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41화
‘맑은 날’의 무대 영상 뒤로 짧은 비하인드가 이어졌다. 우산과 슈퍼파워 이야기는 정해원의 작사 과정으로 이어졌다.
-무대에서 느낀 거 진솔하게 써보라고 내가 해원이 형한테 말해줬다니까.
민지호의 생색에 신지운이 말했다.
-아니, 어쩌다 민지호한테 배움을 얻었냐. 진짜 이거 평생 우려먹는다.
-그럴라구!
민지호의 외침에 멤버들이 낄낄거리고, 황새벽이 입을 열었다.
-아니, 해원이 합류하고 처음 무대 했을 때 있잖아. 얘 그때 무대 내려와서 울었잖아.
-야!
정해원이 소리친 것이 무색하게, 무대에서 내려와 계단에서 우는 비하인드 영상이 이어졌다. 그 위로 황새벽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얘가 무대 진짜 좋아하거든. ‘불을 켜’ 첫 사녹 때, 햇살이들이 자기 파트에서 들리는 응원 소리가 그렇게 좋았다는 거야. 그게 무대를 좋아하는 이유였으니까.
* * *
나는 영상이 업로드된 이후에 반응을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 놨다. 오늘 양이형의 실용음악과 후배인 장석훈이라는 사람이 와서 코러스와 가이드를 한 곡 녹음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회사 안 컨트롤룸에서 장석훈을 기다리며 민지호와 한효석에게 톡을 보냈다.
[효식이, 민조. 세 시쯤에 컨트롤룸 와봐]
[효식 : 네]
[민조 : 우리 둘만? 그랭!]
말 되게 안 들을 것 같은 애들인데 의외로 말을 잘 듣는다.
그렇게 연락을 해두고 오늘 코러스를 녹음할 장석훈의 공개된 음원을 다시 들었다. ‘헤이’라는 활동명을 쓰는 장석훈의 목소리는 깔끔 그 자체였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색이라 몇 번 더 반복해서 듣다가, 장석훈이 도착해 녹음을 시작했다.
* * *
컨트롤룸에 들어선 헤이가 힐끔 정해원을 보았다.
‘와씨,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겼지?’
국선아 때 잠깐 봤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지금까지 아이돌들을 꽤나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메이크업을 안 한 상태로도 헤이가 본 중에 세 손가락 안에는 들었다. 하지만 피로에 쩔어 있는 얼굴과 상태에서는 익숙한 작곡가 바이브가 느껴졌다.
정해원이 먼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형이 형 후배분이시죠?”
“아, 네.”
“형은 좀 늦는다고 해서요.”
“예, 연락받았습니다.”
정해원이 두 손으로 헤드셋을 내밀며 말했다.
“제가 노래를 못하는데요, 작곡가 형들한테 들어보니까 녹음해서 드리는 거랑 말로 드리는 게 완전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좀 귀가 힘들어도 들어주세요.”
따로 데모를 안 준 부분은, 뭐 아이돌이라 유난히 보안에 철저해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가이드할 곡에 가이드를 따로 해서 주는 걸 보니 기본은 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헤드폰을 받았다.
확실히 보컬이 좋은 건 아니었다. 본인도 알아서인지 노래를 듣고 있는 헤이의 반응을 무지하게 신경 쓰일 정도로 살피고 있었다. 지나치게 잘난 얼굴로 저러고 보고 있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저기 죄송한데, 너무 빤히 보시면 좀…….”
그렇게 말하니까 생각보다 심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아, 죄송해요.”
그러더니 바로 작업하는 시늉을 했다.
그나저나 무지하게 정리 정돈을 잘하는 성격이라는 게 세션을 정리해 놓은 화면만 봐도 느껴졌다. 저 정도면 깔끔한 정도가 아니라 정리벽 수준이었다.
‘딱 봐도 완벽주의자네.’
무지하게 피곤한 놈이라고 양이형이 말하던 게 기억이 났다. 오늘 가이드와 코러스 녹음의 난항이 예상되었다.
스무 살짜리에 작곡 경력도 짧고 디렉팅 경력은 더 짧다. 악조건투성이였다.
‘그래도 곡은 좋…… 어?’
데모에 코러스 가이드까지 전부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코러스 경력이 긴 헤이는 그것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X바, X나 천재네.’
경력을 생각해 보면 코러스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가이드에는 코러스를 넣고 뺄 부분에 대하여 웬만큼 경력 있는 작곡가만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냥 타고난 음악적 센스라고밖에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곡이 끝나자 정해원이 돌아보며 말했다.
“그건 그냥 제가 대충 짜본 거니까요, 형이 추가하고 뺄 곳 있으면 해주세요.”
“이대로 가면 될 것 같은데요? 좋은데요?”
“진짜요? 다행이네.”
칭찬해 주니까 금방 흐흐 웃는다. 첫인상과 달리 은근 잘 웃었다.
