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9화 (3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9화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차를 따로 탔지만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해서 거의 한 차에 멤버들이 다 탄 것처럼 시끌시끌했다.

“와, 한효식이 그럴 줄은. 나 이제 너 안 믿어.”

-방송이잖아요.

“근데 민조, 진짜 언제 안 거야.”

“비밀이야. 방송 봐!”

“넌 그걸 왜 우리한테 비밀로 하냐.”

-근데 이번 일라운드 재미있을 것 같지?

“어! 기대돼!”

그렇게 나도 멤버들과 함께 시끌시끌 떠들고 있는데, 종일 으스스하더니 슬금슬금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나야 뭐 뜨듯하게 씻고 자고 일어나면 되겠지만 다른 사람이 옮는 게 문제다. 혹시 모르니까 일단은 숙소에서 나와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멤버들이 숙소로 돌아가고, 나는 마스크를 끼고 양이형의 작업실에 들어섰다.

양이형은 의자 뒤로 기대서 팬송을 듣다가 날 돌아보았다.

“왔냐?”

“나 감기일 수도 있으니까 마스크 끼고 있을게.”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내가 개가 아니라서 걸리는 거지.”

매니저 형들과 멤버들은 몸이 안 좋은데 작업실을 왜 가냐고 했는데, 양이형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작곡을 업으로 삼았다면 앓아누워도 작업실에서 앓아누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양이형이 팬송을 틀어놓고 말했다.

“비 올 때 들으니까 죽인다, 이거.”

“좋아? 난 이제부터 노가다할 생각하니까 X나 피곤한데.”

“만 원.”

“아, 여기선 봐줘. 이제 조심할게.”

나는 나름 애교스럽게 말하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쉬어서 전혀 그렇게 안 들렸다.

나는 팬송을 한 번 불러보기 전에 흘러나오는 트랙 위로 정확한 음을 건반으로 눌렀다.

“아, 내 귀에는 맞는 음이 들리거든? 근데 이게 왜 목에서 안 나오냐. 답답하게.”

“절대음감 음치인 거지.”

“아, 나 음치까지는 아냐.”

“음감에 비해 음치라고.”

그건 그렇지…….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또 은근 노래를 수준급 이상으로 하는 놈들이라, 더 쳐지는 기분이다. 심지어 랩퍼인 신지운도 노래를 곧잘 하는 편이다.

아무튼 선공개를 할 가능성이 높으니 다른 곡보다 먼저 완성하고, 녹음한 후에 촬영까지 해야 하니 급했다. 바로 A&R팀에 보내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감기 때문에 콧물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피였다.

“어, 뭐야.”

“야야, 기계, 기계.”

양이형이 내 몸보다 앞에 있던 알록달록한 불이 들어오는 드럼머신을 걱정해서 나는 의자를 뒤로 밀고 가서 고개를 젖히고 말했다.

“아, 생전 저건 쓰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나보다 더 아끼네.”

“뭐, 내 돈으로 산 내 조명이야.”

“아니, 그니까 저걸 왜 조명으로 쓰냐고.”

나는 말하며 양이형이 다시 건네주는 휴지를 받았다.

“나 태어나서 코피 처음 나. 열심히 살았나 봐. 자랑스러운데?”

“그거 열심히 살아서 나는 게 아니라 허약해서 나는 거 아니냐?”

“운동 좀 해야겠다.”

“나 진짜 너 운동하는 걸 못 본 것 같다. 너 지금 스무 살이니까 버티지, 금방 후달려.”

“그런가?”

나는 피가 어느 정도 멈춘 후, 마스크를 교체하고 다시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양이형이 말했다.

“네가 쓴 악기들 2000년대 초반 애니메이션 느낌 난다.”

“어, 그런 느낌 약간 내고 싶었어.”

“제목은 ‘맑은 날’로 그냥 갈까?”

“응. 괜찮지 않나?”

“피아노랑 기타 세션 네가 할 거야?”

“응. 일단 내가 하고, A&R팀에서 별로라고 하면 뭐 거기서 세션비 주겠지.”

“세션비 아껴주는 아이돌, 귀하네.”

“난 어릴 때 아버지가 자꾸 불러서 기타 가르쳐 주면 솔직히 약간 귀찮아했거든? 근데 또 배워놓으면 다 써.”

그리고 이게 또 뭔가 그 내가 원하는 게 말로 설명이 안 돼서 내가 하면 편하다. 거기다 내가 원하는 게 나올 때까지 다시 연주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민망하다.

나중에 세션을 다시 녹음하더라도 내가 가이드를 잡아 놓으면 쉽게 소통이 되는 면도 있다.

