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8화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빌런이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빌런의 승리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어, 뭐야.”
황새벽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머지 멤버들도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빌런의 승리 전에, 빌런을 포함한 모든 멤버들의 능력을 알아내면 퍼스트라이트 여러분은 지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
[현재 밝혀진 히어로의 능력은 1개입니다]
‘착한 과학자’로 밝혀진 안주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방송이 시작되자 민지호가 급하게 ‘과학 동아리 전용’ 상자를 가지고 달려왔다.
“아무거나 숫자 말해봐, 빨리 풀게.”
“0130?”
“0731.”
“지호야, 0920은 이미 해봤지?”
다들 각자의 생일부터 말했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 자기들끼리 싫어하는 것 같으면서 나머지 멤버 생일은 다 외우고 있다. 다들 남이 자기 생일 잊어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 자기도 남의 생일을 기억하는 타입들이다. 이런 걸 보면 은근 공통점이 많은 놈들인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나도 기억하긴 한다.
민지호가 일곱 명의 생일을 차례대로 넣어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신지운이 그때 급하게 말했다.
“민조, 2043 해봐.”
퍼스트라이트 컴퍼니를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멤버들도 동감하는지 ‘아’ 하고 탄성하고, 민지호가 급하게 비밀번호 2043을 넣었다.
비밀번호를 넣자 바로 자물쇠가 풀렸다.
그리고 민지호가 상자 안에서 다양한 과학 실험 도구들을 꺼냈다. 민지호가 그 위에 있던 봉투를 열었다.
“2023년 6월 30일. 주원이에게. 주원아, 나 지호야. 네가 꼭 알아야 할 실험 결과가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써. 물론 나는 여전히 과학을 믿지만 요즘에 갈수록 선재의 말이 맞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20년 뒤에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거 말이야. 다른 것보다, 오늘 그 일은 정말 신기하지 않았어? 세상에 정말 예언자라는 게 있는 걸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걸 쭉 읽고 나서, 내 팔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박선재가 나에게 물었다.
“나 예언해?”
“그런가 본데?”
“나한테 예지능력 있는 것도 무서우면 너무 겁쟁이지?”
“아냐, 그런 거 아니어도 넌 이미 너무 겁쟁이야.”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 말에 뒤에서 보던 신지운이 말했다.
“내용이 안 따듯한데 되게 따듯한 것처럼 들린다.”
“아닌데? 우리 형 따듯한데?”
크, 역시 내가 업어 키운……. 이라고 하면 고작 국선아 시절 잠깐 본 걸로 생색낸다고 박선재네 부모님이 황당해하시겠다.
[현재 밝혀진 히어로의 능력은 2개입니다]
그때 스피커로 방송이 흘러나와서, 내가 박선재의 등을 두들겼다.
“하긴, 막냉이가 빌런일 리가 없지.”
내 말에 신지운이 핀잔했다.
“해원이 형, 이럴 거면 그냥 얘를 입양해.”
“나도 하고 싶지. 근데 막냉이네 부모님이 슬퍼하시지. 아무튼 시간이 은근 얼마 없네.”
내 말에 안주원이 동의하며 말했다.
“일단 우리가 안 가본 곳도 찾아보자. 안 가본 곳이…… 양호실이랑 밴드부실이네.”
황새벽이 그걸 듣고 입을 열었다.
“그럼 형들이 밴드부실 가고, 나머지가 양호실 가자.”
황새벽이 나와 안주원에게 같이 가자고 손짓했다. 그리고 민지호에게도 말했다.
“너도 가자. 적어도 넌 인체 모형은 안 무서워하니까.”
“그랭.”
민지호가 우리 쪽으로 온 후에, 나는 힐끔 나머지를 보았다.
“아, 이상하게 한효석이 찝찝…… 하네.”
내 말에 한효석이 황당해하며 물었다.
“왜 저예요?”
“아니……. 그냥 느낌. 네가 우리 중에 제일 꼼꼼한 편인데 미술실을 찾아다니면서 석고상을 안 들어봤다는 게…….”
“너무 억진데.”
“그치?”
내 생각도 그렇긴 하다.
“그래도 일단 같이 다녀볼까?”
내 말에 한효석이 어이없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뭐.”
내 말에 황새벽이 신지운에게 손짓했다.
“그럼 지운이가 이리로 와. 상황 파악 잘하는 사람 하나씩 있어야지.”
우리는 그렇게 두 팀으로 나뉘어 양호실과 밴드부실로 향했다.
밴드부실에는 딱히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여태까지 다닌 곳 중 가장 안 무서운 곳이었다.
