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7화 (3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7화

-뭐 찾았는데?

황새벽이 묻자 박선재가 대답했다.

“석고상 바닥에 이름표가 있는데? 어, 주원이 형 왔다.”

그때 막 다른 곳을 뒤지던 안주원과 신지운이 미술실에 도착했다. 안주원이 석고상 바닥의 이름표를 보더니 말했다.

“이름이 바뀌어 있는데? 이분이 아그리파고, 이분이 줄리앙.”

“그래?”

민지호가 와서 신기해하며 기웃거리더니 곧바로 석고상 바닥의 이름표를 떼서 안주원이 말한 대로 바꿨다.

그러자 꺼져 있던 미술실의 모니터가 켜졌다.

“어유, 뭐야.”

멤버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모니터에 글씨가 적혔다.

신지운이 워키토키로 말했다.

“해원이 형, ‘이것은 착한 과학자만이 알 것이다’라고 쓰여 있어. 안주원이 착한 과학자네.”

-그렇겠지? 그럼 안주원은 빌런 제외네.

그 말에 민지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난 주원이 형이 빌런이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을 것 같아.”

그 말에 안주원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는 아니야.”

그때 워키토키에서 황새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근데 착한 과학자면 나쁜 과학자도 있는 거 아니냐? 아니지…… 미친 과학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술실에 있던 모든 멤버들의 시선이 민지호에게로 쏠렸다. 민지호가 억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봐. ‘과학자’가 아니라 ‘미친’ 때문에 날 돌아보는 거지?”

“굳이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도 그냥 그거야.”

한효석의 말에 민지호가 씩 웃었다.

“또 시비 거네, 효식이?”

“…….”

“우리 이제 덜 싸우겠다. 그치?”

민지호가 히히 웃었다. 그때 황새벽이 말했다.

-근데 아무래도…… 너희 이리로 와야 되겠는데? 과학자면 과학실에 와봐야지. 너희 뭐 과학 동아리 그런 거 아닐까?

“난 과학자 아닌 것 같은데…….”

박선재가 반발해 봤으나,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과학실로 가야 할 분위기였다.

* * *

과학실에서 다시 모이기 전에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나와 황새벽은 별관을 나와 본관 건물로 향했다. 가던 중에 천둥소리가 들려서 우리 둘 다 멈춰 섰다.

“오늘 날씨 왜 이러냐. 무섭게.”

황새벽도 놀랐는지 중얼거려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황새벽이 힐끔 나를 보더니 물었다.

“근데 너 괜찮아? 표정이 안 좋은데.”

“멀미 때문인가 봐. 좀 쉬면 괜찮겠지.”

“그니까 좀…….”

황새벽은 잔소리를 하려다 말고, 나는 매니저 형에게 핸드폰을 받았다.

“나 이형이 형이랑 전화 좀 하고 올게. 팬송 궁금해서.”

“아니, 쉬는 시간에는 쉬라고.”

“알았어, 알았어.”

나는 말한 후 황새벽과 헤어져, 카메라가 없는 빈 교실을 찾아 들어갔다.

이제 카메라 앞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처럼 궂은 날씨가 더해지니 그렇지 않았다. 천둥소리에 놀랄 때마다 심장이 철렁하고는,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 나는 멘탈이 왜 이러냐.”

담배를 딱 한 대만 피우면 가라앉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목 관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것도 못 하겠다.

나는 창문 아래 앉아서 크게 숨을 쉬었다. 손이 떨리다 못해 저려서 손을 번갈아 주물렀다. 6월 말의 날씨가 춥게 느껴진다. 스타일리스트에게 겉옷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여기가 작업실이라고 상상하기로 했다.

어쩌면 나는 내 방에서 나온 후, 이번에는 남의 작업실에 처박히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27형 모니터에 가득 차 있는 로직 프로, 포칼 스피커가 있고 벽에는 양이형의 영문 이름을 네온으로 만들어 걸어놨다.

특별히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지만 누우면 금방 잠이 드는 소파와 벽에 기대 놓은 접이식 침대, 돈을 꽤 많이 들인 의자.

시답잖은, 어제 뭘 먹었는지에 대하여 떠들다가도 금방 음악 이야기로 빠져 버리고 마는 그곳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왜 나를 싫어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던 2년간의 고민도 작업실에 들어서면 결국 음악에 대한 생각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이 얼마나 안락한 공간인지.

나는 핸드폰을 들어 양이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양이형이 받자마자 물었다.

“작업실 잘 있어?”

-야이씨, 생전 형 안부는 안 묻는 새끼가. 근데 네가 보낸 거, 프리코러스 좀 힘 빠지지 않냐?

“어, 나도 지금 생각하고 있어.”