양이형이 나에게 마무리한 악보를 건네줬다.

나는 작업실에 가져다 놓은 아버지의 일렉기타를 들었다.

“형, 공간 좀 빼줘.”

“어이, 이미 뺐다. 둘에 들어가.”

“응.”

인트로가 흘러나오고 나는 메트로놈 소리와 양이형의 숫자를 들으며 기타 세션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맑은 날’은 팬송이기 때문에, 듣는 팬들이 우리가 느끼는 고마움을 느낄 수 있고, 힘들 때 들으면 힘이 되는 노래가 되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벅찬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 연주에 신경 쓰며 기타 세션을 녹음했다. 녹음이 끝나자마자 양이형이 말했다.

“싸비가 좀 약하지 않냐?”

“약해.”

“한 번 더 갑시다.”

“네에.”

나도 그러려고 했다. 하여튼 처음에는 제일 친한 작곡가라 양이형과 작업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까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이 없다.

녹음을 할 때 유난히 집중하다 보니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놨는데도 식은땀이 났다.

“아, 형. 덥다.”

“어, 나도.”

양이형이 에어컨 온도를 더 낮추고, 녹음을 하고 나니 아침이었다. 그즈음 도착한 A&R팀 직원 박건훈이 작업실에 들어와서 말했다.

“아니, 이렇게 춥게 해놓고 작업을……. 해원 씨, 얼굴 창백한데? 괜찮아요?”

“그래요? 아까 코피 흘려서 그런가.”

내 말에 양이형이 핀잔했다.

“야, 아까는 무슨. 어제 낮이야. 24시간 가까이 됐겠다.”

“아, 그래? 여기 있으면 시간 가는 걸 모르겠어.”

실제로 창문도 시계도 없긴 하다. 약간 카지노 같은 느낌이다.

박건훈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말했다.

“매니저님 불러서 병원 갔다 오세요. 얼굴 진짜 하얘요.”

“어, 저 대리님이랑 얘기하고 스케치해 보려고 애들 오라 그랬는데.”

“이형이 있잖아요. 야, 너는 동생이 상태가 이러면 한참 형이 돼서 병원을 보내야지.”

같은 대학 같은 과 선후배 관계라서 그런지, 박건훈이 바로 양이형을 갈구기 시작한다. 저 형이 갈굼 당하는 거 처음 봐서 신기하다. 양이형이 멋쩍어하며 나에게 말했다.

“너 빨리 가.”

“중운이 형 와야 가지.”

나는 대꾸하고 나서 박건훈과 함께 ‘맑은 날’을 한 번 통으로 들었다. 박건훈이 음악을 들으며 말했다.

“멤버분들이 선공개 곡으로 강력하게 미시더라구요.”

“괜찮아요? 선공개.”

“네, 앨범 제작팀 쪽에서도 다들 찬성하시더라구요.”

다행이다. 반응을 보니 곡이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나는 내 취향으로 곡을 만드니까, 곡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는 내 판단보다 남들의 판단이 훨씬 정확하다. 그리고 그 곡이 잘될지, 잘되지 않을지는 하늘에 달린 일 같다.

잠시 후 박선재와 황새벽이 도착하고, 박중운 매니저도 작업실로 들어왔다.

“해원아, 병원…… 아니, 생각보다 더 안 좋은데?”

내 얼굴 상태가 많이 안 좋은지 황새벽이 등을 퍽 때리고 마이크로 간다. 박선재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형, 이러다 진짜 죽어…….”

막냉이한테 이렇게 심한 말 처음 듣는다.

“내가 이 정도로 건강이 안 좋지는 않아.”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서 거울을 봤는데 웬 저승사자 같은 놈이 서 있다.

“어우, 쟤 뭐야. 왜 저렇게 생겼어.”

내 얼굴에 내가 놀라니까 박중운 매니저가 내 등을 떠밀었다.

“빨리 병원부터 가자.”

“응, 진짜 가야겠는데?”

나는 말하며 박중운 매니저를 따라 작업실을 나섰다.

* * *

덕분에 병원에서 푹 쉬었다.

병원에서 한나절을 쉬고 났을 때, 나는 급한 마음을 못 참고 황새벽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씹혀서 박선재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아, 형. 여기 신경 쓰지 말고 쉬라구.

“황새벽 내 전화 알고 무시한 거지?”

-응.

“이 자식……. 아무튼 어떻게 되고 있어?”

-뭐 어떻게 돼. 잘 되고 있지. 노래 진짜 좋다. 막 좀 슬픈데, 벅차.

“그럼 성공이네.”

-형, 몸은…… 어차피 좋다고 하겠구나. 끊고 더 쉬어!

