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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40화 (4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40화

촬영장은 꽤 넓은 공장이었다가, 지금은 카페를 하고 있는 장소였다. 자연주의적인 분위기에 이름처럼 빛이 잘 드는 곳이었다.

안주원이 나에게 사진을 넘겨주며 설명했다.

“이쪽에 세팅하면 좋겠어. 좀 공간감 느껴지게.”

“그건 내가 리버브랑 패닝(소리를 좌우로 나누는 작업) 만져볼게.”

“어, 난 원근감 얘기한 건데.”

“야, 음악 얘기 하는데 왜 미술 얘기 해.”

“너야말로 장소 보면서 왜 음악 얘기를 해?”

그렇게 나와 안주원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신지운이 병실 침대에 놓여 있던 프로그램 구성안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황새벽에게 물었다.

“형, 이거 안 할 거지?”

“어. 어떻게든 안 해야지.”

황새벽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난 처음에는 팀으로 유튜브 조회 수 올려야 하는 줄 알고, 햇살이들이 계속 스트레스받으면서 스트리밍 돌려야 될까 봐 절대 안 되겠다고 생각했거든?”

“어, 그것도 문제긴 한데.”

“근데 다시 보니까, 멤버를 섞더라.”

내 말에 황새벽이 뭐라 대답하려다 그냥 혀를 한번 찼다. 내 멘탈 때문에 저러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팀의 화제성을 끌어주려 합류한 거지, 발목을 잡으려 한 게 아니다. 해서 팀의 인기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피하지 않고 일단 뛰어들어볼 생각이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양이형이었다.

[보냈다]

“아, 왔다. 야, 이제 다 가. 산만해.”

그렇게 말하고 헤드폰과 회사에서 작업용으로 쓰라고 사준 맥북을 꺼냈다. 메일을 확인해보니 멤버들이 가녹음한 ‘맑은 날’의 보컬 트랙이 도착해 있었다.

이번 팬송은 처음부터 끝까지 멤버들이 만드는 곡이기도 하고, 드물게 랩 파트가 아예 없는 곡이기도 했다. 녹음도 데뷔 이후 처음으로 멤버 전원이 올파트를 부르고, 코러스에도 전부 멤버들의 목소리만 들어가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굳이 팬송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 멤버들은 하나 같이 굳이 일을 까다롭게 만드는 데서만 마음이 잘 맞는다. 허허…….

“뭐해, 가라니까?”

“왜 가. 어차피 우리 본 녹음 할 때는 형이 디렉팅할 거잖아. 지금 듣고 준비해 올 부분 말해봐.”

그런 신지운의 말에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듣기에도 맞는 말이기도 해서, 나는 헤드폰을 내려놓고, 멤버들과 함께 보컬 트랙을 하나씩 들었다.

황새벽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분위기로 압도해 단숨에 확 곡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박선재가 내 옆에 앉아서 말했다.

“형이 말하는 새벽이 형 분위기가 뭔지 확 알겠어.”

“어, 이거는 진짜 타고난 거야.”

안주원의 목소리는 본인의 성격처럼 부드럽고, 신지운의 보컬은 반대로 테스토스테론이 확 느껴지는 거친 목소리였다.

한효석의 목소리는 겨울에 난방을 뜨끈뜨끈하게 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나고, 민지호는 쨍쨍한 햇볕 같다. 둘의 보컬을 같이 들으면 따듯함과 더움의 차이가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 막내는 말할 것도 없이, 너무 칭찬해서 입 아플 정도로 명창이다.

뭘 지적할 것도 없이 나는 오히려 그런 특징과 장점만 계속 이야기했다.

국선아 때도, 나는 여기 여섯 명에게는 유난히 참견을 많이 했었다. 성격이야 하나 같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데가 있는 놈들이니, 더 착하고 나와 잘 맞는 연습생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참견을 해댄 건, 내가 이 멤버의 보컬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개인도 잘하지만, 무엇보다 보컬의 합이 끝내주게 좋았으니까.

이런 합은, 회사에서 몇 년 동안 공들여 만들어도 못 만들 것이다. 정말 하늘이 준 우연, 그 자체다.

여섯 명의 보컬 트랙을 다 듣고 나니까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보다 너희들 보컬을 되게 좋아하네.”

그러자 안주원이 나에게 물었다.

“내 보컬도?”

“어, 좋다고. 너 노래 잘한다고. 누구 놀리냐?”