-근데 너 이거 언제 만들었어? 어제 작업실에서 나갈 땐 이런 얘기 없었잖아.

“샵에서 촬영장 올 때.”

-너 뭐, 진해쯤 갔냐?

“가양동인데.”

-그럼 청담동에서 가양동 가면서 만들어서 보냈다고?

“응.”

내 대답에 양이형이 욕을 퍼붓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니, 이 형은 사람이 정이 없어.”

나는 투덜거리면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도 양이형 나름의 칭찬을 듣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려는데 문 앞에 민지호가 있었다.

“뭐 해?”

“형 기다렸지.”

“왜?”

“어어, 습관이야.”

민지호가 말하며 빨리 가자고 손짓했다.

멤버들은 촬영 시작 장소였던 3학년 1반 교실에서 팬송을 듣고 있었다. 신지운이 말했다.

“이거 정규 나오기 전에 선공개 어때.”

그러자 민지호가 박수를 한 번 짝 치며 말했다.

“아, 나 아까부터 이 느낌 뭔가 했는데 그거였어. 선공개 느낌.”

하긴. 팬송을 선공개하는 것도…… 가 문제가 아니라.

“노래는 괜찮아?”

내가 묻자 민지호가 말했다.

“응. 형 노래 같고, 내 마음 같기도 해.”

“……슈퍼파워 느낌이 나? 여기서?”

내가 물어보니까 민지호가 히히 웃었다.

“당연하지. 영원한 햇살 같다며. 내가 너를 만날 때 세상은 맑은 날이라며. 그게 슈퍼파워지.”

단순한 놈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왠지 맞는 말 같다. 체력을 이미 다 썼는지 늘어져 있던 황새벽이 날 힐끔 보더니 말했다.

“넌 팬송 자기가 쓰자고 해놓고 왜 이렇게 부담스러워 해?”

“팬송이 어떻게 안 부담스러워. 선물이잖아. 받는 사람이 좋아해야 되는데.”

“해원아, 우리한테 평생 팬송이 한 개냐? 우리 앞으로도 계속 팬들한테 고마워할 거고, 그런 마음으로 팬송 만들 거야. 수많은 팬송 중에 한 개야. 이게 우리 마음을 백 퍼센트 대표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네 오늘 좀 똑똑하다. 머리 써서 그런가?

내가 생각하는 사이, 옆에서 안주원이 덧붙였다.

“첫 번째로 전달하는 마음이라 좀 부담스럽겠지만. 난 이게 첫 번째로 선물하는 팬송이라는 게 너무 좋아.”

그러자 옆에서 다른 멤버들이 자기도 좋다고 맞장구쳐 준다. 다행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중에도 팬송을 듣던 한효석이 이어폰을 빼고 입을 열었다.

“스페셜 영상으로 선공개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에 민지호가 맞장구쳤다.

“스페셜 영상 좋은데? 비 오는 날 갑자기 올리는 거야!”

“회사 일이 그렇게 갑자기……. 이거 시비 건 거 아니다.”

“신경 쓰여? 응?”

민지호가 깐족거리다 낄낄거렸다. 내가 민지호에게 말했다.

“너도 너무 깐족거리지 말고.”

“알았어어, 아, 햇살이들 좋아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빨리 들려주고 싶어 미치겠다.”

“그럼 스페셜 영상 의견 내볼……. 일단 쉴까?”

쉬는 시간까지 일하는 건 좀 그런가, 싶어서 물어보니까 멤버들이 다 고개를 흔들었다.

“이게 쉬는 거지.”

“나 의견 있어.”

신지운이 손을 들었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관객 없는 공연장에서 부르는 거 어때?”

그러자 옆에서 박선재가 바로 대답했다.

“와. 좋아. 너무 좋아.”

그때 민지호가 재빨리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나 마지막에 멘트 시켜줘. 제발.”

“뭐가 하고 싶은데?”

내가 물어보니까 민지호가 말했다.

“두 개 있는데, 햇살이들 보고 싶어, 이거 아니면, 햇살이들 빨리 만나자!”

“민조 무릎까지 꿇었는데 시켜줘야겠지?”

내가 물어보니까 신지운이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무릎 꿇는다고 다 시켜줘 버릇하면 안 돼.”

“귀엽잖아.”

“쟤 자세히 봐봐. 전혀 안 귀여워. 내가 귀엽지.”

“아니지. 너의 귀여움의 기준이 잘못됐지.”

“형 나 싫어해?”

“안 싫어해. 객관적인 거야.”

“와, 차라리 싫어해라, 그냥.”

그렇게 시끌시끌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비가 좀 그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발작하듯 뛰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꽉 눌렀다. 촬영이 꽤 많이 진행됐으니, 조금만 참으면 될 것 같았다.