헤이는 우선 가제 ‘아침만 기다렸어’가 붙어 있는 곡의 코러스를 시작했다.
“형, 랩 파트 코러스 형이 하는 게 좋을까요?”
“여기는 멤버분이 하는 게 낫죠. 아무래도.”
“음…… 잠시만요.”
그리고 진짜로 잠깐 속으로 흥얼흥얼거리더니 말했다.
“죄송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따놔도 될까요? 따라라라 아, 따라라라 아. 이렇게만요.”
“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오래 걸릴 거라고 예상한 코러스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가이드가 워낙 정확하고, 코러스에 대한 이해가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어느 직업인들 그렇지 않겠느냐만 작곡가도 센스가 중요한 직업이었는데, 정해원은 그런 순간적인 센스가 굉장히 뛰어났다.
[너와의 낮은 짧고 혼자인 밤은 길어 아침만 기다렸어 너에게 말하려고]
신지운의 묵직하고 거친 목소리 위로 코러스가 입혀졌다.
순식간에 코러스 녹음을 마치고, 마지막 곡의 가이드 작업이 들어가기 전, 둘 다 진이 빠져서 에너지 드링크와 커피를 마셨다. 금방 좀 친해졌다고 정해원이 앞에서 조잘조잘 작곡 비하인드를 떠들었다.
“이거 멤버들한테 비밀로 하고 작업하고 있거든요. 우리 멤버들 중에 제일 사이 나쁜 애들 유닛 곡으로 생각하는 거라서…….”
“두 분이 싫다고 하면 어떡해요.”
“걔네가 싫다고 하면, 곡이 나쁜 거니까 접어야죠.”
솔직히 그 대답에는 살짝 감동까지 했다. 자신의 팀 멤버들이 가진 음악에 대한 열정과 귀를 견고하게 믿고 있는 사람의 대답이었다.
헤이는 마지막으로 가이드를 떠야 하는 곡의 악보를 다시 확인했다. 제목은 Two Villains, 두 명의 빌런이었다.
[아아- 빌런의 승리입니다. 지구는 멸망합니다. 히어로는 패배했습니다.]
곡이 시작하기 전에 사이렌 소리가 들린 후, 오토튠이 들어간 나레이션이 들렸다.
[How's it going 히어로들. 오늘 하루 힘들었지?
지구를 지키는 모습 잘 봤어.
빌런이 하나라면 힘들었겠지. 우린 둘이지만.
한 팔이 없어도 다른 팔을 휘둘러. 봤어? 미쳤지? 히어로 생활도 힘들겠어?
여기는 빌런의 판이야
순진해 보여도 얌전해 보여도 의심해
이 밤이 끝나도 우리의 세상은 끝나지 않아
두 명의 빌런 하나의 세계 우리의 승리야
밤은 우리의 시간 더 이상 태양은 안 떠]
강렬한 전자음에 히어로와 빌런의 전투 속에 들어간 것처럼 쉴 틈 없이 터져 나오는 FX(특수효과음)가 혼을 쫙 빼놓았다.
오늘 한 코러스에서 느껴진 청량함을 완전히는 놓지 않으면서, 앨범의 구성을 단숨에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곡이었다.
헤이가 막 이 곡의 가이드 녹음까지 마쳤을 때, 양이형이 도착했다.
“어, 뭐야. 벌써 다 했냐?”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나 황당해하는 양이형에게 헤이가 말했다.
“형, 이 작가님 진짜 천재예요.”
그 말에 정해원이 소리 내 웃었다. 그리고 별말 없이 인사한 후에 다시 자기 작업을 시작했다.
정해원은 생각이 없다고 해서, 헤이는 모처럼 양이형과 술을 한잔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양이형에게 말했다.
“형, 저 솔직히 아이돌이라 좀 많이 걱정하면서 왔거든요. 근데 작업 너무 편해요.”
“어, 쟤랑 일하면 편해. 원하는 게 진짜 확실하거든. 경력 좀 쌓이면 이것보다 시간 더 줄어들걸?”
“아니, 장르도 가리는 게 없어요.”
“어, 다 잘해. 미친놈이야, 완전.”
“형. 딱 붙어 있어요.”
“야이씨, 그래서 내 작업실에 빌붙어 사는 애를 그냥 놔두고 있잖아. 아주 자기 집이야. 내가 들어가면서 눈치 본다니까?”
“저 실력에 저 얼굴로 안 뜰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맨날 보니까 이제 이쁜지도 모르겠다.”
“아, 근데 가이드 들어보니까 성대 엄청 약할 것 같던데. 성대 컨트롤 잘 안 되죠?”
“어, 쟤네 소속사가 워낙 작아서 보컬트레이닝도 엉성했던 것 같더라. 성대가 약해서 그렇지, 뭐 결절이 있고 그런 건 아닌데.”
“저 보컬 트레이너일 때 성대 약한 애들 많이 봤는데.”
“그랬어?”