“알았어, 알았어.”

나는 전화를 끊고, 황새벽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가 또 씹혔다. 자꾸 씹히니까 집요한 사람 된 것 같고 좀 그렇다. 아니다. 그냥 집요한 사람인 게 맞나?

결국 포기하고 핸드폰을 던져 놓은 후 한숨 더 자고 일어났을 때, 박중운 매니저가 병실로 들어와 나에게 말했다.

“해원아. 예능이 들어왔는데.”

“단체?”

개인으로 들어오는 예능은 전부 내 이미지로 어그로 끌어보려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유튜브 채널에서 캐스팅이 종종 들어왔는데, 일단은 회사에서 전부 거절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나에게 물어보는 건 대부분 단체 예능이었다.

그동안은 퍼스트라이트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프로모션 개념으로 들어가는 예능을 제외하고는 별달리 예능 출연을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웬일인가, 싶었다. 박중운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어, 단체……. 근데 좀.”

“응?”

“약간 빡셀 것 같던데. 아무튼 섭외가 들어온 거라, 회의해서 결정할 거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왜, 무슨 예능인데.”

“어, 무슨…….”

아직 예능 내용이 공개가 안 된 건지, 박중운 매니저가 문단속을 하고 가까이까지 와서 말했다.

“퍼라랑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남자 아이돌 몇 팀 모여서 무대 하는 예능인가 봐.”

“아. 뭐 그럴 수 있지.”

“근데 유튜브 조회 수로만 점수 매긴다더라.”

“와, 미쳤대?”

“그러니까. 이게 되겠냐?”

“그래도 돼? 안 되는 거 아냐?”

“몰라. 뭐 저렇게 하다가 엎어질 수도 있지. 아무튼 그건 회의 때 얘기하면 되고, 너 녹음해야 되니까 몸 관리 좀 해.”

“나 지금 목은 괜찮은데.”

“감긴데 뭐가 괜찮아, 인마.”

그렇게 되게 크게 아픈 것도 아닌데 작업실을 못 가게 한다.

동시에 양이형에게도 계속 욕이 날아오고 있었다. 자기한테 일 떠맡기고 병원에 갔다고 욕하고, 내가 옆에서 맛이 가 있는데 형이 돼서 계속 작업을 하게 놔뒀다고 회사에서 욕먹는다고 욕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되게들 뭐라고 하네…….”

“네가 뭐라고 하게 만들었잖아. 너 또 이러면 부모님한테 연락한다?”

“어? 어른들끼리 그런 게 어디 있어?”

“어른 같은 소리 하네. 해원아. 몸 키우는 게 아니고, 살려고 운동 시작하면 그때부터가 어른이 되는 거다.”

박중운 매니저가 말하더니 나에게 대봉투에 든, 방금 말한 예능의 프로그램 구성안을 건네줬다.

박중운 매니저가 병실을 나가고, 내가 프로그램 구성안을 읽고 있는데 병실 앞이 시끌시끌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뭐야, 왜 왔어?”

내 말에 황새벽이 대답했다.

“병문안.”

“내 전화는 씹더니?”

“서프라이즈지.”

“쓸데없이 의리 있어 보이고 좋다?”

내 말에 신지운이 간이침대를 꺼내 앉으며 말했다.

“쓸데없이는 왜 붙여, 섭섭하게.”

“형! 우리가 음료수 사 왔는데 먹어도 돼?”

“어, 먹어.”

내가 말하자마자 민지호가 음료수를 꺼냈다. 그래도 나름 병문안이라고 음료수도 사 왔다. 거기서 하나씩 꺼내 마시기 시작한 것도 아주 이놈들답다.

“녹음 어디까지 했어?”

“다 했어요. 이제 형만 하면 돼요.”

“아, 진짜? 나 마지막에 녹음하는 게 좋더라.”

마지막에 녹음을 하면, 이미 멤버들이 다 녹음을 해놓은 것 위에 마지막으로 쌓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나서 거기에 안무를 더하고, 무대에 오르면 그때 비로소 하나의 곡이 완성된다.

내가 손을 내미니까 안주원이 오렌지 주스 캔을 따서 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해원아, 우리 스페셜 영상 찍는 장소 보여줄까?”

그 말에 황새벽이 핀잔했다.

“그거 보여주면 또 정해원 일 얘기하고, 시끄러워져.”

“그래도 어떻게 안 보여주냐.”

퍼스트라이트에서 제일 마음 약한 안주원이 나에게 스페셜 영상을 찍을 장소 사진을 보여줬다. 아직 세트가 다 설치된 게 아닌데도, 벌써 아주 마음에 들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