박선재는 그사이에 신이 나서 마이크 스탠드 앞으로 달려갔다. 마이크가 진짜 나오는 건 아니어서, 워키토키를 들었다.
“지구가 멸망해도 노래는 불러야지. 신청곡 있어?”
“나 있어. 나 ‘나도 알아’ 불러줘.”
“아, 맞다. 해원이 형 준희 선배님 팬이지.”
클래식을 하던 내가 처음 동경하게 된 아이돌 그룹은 2012년에 데뷔한 ‘빅 블루’였다. 빅 블루의 대표곡은 아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데뷔곡인 ‘나도 알아’였다.
워키토키 너머에서 안주원이 말했다.
-그래, 선재야. 노래 불러줘. 여기 좀 무서우니까.
-나도 많이 무서워…….
옆에서 신지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양호실 쪽은 진짜 무서운 모양이다.
나와 한효석이 밴드부실을 뒤지고 다니는 사이에 박선재는 ‘나도 알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빅 블루는 여름을 컨셉으로 한 보이그룹이라고 부를 정도로 썸머송을 많이 불렀다. ‘나도 알아’는 첫사랑에 관한 노래이면서, 여름에 관한 노래이기도 했다.
“완벽하던 내 인생에 사랑이 시작됐어, 바다에 뛰어드는 게 전부이던 내 여름은 어디로! 나도 알아 이건 첫사랑이야. 나도 알아, 이건 시련의 시작이야!”
음악의 힘은 놀랍다.
오늘 내내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던 비와 천둥 번개는, 박선재의 청량한 목소리에 그저 더위를 식히는 여름비로 바뀌었다.
무섭던 어둠 속의 공간들이 가볼 만한 곳으로 변한 것은, 가사 속에 등장하는 바다에서 노는 것이 전부이던 소년이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물들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선재가 노래를 부르는 사이에 한효석이 나에게 물었다.
“형, 빅 블루 선배님들 방송국에서 만난 적 있어요?”
“아니, 아직.”
빅 블루의 멤버들은 재작년과 작년에 걸쳐 제대를 했는데, 아직까지 방송국에서 빅 블루를 만난 적은 없었다. 한효석이 말을 이었다.
“저희는 몇 번 뵀었는데.”
“그래? 어때?”
“뭔가 그 여유로움이 엄청 멋있더라구요. 우린 아직 막 급급한 면이 있잖아요.”
“그렇지.”
나도 언젠가 만나게 되겠지. 생각하니까 긴장된다.
나는 한효석과 이야기하다가, 생각난 김에 다시 바코드 리더기로 내 남은 수명을 확인해 봤다.
[15년 124일 17시간 43분 01초]
나는 계속 줄어드는데, 나머지 멤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건…….
나는 노래가 끝난 박선재에게 워키토키를 받았다. 그리고 한효석에게 안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나 힐러거나, 능력 무효화 같은 능력이라서 빌런이 능력 쓸 때마다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은데?”
그때 다시 스피커폰으로 방송이 흘러나왔다.
[현재 밝혀진 히어로의 능력은 3개입니다]
그때 신지운이 말했다.
-잠깐만…… 새벽이 형이 시간여행자인 것 같아. 같은 게 아니라, 확실해!
-나? 왜?
-빌런 듣고 있을 것 같으니까 좀 이따가 말해줄게.
[현재 밝혀진 히어로의 능력은 4개입니다]
그렇게 방송이 나오자, 신지운이 말했다.
-피디님, 죄송해요. 사실 찍었어요. 증거 없어요.
-아, 그런 거야? 와, 사기꾼…….
시간이 없으니 그렇게 찍어서 제작진을 속였을 때, 안주원이 말했다.
-여기 또 자물쇠 있다.
-주원이 형, 내가 또 0000부터 넣어볼 테니까 빨리 더 찾아보고 있어!
민지호가 그렇게 말했을 때, 갑자기 한효석이 밴드부실을 뛰쳐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나와 박선재가 따라 달렸다.
“형들! 효석이가 도망쳐!”
-어? 어디, 어느 방향!
“어…… 어! 과학실! 우리가 잡으러 가볼게!”
박선재가 이야기하는 사이에, 나는 한효석이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그리고, 내가 별관에 따라 들어갔을 때, 한효석이 휙 돌아서더니 별관을 나가 문을 닫았다.
“어, 너 뭐 해?”
“죄송해요. 방송이라서.”
그리고 밖에서 걸쇠를 걸었는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와, 저거…….”