“네, 성대 힘 키우는 건 제가 진짜 전문가예요.”
“작업실 좀 와서 한 소리 해봐. 어차피 쟤 낯도 안 가려.”
“제가 낯을 가리는데.”
“지랄하네.”
양이형이 어이없어서 낄낄거리며 말하고 헤이와 함께 가까운 술집으로 향했다.
* * *
녹음이 깔끔하고 빠르게 끝나서, 민지호와 한효석이 오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았다.
잠깐 잘까,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신지운이 언제나 그렇듯이, 좋은 댓글만 찾아서 보내는 중이었다. 내가 태반은 안 본다는 걸 알면서 참 꾸준하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 한참 고민하다 보내준 댓글 캡처를 눌렀다.
[망했다 내일 발표 있는데 눈 팅팅 부었어ㅠㅠㅠㅠㅠ]
[그러니까 맑은 날이 다음 정규에 들어간다는 거지? 누나가 돈 많이 벌어 놓을게…….]
[살면서 받아본 선물 중에 최고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알았다고!!! 평생 햇살이하면 되잖아!!!!!!!!!!]
[솔직히 햇살이들 인정할 때 됐다. 복덩이 굴러들어 온 거]
“아, 다행이다. 반응 좋네.”
나는 생각하며 다음 장으로 넘기고, 한동안 댓글을 보고 있었다.
[고마워 해원아 많이 사랑해]
많이 사랑해.
어느 날부터인가 사랑한다는 말이, 나에게는 산타클로스처럼 느껴졌다.
진실을 알기 전까지만 믿는다는 면에서.
그래서인지 나도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데.
“……아, 거짓말 같은데.”
오히려 불안했다. 금방 변할 것 같아서, 아니, 금방 변할 걸 알아서 그랬다.
나는 핸드폰을 꺼버리고 불안해지기 시작한 호흡을 정리하고 속으로 숫자를 셌다. 홀수로 올라갔다가 짝수로 내려왔다가 구구단을 9×9부터 거꾸로 세서 내려왔다. 내 나름으로 터득한 방법이었다.
항불안제 처방을 받기는 했는데, 약은 먹고 나면 머리가 안 돌아가고 잠이 와서 먹고 싶지 않았다. 누그러지기엔 너무 바쁜 시기였다.
그래도 오늘은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약을 먹고 나서, 다행히 조금 누그러졌을 때 민지호와 한효석이 도착했다.
“형, 우리 왔어!”
“식사하셨어요?”
그래도 멤버들 얼굴 보니까 그냥 저절로 웃음이 좀 난다.
나는 멤버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너희가 이번에 자컨에서 빌런 역할이었잖아. 이제 컴백 전부터 일라운드가 풀리기 시작할 텐데……. 거기서 영감이 생겨서 만든 거라.”
그렇게 설명하고, 가이드를 뜬 투 빌런을 틀어주고 나서, 둘이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말했다.
“이건 해야지.”
“무조건 해야죠.”
“웬일로 둘이 마음이 딱 맞냐?”
애들이 좋아하는 게 표정에 보여서, 내가 흐흐 웃으며 놀렸는데 민지호가 흥분해서 말했다.
“이걸 듣고 안 한다 그러면 멍청한 거지!”
“형, 이거 파트도 A&R팀에서 나눈 거예요?”
“응. 너희만 할 생각 있으면.”
“해! 무조건 한다니까? 할 거지?”
민지호가 한효석을 보며 재촉하니까 한효석이 짜증 내며 대답했다.
“한다고.”
“형, 효식이 한대!”
“그럼 효식이, 여기 좀 불러봐. 오토튠을 많이 쓸 거라서 네 목소리를 어떻게 넣을지 아직 모르겠어.”
워낙 단정하고 깨끗한 목소리라 곡에 어울릴지 모르겠다.
한효석이 악보를 들더니 헤드셋을 손에 들어 가이드를 들으며 바로 노래를 불렀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오토튠에 쫙쫙 붙었다. 민지호의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무슨 오토튠을 위해 타고난 목소리 같다. 허허…….
민지호가 흥분해서 말했다.
“아, 너무 좋은데? 바로 녹음해 보면 안 돼?”
내가 피곤할 걸 뻔히 아니까 예의 바른 한효석이 막을 줄 알았는데, 옆에서 한효석이 은근슬쩍 동조했다.
“한 시간만 주면 빡세게 연습해 올게요.”
“그럼 일단 한 시간 뒤에 가이드 켜고 한번 해보고, 조만간 녹음하고, 디테일 수정까지 빨리해 버리자. 그럼 난 한 시간 잔다.”
“형 잘 거면 나 여기서 연습할래.”
“시끄러워서 어떻게 자.”
“에이, 형 음악 들으면서 잘 자잖아. 헤드셋 끼고, 음악 들어, 빨리.”
얼굴 보면 반갑긴 한데, 같이 있으니 좀 귀찮다. 아이러니다.