내 말에 멤버들이 낄낄거렸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안 나가고 일곱 명이 있기엔 너무 좁은 병실에 복닥거리고 모여서 계속 떠들다가 떠났다. 하여튼 진짜 모여 있는 거 좋아하는 놈들이다.

* * *

병실에서 나와 차에 탄 후, 민지호가 황새벽에게 물었다.

“형, 회사에서 그거 예능 하자고 하면 어떡해?”

“뭘 어떡해. 안 한다고 해야지.”

회사에서 어쩌면 거절하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밑밥을 깔았다. 들어보니 먼저 섭외 제안이 간 다른 소속사의 그룹이 거절을 했다는 모양이다.

이미 밑그림을 그리고 캐스팅을 밀어붙인 모양이라서, 거절하려는 소속사와 방송사 사이에 싸움도 일어났다고 했다. 그 소속사에는 불이익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컴백은 9월 1일, 그리고 활동 종료는 두 주 뒤, 금요일인 16일이었다. 그리고 첫 방송이 바로 그다음 주 25일. 그로부터 6주 동안 이어지는 방송이었다. 말 그대로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어찌 되었든 팀의 리더인 황새벽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입장과 상관없이, 멤버들이 오래, 무사히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가지고 있었다.

정해원이 합류하기 전까지는 리더 일에 관하여 그냥 하기 싫은 일을 떠맡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달랐다. 이 팀은 고꾸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면서 가급적 어렵거나 복잡해 보이는 일은 회피하자고 생각하고 살아온 황새벽의 인생에서 거의 유일하게 선택한 직진이었다.

황새벽은 잠시 국선아 시절을 떠올렸다.

캐스팅을 너무 받아서, 그걸 거절하는 것도 지겨워서 가장 적극적이던 소속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데뷔라는 게, 소속사 관계자들이 처음 캐스팅할 때 한 사탕발림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연습생 생활이 길어지고, 데뷔에 대한 어떤 흐릿한 가늠도 되지 않는 소속사에 신뢰를 잃어 자신과 비슷하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그만두기 시작했을 때 국선아에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거기서의 빡센 생활이 맞지 않아, 내내 우울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옆에서 다른 연습생들은 어떻게든 눈에 띄려고 카메라 앞에서 가진 모든 끼를 드러내는데 황새벽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점차 뒤로 물러나고, 연습생들이 카메라 앞에 서는 걸 보고만 있다가 정해원과 처음으로 같은 조가 되었다. 정해원은 타고난 리더처럼 보였다. 늘 한발 물러서는 황새벽까지 끌고 나가며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음악에 대한 재능과 무대에 대한 센스는 같은 조원들의 능력치를 최대로 끌어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은 싸움이 있었다. 황새벽과도 마찬가지였다. 책임질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에게 도입부를 부르라고 하니, 정해원과 계속 다퉜다.

‘넌 분위기랑 보컬톤 때문에 확 집중이 되잖아.’

리드보컬을 맡은 건 그때가 처음이고, 실제로 그 이후 황새벽은 도입부를 자주 맡게 됐다. 그때 정해원의 말은 대부분 맞았다.

핸드폰을 돌려받고 직후는 그래도 꽤 괜찮은 듯 보이다가, 어느 날 정해원이 숙소의 복도 벽에 기대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꼼짝도 안 하고 핸드폰을 보고 있어서 못 보게 하려고 뺏었는데 열려 있는 인터넷 창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평생 TV에서 안 보고 싶은데]

[↳어차피 못 나올 듯ㅋㅋㅋ 대중이 이렇게 싫어하는데 어떻게 나옴]

이런 걸 왜 보냐고 하려는데, 정해원이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대중이 싫어하면 아무래도 아이돌이 되는 건 어렵겠네.’

황새벽이 생각하기에 그것보다 더 심한 말도 많았고, 정해원은 굳이 그걸 스스로를 교정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전부 읽었었는데 아이돌을 그만둬야겠다는 뉘앙스로 말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댓글이, 황새벽의 기억에도 오래 남아 있었다.

* * *

나는 병원에서 하루 푹 쉰 게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컴백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일정이 휘몰아쳤다.

그날 저녁에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 ‘맑은 날’을 마무리했다. 작업하는 내내 A&R들이 계속해서 함께였다. 그나마 우리 회사는 앨범 제작팀과 확실하게 분업이 되어 있어서, 꽤 일이 적은 편이라고 하는데도, 내가 밤을 새우고 작업하는 중에도 언제나 연락이 오갈 정도로 거의 매일 야근이었다. 어쨌든 작업하는 내 쪽에서는 꽤 편하다.

