채워갔다.
황새벽이 펜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이 학교 여기저기에 우리가 가진 이능력에 관한 단서가 숨겨져 있대.”
“아, 보물찾기야?”
“학교 전체면 너무 넓은데. 여기 건물만 세 개잖아. 별관까지.”
멤버들의 말에 황새벽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학교 전체면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에 여기 제작팀에서 지도와 워키토키를 준비해 주셨어. 저희가…… 제작비가 부족해요?”
황새벽이 제작진에게 지도 세 장을 받아 들고 묻자 스태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팀을 나눠서 찾으셔야 할 것 같아서요.”
“아. 그치, 우리가 혼자 다니면 분량을 못 뽑을 애들이 많지.”
“자기 얘기지?”
내가 말하니까 황새벽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너도 딱히 재미없어.”
“너보단 재밌어.”
“우린 따로 다니자. 재미없는 애랑 재미없는 애 같이 다니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더 재미없어?”
“그렇지.”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할 때, 자막으로 ‘의외로 잘 맞음’이라고 나왔다는 건 나중에 모여서 영상을 볼 때 알았다.
따로 다니자고는 했지만, 우리는 나이순으로 팀을 나눠, 04, 05, 그리고 07인 막내는 겁이 많아서 06 둘과 함께 셋이 팀을 짜서 출발했다.
출발 전부터 여느 때와 다름없이 06인 한효석과 민지호가 티격태격하고 있어서 내가 말했다.
“너흰 싸우지 말고.”
“안 싸워!”
“민지호가 시비만 안 걸면요.”
“내가 언제 시비를 걸었어!”
또 싸우려고 해서 내가 한효석에게 말했다.
“효식아, 내가 볼 땐 네가 시비 더 많이 걸어.”
“……제가요?”
“어.”
그 말이 너무 충격이었는지 한효석이 굳었다. 민지호와 박선재가 낄낄거리더니 한효석을 밀고 당기며 끌고 사라졌다.
막내즈를 먼저 보내고 다시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번개와 함께 천둥소리가 들렸다. 불 꺼진 복도가 번쩍이는데 욕부터 튀어나올 것 같아서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카메라 있는데 욕할 뻔했다.
“완전 공포 영화네.”
나는 얼른 황새벽을 찾으러 달려갔다.
이거 오늘 쉽지 않을 것 같은데…….
* * *
지난번 뮤직비디오 촬영 때는 스태프도 많고, 대낮이었어서 그냥 방학 중인 학교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해가 지고 학교를 구석구석 찾고 있으니 폐교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래도 다른 아이돌들도 여기서 뮤직비디오를 찍은 적이 있어서, 관리는 상당히 잘 되어 있었다.
나와 지도를 확인하던 황새벽이 물었다.
“겁 많은 애들 누구 있지? 막내는 알고.”
“신지운도 은근 겁 많아.”
“아, 그래?”
“어, 국선아 때 걔랑 공포게임 하는데 아예 화면을 못 보던데?”
“그럼 우리 조가 제일 겁이 없네.”
“그렇지…….”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과학실을 가야겠지, 해원아?”
“그치, 우리가 형이기도 하고…….”
과학실만 별관에 따로 떨어져 있었다. 다른 겁 많은 멤버들이 과학실을 갈 리는 없는데, 딱 봐도 수상하게 지도에 표기되어 있으니 우리가 가야 할 것 같았다.
황새벽이 워키토키를 들었다.
“여기는 25. 우리 과학실로 갈게.”
그러니까 건너편에서 소리가 전해졌다.
-여기는 31. 형, 우리 미술실 왔는데 무서어…….
아이고, 우리 막내. 딱 봐도 미술실 무서울 것 같은데.
-여기는 61 플러스. 우리는 3학년 1반 가는 중.
‘별이 된다면’ 안무에서 비롯된 멤버들의 동선 번호는 전부 두 자리 숫자인데, 동선 문제로 고유번호가 특이한 멤버가 둘 있다.
하나는 743으로 이동하는 안주원, 그리고 국선아 연습실이 작았던 문제로, 연습할 때는 박선재와 똑같이 1로 끝나지만 실제로 무대에 설 때는 거기서 세 걸음을 더 걸어가야 돼서 ‘61 플러스’로 숫자가 정해진 신지운이었다.
내가 워키토키를 끄고 말했다.
“05 둘이 좀 빌런 같네, 콜사인이 튀어서.”
“빌런이 둘일 수도 있나?”
“한 명이라고는 안 했으니까?”
“어, 그러네? 난 당연히 한 명이라고 생각했어.”
우리는 이야기하며 차양이 있는 길을 걸어 과학실로 향했다.
예상대로 별관 문을 열면서부터 공포 그 자체였다. 다른 곳과 달리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손전등 두 개에 의지해야 했다.
밤에 보면 무서울, 과학실에 있어야할 건 다 있었다. 다행히 나도 황새벽도 그런 건 별로 겁내지 않아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녔다. 나는 겁 많은 멤버라면 얼씬도 안할 인체 모형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손전등으로 살펴보니 예상대로 바코드 리더기와 핸드폰이 있었다.
“그거 뭐야?”
“바코드 리더기.”
내가 대답하자마자 황새벽이 내 왼쪽귀 아래 바코드를 찍어보니 핸드폰에 시간이 떴다.
[19년 364일 23시간 7분 56초]
[19년 364일 23시간 7분 55초]
“이거 우리 남은 수명인가 보다. 촬영이 두 시간쯤 됐고, 20년 1시간 뒤에 지구가 멸망했으니까.”
“아.”
황새벽이 듣자마자 정보를 공유하려고 워키토키를 켰다. 저럴 때 보면 은근 리더답다. 물론 황새벽이 자기는 요약 못한다고 떠넘겨서 설명은 내가 했다.
“아무튼 이런 걸 발견했어.”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 아, 머리가 세 개 있어…….
박선재의 겁먹은 목소리에 안주원이 대답했다.
-머리라니까 더 무서운데? 줄리앙, 아그리파, 비너스일 거야. 데생할 때 도움 주시는 분들.
-역시 미대생……. 어느 분이 줄리앙이셔?
-보편적으로는…… 목 제일 길고, 약간 측면 보시는 분.
-응? 셋 다 정중앙 노려보고 있는데? 엄청 무서워…….
-아, 그래? 신기하네.
안주원의 사람 좋은 말에 바로 신지운의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뭐가 아 그래야. 신기한 게 아니고 이상하지.
내 말이 그 말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말했다.
“막냉아, 석고상들 들어봐.”
내 말에 박선재가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말했다.
-아, 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