그러니까 지금, 나 때문에 능력이 안 써지니까 가둬 놓은 거구나. 한효석이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행동이었다.
“와……. 방송은 재미있게 나오겠네.”
나는 중얼거리며 문에 달린 유리 너머로 밖을 보았다. 박선재가 급하게 멤버들을 부르고 있었다.
“형들! 큰일 났어! 한효석이 해원이 형 별관에 가뒀어!”
-어? 효석이가?
-와, 한효석이 이럴 줄은…….
그러더니 금방 1층에 있던 양호실에서 멤버들이 달려와 한효석을 붙잡았다. 그리고 뭔지 몰라도 능력을 못 쓰게 힘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이야, 결국 모든 게임의 끝은 힘겨루기인 게 아주 이 멤버들답다.
그사이 박선재가 걸쇠를 열고 별관 문을 열어줬다.
나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멤버 수를 센 후 황새벽에게 물었다.
“민지호 어디 있어?”
“어? 양호실…… 아.”
빌런이 한 명이라고는 안 했다.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신지운이 양호실로 다시 달려갔다. 그리고 워키토키로 신지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 민지호.
“왜?”
-우리가 한효석 잡으러 간 사이에 자물쇠 열었어.
“그리고?”
-창문 봐봐.
그 말에 멤버들이 양호실 쪽 창문을 보니, 민지호가 갈기갈기 찢은 편지지를 빗속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으하하하 웃는 게 진짜, 미친놈 같았다.
“지호…… 미친 과학자 맞네.”
안주원의 말에 황새벽이 맞장구쳤다.
“맞네. 과학 동아리의 미친놈…….”
[현재 밝혀진 빌런의 능력은 1개입니다]
[더 이상 1개의 히어로의 능력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빌런들이 승리합니다]
[퍼스트라이트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지구는 멸망합니다]
“……한효석이랑 민지호가 한 팀이었네.”
안주원의 말에 옆에서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둘이 어떻게 자기 능력을 알게 되고, 빌런이란 걸 알게 됐는지는 물어보든지, 방송을 봐야 정확히 알게 될 것 같다.
그때 우리 쪽으로 돌아온 신지운이 말했다.
“근데, 시간여행 한 번 더 할 수 있잖아?”
그 말에 황새벽이 대답했다.
“두 번밖에 못하잖아. 한 번 시간 여행하면 못 돌아와.”
“아니, 근데……. 내 능력도 시간 관련된 거일 수도 있잖아.”
“아, 그런가?”
“응…… 근데 해원이 형은 왜 이렇게 남처럼 신기해하고 있어?”
“아니…… 이게 이렇게 이어지는 거구나. 나도 몰랐거든.”
나도 한 번 더 시간여행을 한다는 의견만 냈지, 이렇게 이어지는 줄은 몰랐다.
그때 촬영이 종료되고, 한효석이 물었다.
“정규 다음 앨범 세계관이요?”
“응.”
“뭔데요?”
내가 대답했다.
“혹시 너희가 VMC 시상식에 서게 될 때를 대비해서 내가 ‘더 킹’ 편곡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들었지?”
국선아의 근본곡. 첫 번째로 모든 출연자가 부른 곡이며, 데뷔조가 딱 한 번 공연했던 곡.
‘더 킹’.
내 말에 박선재가 물었다.
“아, 그거 중세 배경 판타지 느낌 편곡이지? 아, 그게 다음 앨범 컨셉이야?”
“…….”
뭐야, 한 번에 맞추니까 당황해서 얼버무리지도 못하겠다.
내가 바로 대답을 못 하니까 멤버들이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그러자 박선재가 말했다.
“이형이 형이……. 그 형 사실 형 없는 곳에서, 형 엄청 칭찬하거든. ‘더 킹’ 편곡 폭풍 칭찬하다가 대충 말하는 거 들으니까 그런 느낌이던데.”
아니, 그 형은 왜 칭찬으로 스포일러를…….
뭐 어차피 멤버들에게 오늘 그 컨셉을 알려주려고 하긴 했다.
멤버 여섯 명이 왕으로 있는 6개의 왕국이 화합하여 적과 대립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그때 내가 있다면 7개의 왕국이 될 것이고…….
뭐, 벌써 내년 활동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 이번 정규에 집중해야지.
“물론 멤버들이 다 동의를 해야…….”
라고 말하는 동안, 이미 멤버들은 자기 의견을 말하고 싶어서 손을 들고 있었다.
“나머지는 숙소 가서 얘기하자. 우리 지금 은근 비 맞아서 감기 걸릴 수도 있어.”
황새벽이 말하며 손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