컨셉 포토를 찍을 때는 정규 앨범 분위기에 맞게 머리 색을 바꿀 멤버들이 있기 때문에, 스페셜 영상을 찍을 거면 그 전에 찍어야 해 무지하게 급했다. 일정을 빡빡하게 잡았지만 아슬아슬하게, 무사히 촬영 전에 녹음을 한 후 믹싱까지 끝났다.

함께 촬영장에 도착해서, A&R 박건훈 대리가 나에게 말했다.

“진짜 고생하셨어요, 작가님…… 아니다, 해원 씨. 아니지? 작가님은 맞죠.”

잠이 모자란지 횡설수설한다. 내가 말했다.

“그냥 말 편하게 해주세요. 앞으로도 맨날 볼 건데.”

“아, 그래도 되나. 그럴까요.”

“네. 피곤한데 말 몇 글자 줄여서 체력을 아끼세요.”

내 말에 박건훈이 실없이 흐흐 웃는다. 별로 웃기지도 않은 말에 실소가 나오는 걸 보니 돌아버릴 만큼 피곤한 모양이다. A&R이란 게 앨범이 무사히 나올 때까지는 신경이 곤두서고 피곤할 수밖에 없는 직업인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멤버들과 함께 촬영장에 설치된 세트에 섰다. 분위기가 진짜 좋다. 건물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창문 너머에서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늘 녹음이 섞인 햇살을 좋아했다. 그런 날은 꼭, 햇빛이 초록색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파트는 1절 벌스에 한 부분이었다.

[네가 말해주니 기억이 나 햇살이 있던 순간]

[포근하게 마른 옷에 감싸여 있던 기분]

“아, 내 파트 너무 많아서 긴장되는데.”

내 말에 옆에서 멤버들이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진심인데 왜 웃는지 모르겠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안주원이 말했다.

“파이팅 한번 하자. 해원이가 구호하면 어때?”

“어, 그러자.”

“자자, 모이자.”

멤버 일곱 명이 모여서 손을 하나씩 모았다. 나는 마다 않고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햇살이들한테 선물하는 첫 번째 팬송이니까, 햇살이들이 선물 풀어보면서 즐거워하는 표정을 상상하면서 진솔하게 한번 불러보자. 서드 세컨.”

퍼스트를 외치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마이크 앞에 섰다.

현장 분위기는 무지하게 좋았고, 나도 멤버들도 녹음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데도 나는 업로드가 되는 그 순간까지, 아마 태어나서 가장 많이 긴장하며 기다렸던 것 같다.

선물을 주는 게 아니라, 받는 날을 기다리는 어린애의 마음 같았다.

* * *

며칠 뒤, 퍼스트라이트 공식 채널에 영상 업로드가 예정되었다.

그리고 그 영상이 올라오기 전에 민지호가 X버스에 연달아 글을 올렸다.

[민조 : !!!!!!!!!!!!!!!!!!!!!!!!!!!!]

[민조 : !!!!!!!!!!!!!!!!!!!!!!!!!!!!!!!!!!!!!!!!!!!!!!!!!]

[민조 : !!!!!!!!!!!!!!!!!!!!!!!!!!!!!!!!!!!!!!!!!!!!!!!!!!!!!!!!!!!!!!]

느낌표만 가득한 글에, 활동기도 아니고, 스케줄표에도 없던 갑작스러운 영상 대기에 물음표로 가득하던 팬들의 기쁜 아우성이 이어졌다.

[왜왜 뭔데 뭐가 올라오는데!]

[컨셉 트레일러는 아직 많이 남았는데?]

[궁금해 미치겠다ㅠㅠㅠㅠㅠ]

[지호야ㅠㅠㅠㅠㅠㅠ 도대체 뭐야 뭐가 올라오는데!!!!!!!!!!]

[아니 평소에 그렇게 스포 잘하던 애들이 이번엔 스포 하나를 안 해주네!!!! 도대체 뭔데 얘들아!!!!]

그리고 영상이 업로드되는 순간.

영상의 제목만으로도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퍼스트라이트로부터 햇살이들에게 - ‘맑은 날’]

[아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 이런 거였냐구ㅠㅠㅠㅠㅠㅠㅠ]

[미쳤나 봐 팬송이야 진짜 미쳤나 봐]

[어떡하지 썸네일만 넋 놓고 보느라 못 누르는 중…….]

[누가 좀 듣고 말해줘 나 눈물 진짜 많거든? 눈물 나? 어때?]

그리고 곡이 끝나는 3분 21초 후.

역대 퍼스트라이트의 영상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댓글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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