* * *

일곱 명의 멤버들은 모두 과학실에 모였다. 손전등이 일곱 개가 있어서 좀 밝아졌지만 겁 많은 멤버들은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겁 많은 멤버는 나와 황새벽을 제외한 전원이었다. 황새벽이 나에게 말했다.

“쟤네 보니까 우린 겁이 없는 편이었다, 야.”

“그니까. 쫄보들.”

나는 할 수 없이 김재성 피디에게 물었다.

“피디님, 죄송한데 저희 그냥 불 켜주시면 안 돼요? 아예 진행이 안 돼요.”

“잠시만요, 상의 좀 할게요.”

제작진도 멤버들이 이렇게 겁이 많은 줄 몰랐는지 모여서 상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결국 과학실에 불이 들어왔다.

교실과 달리 6인용 정도 되어 보이는 실험용 테이블이 네 개 있었다. 그리고 캐비닛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 위에 실험도구함이 있었다. 신지운이 캐비닛을 보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물러나 주저앉았다.

멤버들이 가서 보니까 캐비닛과 벽 사이에도 인체 모형이 놓여 있었다.

“진짜 미치겠네.”

“형, 어떻게 이걸 보고 욕을 안 했어? 아이돌이네.”

민지호가 말하며 인체 모형을 꺼냈다. 그래도 겁쟁이 중에는 민지호가 제일 겁이 없는 모양이다.

인체 모형을 꺼낸 후 벽 틈을 보니 거기 자물쇠가 달린 상자가 있었다. 민지호가 상자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과학 동아리 전용]

박선재가 물었다.

“주원이 형 과학자라며. 주원이 형 생일 같은 거 아냐?”

그 말에 민지호가 앉아서 0206을 넣어보더니 말했다.

“0206 아니야. 형들, 난 찾는 건 잘 못하니까 숫자 0000부터 넣어보고 있을게, 찾아봐.”

그러더니 상자를 안아 들고 인체 모형을 친구 삼아 옆에 앉아서 숫자를 누르기 시작했다. 다시 보니 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이상한 놈인가…….

아무튼 민지호가 그러고 있는 사이에, 겁에 질려 있던 박선재는 자기도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바코드 리더기로 멤버들의 바코드를 찍어보고 다녔다.

[19년 364일 20시간 0분 15초]

그렇게 숫자를 확인하던 박선재가 나한테도 와서 말했다.

“형, 놀라지 마. 좀 해볼게.”

“나 아까 찍어봤는데.”

그래도 나는 원래 막냉이한테는 국선아 때부터 왠지 늘 약했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 왼쪽 얼굴을 내밀었다. 박선재가 바코드를 찍더니 ‘어?’ 하고 소리를 내 모든 멤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19년 363일 19시간 56분 09초]

“왜 너만 수명이 하루가 줄었냐?”

황새벽의 말에 나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전혀 모르겠는데…….”

만약에 이 상황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수명이 팍 줄었다면, 아무래도 빌런 때문일 텐데.

나는 신지운과 안주원, 민지호와 한효석을 번갈아 보았다.

“너희 근데 아까 아무것도 못 찾았어?”

“응.”

신지운과 안주원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안주원이 말을 이었다.

“우리 같이 사물함 다 열어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어.”

민지호는 자물쇠 여는데 완전히 몰두했고, 한효석은 눈을 깜빡거렸다.

“효식아, 너는?”

“네?”

“너 혹시 아까 미술실에서 뭐 더 찾은 거 없어?”

내가 물어보니까 붓으로 그린 듯한 얼굴에, 발레를 하던 사람답게 늘 반듯한 자세로 서 있던 한효석이 순수하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던데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쟤가 이미 본인이 빌런이란 걸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지금 저 표정이 이번 방송분에 하이라이트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쟤야말로 연기를 시켜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 신지운이 쓴 ‘불을 켜’의 랩 파트 한 부분을 떠올렸다.

[여긴 백야 우리에게 더 이상 밤은 안 와. 어둠은 이제 달리는 우리를 잡을 수 없어]

그리고 거기에 대한 빌런의 답가를 생각했다.

[밤은 우리의 시간. 더 이상 태양은 안 떠.]

“야, 정해원.”

“어?”

내가 돌아보니까 날 부른 황새벽이 말했다.

“너 또 뭐 지금 영감 같은 거 받았지.”

……어떻게 알았지?

“표정이 딱 금방 또 일할 표정이네? 뭔지 몰라도 빨리 잊어버려. 일하다 뒤질 건가 봐.”

어휴, 맞는 말이다. 나는 빨리 머릿속을 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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